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루입니다.
도전은 해 보고 싶은데, 인생이 메말라빠져서 그런지(...) 평생 읽은 책이 죄 역사책 아니면 라이트 노벨 정도라 맛깔나고 감성을 자극하는 글을 쓰기는 어렵겠다 싶어서, 나름대로 전문분야(?)를 통해 하나 던져보려고 합니다. 역사 쪽에 굇수 분들이 득시글대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입니다만(...)
1876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킹 오브 막장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정말 희대의 막장극이었습니다. 뭐 하긴 득표율이 99%에 육박했던 3·15 부정 선거만 했겠습니까마는, 나름대로 선거 시스템이 잡혀 있고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기에 "그래도 선거에서 별 잡음은 없을 나라" 정도의 이미지인 미국 아닙니까. 그런 미국의 흑역사라고 할 만한 선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다만 시대가 시대고 남북 전쟁 이후부터 대공황 이전까지, 최대한 짧게 잡아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전면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별 관심을 못 받는 시기가 이 시기인지라(워낙 그 당시 대통령들이 고만고만했던 탓도 있구요), 일반인에게 있어서 그렇게 인지도가 높은 선거는 사실 아니긴 합니다.
조금 길겠지만, 배경 이야기와 미국의 대선 시스템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겠죠.
미국의 대선 시스템
우리 나라는 민간인의 표를 많이 얻으면 그걸로 선거가 끝이죠. 투표한 사람의 표 중 절반 이상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로 승부가 갈립니다. 그런데, 미국 대선의 경우는 간접선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먼저 선거 전에, "선거인단"이라는 것을 각 주에 배정합니다. 각 주의 인구에 따라서 인구가 많으면 선거인단을 더 많이 배정하죠.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나라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 서울에는 인구가 많으니 국회의원을 더 많이 배정하고, 지방에는 시 하나에 한 명, 때로는 군 두셋을 묶어서 거기에서 한 명 이런 식으로 배정하죠? 마찬가지 이야기입니다.
이 배정된 선거인단 수를 기반으로 해서,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면 먼저 각 주에서 승패를 결정하게 됩니다. 각 주에서 승리한 당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조리 가져갑니다. 이해하기 쉽게 한국 버전으로 바꿔서 설명해 드리죠.
먼저 전체 선거인단 수를 결정합니다. 계산하기 쉽게 5백 명이라고 합시다.
서울의 인구는 천만 명이니 서울에 배정된 선거인단 수는 1백 명이고, 부산의 인구는 350만 명이니 부산에 배정된 선거인단 수는 35명, 경기도는 1240만 명이니 경기도에 배정된 선거인단 수는 124명... 이런 식으로 각 주마다 선거인단 수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투표에 들어가서, 각 주의 승패를 결정합니다.
알기 쉽게 지난 대선을 예로 들어보자면, 서울에서는 문재인이 48.2:51.4로 이겼고, 경기도에서는 박근혜가 50.4:49.2로 이겼습니다. 이 때, 문재인은 서울에서 승리했으므로
서울에 배정된 선거인단 1백 명은 모조리 문재인 쪽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는 경기도에서 승리했으므로
경기도에 배정된 선거인단 124명은 모두 박근혜를 지지하게 됩니다. 이런 식인 거죠.
그렇게 배정된 선거인단 수에서 승리하면 최종적으로 대통령 자리를 얻는 겁니다. 즉, 미국 대선은 크게 보면 두 스텝으로 나뉘어 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먼저 각 주에서 승패를 가르고, 그 다음에 그 승패의 결과로 어느 쪽이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했는지에 따라서 대선의 승패가 갈리는 것이죠.
자 이제, 극단적인 가정을 해 봅시다.
우리 나라가 미국의 대선 시스템을 따르고 있는데, 어느 해에 인구분포가 아주 미쳐서 서울에 배정된 투표인단 수가 5백 명 중에 2백 명이 되었고, 경기도에 배정된 투표인단 수가 나머지 3백 명 중 또 2백 명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니까 서울 경기에 각 2천만씩 총 4천만의 인구가 살아서 투표인단 배정이 그리 되었다고 가정해 보는 겁니다.
