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Ballot is stronger than bullet)”,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투표권의 중요함을 언어유희를 이용해 강조한 말이다.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의 원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오늘날, 투표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이 발언은 일견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고 TV, 인터넷 매체를 활용하여 ‘한표의 소중함’을 역설하지만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한겨울 불어오는 바람처럼 냉랭할 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통계시스템 자료에 의하면 역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15대 63.9%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54.2%에 불과하다.
투표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수많은 광고와 명언들에도 불과하고 투표율의 낮은 원인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투표권이 너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투표권이 ‘당연히’ 얻어진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광복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는 독재에 맞선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겪으면서 어렵게 얻어낸 것이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 원칙에 근거한 투표권이다. 오늘은 그 치열한 역사의 현장을 다시금 조명해보고자 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은 근현대사 교과서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1948년 5월 10일, 이날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보통 선거에 기반한 선거가 열린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제헌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었지만 이승만은 장기집권에 대한 야욕을 보이며 국회를 탄압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는 1952년 발췌개헌안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강제로 통과시켰으며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개헌안이 부결되었음에도 사사오입의 논리로 억지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독선적인 행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계기는 바로 3.15 부정선거였다.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1960년 3월 15일에 실시한 제 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3인조 또는 9인조를 활용한 공개투표, 4할 사전 투표, 야당 참관인 쫒아내기 등의 수법을 활용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공작을 벌였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마산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열렸고 이 과정에서 김주열 군의 시신 은폐시도가 알려지자 4월 19일 서울대 문리대에서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악의 현상을 규탄 광정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천명하는 바이다”라는 선언문을 내세우며 시위가 시작되었고 곧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6.25 전쟁이란 엄습한 상황 때문에 억눌려 있던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경찰의 대대적인 진압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불처럼 타올랐다. 국민들의 저항 정신은 결국 4월 26일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이끌었다.
그러나 4.19의 열매를 채 누리기도 전인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혁명의 정신은 군홧발에 짓밟히고 말았다. ‘반공’과 ‘경제 발전’을 기치로 한 박정희 정부는 야당과 재야 세력의 반대를 무시하고 1969년 3선 개헌안을 통과시키더니 급기야 1972년 10월 국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철폐하는 사상 초유의 유신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유신 체제는 통일 주체 국민회의에서의 대통령 간선제와 국회의원의 3분의1를 대통령이 추천하는 등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였으며 당시 대통령은 ‘긴급조치’를 이용하여 영장 없이도 국민을 구금하는 등 초헌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4.19의 경험이 있는 국민들은 유신의 칼바람에도 침묵하지 않았다. 장준하. 백기완 등이 주축이 된 개헌 청원 1백만 서명운동, 김대중의 3.1 민주 구국 선언 등 전국적으로 반유신 운동이 일어났다. 유신 체제의 숨통을 끊은 것은 바로 YH무역 사건이었다. 1979년, 가발업체인 YH무역 여성 노동자 170명이 신민당 당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로 진압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정희는 이를 빌미로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을 강제로 제명했다. 김영삼은 “이 정권은 반드시 쓰러진다, 쓰러지는 방법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다”라고 일갈했고 이는 부마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부마민주항쟁은 부산대학교의 대규모 시위에서 시작되어 마산으로 파져나갔으며 당시 학생들이 경찰들과 충돌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시위는 점차 격화되었다. 이러한 극한 대립 상황에서 10.26사건으로 유신 체제는 종말을 고했지만 민주화의 꿈을 이루는 것은 7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유신 체제가 종언을 고한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너무나 강렬했고 1980년 5월 15일 서울 역 앞에 10만 명이 운집한 대규모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전두환은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고 5월 17일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5월 18일 광주에서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이었다. 전두환은 광주를 고립시키고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시위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하였고 시민들은 이에 저항하여 무기를 들고 시가전을 벌였다. 열흘간의 치열한 투쟁은 계엄군이 광주 전역을 장악하면서 좌절되었고 국민들은 또다시 군사 독재 정권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두환은 언론통폐합을 통해 자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삼청교육대를 통해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였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끊임없이 직선제 개헌을 통한 정권 교체를 추구하였다. 당시 전두환 정부가 7년 단임제를 규정하며 대통령의 간선을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7년 4월 13일 정부는 개헌을 거부하였고 그 해 6월 전국의 대학생들은 대규모 집회를 열 것이라 선언한다. 집회 하루 전날인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는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1987년 6월 10일 서울 시내에서 역사적인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되었다. 6월 민주항쟁의 주축은 학생들이었지만 이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운 것은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의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시위대는 김수환 추기경의 묵인 하에 명동성당으로 모였고 성당에 진입하려는 경찰을 막아서며 김수환 추기경은 “수녀들이 나와서 앞에 설 것이고, 그 앞에는 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맨 앞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까지 밟아야 학생들과 만날 것이다.”라고 외쳤다. 명동 성당을 기점으로 국민들의 저항은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6월 26일에는 서울 광장에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운집하게 된다. 결국 1987년 6월 29일 정부는 직선제 개헌을 선언하게 되었고 드디어 국민들은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스스로의 손으로 정권을 교체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된 이후 자유로운 투표권을 행사하기까지 무려 4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가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독재에 맞서 싸우며 얻어낸 것이라는 뜻이다.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바꿀 권리는 민주주의 핵심이니 결국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투표권은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명심하자, 정치인들은 결코 침묵하는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느 만화의 대사처럼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지도 모른다. 그런 인식하에서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강희 주임은 “대중은 개돼지다, 짖어 대다가 조용해질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투표를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짖는 개가 아니라 무는 개고 정치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국민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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