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3.
아침 7시 30분.
나와 유진이의 어머니, 오빠는 그녀를 떠나 보낼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와 형님은 그녀의 지인들과 친척들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연락을 하였고 어머님은 병동에 있는 그녀의 짐을 정리하시고 환자복 대신 입힐 옷을 챙기셨다. 1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암 투병 동안 다들 힘들어하는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며 수많은 절망과 좌절을 겪어 와서 그런지 담담한 표정으로 각자 할 일을 하였다. 모두들 그녀가 괴로워 해왔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런 것인지, 그녀가 이제 곧 죽는다는 사실이 와 닿지 않은 것인지 당시는 구분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를 이제 더는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것 뿐이었다. 지금 상태로 계속 살아간다는 건 그녀에게 지옥과도 같은 고통임에 분명 했다.
내가 전화를 마친 후 병실에 들어 왔을 때 그녀를 위하여 사놓은 꽃들이 눈에 들어 왔다. 병실에는 원칙적으로 꽃이나 화분을 가져오면 안 되지만 병실에는 그녀밖에 없었고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그녀가 꽃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떠나는 길에 좀 둘 수 없느냐고 간곡히 부탁하여서 예외적으로 허락을 받고 병실에 꽃들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꽃을 좋아하였다. 특히 후리지아와 해바라기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 봄이나 여름에 꽃집을 지날 때마다 전시된 꽃을 보고 곧 잘 나에게 꽃을 사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똑같이 'No'였다. '갖고 싶으면 직접 사라'라고 말할 때마다 낭만 없는 인간이라고 구박받기 일 수였다. 다시끔 느끼지만 '사람은 늘 후회하는 인간'이라는 말은 정말 맞는 얘기다. 살아생전에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뒤늦게 서야 나는 그녀를 위하여 병실에 매일 새로운 꽃을 갖다 놓았지만, 그녀는 내가 사온 꽃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5일 전부터 숨쉬기 힘들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호소하였다. 호스피스에 계신 담당 의사 선생님은 숨을 쉬는 게 괴롭다고 느껴지면 수면 상태로 있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하였다. 그녀는 동의한 후 그 때부터 지속해서 잠을 자는 상태였다. (지금 생각 해보면 단순히 자는게 아니라 간성 혼수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그녀는 죽기 전까지 깨지 않은 상태로 있었기에 병실에 있는 꽃들을 볼 수 없었다. 호스피스에 있는 간호사 분들은 나에게 눈을 띄지 않아서 꽃을 볼수는 없지만 향기는 맡을 수 있다고 얘기는 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가 가져온 꽃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진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꿈 속에서라도 그녀가 좋아하는 꽃들에 둘러 쌓일 수 있도록 시들지 않게 물을 주는 일 뿐이었다.
4.
그녀는 꽃을 정말 좋아하였다. 꽃 향기를 포함하여 꽃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남자친구에게 꽃을 선물 받기를 원하였다. 남자 친구에게 꽃 선물을 받는 게 값비싼 선물보다 훨씬 더 좋다고 종종 얘기하였다. 나는 꽃에 관심이 없었다. 공원이나 꽃집을 지날 때 마다 잠깐 쳐다볼 뿐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버리는 꽃을 돈 주고 산다는 건 나에게는 사치이자 낭비일 뿐이었다. 꽃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꽃을 선물하는 남자는 나에게 비난의 대상 일 뿐이었기에 가끔 거리에 꽃다발을 들고 가는 남자를 보면 한심하게 쳐다보곤 하였다. 단순히 꽃에 대한 인식 차이 뿐만 아니라 그녀와 나는 너무나 많은게 달랐다. 그녀는 항상 올바른 자세로 서 있었고 걸었으며 품위있는 말투와 교양을 중요하게 여겼다. 다른 사람들이 욕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본인 만큼은 절대 욕을 쓰는 일이 없었다. 욕 만큼이나 상스러운 19금 개그는 그녀에게는 지양의 대상이었다. 그녀와 다르게 나는 늘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고 팔자걸음은 100m 밖에서도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내 상징이였다. 대화에 욕과 섹드립은 기본 옵션이었고 '식빵'으로 시작하고 '식빵'으로 끝나는 펀치라임은 내 주특기였다.(욕과 초성체 사용이 안되어서 식빵으로 대체) 그녀는 흡연하는 사람과는 절대 사귀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고 담배는 나의 영원한 친구였다. 그녀에게 지각은 죄악이었고 나는 코리아 타임을 철저히 지켰다. 그녀는 손을 잡고 걷는 걸 좋아 하였고 나는 내 몸에 누군가 손대는 걸 싫어하는 이상한 철벽남(?)이었다. 우리 둘 다 우리가 너무나 다른 사람인걸 잘 알고 있었고 가끔식 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을 만나서 연애하는걸까 궁금해 하였다. 수 많은 차이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연애 초기에 만나서 싸우고 화해하는게 일상 이었다. 돌이켜 싸웠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녀의 잘못이 30, 내 잘못이 70정도 였던것 같다. 물론 내 얘기를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대부분은 나를 욕하고 비난하기 일 수였다.
