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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7/29 14:19:01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1772년, 영국 최초의 노예해방 판례

영국이 노예제를 폐지하고 노예무역 금지를 확산시킨 것에는 노골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는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 많은 <인본주의자>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18세기 초부터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은 <노예제> 그 자체를 혐오했었고 또 개신교 복음주의자들도 종교를 이유로 노예제를 혐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노예제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상을 앞세우면서 反노예제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노력의 가장 대표적인 결과가 1772년, 탈주 노예 제임스 서머셋(James Somersett)에 대한 판례(Somersett vs Stewart, 1772)인데요, 이 때 영국 법원은 사상 최초로 탈주 노예를 자유인의 신분으로 돌려놓기로 판결했습니다. 


Am I not a man.jpg1788년, 반노예제운동 책자 표지


제임스 서머셋은 흑인 노예로 찰스 스튜어트라는 상인에게 보스턴에서 팔려 1769년 런던에 '비자발적으로'오게 된 사람입니다. 여느 일반적인 노예주와 마찬가지로 스튜어트는 서머셋을 가혹하게 다루었고, 이에 따라 1771년, 서머셋은 탈주를 결심하고 도망쳤지만 불행하게도 다시 잡히게 되었습니다. 분노한 노예주 스튜어트는 서머셋을 강제로 자메이카로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서머셋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기독교로 인도한 대부들 존 말로, 토마스 워킨, 엘리자벳 케이드는 그를 위해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전개하고, 서머셋의 억울함을 영국 법원에 상고했습니다.


독실한 복음주의자들이었던 저 삼총사들은 서머셋이 다시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영국의 부유한 종교인 집안 출신의 부호 그랜빌 샤프(Granville Sharp)의 후원을 받아 서머셋은 무려 5명에 이르는 변호인단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랜빌은 당대 부유한 중산층이었음에도 모든 종류의 사회부조리를 혐오했던 인물이었고 이 때문에 서머셋의 사건에 깊숙히 개입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영국 사상 최초로 <노예제의 합법성>을 다룬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서머셋의 변호인단은 5명, 그리고 스튜어트의 변호인단은 2명이었습니다.


서머셋 측은 영국 식민지에서는 몰라도 영국 본토와 웨일스에서는 노예제라는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그 어떠한 실정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자연법에 따라 서머셋은 자유인이라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또한 스튜어트와 서머셋 사이의 계약이 자유로운 계약이 아니라는 것을 근거로 그 계약의 부당성을 역설했습니다. 


스튜어트 측은 재산권이라는 논리를 내세웠고, 다른 한편 노예의 해방이 영국의 국익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역설했습니다.


지루한 재판 끝이 당시 대법관 맨스필드 경(Lord Mansfield)는 서머셋 측의 손을 들어주었고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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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te of slavery is of such a nature that it is incapable of being introduced on any reasons, moral or political, but only by positive law, which preserves its force long after the reasons, occasions, and time itself from whence it was created, is erased from memory. It is so odious, that nothing can be suffered to support it, but positive law. Whatever inconveniences, therefore, may follow from the decision, I cannot say this case is allowed or approved by the law of England; and therefore the black must be discharged.



요약하자면, 노예제는 영국의 법에 설 자리가 없고, 따라서 이 흑인은 무죄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에도 상당히 센세이셔널한 판결이었고, 많은 노예주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심지어 맨스필드 경의 저택이 테러당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용감한 판결은 영국의 반노예제 캠페인을 벌이던 사람들을 고무시켰고, 반노예제 확립을 향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물론 영국이 국가적으로 노예제를 완전히 금지하기까지 수십년이 더 흘러야 했지만 말이죠. 



본 사례는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진실한 종교인들의 노력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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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신경쓰여요
15/07/29 14:21
수정 아이콘
오... 멋지네요.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었군요. 존경할 만합니다.
이치죠 호타루
15/07/29 14:32
수정 아이콘
지금이야 노예 사건이 발생하면 99.9%의 사람들이 분노하는 세상이지만 당시로서는 어떻게 보면 노예제라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겠죠. 1700년대 후반이면 토마스 제퍼슨이 한창일 때인데 진보적이라고 하는 그조차 노예 소유주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구나 성경에조차 노예 이야기가 잔뜩 나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희대의 선구자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소시탱구^^*
15/07/29 14:45
수정 아이콘
미국 역사를 보더라도 당시에 노예제라는게 당연하게 받아들여 졌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미국에 새로운 영토가 편입될 때마다 해당 지역의 노예제도의 허용 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렸던 것만 봐도 그렇죠.
이치죠 호타루
15/07/30 00:25
수정 아이콘
관점이라는 게 어느 순간 딱 지나자마자 "어 이건 아니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만큼, 그런 노예제 허용여부 찬반이 갈리는 시기 같은 소위 '회색지대'가 언제부터냐, 거기에 대해서 저와 이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1772년은 회색지대가 정말 막 시작된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엘리 휘트니가 씨 빼는 기계를 발명한 게 1793년이고 그 때 이전에는 남부에서 거 "돈이 안 되니" 노예 있으나마나한 거 아뇨 소리가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아메리카 독립전쟁 이전에는 '회색지대'가 아직 미약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미주리 타협이니 더글러스의 중재안이니 하퍼스페리 반란이니 하는 것은 1820년 이후죠.
無識論者
15/07/29 14:44
수정 아이콘
오늘날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살만해진건 정치 경제 종교 등 각분야에서 지식인들이 노력해준 덕분이죠. 고마운 일입니다.
임전즉퇴
15/07/29 16:01
수정 아이콘
곁들여보자면 저때쯤 노예해방을 논한 이들의 정신적 배경은 다양했겠죠. 기본적으로 '크리스천이면 노예 아님'이 있고, '자유를 막는 제도는 나쁘니 일단 자유를 주고 봐야 한다', '사회계급은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유색인도 같은 사람이다'가 있는가 하면 '잘해줄 거면 됐고 잘해주지 않을 거면 해방', 그리고 어느 정도 실현되기도 했던 '자기네 땅으로 돌려보내주자'도 있었을 겁니다. '노예제는 자본주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수준까지는 모르겠네요.
근대 서양의 노예는 계급차별이라기보다 인종차별인데, 노예제는 싫어했지만 그래도 역시 백인은 뭔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계속 꽤 있었고, 그 결과 미국에서 노예해방과 흑백통합 간에는 100년 가까운(혹은 훨씬 넘는) 간극이 있죠.
겨울삼각형
15/07/29 16:52
수정 아이콘
하지만 미국식민지들이 독립하고..
증기기관의 성능이 개선되고, 성능좋은 방적기들이 개발되면서(산업혁명... 이라 불리죠) 면화의 수요가 늘어나
미국 남부의 면화 재배가 본격화 되는등.. 노예해방은..
(미국 남부에 노예를 공급한게 영국 상인들)

아프리카의 노예 -> 영국이 수입 -> 아메리카 면화 플랜트에 노예 공급 -> 아메리카 면화 플랜트들이 노예들이 생산한 값싼 면화를 영국으로 공급 -> 생산된 면직물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인도에 수출 이라는..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아래 원조 천조국이 돈을 버는 방법이었죠.
+ 영국이 만든 면직물을 팔기 위해서 인도의 면직물(캘리코) 산업을 붕괴 시킨 것은 덤(숙련된 인도 기술자들 팔을 잘랐다는 소문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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