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주찬이를 보자니 나까지 덩달아 사악한 미소가 지어진다.
말해두자면, 주찬이와 나는 S성향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괴로움에 가득차 일그러진 현중이의 얼굴을 볼때면 지렁이가 꿈틀거리듯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저 한없이 일그러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그러니까... 누가 제일 예쁘냐면요..."
현중이 녀석은 난처한 듯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지금 이 자리에 만만한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으니까. 특히 현중이 입장에선 더욱 그럴거다.
전혀 친분이 없는 수영이, 현중이 잡는 마녀 연주, 소악마 소희(물론 이 면모는 나만 알고 있지만), 왈가닥 은성이, 현중이가 좋아하는
신입생 하얀이에 그 친구 다민이까지.
"그게..."
"아오 답답해. 남자새끼가 시원하게 말해버려! 말 못할 거면 떼라 떼(?)"
얼큰하게 취하신(?) 은성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과감한 언사였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말에 다들 동조하면 웃음을 터뜨렸다.
현중이 녀석. 아마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리는 심정일 것이다.
"여..역시! 다들 한 미모하시지만, 제일 예쁘다고 하면 은성이가..."
째릿.
은성이의 추궁에 묻어가려던 현중이는 즉시 은성이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의 째릿한 눈초리에 도주로가 막혔다.
"아, 그래. 현중이 너한테 나는 그냥 여자도 아니고, '마녀'였지?"
곧이어 연주가 한껏 장난스러운 말투와 과장된 몸짓으로 현중이를 압박해갔다.
연주의 입꼬리에 걸리 그것은 나와 주찬이가 걸고 있는 그것과 같았다. 역시 똑똑하고 배운여자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
"하하하. 그래. 쿠키같은 건 잘 구워봐야 쓸모 없다고. 학벌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흑흑."
연주의 탈압박에 이어 소희 역시 사악한 웃음기를 머금고 우는 시늉까지 해보인다.
눈은 물기가 맺혀 그렁그렁하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게 기괴하면서도 오싹했다. 저것이 소악마 은소희의 진면모, 한 얼굴 두 표정이랄까.
"연주 너도 예쁘고, 누, 누나도 예뻐요."
"아, 그러니까 현중씨 말은 이 여자나 저 여자나 다 예쁘다는 거죠? 제 말이 맞죠. 오빠?"
현중이의 어설픈 방어에 가만히 있던 수영이마저 가담했다. 순식간에 현중이를 파렴치한으로 만들며 내게 반문한다.
티키타카! 여자들의 절묘한 협동플레이가 기가 막혔다. 난 그저 현중이 자리에 내가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제가 죄인입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
현중이는 넋이 빠져 자포자기해버렸다.
"이 자식이? 지금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니라고, 위기모면용 말고 진짜 니가 보기에 예쁜 여자를 찍으라고!"
다소 터프해진 은성이가 현중이의 멱살을 잡고 신나게 흔들어 댄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주찬이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남자답게 진짜를 말하겠다고. 이것 좀 놔라. 후우."
현중이의 말에 은성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현중이는 잠시 간 침묵하더니 이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후아."
그리고 마침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모르겠는데요. 저는 여기에서 하얀이! 하얀이가 제일 예뻐보인다구요!"
...
"아..."
그 말에 조용히 앉아있던 하얀이가 나즈막이 탄성을 터뜨렸다. 굉장히 묘한 소리여서 어떻게 들으면 좋아서 터뜨린 탄성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소름이 돋아서 터뜨린 것 같기도 했다.
...
"저 잠시 화장실 좀..."
정적을 깨고 하얀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이거 분위기가 굉장히 묘하다. 얼마나 묘하냐면 베트남 쌀국수 향신료 만큼이나 묘하다.
"아오. 내가 미쳤지. 이 놈의 주댕이!"
현중이는 이미 희망을 잃은 눈으로 주접을 떨며 제 입을 찰싹찰싹 치고 있었다.
"내가 볼땐 괜찮은거 같은데?"
"네?"
불쑥 소희의 말에 현중이가 전광석화처럼 반응한다. 그 눈빛에 맺힌 희망의 불꽃이 굉장히 강렬해서 순간 녀석의 눈에
정말로 불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누나 뭐라고요?"
"싫어서 나간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나간 거 아닌가? 애초에 조용히 있던 걸 보면 내성적인 성격일텐데... 그리고
일어서서 나갈 때 얼굴이 좀 빨갛게 오른 것 같았는데..."
벌떡!
소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중이는 잽싸게 자리를 박찼다.
피식.
단순한만큼 재밌고 좋은 녀석이다.
"좋을 때다."
"넌 좋을 때 아니야?"
나도 모르게 툭 내 뱉은 말을 소희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렇게나! 예쁜 미녀들과 술도 먹고 게임도 하는데!"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먹이사슬. 당연한 말이지만 먹이사슬의 최하위 존재가 사라지면 차하위존재가 최하위 존재가 된다.
지금 내 상황에 어쩐지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슥, 하고 식은땀 한줄기가 등을 타고 흐른다.
"그러네요? 선배. 자기도 모르게 툭 본심을 내뱉은거 보니 안 좋은가봐요?"
연주의 맞장구에 수영이 마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상황 참 뭐같이 흘러간다. 현중이 녀석이 이렇게 절실히 보고싶어질줄이야.
"모르쇠로 나온다는 거지? 그래 오늘 한 번 제대로 가보자. 술병 돌려!"
"예!"
소희와 연주, 은성이는 마치 10년 된 친우라도 되는 냥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마주치게 해서는 안될 사람들을 마주치게 한 것 같다.
41 끝 4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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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다려주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흥행참패(?) 예상합니다. 크크.
그래도 일단 카페, 그녀라도 완결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예상은 80화로 잡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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