나는 거짓말과 빈말을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솔직하게 대답하는걸 미덕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그녀가 자기가 예쁘냐고 물어보면 나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이 '아니' 였다. 오해하실 분들이 있을까 봐 말하지만, 그녀는 못 생기지 않았다. 언제나 느끼지만 그녀는 나에게 감사할 정도의 미모를 갖고 있었다. 단지 내가 예쁘다고 정해 놓은 기준치가 김태희 한가인 수지인게 문제였다. 그녀의 미모에 대한 진실 여부와 별개로 8년 넘게 전형적인 공대 솔로 남자로 살아 온 나에게 저런 질문은 유치하게 짝이 없는 시간 낭비이자 닭살 커플이나 하는 유치한 연애질이라 생각하였다. 이런 유치한 행동을 하는 닭살 커플은 객관적인 태도로 철저히 응징해줘야 하는 걸 미덕으로 여겨왔다. 안타깝지만 나의 미덕은 여자친구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내 대답 후 언제나 날라오는 건 한숨과 냉소로 가득 찬 미소와 함께 날라오는 여자친구의 분노였고 늘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나도 내가 안 예쁜 거 안다고! 어떻게 듣기 좋은 말 한 번 해주는게 그리 힘드냐'
인간에게는 학습 능력이 있기에 나는 반복되는 다툼 끝에 더 이상의 사소한 싸움은 피해야 겠다고 생각 했고 저런 질문을 하면 1초도 안걸려 '응'이라 대답해주는 단계에 도달 할 수 있었다. 나의 이런 변화에 나 스스로 놀라워 하였다. 그녀도 유치한 장난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라서 연애 초기에 2-3번 이후로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가끔식 직구가 아닌 커브를 던질 줄 아는 여자였다. 언젠가 한번은 '나 안 예쁘지?'라고 낚시성 멘트를 날려 왔다. 생각하는게 귀찮은 나는 언제나 처럼 그녀가 던진 떡밥을 잘 물어 주었다.
'어'
'어휴 이 인간아. 니가 파블로프의 개냐 조건 반사네 아주 그냥'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비싸게 굴었는지 후회되지만 과거 나에게 남자다움은 버릴 수 없는 가치였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남자의 기준 중에는 거짓말과 빈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 무언가 신념 같은 있어야 한다 점도 포함되었다. 세상은 늘 변화하고 바뀌는 건 당연하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라 주변 지인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면 늘 처음에는 잘해주다 나중에 마음이 식어 버리면 변화는 남자(또는 여자)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마음이 바뀌는게 이상한건 아니지만 나는 그럴 거면 처음부터 왜 잘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고(?) 잘해주다 목적만 달성하고 발을 빼는 것 같아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당당하게 말하였다.
'나는 다른 남자들 처럼 너에게 잘해주지 않을거야. 대신에 처음에 잘해주다 나중에 태도가 바뀌는 일 또한 없을거야. 그리고 너가 날 떠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널 떠나는 일은 없을거야'
이 말을 했을 때 그녀의 '이런 뭐 병x같은 인간이 있나' 란 얼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다른 커플들을 보면 처음에는 잘해주기 바쁜데 처음 부터 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남자친구를 보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그녀는 뭐라 더 말하지 않고 어처구니 없다는 한숨과 함께 그냥 웃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만담 콤비라 불릴 정도로 달라도 정말 너무나 달라 이야기 거리가 많은 우리 둘이었지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 만큼은 그 누구 보다 앞섰기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였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빠르게 서로를 닮아 가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파블로프의 개에서 벗어나 생각한 후에 그녀가 좋아할 만한 대답을 해주는 능력을 배우게 되었고 그녀는 미약하게나마 가벼운 욕과 19금 개그를 시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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