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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01 18:28:13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낙동강 - 7. 결국 피였다
+) 1사단 각 연대 마크 구합니다 ( - -)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 적에게 큰 피해를 주며 목표를 달성하면 보통 명장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아예 전략적인 차원에서 전투 자체를 줄이면서 아군은 물론 적의 피해도 최소화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명장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잘 주목받지 않죠. 눈에 잘 띄지 않으니까요. 손자가 말 하는 싸우지 않고 이긴 케이스인데 말이죠.

때로는 아군의 피해가 적의 피해와 비슷해도, 아예 아군의 피해가 적보다 월등해도 명장이고 잘 싸웠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아의 상황 차이를 고려하고 어쨌든 목표는 달성했으니까죠.

하지만 아무리 피해가 적더라도 그렇게 숫자로 나오는 이들 하나하나는 동등한 인간이고, 누구의 가족이고 친구였습니다.

침략 당한 쪽이라고 깨끗하게 싸우고 아무 잘못 없이 싸우는 게 아닙니다. 그게 상황이 더 절박할수록, 피아의 인식 및 군대의 훈련도가 더 낮을수록, 내부의 적을 가려내기 더 힘들어 질수록 방자 역시 미친 짓을 많이 저지르죠. 침략당했다는 아주 좋은 명분 덕분에요. 살아남기 위해서 적을 더 죽여야 된다는 것 때문에 말이죠. 보도연맹 사건이 경상도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 것도 그것 때문이죠. 시간이 더 있었다는 점도 있지만 더 이상 밀리면 안 되고 그 동안 당했던 지긋지긋한 게릴라가 정말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기에 그랬던 것이죠. 뭐 이거야 나중에 다룬다 했으니 넘어가겠습니다만.

한국전쟁부터 어느 전쟁이든 그렇죠. 특히 한국전쟁은 적도 같은 민족이었고, 낙동강 때는 강제로 끌려온 같은 한국 출신들을 죽여야 됐습니다. 형제가 국군과 인민군으로 만나는 걸 그렇게 찾기 어렵지 않죠. 그래서 이겨도 허탈하고 슬픈 것이구요. 북한군에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아무리 미군의 지원이 있었다 한들 국군은 훈련도와 화력에서 크게 밀렸고 그걸 병사들의 피로 채워야 했습니다. 병사 개개인의 목숨보다 지역 하나, 고지 하나를 지키는 게 더 중요했을 때였고,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으며 이름조차 남기지 못 한 이들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들의 보상 문제까지 가면 더 허탈해지죠.

다부동 전투 전반에 걸쳐 1사단의 피해는 무려 1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사단 전체가 한 번 바뀐 수준이죠. 이것도 추측일 뿐, 이름도 남기지 못 한 무명용사들과 지게를 지고 이들을 지원한 노무자들의 피해까지 합치면 얼마나 더 커질지 알 수 없죠. 이에 대한 북한군 측의 피해는 1차, 2차 합쳐 (3차는 모르겠군요) 국군의 한 두세배는 될 겁니다. 너무 많아서 집계할 엄두조차 내지 못 한 것이 다부동 전투입니다. 그래도 기쁘지가 않아요. 아군의 피해가 너무 컸고, 북한군의 피해가 아무리 크다 한들 결국 같은 민족이니까요. 아니 같은 민족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기뻐하기는 힘들어요. 이 때 미군은 1사단을 지원했고 9월에는 이들이 다부동을 맡습니다. 이들 역시 많은 피해를 입었죠. 미군이라고 피 색깔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피가, 정말 많은 피가 흘렀고 그게 정말 슬프지만, 그래도 최우선은 이 때 목숨을 던져 적을 막아낸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위에서 한 말들은 사치에 불과해요. 길거리에서 누가 나를 찌르려고 하는데 왜 우리는 죽고 죽여야 되는 상황에 처했는가, 저 자도 같은 한국인인데 이러고 있을 건 아니지 않습니까. 상대를 죽이든 밀어내든 내 몸을 지킨 다음에야 그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죠.

이 때 부하들의 피로 승리를 일궜던 장군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될까요? 대체 그 수많은 피를 밟고 올라선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될까요? 전 이렇게 말하렵니다.