자, 그리고 3012년 문제인과 박근회의 제38대 대통령 선거가 벌어졌습니다. 박근회 후보는 지방에서 아주 강력한 지지를 받아서 서울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1천만 인구에게서 백 프로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선거인단 백 명을 먼저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서울과 경기에서는 박빙의 승부가 벌어져서 문제인 후보가 서울 경기에서 각각 1010만 명의 표를 받았고, 박근회 후보는 서울 경기에서 각각 990만 명의 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전체 득표는 문제인 후보는 2020만 명, 박근회 후보는 1980만 명에 지방의 1천만 표를 합산해서 총 2980만 명의 득표를 얻은 것이죠. 상식적이라면 대선은 문제인 후보의 패배로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선거인단을 볼까요? 미국 대선 시스템에 따르면 지역의 승자가 그 지역에 할당된 모든 선거인단을 가져가게 되므로, 문제인 후보는 서울과 경기에서 승리했으니 거기에 할당된 모든 선거인단을 가져갑니다. 그러면 문제인 후보 4백, 박근회 후보 1백.
선거인단에서는 문제인 후보가 압승을 하게 되고 따라서 문제인 후보가 대통령에 오르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 보이시겠죠. 대선 득표에서 밀려도 큰 주에서 승리해서 선거인단을 확보하면 투표에서 져도 대통령 자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미국 역사에서 무려 네 차례나 벌어졌습니다. 제6대 대통령 선거(1824년), 제23대 대통령 선거(1892년), 제43대 대통령 선거(2000년),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이 선거죠.
대선 전의 배경
군인 출신 대통령이라면 하나같이 영 좋은 기억이 없는(5·16 군사 쿠데타, 12·12 군사 반란 등) 우리 나라로서는 의외라면 의외인 사실인데, 민주주의의 발상지라는 미국 역사상 군인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인물은 의외로 많은 편입니다. 아 뭐 물론 "순수한 의미의 군인"으로 보기에는 좀 어폐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마는, 일단 당장 국부라는 조지 워싱턴부터 쓰리스타였고(대원수로 추서된 건 현대의 일입니다)...
뉴올리언스 전투의 승자였던 앤드류 잭슨 소장(7대).
티피커누 전투의 승자였던 윌리엄 헨리 해리슨 소장(9대).
멕시코 전쟁의 영웅인 재커리 테일러 소장(12대).
같은 전쟁에서 복무했던 프랭클린 피어스 준장(14대).
남북 전쟁의 대영웅인
율리시스 그랜트 대장(18대).
남북 전쟁에서 소장(진)으로 있었던 러더퍼드 헤이스(19대).
헤이스의 부관으로 있었던 윌리엄 매킨리 소령(진)(25대).
일명 러프 라이더(Rough Rider)로 유명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령(26대).
5성 장군으로서 대통령직에까지 오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원수(34대).
해군 대위로 있었던 존 F. 케네디(35대) 등등.
선거에서는 졌지만 2008년에 오바마와 붙었던 매케인도 군인으로 복무한 바 있고 가문이 군인 가문이었죠.
저 중에서 별 딴 것만 합쳐도 무려 18개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이야기할 건 굵은 글씨를 쳐 놓은 그랜트입니다.
그랜트. 남북 전쟁의 대영웅이고, 분명히 전술적으로도 뛰어난 명장임에는 틀림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장터에서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을 보고 이성을 잃고 말뚝에다가 매어 놓을 것을 명령한다던가, 로버트 리에게서 항복을 받을 때 보여준 관용적인 면이라던가 하는 점까지. 개인으로서는 흠 잡을 데가 없는 것...처럼 보였죠. 적어도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대통령직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후에 그랜트를 이어서 4성 장군의 직위에 오르는 명장 윌리엄 테쿰세 셔먼과는 달리, 그랜트는 대권주자가 되어 어렵지 않게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1868년의 일이었죠.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그랜트는 군인으로서의 그랜트와는 달리 엄청나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변 사람을 너무나 쉽게 믿고 신뢰했다는 것이죠.
미 역사상 당파 싸움이 없이 하나로 합치되어 국가를 이끌어나갔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의 시기를 다른 말로 일컬어서 "훌륭한 화합의 시대"(Era of Good Feelings)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오죽하면 요걸 패러디해서 그랜트 행정부를 놓고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훌륭한
절도의 시대"(Era of Good
Stealings).
이 표현이 말해주듯이 그랜트의 행정부 8년은 그야말로 썩은 정치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랜트가 정치에는 얼마나 사람 보는 눈이 없었는지, 부통령이란 인간이 그 당시까지 최악의 사건(우리로 치면 거의 장영자/이철희 사기극쯤 될까요?)에서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나지를 않나, 재무부와 양조업자가 짜고 생산량을 적게 신고해서 탈세를 하지를 않나, 그 탈세를 지휘했던 양반을 두고 이 군인 대통령이 했던 말이 또 가관입니다.
