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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9/17 17:48:07
Name fOu Hell
Subject [일반] [1][우왕] 스타크래프트 아마추어 숙소에서의 기괴했던 추억
평소 기부나 선행과는 전혀 관련없는 비루한 인성으로 살아온지라, 조악한 필력으로나마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무슨 주제로 글을 쓸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게임사이트니까요. 뭐 이 내용이 게임 내용이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기억을 되짚어 적어보려고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이천년 중반이었습죠. 당시 선풍적인 인기였던 스타크래프트의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가 되기 위해 방과 후 부모님의 등짝 스매싱을 맞아가며 달리던 시절인데, 어디에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감수하는 자들도 있는 법인지라 -사실 지금 생각하면 베리 하이 리스크에 미들 리턴쯤 되지 않을까(...)싶은데- 어린 나이에 극단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작 열 평 남짓한 숙소에 옹기종기 모여 연습하던 사람들도 존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죠. 물론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아마추어 숙소의 운영방식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1. 매달 구성원은 정해진 숙소비를 지불한다.
2. 그 돈으로 집세를 내고, 전기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밥을 해결한다.

...넉넉할 리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7평짜리 반지하에 살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대여섯명으로 시작한 초창기엔 컴퓨터 책상 밑에 쪼그려 잔다던가, 혹은 상체는 방에서, 하체는 화장실에서 문지방을 요대 삼아 자는 식으로 그럭저럭 살만했으나, 곧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연습 효율이 우리 숙소 유지의 아이덴티티 첫 빠따인데, 갓-고수님이 들어오고 싶으시다고 용언을 내리시면 사실 다들 내심 받았으면 싶은 거죠. 그렇다고 같이 고생하던 사람을 내칠 순 없으니, 결론적으로 주거공간의 확장만이 우리의 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루한 모임에서 어떻게 더 큰 집의 보증금을 충당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았는데,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우리는 일단 밖으로 나가 발품을 팔기 시작했습죠. 분명 이 군사정권 시절 향수가 나는 동네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말이지요.

세상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결국 우리는 찾아냅니다. 분명 반지하도 아니고, 버젓한, 아니, 버젓하진 못했군요. 건물 외벽이 마치 불에 탄 듯한(...) 2층 건물의 무려 2층! 반지하도 아닌데! 정말 지금 생각해도 기묘하게 싼 가격의 그 집을 말입니다.

...거길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뭐 여튼 분명 나름 널찍한 거실을 중앙으로 양 사이드에 방이 두 개나 있었고. 그 중 방 하나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좁고 낡은 계단이 있는 벽장도 존재하는, '이야 담배는 저기서 피우면 되겠네 옥상 가기 편해서 개이득'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낭만적인 집이었지요.

집주인이 집을 보여줄 때, 출입문 옆에 붙어있던 불길한 부적 세 개만 빼면 말입니다(...)

허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건장한 남성이 열 명 가까이 입주할 계획이었던 우리가 무슨 두려움 같은 하찮은 감정이 존재했겠습니까. 부적을 세 개 던져봐라 나도하! 우와아아앙!? 하는 식으로 그 자리에서 부적을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기분좋게 입주하게 됩니다.

처음엔 거실에 모든 컴퓨터를 배치하고, 양 사이드 방에서 반씩 나눠 자는 구도를 그렸습죠. 하지만 그 구도는 곧 수정되게 됩니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 그 방에서 자는 사람들은, 하나씩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는데, 그 렘 수면 상태에서 보는 풍경이 실로 일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같이 옷장에 기대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여자귀신과의 치열한 눈싸움을 벌이다 결국 패배자가 되어 사족보행으로 거실로 기어나오더군요. 아오 그런 게 어딨어 단체로 거짓말 좀 하지마라 라며 패기있게 그 방에서 혼자 잠을 청했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그 방은 옷장을 다 몰아넣어 드레스룸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남은 한 방에 모든 2층침대를 몰아넣어 수면실로 쓰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모두 자려고 누워 있으면 거실에서 여성의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거실인지 현관 앞인지 애매했는데,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귀신같이 소리가 멈춥니다. 혹여나 바람이 새는 소린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기묘하게도 거기는 바람은 커녕 평소 방음마저도 완벽에 가까운 집이었지요.  도대체 그 건물에 완벽해도 되는 것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있는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여튼 그랬습니다. 바람 새는 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완벽한, 여성의 구슬픈 울음소리였기도 했고 말입니다.