그렇게 그게 중요하다면 최소한 그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지 말라구요. 그리고 그렇게 그게 중요하다면, 최소한 당신의 목숨보다 중요하다구요. 나라를 지키는 게 그렇게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라면 당신들 역시 예외는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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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투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뉩니다.

http://www.army.mil.kr/history/낙동강방어선작전/주요전투/다부동/15.html
좌측의 15연대가 벌인 328 고지를 둘러싼 전투

http://www.army.mil.kr/history/낙동강방어선작전/주요전투/다부동/12.html
중앙의 12연대가 벌인 수암산, 유학산을 중심으로 한 전투

http://www.army.mil.kr/history/낙동강방어선작전/주요전투/다부동/11.html
우측의 11연대가 벌인 신주막을 중심으로 한 전투죠.

15연대부터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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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연대는 기존의 13연대와 5사단의 15연대를 합쳐서 재편한 연대입니다. 연대장을 15연대장 최영희 대령이 맡게 됐는데 그대로 13으로 할 수 없다 해서 15연대로 바뀐 것이죠.

http://www.army.mil.kr/history/낙동강방어선작전/주요전투/다부동/15.html

15연대는 328고지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만들었고, 낙동강 앞의 154고지에 전초부대를 투입합니다. 낙동강이라는 천혜의 방어선이 앞에 있었지만 이걸 이용할 순 없었습니다. 병력이 부족했으니까요. 다부동으로의 후퇴 이전에도 이렇게 고지 위주로 병력을 전개해 수동적으로 대처했다는 점이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넓은 전선에 적 포병이 계속 쏘는 가운데 낙동강을 지키는 건 힘들었을 겁니다.

거기다 이 때 낙동강은 제대로 방어선이 돼 주지도 못 했습니다. 수심이 낮아졌으니까요. 여기에 적은 밤을 이용해 수중교를 건설, 전차까지 도하합니다. 가랑비 속에서 아군은 그걸 알지 못 했죠.

"세 배나 많은 병력과 10배의 화력을 앞세운 적의 공세는 강했다.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면서 겨우 낙동강을 지켜내고 있었다. 낮에는 그나마 미군의 공중 폭격 지원으로 버틸 만했다. 그러나 밤에는 뾰족한 대책이 따로 없었다."

14일 새벽부터 전투가 시작됩니다. 적은 약 6천 정도의 병력에 20대의 전차를 끌고 밀고 왔죠.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고지가 바위산이라서 제대로 된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없었고, 숨을 만한 숲도 없었다는 것이죠. 적의 집중포화가 쏟아지면서 후퇴, 하지만 곧 반격해서 탈환, 하지만 적의 포화가 쏟아져서 다시 후퇴를 반복하다가 새벽이 돼서야 겨우 적을 쫓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때 특공대를 적 후방으로 침투해 적을 교란해서 큰 피해를 줬다고 합니다. 첫 날부터 고지의 주인이 몇 번 바뀐 건가요 이거.

+) 14일 저녁과 15일 새벽으로 말이 갈리는데 뭐가 맞는진 모르겠네요.

이 때 15연대는 2대대를 사단 예비로 빼 두 개 대대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루의 전투만으로 1대대는 200명을 잃었고, 3대대는 50% (3~400 정도 되겠죠)을 잃었다고 합니다.


오른쪽이 연대장 최영희 대령입니다. 가운데는 미 1기병사단장 게이(...)구요

백선엽은 이 상황을 듣고 직접 328고지 근처로 옵니다. 헌데 이 때 연대장 최영희 대령은 참 대담한 작전을 벌였죠. 적의 포화에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후퇴하자 57mm 대전차포를 그 앞에 발사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 거리를 충분히 뒀기에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걸로 정신을 차린 병사들을 수습해 반격에 나선 것이죠.

여기에 꽤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으니, 반격 과정에서 갑자기 아군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것도 대대 병력으로요. 연대장이 독단으로 병사를 모은 것이었습니다.

"사단장님, 죄송합니다. 연대 예비 병력이 너무 없어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인사계를 대구에 보내 독자적으로 병사들을 모았습니다"

이 때 1사단에는 훈련소에서 정식으로 온 병력 외에 후퇴하는 낙오병들이나 각종 학도병 등도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최영희는 그들을 따로 예비대로 두고 있었던 것이죠. 거기다 이런 일에 대비해 야간 전투를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집이 잘 살았다고 하니 자기 사비를 들인 모양입니다. 어찌됐든 분명 군법 위반이지만 백선엽은 이를 탓 하지 못 합니다.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15연대의 병력 중 1/3을 빼간 게 바로 자신이면서 위험할 때 도움을 주지 못 했으니까요.

