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이야기는 어느 초등학교 교실의 한 친구로부터 시작합니다.
보통 키에, 옷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 밝게 빛나 보이는 미소를 갖고 있는 친구죠.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각자 2학년 4반, 5학년 1반, 또는 6학년 3반으로 들어갈 때, 이 친구는 다른 교실로 들어갑니다.
흔히들 말하는 '모자란' 친구거든요.
둘. 물론 이 친구도 자기 학년, 자기 반이 있습니다.
하지만, 같이 놀려는 친구들은 한 손에 꼽을까 합니다.
뻔한 이유 때문이지요. 같이 놀기 힘들고, 꾀죄죄해 보이고, 기타 등등.
그러다 보니까 교실에 있다가도 어느새 보면 사라져 있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셋. 그 날은 반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마니또' 발표의 날이었습니다.
(혹시 해서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정해진 기간 동안 익명으로 편지도 써주고, 선물도 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밀천사'라고도 했었는데, 그게 그 뜻을 정확히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반 학생들, 그리고 담임선생님까지 모두가 빙 둘러앉아 자기가 마니또로써 한 일을 얘기하고, 선물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 옆에 앉아있던 이 친구가 갑자기 자기 의자를 맞은편 학생에게 집어 던졌습니다.
모두가 놀란 상황에서, 이유를 묻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끝까지 외면한 이 친구에게, 선생님은 강경한 방법을 쓰고 마셨습니다.
넷. 선생님은 학년이 시작할 때, 학생들과 한 가지 약속을 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대화로 상황을 해결하겠다고요.
그런 약속을 어긴 것을 사과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은 모두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다시 한 번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 친구가 입을 떼는 순간, 교실의 모든 사람들은 오랫동안 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 자기를 대하던 친구들의 태도, 그것을 통해 느꼈던 서운함을, 마치 녹화했던 비디오를 다시 돌리듯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거든요.
그 장면 중에는, 맞은편을 보자 되살아났던, 학년 초에 자신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던 그 기억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섯. 그 긴 기억의 되풀이 끝에, 한 마디가 덧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쟤는 나랑 같이 놀아줘요."
지목을 받은 이 새로운 친구는, 반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친구였습니다.
특징이라면 키가 작다는 것뿐, 어쩌면 이번이 반에서 처음으로 화제에 오른 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는 친구와 어떻게 같이 놀게 되었는지, 선생님은 물어보았고, 갑작스럽게 수많은 시선을 받은 새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그냥요. 친구잖아요."
여섯. 그 날 이후, 많이는 아니지만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선생님은 조금 더 세심하게 관심을 두게 되었고, 반 친구들 모두에게는 '우리 반 친구'라는 마음이 조금 더 들었으며,
그 날 모임의 두 주인공은 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두 친구는 왜 받는지 모르는 채로요.
그리고 남은 이야기.
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로 진학한 동창들이 전해주던 소식도 뜸해지게 되면서 그 친구의 소식을 듣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집에 찾아가 보니 사람이 안 산지 꽤 된 것 같다는, 어디론가 이사를 간듯하다는 내용이 전해지는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친구'라는 말에 대해 나름의 개념을 지니고 있던 다른 친구는, 그 때의 담임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고, 운좋게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나름의 기준이, 분류가 생기고, 그에 따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누가 더 이익이 될지, 누가 날 도와줄지 하면서요.
길에서 서로 마주치게 된다면, 서로는 서로를 그때처럼 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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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쓴 글이라고는 기사 전달 정도였는데, 막상 이렇게 써보니 좋은 글들을 꾸준히 써주신 그동안의 수많은 분들이 더욱 더 존경스럽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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