※ 이 글은 편의상 평어체로 작성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4월 중간고사가 끝나고, 대학원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기 시작할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법대 후문 아래쪽 어느 식당에서 지도교수님과 나는 둘이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교수님께 질문을 한 가지 던졌다. "교수님께서는, 연구를 하시면서 언제 즐겁다는 기분을 느끼십니까?', 교수님께서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음..별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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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학기에 나는 나르시시즘에 관한 두 개의 연구팀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 가지는 나르시시즘과 성폭력 인식에 관한 것이었고 나머지 한 가지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대규모 메타 연구에 관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의 연구에 보다 애착이 갔다. 당시 메타 연구에 필요한 자료 수집하고 정리하느라 며칠씩 꼬박 자정 무렵까지 연구실에 남아있어야만 했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국내 모든 연구들을 전수 조사하느라, 하루하루 몰라보게 나 자신이 초췌해져 가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을 정도다.
그즈음 내 연구실 책상에는 '논문 리스트' 들이 빽빽했다. 우선 국내 주요 논문 사이트들과 저널들을 이 잡듯이 뒤져가며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논문이라면 빠짐없이 수집하고, 리스트에 넣는다. 그 후에는 우리 연구팀이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논문들만 차례로 추려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질적 연구인가? 양적 연구인가?', '연구 시점은 언제인가?', '나르시시즘을 측정한 도구는 무엇이었는가? 리커트 몇 점 척도였는가? 강제 선택형이었는가?', '피험자들의 나이대와 직업군은 어떠했는가?', '실험이 행해진 지역은 어디였는가?' 등등을 기준 삼아 어떤 논문들은 따로 리스트 화했고, 또 어떤 논문들은 리스트에서 지워졌다. 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과정에 교차 검증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연구팀 구성원 모두가 달려들어 번갈아가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신중하게 메타 분석에 투입될 데이터들을 확보해 나갔다.
수업 듣고, 과제하고, 학회나 기타 행사에 가는 등의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들은 대개 이 과정에 고스란히 바쳐졌다. 그즈음 친구들도 잘 만나지 못했고 집에도 일찍 들어가지 않았다. 매일 빼곡한 리스트를 보고, 일일이 확인 작업하느라 눈도 많이 피로해졌고 정신 상태도 퀭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연구 일정이 촉박하다거나 압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잘 해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내 생애 첫 연구인만큼 더욱 정성을 쏟고 싶었던 마음이 나를 계속 그런 상태로 이끌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손은 계속 이끌려 가고 있었으되 그 과정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지루했고 가끔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던 중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저 어서 빨리 이 터무니없이 방대한 일거리를 해치우고 다음 연구로 넘어가고 싶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가독성 역시 중요했다.
최종적으로 약 수십 개의 논문이, 메타 분석에 쓰일 재료로 걸러졌다. 개중에는 논문에 데이터가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아 우리가 별도로 계산해서 원하는 값을 도출해야 하거나 논문의 저자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실험 당시의 분석 값을 알아낸 경우도 있었다. 이쯤에서 당시 우리의 목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국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르시시즘을 측정한 모든 연구들에서 보고된 나르시시즘 값을 수집하여, 해당 값이 연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조금 어려운 말로, 우리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시교차적 메타분석'을 시도하였다). 미국, 중국 등과 마찬가지로 연도가 지남에 따라 국내 대학생들의 나르시시즘 수준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리라는 것이 우리의 예측이었다.
자료들을 모두 정리하고, 가중치를 반영한 뒤 나르시시즘과 연도 간 상관 분석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상관 분석 창에 관련된 변수들을 넣고 분석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잠시 흐르고, 우리는 숨을 죽이며 분석 결과를 확인했다. 이윽고 교수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별 봤다!!'
그동안의 모든 고생들이 눈 녹듯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뒤이어 밀려드는 희열, 그리고 주체 못 할 흥분과 줄줄 새어 나오는 미소. 고작 화면에 뜬 그 '별' 하나 보고 우리들은 그렇게도 좋아하고 신나 했다. 천문학자인지, 심리학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출처: 이선경, 팔로마 베나비데스, 허용회, 박선웅 (2014). 한국 대학생들의 나르시시즘 증가: 시교차적 메타분석(1999-2014). 한국심리학회지: 일반, 33(3), 609-628.
사실 연구라는 일은 꽤나 재미없는 활동이다. 그럴듯한 연구 아이디어 짜 내는 것도 고역이고, 밀려드는 논문들 읽는 것도 머리에 쥐가 나는 일이다. 어두컴컴하고 공기도 나쁘고 좁은 실험실에 장기간 틀어박혀 컵라면 먹어가며 씨름해야 하고, 그렇게 돈 들이고 정성 들여 얻어낸 데이터에서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아까운 데이터들을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통에 털어 넣어야 한다. 논문을 쓰는 과정 역시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는 것만 수백 번이고 아무리 잘 써도 글이 이게 뭐냐며 혹평받게 되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만약 누군가 연구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단호하게, 진심이냐고 되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구에서 손을 못 떼는 이유는, 바로 저 '별 보는 맛'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연구라는 것은 곧 별을 따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화면에 저 작은 별 하나 보려고(욕심을 내자면 두 개, 세 개까지 늘어선 별을 우리는 강하게 원한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곧 연구자들의 일이다. 그런데 고작 그 별 하나가 사람을 울리고 웃음 짓게 한다. 그것은 이제까지 무지막지하게 쌓여 온 고통과 울분들을 한 방에 날려주는 듯한, 카타르시스의 정수다. 일 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든 것이 별인데, 중독성은 어찌 그리 대단한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별을 따기 위해' 밤낮으로 고통받는 모든 연구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