다들 그 정체모를 여성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불안에 떨며 매번 잠들었는데, 숙소원 모두가 릴레이마냥 한 명씩 돌아가면서 원인 모를 열병을 앓기 시작한 일과, 우리 건물의 그 우중충한 출입계단에서 동네 노숙자가 누군가의 칼에 찔려 사망한 걸 우리가 목격한 사건이 일어났던 일의 시기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분명 우리의 불안감을 배가시켜주는 요소였습니다.

결국, 여기서 살면 프로게이머고 뭐고 저승에서 염라대왕과 형량을 걸고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 게 빠르겠다라는 판단 하에, 우리는 그 건물에서 계약기간보다 빠르게 나오게 되고, 우리의 뒤를 이어 입주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역시나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나오시는 것도 보게 되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겪은 일이 실제 오컬트 현상인지, 아니면 상황이 절묘할 정도로 우연히 딱딱 맞아떨어져 우리의 집단 군중 버프마저 해제시키고 두려움이란 감정을 심어주게 된 건지.  

힘들었지만,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추어 숙소는 심심할 때 한 번쯤 돌아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추울 때 자고 일어나면 입이 돌아가는, 언제나 배고픈 아마추어 숙소에서 다들 힘들게 생활하다보면 이보다 훨씬 큰 부피와 밀도의 재미있는 상황도 많이 나옵니다만, 이 글같은 기묘한 경우는 대단히 드물기 때문일지도요. 환경이 좋았던 프로 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또 다른 재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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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17 17:55
수정 아이콘
평소에 귀신이나 영적 현상(?)을 잘 믿지 않는 편인데, 이런 거 보면 정말로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fOu Hell
15/09/17 17:56
수정 아이콘
저도 원래 믿지 않다가 저 당시부터 한동안 믿기 시작했는데, 그때의 그 감정이 흐릿해진 지금은 다시 불신으로...
15/09/17 17:58
수정 아이콘
후덜덜했겠네요 진짜...

남자10명이서 무서울게 없었을 젊은시절 흐흐
fOu Hell
15/09/17 18:00
수정 아이콘
역시 뚜렷한 당위가 없는 군중심리는 압도적인 공포나 위력 앞에 한낱 미물들의 군집일 뿐이라는 진리를 깨우쳤지요(...)
15/09/17 18:11
수정 아이콘
[추천] 이분 죽부인입니다 제가
보로미어
15/09/17 18:14
수정 아이콘
[추천]
진짜 귀신이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였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은 그 집에 얽힌 사연이라던지 무슨 사고가 일어난건 아닌지 알아보시지 않았나요?
저라면 알아봤을 거 같아요. 하다못해 건물주나 집 근처 이웃한테라도 물어보고 했을 거 같은데 궁금하네요
fOu Hell
15/09/17 18:17
수정 아이콘
집 근처 이웃이래봐야 점집 무당님들 뿐이었고, 딱히 물어봐야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아서요. 피차 나가는 마당에(...)
보로미어
15/09/17 18:21
수정 아이콘
제가 귀신을 믿는 편이 아니라서 이런 글 보면 보통 의심부터 하는데 이 글은 굉장히 믿음이 가네요.
아 그리고 우왕 이벤트로 글 쓰시는거면 마지막 줄에
글 재밌게 읽으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거 넣는게 좋지 않을까요?
15/09/17 18:23
수정 아이콘
[추천] 우와 거기에 건물 주변에 무당집 밖에 없었다니 정말 덜덜하네요.
i제주감귤i
15/09/17 18:18
수정 아이콘
[추천]우와.... 어마어마한 경험이네요
15/09/17 18:20
수정 아이콘
[추천] 소오오오오름....
tannenbaum
15/09/17 18:23
수정 아이콘
[추천] 우왕 재미있습니다.
근데 그집 어디에요?
제가 그런쪽으로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이야 시간 없어서 못하지만 폐가 흉가 귀신포인트 체험 좋아하거든요.
fOu Hell
15/09/17 18:26
수정 아이콘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알려드릴 수야 있지만, 엄연히 사유지라... 아마 가셔도 들어가지 못하실 겁니다 ㅡㅜ
15/09/17 18:27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합니다. 기담 소재가 하나 생겼네요. 적어둬야지...
fOu Hell
15/09/17 18:27
수정 아이콘
영광입니다.
8월의고양이
15/09/17 18:30
수정 아이콘
[추천] 무서울게 없던 시절에 무서운 경험을 하셨군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감정이입이 확 되더군요ㅠ 잘 읽었습니다!!!
lupin188
15/09/17 18:36
수정 아이콘
[추천] 기묘한 경험을 하셨네요.
근데 이상하게 웃음이 계속 나와요.크크크
재밌게 읽고 갑니다.크크크크
15/09/17 18:43
수정 아이콘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초끈이론에서 세상은 4차원이 아닌 10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우리가 인식가능한 4차원 + 인식불가능한 6차원)