"재무부 세입 관리국원 중 존 맥도널드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사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양반이
탈세를 지휘했던 협잡꾼의 우두머리를 가지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한 겁니다! (물론 탈세 사실이 드러났던 것은 대통령의 발언 이후의 일입니다만) 여하간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었으니 그의 행정부는 그야말로 막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죠.
그에 대한 평가는, 아까 그 "절도의 시대"라는 명언구도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이라는 책에서 가져와 보았습니다.
백악관을 군대 스타일로 이끌어간 군인 지도자.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서툰 대통령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
그랜트가 선택한 그의 사적인 친구들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자, 이런 상황이니 누가 공화당에게 표를 던지겠습니까?
대선
이런 상황에서 1876년의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격돌합니다. 민주당은 이 참에 아예 정권을 잡으려고 이를 아주 바득바득 갈고 있었고, 공화당으로서도 하도 그랜트가 욕을 먹은 터라 뭔가 대책이 필요했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각각 선택된 것이 민주당의 새뮤얼 틸든(S. Tilden, 책에 따라서는 틸던으로 표기하기도 합니다)과 공화당의 러더퍼드 버처드 헤이스(R. B. Hayes)입니다.
틸든은 뉴욕의 부정부패와 싸운 깨끗한 정치가로 전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었고, 부패의 상징이었던 그랜트 행정부에게서 좀 떨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던 공화당 역시 그 정도로 깨끗한 인물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오하이오의 주지사로 부패와 투쟁하던 헤이스였던 것이죠.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 당시 건국 이래로 최대의 스캔들에 줄줄이 휘말렸던 그랜트였던지라(앞서 이야기한 위스키 도당(Whiskey Ring) 외에도 더 있습니다. 트위드 도당(Tweed Ring) 등등) 제아무리 돈 있고 뺵 있는 공화당이라도 선거에서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선거인단 이야기했었죠? 당시의 커트라인은 185명의 선거인단 확보였는데, 새뮤얼 틸든 쪽에서는 이미 18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딱 한 표면 당선이 확정되는 상황. 그런데 러더퍼드 헤이스가 16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것까지는 그렇다치는데, 나머지 19표,
이 19표가 문제가 되었던 겁니다.
헤이스가 19표를 얻으면 166 + 19 = 185, 선거인단 1표 차이로 헤이스 승리.
틸든이 1표라도 얻으면 말할 것도 없이 틸든의 승리.
19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7표, 플로리다의 4표, 루이지애나의 8표였습니다.
이게 그 당시의 선거인단 지도인데요(출처 영문 위키피디아의 1876년 미국 대선 항목입니다)... 빨간색이 공화당, 파란색이 민주당입니다. 보시다시피 남부는 민주당의 영향력이 커서(애초에 남부 미국으로 전쟁까지 했던 데 아닙니까) 죄다 시퍼렇고, 북부는 또 공화당파다 보니 죄다 시뻘겋죠. 그런데 남부의 저 시뻘건 세 곳, 저 세 곳이 자꾸 자꾸 세어봐도 개표결과가 안 맞는다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해를 넘겨서 1877년 1월까지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던 와중에, 결국 민주당 측에 가까웠던 주지사가 재개표를 명령하게 됩니다.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에서는 재개표 결과도 틸든이 9천 표 승리했으나 공화당 인사들이 이 주를 여행한 이후에
선관위에 의해서 대규모 첨삭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첨삭의 결과로 민주당이 1만 3천 표를 잃었다는 말과 함께요.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데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플로리다는 패배했으되 미시시피에서 이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헤이스가 이겼을 것이라고 평하고 있죠. 앨런 브링클리의 〈The Unfinished Nation〉
(번역명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에서는 이 재개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저렇게 논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막장 소리를 들을 만하죠(...) 근데 그거보다 더 골때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놈의 재개표가 아무리 해도 해도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아서(...) 2월에 대통령이 취임은 해야 하는데 논란이 끊이지가 않으니까 급기야 의회 차원에서 특별 선거 위원회가 구성됩니다. 공화당계 7명, 민주당계 7명, 그리고 중립파로 판사였던 데이비드 데이비스. 그런데 이 데이비스가 상원의원이 되면서 법관직을 사임하는 바람에 빈 자리가 나 버렸습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 빈 자리를 다른 법관인 조셉 브래들리(Joseph P. Bradley)가 메우기는 했는데...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남은 법관이 브래들리가 아니더라도 죄다 공화당원이었던 탓에 결국 선관위의 구성은 공화당 8 : 7 민주당이 되어버렸고 드디어 최종 표결이 들어갔을 때 이들은 정확히 자신이 지지하는 당의 노선을 따라 투표를 하여(이 표현은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에서도 공히 쓰인 표현입니다) 8대 7로 해당 19표가 러더퍼드 헤이스의 표로 들어가버립니다.
