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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02 11:03
놀랍도록 저와 흡사하네요.
저는 운동권으로 실제 활동도 잠시 했었고, 한총련 출범식에 갔다가 경찰서에서 면담도 잠시 하긴 했었어요 흐흐.. 심지어 금액까지 비슷함... 당시 알바해서 받은 월급 중에서 30만원 빌려달래서 빌려줬더니 모르쇠.. 그거 다 받는데 6개월로 비교적 짧긴 했지만서도;;;
16/09/02 11:13
갑자기 훅 한총련 출범식때 대문 잡고 실랑이했던 기억이랑
시청앞에 비닐 옷 입고 앉아서 물러가라고 했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운동권 선배들 다 뭐할까요 지금은...
16/09/02 11:17
뭐 솔직히 이야기해서 운동권이 무슨 완벽무결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게 아닌이상 문제 있거나 극단적인 분들도 모여들기 마련이죠.
근데 그게 운동권이 문제다라고 일반화 하지만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메갈 옹호 유명인들만 해도 사소한 것까지 터는 분들도 꽤 계시는데 유명인들이 다 도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이 오히려 드물겠죠. 물론 스스로 생각하기에 모든 사안에 완벽하게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요즘 온라인에 자신이 실수나 잘못을 흘리고 다니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욕먹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운동권이 요즘도 대세로 남아있다면 그 많은 똥을 어찌 피할 수 있었겠나 싶어요. 저야 딱히 운동권에게 크게 문제된 연관은 없어서 좀 더 쉽게 생각하는 거 같긴 합니다만 일반화가 뭐든지 문제죠. 보수는... 진보는... 연예인은... 정치인은... 이런 건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6/09/02 11:31
문제가 되는 게 사람이 아니라 명분을 위해서 일부를 보호하려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거니까요. 당장에 문제가 안되었더라도 시간이 지나서 운동권에 비호감을 가지게 하고 현 메갈사태에까지 이야기 자체가 나오는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있다고 봅니다.
16/09/02 11:40
사실 우리나라에서 어디든 대개는 시스템을 보호하려고 한다고 봅니다. 그게 어떤 분야든 간에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를 만드는게 그렇게 쉬운건 아니죠. 명분이 사람보다 중요하냐고 이야기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명분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사람조차 지킬 수 없는 경우도 많아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우니 일반화가 안 좋다고 하는 거구요. 운동권은 그냥 그 시대에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확장했다 필요없어서 사라진 것 뿐이죠. 그냥 그 뿐이죠.
16/09/02 11:50
필요가 없어서 사라졌다기 보단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거죠. 시스템을 부수고 바꾸겠다고 일어난 집단이 자신의 시스템을 지키기위해서 자신을 제외한 무언가를 희생한 순간부터요.
16/09/02 11:54
글쎄요. 도태되었다고 보기엔 운동권이 지향했던 바가 사회에서 필요성이 많이 사라졌다고 보는게 맞지 싶습니다.
그들이 부수고자 했던 건 시스템이었다기보단 스스로 보기에 부조리한 사회였으니까요. 운동권 자체에 많이 부정적이신 것 같은데 뭐 운동권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만 않을 뿐이지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 운동하는 분들은 요즘에도 많죠. 저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해왔다고 생각해서 도태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6/09/02 11:59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보기엔 아직도 그 때 추구해야할 가치가 빛이 바랜 게 아니니까요. 결국 추구해야할 가치를 운동권들이 실행하는 과정이 본인들이 싫어하는 사회와 닮아간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진 것이 첫째라고 보거든요. 실제로 지금 사회활동 하는 젊은 친구들이 운동권에 적계인가 하는 점도 의문이고요.
16/09/02 12:05
추구해야 될 가치는 여전합니다만 그 방식에 따라 저는 운동권이냐 아니냐를 구분한다고 봅니다.
그때 운동권의 방식으로 지금 사회운동을 한다? 뭔가 구려보이는건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지금도 부조리한 사회인건 맞습니다만 그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기보단 부셔야 한다는 목표가 운동권의 목표였다면 지금은 부수는것보단 바꾸는 걸로 많이들 인식하고 있죠. 그런 지점에서 필요성이라고 이야기 한 겁니다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자꾸 이야기가 길어져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의견 잘 들었습니다.
