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6년이라는 시간을 만나올 수 있었냐고. 그 연애의 비법이란게 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던진다. 진지한 물음은 아니다. 더욱이나, 궁금해하는 눈빛은 아니다. 사실 지금의 연애 세태에 있어서 오랜 연애란 희귀하고도 희귀한 별종의 이야기지만, 그렇게까지 부러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들 자유 분방한 연애를 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그런 나이가 되었다. 짧게 6개월의 만남 정도면 권태기도 가질 것 없이 깔끔하게 헤어지는 케이스가 많아졌다. 6개월 안에 아이가 생기면, 결혼하는 시대가 되었다.
대단한 시작은 아니었다. 그녀가 너무 예뻐 보였기에 내 모든걸 던져서 들이대고, 고백했다. 그리고 간혹 다툼이 몇 번 있었지만 큰 싸움 없이, 별 탈 없이 지금껏 지내왔다. 나는 그저 그녀가 투정부리는 걸 모두 받아주려 노력했다. 내 감정을 먼저 앞세우기 보다, 그녀의 감정에서 이해하려 최선을 다했다. 경제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잘난게 없는 나였기에 그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왔다. 이런 사소한 면 외에는.. 내가 얼마나 잘난 놈이기에 이런 기나긴 연애의 수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그저 나와 함께 해줬다. 내가 흔들리는 순간에도, 아파하는 순간에도. 중요한 순간에도. 항상 격려해주고 응원해줬다. 첫 연애였기에 서툰 나의 서툰 연애 방식과 서툰 말투를 그저 이해해주고 지켜봐줬다.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옆에서 함께해줬다. 아직까지도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하는 결혼 적령기의 커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안정적으로 나를 바라봐준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가끔은 너무 미안함 마음에 이 연애를 내려 놓을까,하는 고민도 몇 번 한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마운 마음 때문에 나는 끝까지 이 연애를, 아니 만남을 지탱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잡곤 한다.
언젠가, 유머게시판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은반지를 창피해하는 여자친구. 내 그녀는 5년 동안이나 그 멋대가리 없는 은반지를 끼고 다녔다. ost에서 맞춘 싸구려 반지였다. 월 50시간의 근로 학생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와 데이트 비용을 겨우 겨우 충당하는 나에게 있어 ost반지를 맞추는 그 금액조차 맞추기 어려웠다. 그녀는 나를 만났을 그 시점부터 직장인이었다. 아릅답고 예쁜 그 나이의 꽃다운 신입 사원이 나를 위해 항상 은반지를 끼고 다녔다. 그 은반지는 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나는 아직까지 금으로 바꿔주지 못했다. 그리고 동년배의 여자들은 은반지를 창피해한다는 사실을 그 글을 보고나서야 알았다.
가진 것이 없고, 그렇게까지 성실하지 못한 인간이었기에 더 좋은 반지를 해주지 못했다. 난 참 능력 없고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날 저녁은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나와 오랜 시간 함께해주며, 은반지를 껴온 여자친구는 어떤 심정으로 나와 함께해주는 걸까. 주위의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년간 내 곁에서 은반지를 껴주는 내 여자친구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언젠가는 더 좋은 금붙이를 손에 끼워줄 그 날이 오기를. 그 때까지 함께만 해준다면 평생을 사랑하며 아껴줄 것을.
새벽, 아침의 문은 내가 아는 노래 중 제일 최고로 멋대가리 없고 혼자 주절거리는 노래에 불과하다. 새벽에 문득, 잠든 그녀에게 바치는 헌사.
어쩌면, 그렇기에 가장 로맨틱한 노래.
멋대가리 없고, 주절거리는 지금 나의 기분에 가장 적합한 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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