+) "예비대를 갖지 못 한 지휘관은 대사건의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다." - 프리드리히 2세. 예비대는 정말 중요합니다.

아무튼 한 번에 참 황당한 일을 두 번이나 겪은 셈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더 황당한 일을 하지만요.

이 때 북한군 소대장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렇게 진술했다고 하죠.

"국군의 야간 침투와 기습공격으로 고지를 빼앗겼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날(8월 15일) 2개 연대가 증원되어 이곳을 공격준비진지로 하여 대구를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북한군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이 날은 날씨가 흐려서 UN 공군이 오지 못 한 곳이었죠. 북한군은 끝없이 밀려왔습니다. 어차피 뒤에서는 독전대가 총을 겨누며 후퇴를 막고 있었죠. 막아내기를 몇 차례, 수류탄을 던지며 막아내기도 몇 차례, 총알도 수류탄도 다 떨어집니다. 북한군은 계속 수류탄을 던지며 전진해 오고 있었죠. 양 쪽 다 시체를 방패 삼은 전투였습니다.

여기다 미군이 맡았던 303고지가 적에게 넘어갑니다. 측면이 뚫려 버린 것이죠. 결국 15연대는 328고지를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습니다. 병력은 줄어들대로 줄어들었고, 대대본부 요원들과 전날 도착한 신병 150명까지 모두 투입합니다.

다음 날 UN 공군의 폭격이 재개됐지만 적은 시체의 숲에서 계속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병력은 여전히 북한군이 더 많았을 겁니다. 이 때 하늘에서 거대한, 수많은 폭격기가 나타납니다.


"그 지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지역 사람들이 “미군 폭격 뒤 10년 동안 풀이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적의 일선 부대는 이 폭격에서 살아남았다. 상당수 병력이 이미 낙동강을 건너 우리와 맞붙은 전선에 대거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떠받쳐주는 전선 후방이 미군의 폭격에 의해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더 큰 것은 심리적인 공황이었다. 나중에 포로의 입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번 미국의 대규모 융단폭격은 그들의 전투 심리, 싸움의 의지를 크게 꺾어 놓았다. 아울러 융단폭격으로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은 왜관의 전진기지에 준비해 뒀던 예비 병력과 야포, 그리고 탄약과 장비를 비롯한 군수품을 대거 잃었다. 전투를 장기간 치를 여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래도 전선의 북한군은 산등성이를 계속 넘어오고 있었다."

미 8군 사령부는 대구 전면의 적 병력을 4만으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적이 계속 강을 건너면서 낙동강의 의미가 사라져 갔죠. 이를 위해 노르망디에서 시도했던 융단폭격을 시도합니다. 백선엽은 직접 비행기를 타고 적 진지를 정찰한 후 적정을 보고했고, 98기의 B-29가 일본에서 출발합니다.

목표는 15연대와 미 1 기병사단의 정면, 낙동강 건너편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19일에 낙동강을 건너 온 적에게도 융단폭격을 하려는 계획이었죠. 16일 가로 5.6km, 세로 12km의 좁은 공간에 11:58부터 12:24까지 무려 960톤의 폭탄이 떨어집니다.

이후 2시간 이상 정찰기가 떠 전과를 확인하려 했지만 짙은 연기로 인해 실패합니다. 별 효과가 없다 싶었는지 2차 폭격을 취소하게 됐죠. 이미 적의 주력이 낙동강을 건넜기에 직접적인 피해는 주지 못 했지만 적 보급 물자의 피해는 컸고 무엇보다 심리적인 효과가 컸습니다.