16/09/02 12:19
사실 대학에서만 도태되면 별 문제가 아닌데 그 행동양식 그대로 사회로 나오니까요. 진보단체나 진보언론이나 시민단체들...똑같이 사회에서 도태되기보단 좀 더 자신들에 대해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은 있더라고요.
16/09/02 13:43
개신교, 이슬람에 대한 안티 여론이 들끓는 건 성직자, 신도의 반사회적 행위를 뒷받침하는 교리가 있다는 혐의 때문입니다.
운동권에 대한 비토정서도 이와 같아요. 일부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운동권 자체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일도 많죠. 운동권은 집권을 위한 행동강령을 공유합니다. '도시 노동자를 포섭해라', '농민과 연대해라'같은 거요. 이건 대학사회에서의 운동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행동강령 때문에 학생회가 뒤집어지고 선거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나니 운동권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 거죠. 제 모교는 몇해전까지 운동권이 총학에 당선됐고 비운동권도 pd와 성향, 인적 구성을 공유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nl은 nl특유의 행태 때문에 10년째 시선에서 아웃당한 상태죠.
16/09/02 11:44
그 대자보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는데 잊고 살고 있었는데 pgr에서 글을 읽고 다시금 되새김질하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당시 운동권은 총체적 난국이었고 끝물이었습니다, 괜히 광란의 10월이 나온게 아니었죠.
16/09/02 11:50
근데 저는 운동권의 쇠퇴기를 경험한 사람입니다만 2000년도 초반이 끝물이라고 하니 참 느낌이 낯설긴 하네요.
거의 10년을 버티고 버티다 사라져갔군요.
16/09/02 11:57
문민정부시절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아직 그 때만 해도 분위기가 참...뭐 했죠. 특히 과 분위기가 참 극렬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들도 포함해서요. 저는 나름대로 군사정부 끝나고 문민정부 되었으니 이럴 필요가 있나?는 주의였고... 과방에서 가요을 불러제낀게 제가 처음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투제끼고 당구장이나 들락거리고 애들 모아서 놀러다니고 그러다보니 학과에서 어용, 자본주의의 개 같은 소리들 좀 들었었죠. 아부지는 이 놈의 새끼가 대학 가더니 빨갱이가 되었다고 하고.. 응? 이건 뭐? 나는 어디? 하면서 대학 다녔네요.
16/09/02 12:12
잘 읽었습니다.
40만원이라니... 난 20만원이었는데 ㅜㅜ 제가 입학한 해는 전대협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던 해였지만 여전히 NL이 학생회를 꽉 잡고 있던 시절이었고 일반 학생들도 호의적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제대하니 상황은 역전되었지만요. 저는 운동권 근처도 안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학생회와 잠시 얽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잠시동안이었지만 이른바 운동권의 밑바닥을 너무 많이 봐서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저들도 그저 스무살 스물한살 아이들과 똑같구나.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어린... 자신을 가다듬기보다 대의에 매몰된 열정만 가득한 아이들.... 본문에서 말씀하신 프로젝터 사건도 노동자와 민주주의를 수호를 기치로 하는 운동권 학생이었다면 그리 행동하면 안되었지요. 맹인안내견지원사업 이야기를 들으니 방향은 다르지만 제가 오버랩되네요. 어렸을 적 제 개인적인 경험의 이유로 극렬안티개신교였습니다. 하지만 한살 한살 나이가 드니 생각이 많이 바뀌더군요. 7,8년 전 제가 개신교 게시물에 남겼던 댓글을 지금 보면 참 어리고 생각이 모자르다 싶네요. 그렇다고 지금 제가 개신교에 호의적이진 않습니다. 좋은것도 싫은것도 없는 무호라고 해야겠네요. 지금 복지단체 몇 곳을 정기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원할만한 단체를 찾다보니 거의 대부분 개신교 계열이더군요. 처음엔 내 후원금이 저들의 선교활동 혹은 교회재정에 들어가면 어쩌나 망설였습니다.(복지재단의 기부금은 교회재정과 별도로 관리운영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종교인들조차 자기 시간 에너지 써가면서 남들을 돕는데, 고작 알량한 몇푼 가지고 스스로 위안하는 주제에 넌 그들보다 무엇이 더 나은가? 그리 결론이 났습니다.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며 망설였던 제가 조금 창피하더군요. 생각해보면 그 어린시절 제가 만난 개신교인보다 그 이후 보게된 이들이 몇배.. 아니 몇십 몇백배는 더 많을텐데 왜 이전의 기억만 붙잡고 있었나 싶습니다.