...그러니까 경과를 정리하면...
막장 그랜트 → 치열한 대선 → 틸든 184표, 헤이스 166표 확보 → (논란이 있습니다만) 대규모 표 첨삭의 가능성 → 재개표를 할 때마다 결론이 나지를 않음 → 특별 선거 위원회 구성 → 중립파 판사가 상원의원직을 얻는 통에 자리에서 빠지고 공화당파 판사가 그 자리를 대체 → 정확히 자신이 지지하는 당의 노선을 따라 투표 → 8대 7로 공화당 승리 → 남은 19표를 모두 헤이스가 득표 → 틸든 184표, 헤이스 185표 확보 → 헤이스 대통령 당선
...이 무슨 희대의 막장극입니까.
아, 일반인 투표요? 공화당측에서도 마지막 양심은 있었는지(...) 자기들이 일반인 투표에서는 졌다고 인정했습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득표한 것은 러더포드 헤이스 4,034,311표(47.9%), 틸든 4,288,546표(50.9%)로 틸든의 25만 표차 승리였다는 것은 공화당도 인정했죠.
이후
사실 뭐 보셨다시피 막장선거인 터라 민주당에서 당연히 이걸 인정할 리 없었고 아예 어깃장을 놓을 식으로 나섭니다.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에 따르면, 위원회의 보고를 무산시키겠다고 대놓고 엄포를 놓았다는군요. 결국 공화당에서도 안되겠다 싶었던지 민주당측과 물밑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이 결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어내게 되죠.
1. 적어도 남부인 1명을 헤이스 내각에 임명할 것.
2. 남부 내 연방 관리 임명권은 민주당에게 넘길 것.
3. 연방정부가 텍사스-퍼시픽 철도의 자금을 지원할 것.
4. 남부에서 연방군을 철수할 것. -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연방의 군정이 끝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5. 헤이스는 단임으로 끝낼 것(차기 선거 재출마 불가).
물론 공화당의 정책이 남부를 이롭게 할 것이라 생각했던 남부의 민주당 지지자들의 협상 지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죠.
이 결과로 어쨌든 러더퍼드 헤이스 대통령은 19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대통령으로서 헤이스는 내각인사에 대한 기준을 명시하고(그랜트 행정부에서 일한 사람 제외,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 제외, 친분관계 제외), 외적으로는 먼로 독트린의 길을 계속 나아갔으며, 파업을 진압하는 데 연방군을 동원했고(...) 얼마 안 되는 4년이란 짧은 임기 동안 부패와의 전쟁에 전면적으로 나섭니다.
그러나 이 대선이 워낙 막장성이 강했던지라, 결국 그 역시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그 과정을 통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의 앞이름이 러더포드, 영어로 적으면 Rutherford인데, 이걸 비튼 새로운 단어가 그를 조소하기 위해서 등장합니다... RutherFRAUD. Fraud는 문자 그대로 사기를 뜻하죠. 그리고 그런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는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고군분투해야 했고(<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의 표현), 그로써 그의 평가를 지키는 데는 성공합니다.
대통령직을 억울하게 빼앗겼다고도 볼 수 있는 새뮤얼 틸든은 "내가 얻은 신뢰는 4년간의 헤이스 행정부 덕분이다"라는 말로 헤이스 행정부를 향한 조소어린 시선과 억울함을 표현했습니다만, 그의 측근이 바로 그 막장선거였던 1876년 대선에 수만 달러(현재 돈으로 합계 약 300만 달러니까 거의 30억 원)의 뇌물을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오리건에 뿌렸다는 뉴욕 트리뷴의 기사가 터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지만, 이 근거없는 기사(후일 무죄 판정을 받습니다)를 틸든의 정적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틸든의 명성에 상처를 입혔죠. 특히나 틸든의 명성은 바로 정직에 근거하고 있었던 점에서 이 근거없는 기사로 인해 틸든이 입은 상처는 엄청난 것이었고, 결국 그는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해도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제임스 가필드가 대통령직을 가져가죠. 1884년에도 한 번 더 제의를 받습니다만 이때는 이미 그의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고 결국 이 때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게 되며, 이 때 민주당의 후보로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가 지명되어 결국 길었던 공화당 정권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그리고 2년 후에 사망하죠.