"8월16일에 있었던 98대의 B-29 대폭격을 과소평가하는 분도 있지만, 제가 직접 겪은 바로는 그만큼 큰 성과가 없을 겁니다. 병력과 장비의 피해도 막심했지만 이 폭격으로 북한공산군 사기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어요." - 북한군 13사단 독전대장 출신 강동호

이후 20일까지 적의 공격은 줄어듭니다. 15연대는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죠. 328고지에서 다시 방어를 준비했을 때, 고지를 뒤덮은 시체는 어림잡아 1천여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옆에 미군이 있어서 부상병들을 미군 구호소로 보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살릴 수 있었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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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편에 북한군 14사단도 여기에 있었다고 적었는데 정작 그게 적혀 있던 곳에서도 찾을 수 없네요. -_-; 14사단은 아예 빼고 생각합시다.

12연대는 5사단 20연대를 받아 재편했습니다. 연대장은 20연대장이 맡았다가 9월 6일 기존의 12연대장 김점곤 대령이 다시 맡게 되었죠.

http://www.army.mil.kr/history/낙동강방어선작전/주요전투/다부동/12.html
이들에게는 1사단 방어의 핵심인 수암산-유학산 방면이 주어집니다. 혈전이 벌어진 건 같았지만, 그 양상은 조금 달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확보해야 될 최고의 요충지를 이미 뺏겨버린 상황, 문제는 그 탈환은 더 힘들었다는 것이죠. 산의 북쪽은 완만해서 올라오기 쉬웠지만 남쪽은 가파른 경사였습니다. 여기다 정상 주변을 둘러싼 암벽으로 우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포병으로 지원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고, 적의 진지로 올라가는 길은 좁았습니다. 수류탄 한두개만으로 적은 쉽게 아군을 막아낼 수 있었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얼마나 됐을진 몰라도, 이런 곳을 정찰로 확인도 못 한 채 적에게 뺏겨버린 점은 치명적이었습니다. 그 대가는 수많은 병사들의 피였죠. 백선엽은 이 방면에 적이 그렇게 많이 왔는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대장 박기병과 부연대장 김점곤이 전화로 강하게 요청하고 나서야 직접 비행기 타고 정찰했다고 하니까요.

대체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국군은 15일부터 차근차근 능선을 올라갑니다. 올라갔다가 멈췄다가, 적의 주 방어진지까지 갔다가 수류탄 몇 발에 물러나고를 반복했죠. 백선엽은 이런 상황을 보고 12연대의 지역이었던 674고지를 11연대로 넘기고 유학산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고지를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라 모든 보급은 노무자들이 지게를 지고 와야 했고, 이들의 희생도 너무나 컸습니다.

"유학산 전투의 절반은 노무자들이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대대장 한순화 소령

적의 공격도 계속됩니다. 오히려 후방으로 물러나기도 했죠. 전선이 유동적이었기에 UN군의 오폭도 컸습니다. 오히려 이들 때문에 아군의 공격이 막히기도 했죠. 이는 18일에 미군에서 직접 항공통제반을 파견하면서 좀 나아집니다.

"서울을 내놓을망정 유학산만은 어림없다" - 수색대가 정찰 중 들은 카더라 ( - -);

이상한 부분은 북한군의 공격이 참 뜸했다는 점입니다. 16일에 있던 융단폭격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 전, 공군이 없었을 때도 주도권을 쥐고 있던 건 적 15사단의 절반밖에 안 되는 12연대였습니다. 일단 올라가기 힘든 곳이니 치고 내려오기도 힘들었겠고 북한군의 주공은 동쪽 11연대 지역이기도 했겠지만 총공격에서 이들이 빠져서 방어만 했다고 볼 순 없습니다. 불리한 위치에서, 절반의 병력으로 북한군이 방어에 집중할 정도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것이 눈에 띄었는지 아니면 원래 능력을 인정했는지는 몰라도 백선엽은 반격 작전의 지휘를 김점곤에게 맡겼고, 김점곤은 미군도 실패했던 적을 뚫고 진격하면서 미군을 놀라게 합니다.

한편 수암산을 공격하던 12연대 2대대(유학산은 1, 3대대)는 악착같이 뚫고 지나가면서 수암산을 마침내 탈환하고 이전의 격전지 369고지까지 나아가는데 성공합니다. 보급은 최악의 상황이었고 지칠대로 지친 상황에서 적이 기습해 오면서 다시 뺏기고 말았죠. 이 날이 15일, 이후 수암산은 미군과 교대할 때가지 탈환하지 못 합니다.