그 중 인식불가능한 6차원의 어떤 것이 어떤 계기로 우리가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이질감을 느끼면서 귀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_-;
우리고장해남
15/09/17 18:45
수정 아이콘
동료분들이 있어서 다행이지 혼자 살았으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15/09/17 19:08
수정 아이콘
[추천] 역시 괴담은 최고야
인생의 마스터
15/09/17 19:31
수정 아이콘
무당 아들이었던 지인이 대학선배중에서 한명, 군대 훈련동기중에서 한명 있었는데
그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면 참 기묘한 내용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오래되서 기억은 안납니다만)
정말 뭔가 안보이는 것이 있는것 같긴 한데, 그게 귀신인지는 모르겠네요.
바람모리
15/09/17 19:32
수정 아이콘
조악한의 뜻을 내가 잘못알고 있구나..
벽장을 통한 계단이라니..
완벽한 방음은 울음소리를 더 잘듣게 하려는 선물이었을까..
15/09/17 20:29
수정 아이콘
[추천]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나브로
15/09/17 20:37
수정 아이콘
[추천] 쫙쫙 읽혀요 크 기막혀서 헛웃음 나오는데 노숙자 살인 사건 등 웃을 일이 아닌 듯ㅠㅠ 잘 나오셨습니다.
15/09/17 21:03
수정 아이콘
[추천]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었으면 좋겠는 입장에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fOu Hell
15/09/18 04:01
수정 아이콘
저도 개인적으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면 너무 아쉽잖아요.
노원구백호랑이
15/09/17 21:05
수정 아이콘
저도 읽다가 비슷한 경험이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제가 군대 들어간지 별로 안되서 였을겁니다. 저희 중대는 1년에 3개월씩 탄약고 부대에 들어가 경계 근무를 하러 들어가는 부대였습니다. 이등병 때였는데 한 초소에 들어간 선임 팀이 무섭다고 자꾸 뭐가 보인다고 본부에 연락왔습니다. 당연히 믿지 않았고 장난친다고 그 선임은 엄청 혼났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저녁에 그 초소를 들어가는 팀마다 무섭다고 연락이 오거나 사고가 났고 결국 중사하나랑 하사가 팀을 이뤄 들어갔고 그 팀도 무언가를 보게 되서 그 초소가 폐쇠되고 초소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치워 버렸죠. 나중에 중대에 소문이 돌아는데 그 초소에서 예전에 총기사고가 나서 병사 한명이 죽었는데 그걸 부대에서 제대로 알리지 않고 단순사고로 치워버린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더 소름 끼치는 건 저희 부대에서 무섭다고 했던 비슷한 시기에 산 반대편에 무당집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 초소는 죽음의 초소라고 불렸습니다. 아직도 그 초소 생각하면 살짝 소름 끼치네요...
fOu Hell
15/09/18 04:00
수정 아이콘
군대에는 대개 그런 기담이 하나쯤 있는 듯 합니다. 제가 나온 부대에도 그런 소문들이 도는 것들이 몇몇 있었고, 실제로 경계근무 도중 부사수와 비슷한 걸 보기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Nasty breaking B
15/09/17 21:50
수정 아이콘
[추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흐흐
몽키.D.루피
15/09/17 22:20
수정 아이콘
[추천] 무서운 얘기를 재밌게 쓰셨네요 크크
15/09/17 22:46
수정 아이콘
[추천]나는 이 야심한 밤에 이 글을 왜 읽었을까...ㅠㅠ
15/09/17 23:00
수정 아이콘
부적을 세 개 던져봐라 나도하 우와아아앙 << 이거 너무 웃깁니다 크크크크
fOu Hell
15/09/18 04:03
수정 아이콘
좋은 이벤트를 주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써네즈
15/09/18 06:53
수정 아이콘
이런 집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 많아요. 아마 위치 말하시면 대박 날듯 한데요.
커피보다홍차
15/09/18 14:17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크크크. 글도 잘 쓰시고요! 다른 에피소드도 있으면 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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