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극장에서 우리들을 보고 왔습니다. 플롯을 보고 이건 봐야겠다 싶어서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아직은 극장에 걸려있더군요.
1. 선과 지아의 일대일 정면대결 구도
이 영화는 구도가 굉장히 단순합니다. 선과 지아의 일대일 정면대결! 변수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은 뭔가 꿈틀꿈틀은 하지만, 전부 병풍으로 사라집니다. 가장 파괴력 있는 변수였던 선의 어머니는 몇 번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지만 선과 지아의 일대일 승부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며 병풍으로 전락합니다. 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의 으뜸으로 작위적인 장면이었던 윤의 마지막 대사 "그럼 언제 놀아?"는 소소한 웃음을 유도하는 기능으로 그치는 것은 당연히 아니죠.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뒤에 그 대사를 십분 활용한 엔딩이 보여집니다. 선의 할아버지를 활용하는 부분은 정도가 더 심합니다. 저는 영화 내내 대체 이렇게 정직한 돌직구 같은 영화에서 저 할아버지의 존재는 정말 거슬린다... 대체 왜 나오는 거지?했는데, 영화 초반에 깔린 '바다'복선을 위해서였더군요. 윤의 마지막 대사에 버금가는 작위적임(?)이었습니다. 선의 아버지도 마찬가지! 선의 아버지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뜬금없이 왜 지아를 만나는 거지?했는데 바로 뒤 장면에서 활용되더군요. 정직한 복선, 정직한 떡밥회수. 보라, 지아의 할머니, 담임선생님 등등 선과 지아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나는 영혼 없는 인간이다. 영혼도 없으면서 왜 등장했냐고? 선과 지아 대결의 파이트 머니를 올리는 역할이 내 영혼이다. 나는 장치다!"라고 외치면서 병풍으로 전락합니다.
2. 정면대결은 재밌었나?
이 대결의 특징은 승부의 한 합 한 합이 모두 예측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네이버로 야구를 보는데 투수의 다음 공이 볼일지 스트라이크일지, 타자가 스윙을 할지 안할지, 빠중이랍시고 올라오는 채팅을 보면서 보면 재미가 있겠습니까? 과연 패착이 무엇일까요. 일대일 정면대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그 대결을 맥빠지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무협영화에서 칼싸움을 연출할 때, 이 싸움을 멋있게 찍으려는 욕심이 너무 과한 나머지, 마치 춤을 추는 듯 짠 듯한 칼싸움을 보는 것 같달까요. 대체 이 싸움이 왜 일어나는지,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환경에서 싸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없는지 등은 무시한 채 "최고의 액션을 선사하겠어!"라는 과욕으로 밑도끝도 없이 액션만 보여주는 그런 느낌..
<우리들> 시작하는 장면은 선이 왕따를 당하는 장면입니다. 바로 다음 장면이 지아가 전학오고 선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백퍼센트 에측할 수 있습니다. 이미 여기서 싸움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이후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이 싸움의 한 합 한 합을 위해 희생되는 엑스트라들일 뿐입니다. 러닝타임 전체가 두 주인공의 칼싸움으로 채워진 영화를 떠올리시면 적절합니다.
3. 이번 턴에 파수꾼을 소환한다!!...는 실패
<파수꾼>과의 비교는 너무나 당연한 수순인 것 같습니다. <파수꾼>의 초딩여자버전이라고 주장하기엔 많이, 아주 많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외견상의 만듦새는 딱히 흡잡을 데가 없습니다. 위에서 지적한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 여러모로 제 취향에 굉장히 부합하는 영화입니다.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점은 감히 <파수꾼>과 비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역들이 이렇게 연기를 잘해도 되는건지 싶을 정도로..
<파수꾼>에서도 세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선이 주제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파수꾼>은 감독의 주제의식을 위해 영화를 희생시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에서는 감독의 강한 주제의식만 남았습니다. 아주 강렬하게... 질릴 정도로... 너무 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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