그나마 미국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그래도 러더퍼드 헤이스는 후세에 "그는 Mr. 평균이라 불려 마땅하다"는, 딱히 특출난 것은 아니었지만(아니, 어쩌면 연임했으면 특출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적당히 잘 나라를 이끈 대통령이었다는 것이죠. 보통 수준으로 나라 이끌기는 의외로 어려운 법입니다. 당장 오바마 이전 대통령이 그 유명한 "조지고 부시고"(...)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말이죠.
1876년 대선 이후의 각 대선의 행보 및 논평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 삼국전투기에 명대사가 등장했는데, 이런 대사가 등장했습니다. 전투외편 8-3편에서 말이죠.
"시대상은 현대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기 때문에 언제나 역사를 알고 배우는 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삼국지는 1800년 전 이야기입니다. 겨우 청동기 지나고 철기를 쓰던 시대라구요. 1800년 전 사람들도 현대인들과 이리 비슷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100년 안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말할 필요도 없죠.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고, 그래서 미리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 거에요."
자, 보죠.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서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민주당의 앤드류 존슨이야 링컨의 암살 이후에 힘을 잃을 것은 불보듯 뻔했고(첨언하면 이게 미 역사상 대선 러닝메이트 한정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의 당적이 달랐던 유일한 케이스입니다. 실제로 대통령과 부통령의 당직이 달랐던 적은 2대 존 애덤스 - 당시 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케이스도 있어서)... 그랜트가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8년간 어마어마한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고 국민들을 충분히 실망시키고도 남았죠. 때맞추어 어쨌든 노예제가 폐지가 된 이상 북부인이 노예제에 갖는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실로 이보다 완벽한 판이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심지어 일반인 득표에서는 이겨놓고도 민주당은 졌어요.
25만 표, 엄청난 논란. 희대의 사기극 수준인 선거라고 해도 어쩌면 부족함이 없을 이 논란의 선거를 겪고, 그럼 민주당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느냐? 또 패배합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부패한 공화당원이었던 로스코 콩클링의 거대한 밀실이 배후에서 뉴욕 일대의 공화당의 표를 확보해 준 덕분이었습니다만, 일반인들이 바보라서 공화당을 지지한 것은 아닐 테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대선, 즉 1884년 대선에서는 이깁니다만, 1888년 대선에서는? 클리블랜드가 9만 표를 이기고도 또 공화당에게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서 벤저민 해리슨이 대통령 자리에 오릅니다(...) 해리슨이 워낙 말아먹은 탓에 그 다음은 클리블랜드가 이겼습니다만, 1896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된 것은 노동자의 성자를 자처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꺾은 공화당의 윌리엄 매킨리였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서 짧게 정리해서 다시 쓰죠.
1876년 선거 - 이길 뻔했는데 막장선거가 벌어지면서 패배.
1880년 선거 - 뉴욕의 콩클링 파벌 때문에 패배.
1884년 선거 - 승리, 그로버 클리블랜드 당선.
1888년 선거 - 투표에서는 이겼는데 선거인단에 밀려서 패배.
1892년 선거 - 해리슨이 워낙 말아먹어서 승리.
1896년 선거 - 노동자들의 대표를 자처하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명언이 터지고서도(오죽하면 위키피디아에서 이 때 제닝스 브라이언의 연설을 Cross of Gold Speech라 하여 장문으로 소개할 정도입니다. 막줄이 압권이죠. "당신들은 노동자의 이마에 가시 면류관을 씌워서는 안되고, 당신들은 인류를 황금 십자가에 못박아서는 안됩니다!") 매킨리가 승리.
그렇게 부패한 막장행정을 보였음에도 공화당은 (거의 반쯤 사기이긴 해도) 이겼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겼습니다. 공화당을 지지한 사람들이 다 귀족이고 돈 많은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다 바보고 다 수준이 낮아서 공화당을 지지했을까요? 전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게다가 선거인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막장 방법으로 빠져나오는 수까지 보여준 게 공화당입니다. 정치적인 술수는 뛰어났다고 해야 할까요?
