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스 작전으로 이탈리아가 왕창 깨지던 12월에서 살짝만 시간을 되돌려서, 한달 전인 10월 28일,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무솔리니의 가장 큰 실책이자 뻘짓으로, 이탈리아 뿐만이 아니라 나치 독일의 발목도 제대로 붙잡힌 전역이 되었습니다.
하등 침략할 이유가 없는 곳을,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침공했다가 대차게 말아먹는 것은 북아프리카 전역과 비슷합니다.
[1] 서막
북아프리카로 간 그라치아니는 2달동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줌도 안되는 영국군을 가볍게 쓸어버릴 줄 알았던
무솔리니로서는 북아프리카 전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한 달 뒤에는, 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파멸로 다가오지만요)
그러던 무솔리니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화약고로 유명한 발칸 반도에 주목합니다.
루마니아의 유전을 포함해서, 독일로서는 발칸 반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이유가 많았습니다. (소련 침공도 포함해서)
물론 소련도 자원과 국경선 확보를 위해 나치와 겉으로는 협력관계이면서도 뒤로는 발칸 반도에서의 책략을 시도했으며
본토항공전이 거의 끝나가던 영국도 독일의 후방 공격을 위해 발칸 반도(특히 그리스)는 꼭 지키고 싶어했습니다.
이렇게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발칸반도는 전쟁보다 더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요.
이탈리아는 그리스 침공을 감행하며 이 모든 협상 테이블을 엎어버렸습니다.
이유는 또 무솔리니의 대외적 자존심을 위한 것 이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2] 양국의 전력
어찌되었건 간에 그래도 겉으로는 세계 열강인 이탈리아와, 유럽 변방의 소국인 그리스는 기본 전력에서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특히나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처럼 멀지도 않고, 바다로 가로막혀있지도 않은 그리스에 보다 많은 전력 투사가 가능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전력은 보병 전력만 56만 명에 전투기가 460여 대, 전차 163대 등의 전력인 반면
그리스의 전력은 보병 30여만 명. 전투기는 80대가 채 되지 않았고 전차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여러모로 보나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찌보면 무솔리니가 자신있게 침공했을법도 합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침공 직전 최후 통첩을 날렸지만 그리스의 메탁사스 총리는 항복을 거부하였고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3] 굴욕의 이탈리아
고대부터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유명했던 그리스. 기세좋게 그리스의 국경을 넘은 이탈리아군은 곧 격렬한 저항을 받습니다.
특히나 약 2주간 치러진 핀두스 산 전투에서 그리스의 제3 줄리아 사단이 3천명의 전사자를 내며 궤멸하는 등
이탈리아는 숫적, 물적 우위를 업고서도 전혀 그리스를 압도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압도하기는커녕 사방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리스는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형을 활용한 방어선, 그리고 자국을 지킨다는 국민의 투지, 상층부의 과감한 결단 등으로
11월 중순이 지날 무렵에는 도리어 이탈리아군을 이탈리아령 알바니아로 밀어내버리며 그대로 역공을 가했습니다.
졸지에 침략전에서 방어전으로 바뀌어버린 알바니아 전선에서도 그대로 패전은 지속되어,
11월 22일 즈음에는 알바니아 남부 지방 대부분을 그리스가 점령한 희대의 역관광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 와중에도 주요 전투마다 이탈리아는 참패했고, 압도적인 우위인 공군과 해군은 거의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전차는 험악한 산악지형과 졸렬한 이탈리아의 지휘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탈리아는 명칭만 산악사단인 정예사단 대부분이
이탈리아의 정규군과 의용군의 혼성군에도 참패를 거듭하는 치욕만 맛봤습니다.
11월이 지나고 12월이 되자 이 지역에 겨울이 찾아봐 이렇게 이탈리아-그리스 전선은 1차적으로는 일단락됩니다.
여기까지 이탈리아는 전사자와 동상자, 포로와 부상자를 모두 포함해 전투 손실 9만명이라는 대피해를 낸 반면
그리스는 모두 합쳐 사상자 6만명... 빈약한 장비와 화력에 숫적으로도 열세였던 그리스의 빛나는 승리였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독일은 제멋대로 그리스 침공을 한 이탈리아를 비웃으며 그리스에 축전을 보낼 정도였습니다.
[4] 후기
굴욕 중의 굴욕을 맛본 이탈리아는 봄이 되자 (1941년 3월) 재차 그리스를 침공했으나 1차 침공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전과를 내었으며
이미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컴퍼스 작전으로 인해 북아프리카에서의 이탈리아 세력이 괴멸될 지경에 이르자
결국 무솔리니는 히틀러에게 싹싹 빌며 지원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독일은 아군같지도 않은 아군이지만, 그래도 이탈리아가 패망하는 꼴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기에 이탈리아의 전쟁에 개입합니다.
먼저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를 추축국으로 끌어들인 뒤, 유고슬라비아를 전격 침공하여 간단히 점령하고,
무방비 상태이던 그리스의 북쪽 방어선을 그대로 돌파, 그리스를 점령하게 됩니다.
북아프리카에도 지원군을 보내는데, 이 때 그 유명한 사막의 여우 롬멜이 활약하게 되는 역사적인 전장으로 바뀌지요.
이 이후로는 이탈리아는 스스로 뭔가를 해낼 능력을 완전히 잃고, 나치 독일의 부수적인 군대 정도로의 위치로 떨어지게 됩니다.
다음화에서 다시 컴퍼스 작전 뒤의 북아프리카 전역을 다뤄보도록 하지요.
ps. 나치 독일은 그리스 침공을 포함해서, 이 전역에 상당한 전력과 시간을 소모함으로서 바르바로사 작전이 늦춰지게 됩니다.
소련이 파멸 직전에 날씨의 도움에 힘입어 간신히 살아난 것을 생각하면, 이 무슨 나비효과...
ps2. 그리스 침공에도 도움될 겸, 독일은 크레타에 공수부대를 보내 결국 점령하지만, 이 크레타 전투로 독일 공수부대는 괴멸.
이 이후 독일은 공수부대를 활용한 대규모 작전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합니다. 그러고도 몰타는 점령하지 못해서 북아프리카로 가는
수송선은 이 이후로도 계속 위협받았으며, 결국 이것이 롬멜의 패인 중 하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