16/09/02 19:23
그래도 무엇이든 내가 주는 도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주고 싶다, 싫은 쪽 통해서 하고 싶지 않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
tannenbaum님께서 복지단체 후원 개신교 xx들이라고 하신 건 아니잖아요 흐흐 저도 메갈에서 진짜로 성범죄피해자들 도와준다고 깨끗하고 투명하게 딱 그 용도로만 쓰이는게 보장된다고 해도 거기다 모금은 절.대. 안할테니까요. 크크크
16/09/02 12:18
학생때야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몇번 말 섞어봐서 덜 됐다 싶은 사람들과는 굳이 어울릴 필요가 없어서 본문처럼 엮일 일은 전혀 없었는데...
문제는 생업에 연관된 사람들과는 이게 힘들다는 거죠... 마냥 멀리할 수도 없고 어찌어찌 요령껏 밀당을 해야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만약 학부때부터 생업에 직결되는 전공이었고 거기서 저런 사람들과 엮여야 했다면 학창시절이 꽤나 골치 아팠을 거에요..
16/09/02 12:39
네? 2000대까지 갔었나요? 90년대 중반에 이미 아무도 가입하지 않았는데...
출범식 때 다른 과에 쫄린다고 눈물을 흘리며 한사람 한사람 모으던 어느 한 선배를 생각하며...
16/09/02 12:41
80년대 중반부터 학생운동권은 NL주사파가 지배했죠. 80년대 끝물학번으로서 제 운동권 기억은 NL주사파가 거의 대부분인 과에서 PD계열 주장을 했다가 거의 왕따를 당한 기억입니다. 반지성주의, 집단주의의 경향의 조직은 이걸 못견뎌했죠. 고작 1학년생의 일탈(?) 때문에 학생회의 높으신 분까지 와서 설득을 하고 나름 뚝심있는 저는 버티고... 뭐 그 과정에서 참 수모와 설움도 많이 당했는데, 그 긴 시간이 지나고 마흔이 넘어서 같은 계열의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니가 NL하고 싸울 때 우리는 독재정권이랑 싸웠다"고.
16/09/02 14:42
선배들 따라서 신촌에 성수에 심지어 매향리까지다 니면서 난 깨어있어! 나희들과 달라 !
내가잘하는줄알고 동기들과 장판파를 시전하기도했더래지요. 그외도 이불킥 수십번을 시전할 흑역사가 가득한 2000년이 떠오르는군요. 그래도 그들이 옳은일하는거야 믿고 있었는데 절 이끌던 선배가 변절(?)하는걸 보니 오만정이 다 떨어진;; 그후로 지금 까지 학생회가 하는건 좋은일해도 별로였네요.
16/09/02 14:48
솔직히 90년대 초반 대학다닐 때는 이런 생각을 못했지만...
지금 나이들어 생각 해보면... 전대협 의장이건 한총련 의장이건 대학교 학생회장이건 끽해야 20대 중반인데... 엄청 나이먹어 보이고 세상살이를 다 아는 것처럼 보이고 우리와 다른 고고한 곳에 사는 것처럼 보였단 말이에요. 한총련, 전대협 의장 보호 결사대(?) 이런 것도 있었다고 하니... 어린나이에 저런대접(?) 받으면서 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 지금와서 생각하면 어린것 들이 웃긴다... 라는 생각도 들고(내가 잘났다는 건 아니에요) 저렇게 행동하다가 나이 먹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요즘 문제가 되는 '운동권 선민의식'도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에요...
16/09/02 16:00
10년은 더 버틴것 같다는 말에 동의하며, 개인적인 생각으론 대학에서 운동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첫 계기는 96년 연세대 시위라고 봅니다.
그 시위를 겪은 동시대의 인물은 그 일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데(ex. 고 신해철 같은 분: 몇몇 인터뷰에서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소회하든 하셧음.) 그 이후의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들어오는 학우의 비중이 좀 높았습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닥쳐온 98년 imf는 대학생 발등에 취업이라는 불을 떨어뜨렸고, 상대적으로 학생회와 운동권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죠. 그러한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게 이때쯤부터 시작된 학생회투표 문제였습니다. 재적인원수의 과반을 넘기지 못해서 추가투표에 추가투표를 해서 억지로 학생회를 구성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기 시작했죠. 저도 전까지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시선으로 감싸주고 옹호해주었는데,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편법을 동원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생기더군요. 그전부터 있었던 PD와 NL계열사이의 균열도 더 커졌고, 아예 몇몇 대학에선 비운동권 학생회장이 당선되는 일도 늘어났구요. 거기서 시간이 좀 더 흘러 발등에 떨어졌던 불이 제대로 발에 옮겨붙어버리게 된 시점에서부턴, 학생회와 운동권은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대우를 받게 되었다고 봅니다.
