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우리 인류가 하나의 단일한 진화 계통을 밟아왔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즉, 하나의 종이 점점 진화해서 궁극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게 되었다는 생각이었는데 이후 비교적 동일한 시대의 지층에서 여러 종류의 고인류 화석들이 발견이 되면서 이 가설은 이제 휴지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지금까지 스무 종이 넘는 고인류들이 지구상에 존재했었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같은 시기에 세, 네 종의 고인류들이 동시에 존재했던 시기도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치 현재 지구상에 검정늪거북, 늑대거북, 대모거북, 돼지코강거북, 등갑가시거북, 마다커스카르방사상거북, 붉은귀거북, 붉은다리거북 등 수십 종의 거북들이 살고 있듯이 한때 지구상에는 꽤 다양한 인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나머지들은 다 멸종되고 현재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 혼자만 남았습니다. 만약 우리 호모 사피엔스마저 멸종한다면 이제 더 이상 지구상에 호모 속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주 오래전 옛날, 대략 한 200만 년 전쯤, 우리 고인류들은 고기파와 채소파로 나뉘어져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인 바가 있습니다. 과연 최종 승리는 어느 파의 차지가 되었을까요?
우선 채소파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이들은 비교적 건장한 체격에 펑퍼짐한 얼굴을 가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치아는 현생인류의 그것보다 약 2배 정도 더 컸는데 특히 어금니가 아주 컸습니다. 뇌는 현생인류의 약 3분의 1정도 크기였습니다. 바로 파란트로푸스 일족들이었는데 대표적인 녀석들로 파란트로푸스 에티오피쿠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가 있었습니다.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
파란트로푸스족들이 살던 시기에 이들과는 달리 고기를 좋아하는 고기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파란트로푸스 족들에 비해 가냘픈 몸매를 가진 녀석들이었는데 바로 호모 파들이이었습니다. 파란트로푸스 일족과 함께 아프리카 지역에서 살았던 호모 파들은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하빌리스, 그리고 호모 에르가스터였습니다.
호모 에르가스터 복원도...
파란트로푸스파, a.k.a. 채소파들은 말 그대로 채식을 했습니다. 수컷들의 평균 신장은 약 130센티미터, 체중은 약 49kg 정도였지요.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풀을 아주 많이 먹어야만 했습니다. 하루에 8시간 정도를 풀을 먹는데 소비했습니다. 이렇게 풀을 무지하게 씹어대니 자연히 어금니뿐만 아니라 턱도 발달하게 되었고 얼굴도 옆으로 넓적해졌습니다. 또 먹을 수 있는 풀을 찾아 초원 여기 저기 다니나 보니 포식자들에게도 쉽게 노출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먹는 풀이었습니다. 풀은 먹는 양에 비해서 열량이 부족했습니다. 먹는 음식의 질이 떨어지다 보니 많이 먹어도 조금의 칼로리 밖에 섭취할 수 없었고 이렇다보니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이기 위해서 또 먹어야 하는 마치 무한 루프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깨어 있는 때는 항시 먹을 것을 찾아야 했고 또 그 먹을 것을 찾아 느릿느릿 움직여야 했습니다. 포식자들에게는 좋은 목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식물로 배를 채우는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
반대로 고기를 좋아했던 호모 파들은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고기는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열량을 공급해 주는 양질의 음식이었습니다. 단 여기에도 조건이 있었습니다. 고기는 풀처럼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냥을 해야 했지요.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고 그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잘 작동하는 뇌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한번만 성공하면 나머지 시간을 먹이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자연히 포식자들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짧았을 것입니다.
곧 죽어도 고기는 먹어야 쓰겠다는 호모 에르가스터...
고기와 같은 열량을 섭취하기 위해서 풀은 아주 많은 양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내장의 길이가 길어져야 했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그만큼 뇌의 용적을 키우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반면에 고기를 섭취하는 경우는 내장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질 필요가 없고 그것은 뇌의 용적을 키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했지요. 다시 말해서 파란트로푸스파 대 호모파의 대결은 좀 거칠게 말하다면 내장의 크기를 키울 것인가 뇌의 크기를 키울 것인가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의 최종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답은 바로 현생인류의 학명에 있습니다. 우리는 "파란트로푸스"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결국 뇌가 내장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파란트로푸스 속들은 모두 멸종했습니다. 우리 호모 속도 따지고 보면 사피엔스를 빼고는 모두 멸종했습니다만 그래도 오늘날 살아있는 것, 번성하고 있는 것은 호모 속입니다. 가냘픈 몸매의 고기파가 승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기와 채소의 싸움은 200만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고기(=탄핵)파와 채소(=개헌)파의 싸움이 그것입니다. 이 싸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기파의 승리로 마무리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지난 화요일 채소파의 최정점에 서있는 "식물"대통령께서 갑자기 이상한(?) 담화를 하시면서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안개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과연 이번에도 200만 년 전처럼 고기파는 채소파를 누르고 다시 승리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EBS 다큐프라임
[사라진 인류]가운데 1부
[멸종]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