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가씨'를 감명깊게 본 탓일까요. 제가 몹시 좋아하고 따랐던 선임이 꿈에 나왔습니다. 영화처럼 물고 빨고 하지는 않았지만, 한참동안 서로를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잠에서 깬 후에도 한동안 텅 빈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전역 후 대학입시에 재도전하겠다며 휴대전화, 페이스북 등 모든 연락수단을 끊어버리고 공부에 매진했던 그 사람. 올 초, 그와 나의 상관이었던 중사로부터 수능을 망쳤단 얘길 우연히 들었습니다. 당시엔 안타까우면서도 못나디 못난,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어요. 참 한심하지요? 하지만 오늘 꿈에서 날 안아준 그 사람은 언제나 방실방실 미소짓는 모습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20대 중반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많은 것들을 희생시켜가면 도전한 시험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실패했으니까요. 시험이 끝난 지 오래토록 선임의 연락처는 복구돼지 않았고 그의 친구, 동기들도 소식을 전혀 모르더군요. 그가 다녔던 대학교의 재학생 커뮤니티를 기웃기웃 드나들면서 모니터링하기도 하고, 서울의 유명 재수학원들을 돌아다니며 입학상담을 받는 척하며 이곳에 그가 다녔는지 물어보기도 하였으나 끝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꽤 커다란 충격을 받았겠다 싶었는데, 꿈에서 본 표정을 보았을 때 역시 그랬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을 꿈에서라도 만나고 품에 안을 수 있어 기쁜데, 분명 기쁜데 기분이 묘해요. 선임이 전역하기 한 달 전부터 저릿저릿했던 마음이 커지고 커져 전역일엔 심장을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로 도려내는 심정이었는데, 오랜만에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책상속에 고이 간직해둔 그의 명찰과 사진, 그리고 스키장갑을 꺼냈습니다. 군대라는 절망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둘도 없는 보물들입니다. 두툼한 스키장갑이 마치 그의 손인 것 마냥 부여잡고 기도했더랬지요. 지친 네 영혼이 날 찾아왔을 때에도 너의 슬픔을 보듬기엔 내가 너무 작아. 미안해요. 당신이 하늘아래 어디서 무얼 하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묵묵히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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