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저는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없기에 뭐라고 단정적으로 말씀 드릴 순 없지만 아마 비 역시 아주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양의 비가 내려줘야 농사가 잘 되겠지요. 흔히 가뭄이 계속된다는 뉴스를 보면 "타는 농심"이라는 말이 나오곤 하는데 그게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농부들이 느낄 때는 물리적으로도 가슴이 타는 것 같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이지요.
19세기나 20세기 초의 미국도 이와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특히 원래 기후가 건조한 지역인 중남부 지역인 경우 비가 제때 내리지 않아서 농부들이 겪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간절한 농심을 악용해서 사기를 치는 부류들이 있었습니다.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지역들을 순회하면서 자신이 비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레인메이커(rainmaker)들이었죠.
이 레인메이커들이 일하는 방식은 주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들은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는 마을들을 찾아갑니다. 가서 그곳 주민들과 일종의 계약을 맺지요. 내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이 지역 반경 얼마 정도 넓이에 비가 (강수량으로) 몇 인치정도 오도록 할 테니 성공하면 얼마의 돈을 달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러면 마을 주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에 응하게 되고 이렇게 레인메이커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비를 부르고 비가 내리면 요즘 식으로 말하면 "성공보수"를 취하고 다른 마을로 떠나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었는데 혹 실패 하더라도 그냥 그 마을을 떠나면 됐으므로 이것은 레인메이커들로서는 아무런 거리낄 것이 없는 사업이었습니다. 게다가 혹시 비라도 내리게 되면 꽤 짭짤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요. 레인메이커들은 무작정 운에 맞기고 일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사전에 해당 지역의 이전 날씨를 꼼꼼히 분석해서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해당 마을을 방문해서 원래 비가 내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의 방법을 통해서 비가 내린 것처럼 사람들을 속여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한곤 했습니다.
실패담은 그냥저냥 넘어가는 게 보통이었고 성공담은 부풀려져서 입에서 입을 타고 들불처럼 소문이 번지다 보니 "실패 횟수 > 성공 횟수"라고 하더라도 몇 번만 성공하게 되면 단숨에 "스타"가 되어서 몸값도 비싸지고 경제적인 이익은 이에 비례해서 커지곤 했습니다.
이런 레인메이커들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사람이 찰스 햇필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명성을 쌓은 레인메이커였습니다. 이 사람이 비를 부르는 방법은 높은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가서 자신이 만든 어떤 비밀스런 화학 물질을 주전자나 프라이팬 같은 것에 붓고 이를 끓여서 그 증기를 하늘로 올려 보내면 조만간 비구름이 형성되면서 비가 내리게 만드는 식이었습니다. 그는 거기다가 다른 레인메이커들과는 달리 겸손하고 신사적인 매너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더 호감을 샀습니다. 그는 종종 "나는 비를 내리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단지 구름들만 모을 뿐이고 나머지는 구름들이 알아서 하는 겁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과 관련해서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15년 미국 샌디에이고(San Diego) 시는 4년째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시에는 모레나라고 불리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물은 겨우 저수지의 3분의 1 정도만 차 있었습니다. 햇필드가 샌디에이고시에 제안을 합니다. 다음해(1916년) 12월까지 그가 모레나 저수지를 물로 가득 채울 테니 시는 그에게 일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것이었지요. 샌디에이고 시의회는 햇필드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1916년 1월에 햇필드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구조물을 설치하고 꼭대기에 올라가서 자신이 비밀스럽게 제조한 화학물질을 끓이기 시작합니다. 비밀의 화학물질을 끓이기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되었을까?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합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이제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고 비는 갑자기 강풍을 동반한 기록적인 폭우(!)로 변했습니다. 1월 한 달에만 무려 700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모레나 저수지는 넘쳐흘렀습니다. 1월 27일에 샌디에이고 근교의 오테이 댐이 터졌습니다. 댐이 가두고 있던 물이 샌디에이고 중심부로 쏟아져 들어왔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많은 집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샌디에이고 시에 있던 크고 작은 112개의 다리들 가운데 두 개만 빼놓고 나머지는 다 물에 휩쓸려버렸습니다.
이 재난은 나중에 "햇필드 홍수"라고 불리게 됩니다. 무장한 자경단원들이 햇필드 일행을 잡으러 왔을 때는 이미 햇필드는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꽁지가 빠지게 내빼고 난 후였습니다. 그 뒤, 2월 첫째 주에 햇필드는 기자회견을 자청합니다. 그는 자신은 "모레나 저수지를 가득 채우겠다는" 애초의 계약조건을 준수했으므로 샌디에이고 시는 당연히 그에게 지불하기로 한 일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샌디에이고 시를 대신하는 변호사는 모레나 저수지를 빗물로 가득 채운 건 그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긴 "불가항력"이었다고 맞섰습니다. 햇필드는 재판을 걸었고 시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서 햇필드가 "홍수로 인해 시가 입은 피해를 복구한다면 (비용 약 3백 5십 만 달러) 샌디에이고 시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만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햇필드는 재판에서 패소했으며 샌디에이고 시로부터 단돈 1 달러도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건 이후에도 햇필드는 미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의 여러 나라들을 돌면서 이런 비를 부르는 레인메이킹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이런 사기(?)행각은 결국 1930년대가 되어서야 중단되었고 일생을 가뭄 해갈을 위해 헌신하신 해갈(解渴) 햇필드 선생은 1958년 1월 조용히 영면에 들었습니다.
본문은 Cynthia Barnett의 책 [Rain: A Natural and Cultural History]의 내용을 참고해서 작성되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가뭄 때문에 고생하는 농민들을 위해 지하수 뚫는 작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하수가 나오면 돈을 받고 안 나오면 안 받는데
수십미터씩 파고 들어가도 지하수 안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더군요. 같은 가뭄해갈 사업인데 이 분들은 밑지면 손해더군요.
지하수 못 찾으면 농민도 속상 뚫는 분들도 고생.. 옆에서 보는데 좀 짠하더라고요.
그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은 게 햇필드가 이탈리아에서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 교황에게 자신이 바티칸 내에서 의식을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면 바티칸 정원에 비를 내리게 하겠다고 제안했을 정도였습니다. 진심으로 믿었을 수도 있고 아니라면 교황마저도 등쳐 먹으려고 한 나쁜 XX 였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