16/09/02 16:38
말년의 운동권이 어떻게 불타오르고 쇠잔했는진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라는 책에 자세히 나옵니다. 이참에 다시한번 읽어볼까 했더니 전 여친이 빌려가곤 헤어졌군요 젠장.
개인적으로 '그들은 사람만 보면 참 좋은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뜻에 동의하지 않아도, 힘든 일이 있을 땐 연대를 외치며 도와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채감이 생기고, 동의하지않아도 함께 하게 되고, 함께 하면 세뇌 수준의 교육을 통해 믿게 된다'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군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에 대해 한총련의 1년 일정과 소위 교육과정을 제시하며 설명하죠. 운동권은 사라질 때가 되서 사라졌다고 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의에 대한 국민적 아니 전국 대학생적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그 분기점이 이른바 '연세 항쟁' 혹은 '연세대 사태'라는 데 동의합니다. 이 같은 반감은 저희 학교의 경우 '운동권 학생회는 기금을 우리 학교에 쓰지 않고 외부로 빼돌린다'라는 선전만으로도 운동권 학생회가 비참하게 무너지는 것으로 증명되더군요(대의 실현을 위한 외부활동에 쓰인다는 건데, 전술했듯 그 대의가 소속 대학생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얻지 못합니다. 선거마다 판판이 질수밖에요). 입학 때만 해도 중앙동아리부터 과별로 즐비하던 율동패, 노래패가 제대하고 나니 싹 사라진 거 하며...
16/09/02 17:16
96년 연세대안에서 있었고, 97년 소위 프락치 사건이 있었던 한양대에서도 있었는데, 99년에 군대갔다와서 제대해보니 효순이 미선이 추모를 촛불을 들고 하더라구요. 그때 참 눈물이 나더라구요.
우린 왜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었을까... 저렇게 촛불 하나 들고 시위를 했어야 하는 후회가 들더라구요. 추가적으로 통진당 사태때 사실 그들이 했던 말들은 저 대학다닐때 선배들과 같이 농담삼아 했던 말들도 많았는데 - 태평양 건너 바다 건너 미제를 타도하자는 둥... - 그 당시 20세기말의 사상적 기조를 지금 시기에도 변함없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더라구요.
16/09/02 17:57
학번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야기로 보면 저랑 비슷하거나 저보다 약간 늦으신거 같습니다만, 운동권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주류에서 거의 밀려났다고 생각합니다. 제 학창시절 90년대 후반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 총학은 여전히 운동권이었지만 이미 일반 학생들로부터의 지지나 공감을 거의 얻지 못하고 있었어요. 2000년대 라면 그저 흔적만 남아있던 시절의 마지막을 경험한게 아니신가 생각이 드네요.
16/09/02 18:03
제가 00인데 정말 운동권이 있던 막차 학번이란 느낌이었습니다.
학회... 활동을 그래도 반 가까이 하던 학번은 저희까지였던 거 같고, 02 쯤 되니 이미 다 멸망했더군요.
16/09/02 18:34
헉 저랑 비슷한 학번 비슷한 학교일듯... 저는 전농동 쪽 가보고... 지하철노조 학교안에 뜬데 가보고 나름 그쪽 선배들이랑 친하게 지내다가.. BK21 반대 집회인가 기획할 때 "왜 우리가 정말 공부할 생각없는 (수능점수가 정말 많이 낮은) 학생이 많은 대학교, 연구실적 없는 대학교의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나요? " 라고 했다가 개쌍욕먹고 그담부터 합류안했죠..
그담에 최초의 비권후보 (고양원더스 하셨던분?) 당선시키고 (저는 완전 안티로 돌어서서..) .. 학생회장 나오고 운동권 이 완전 망했던걸로 기억합니다.
16/09/02 19:30
프로젝터 이야기 빼면 진짜 저랑 정말 비슷하네요 크크
위의 이야기들은 유사하게 다 겪어봤어요. 심지어 농활갔던 곳이 담배재배지였던 것 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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