근래에 빈부 격차는 심화되고 전 세대에 걸쳐 너나할 것 없이 죽는 소리를 합니다(이 글을 쓰는 저도 학위만 달랑 있는 백수 신세라 죽을 맛입니다). 가진 자는 자신의 것을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정부는 부패했으며,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얼굴에서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고, 결국 여기저기서 극한대립이 터집니다. 철도 파업이 벌어졌던 게 고작 2년 되었습니다. 노동법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정말 끔찍한 나날이 이어질지도 모르죠.
좁은 소견입니다만, 저는 작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은 백여 년 전의 미국의 노사 갈등 격돌기(남북전쟁 이후부터 대공황까지의 미국)와 비슷하다고 진단합니다. 정부는 거의 언제나 기업 편을 들고 기업은 자신을 지지하는 당을 위해 많은 자금을 쓰며 그로부터 대통령이 나오죠. 민중들이 생각이 없어서 공화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틸든은 결과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가, 나아가서 왜 제닝스 브라이언과 민주당은 노동자를 위한 당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나(애초에 총 득표수에서 이기고도 패배한 경우가 몇 안 됩니다), 주의깊게 살피고 그 당시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해서 "표"로 가져오는 게 현 야당이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현 여당은 물론 반대로 이야기해야겠구요.
흔히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당선된 게 기적이라고들 합니다. 우드로 윌슨의 당선도 어떻게 보면 기적이었습니다. 타이밍 맞춰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태프트가 내분을 벌여준 덕분에 어부지리로 이긴 것이었으니까요.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때에는 앞선 대통령 허버트 후버 때에 대공황이라는 어마어마한 악재가 덮쳐준 덕분에 상대적으로 쉽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1876년 대선 이후로 1932년까지의 민주당의 대선 행보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라 아니할 수 없죠. 1876년부터 1932년까지 56년의 세월에 총 15번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긴 것은 딱 세 명뿐이었고(클리블랜드, 윌슨, 루스벨트),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이긴 것은 다섯 번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두 번은 공화당의 IMF급 실정, 한 번은 공화당의 내홍, 나머지 두 번은 상대 당의 인물이 없음, 이렇게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노사갈등과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음에도.
앞서 이야기했지만 저는 지금의 상황을 당시 노사갈등이 극도에 달했던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게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민주당은 이길 때는 어떻게 대선에서 승리했고 질 때는 무엇 때문에 패배했으며 민주당이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했는가, 그리고 그걸 작금의 현실에 어떻게 대입해볼 것인가, 그걸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국민들은 미개하니 이 나라는 답이 없다, 백 보를 양보해서 설령 그게 완벽하게 사실일지라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게 정당의 숙명입니다. 누구도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것을 전략이라고 하지는 않죠. 그럴 바에는 과거의 상황을 거울삼아서 한 번 도전해보는 것이 올바르겠죠. 새누리당이라고, 또 새정치민주연합이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다 정치학을 배울 만큼 배우고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아닙니까. 저는 철저하게 반새누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만, 기실 이걸 뒤집으면 정확하게 새누리당에 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부패하고도 이겼고, 그렇게 이미지 깎아먹었고 노동자를 위한다는 이미지는 가져가기 어려웠음에도 그들이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에 있었는가, 그건 공부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죠. 결국 누가 그 교훈을 정확하게 얻어서 현실에 잘 반영하고 승리를 얻어내느냐가 역사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테구요.
딴 소리가 너무나 길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뭐 솔직히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관심은 크되 아는 바는 적고 특히나 토론을 질색팔색하는 터라(얼마 전에 끝장토론에 물리고 나니까 두 번 다시 토론하기 싫어지더군요) 이런 이야기를 적기가 적잖이 두렵습니다만, 역사를 배우고 그걸 활용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적었던 선거 이야기 등은 단지 할머니의 지나간 옛 이야기와 무엇이 다를까요.
끝으로 이 선거에 대한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에서의 논평입니다.
과정이 어떠했든간에, 상원이 선거결과를 발표한 지 8시간 후 헤이스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사기행위와 같은 이 1876년 선거가 가장 부정한 행정부인 그랜트 행정부를 뒤이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선거가 부패와의 투쟁을 하는 정직한 두 사람간의 대결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두 후보에게서 전혀 부정행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최고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추천] 댓글을 달아주세요!
* 수정 - 2000년 선거는 37대가 아니라 43대입니다.
자료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presidential_election,_1876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 W. J. Ridings, S. B. McIver 지음, 김형곤 옮김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A. 브링클리 지음, 황혜성 외 5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