증원군은 뒤늦게 나타납니다. 동해안에서의 상황이 일단락된 후 8사단에서 10연대를 지원한 것이었죠. 그 때 북한군은 이 곳을 공격하던 15사단을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피아의 상황이 엇갈린 것이죠. 국군이 노리는 유학산 방면의 적은 줄었지만 적이 노리고 있던 영천 방면의 아군도 줄어 버렸습니다. 이건 뭐 크로스 카운터도 아니고 말이죠

증원군을 받은 백선엽은 21일, 유학산-수암산 방면의 총공격을 명합니다. 이제 좀 해 볼 만해졌을 뿐 적은 아직도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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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12연대의 작전 중 특기할 부분은 수색대입니다. 이들은 북한군 옷을 입고 적진에 침투해 온갖 작전을 벌였죠. 이들은 점령지의 주민들을 이용해 때로는 국군인 걸 밝히고, 때로는 인민군인 척 하면서 적의 정보를 빼냅니다. 이 과정에서 적의 암구호를 알아내 쉬고 있는 적들을 몰살시킨 적도 있습니다.

이들 최대의 전공은 적 13사단 사령부를 습격한 것, 지휘부 몰살까지는 못 했지만 그 과정이 참 영화 같습니다. 북한군인 척 하며 보초를 뚫고 가다가 적 군관을 만나 들킬 것 같자 그들을 사살하고 후퇴하다가 적 군관 3명을 생포해 오기도 했습니다. 생포한 이들이 통신을 맡은 상태라서 그 가치는 더 컸죠. 이 때 1사단 사령부 역시 세 차례나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여기서 참 웃길 만한 건 적의 수색대와 마주쳤을 때였습니다. 국군 복장을 한 적과 인민군 복장을 한 아군이 싸웠지만 양 쪽 다 아무 피해 없이 떨어졌는데, 적 수색대 중 한 명이 진짜 북한군인 줄 알고 끼어든 것이었습니다. (...) 북쪽 사투리로 "우리 진짜 인민군이다"고 한 다음에 아군 진지까지 데려가서 정보를 많이 빼 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슬픈 것 역시 적의 수색대와 마주친 것이었습니다. 양 쪽이 어느 정도 총격을 벌였다가, 갑자기 적 수색대 중 한 명이 뛰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군 수색대 중 한 명에게 달려와 와락 안깁니다.


"형님!" 이라구요.

한 쪽은 국군의 수색대로, 다른 쪽은 북한군의 수색대로 전장에서 만난 것이었습니다.

...

이 뒤의 일이 어떻게 됐는지는 나와 있지 않네요.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백선엽은 후에 전쟁기념관을 세우면서 유일하게 "형제의 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여기서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형제상의 배경부터가 이게 아니라 다른 부대에서 형제끼리 만난 것을 소재로 한 것이었으니까요.

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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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죽어간 학도병,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어 사망한 재일동포 청년들이 군적 없이 사라져간 무명의 용사들이다. 이들이 남긴 사진이라도 찾아서 그 유족들에게 마땅한 예우를 해줘야 옳다. 우리야 군 생활을 비교적 오래 하며 살아남아서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지만, 짧은 기간 생명을 걸고 전투에 나섰던 노병들은 그런 혜택이 거의 없다. 생활이 어려워 탑골 공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무료급식을 받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 대한 마땅한 대접도 국가가 나서서 생각해야 할 일이다." - 김점곤

너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기록도 남기지 못 한 이들도 많습니다. 특히 학도병들, 전장을 나서기 전에 부모가 그 사실을 알고 집에 감금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온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 중에는 부산에 가족을 둔 채 일본에서 일하다가 전쟁에 참가해 돌아올 때까지 가족들은 일본에서 열심히 일 하는 줄 알고 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산 이들은 운 좋으면 국가의 지원을 받거나, 최소한 자기 스스로 자부심이라도 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옥을 거치고 살아 남은 이들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결국 이름을 남기지 못 하고 간 이들의 혼은 어떻게 위로할까요. 하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부동을 지킨 것은 결국 피였다." - 정일권

다음은 적의 주공이었던 11연대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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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에서 써야 했던 에피소드 하나,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이 생긴 게 이 때였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8월 4일 낙동강변을 지키던 12연대 앞에서 적이 계속 도하하고 있었고, UN 공군의 폭격에 적이 낙동강에 빠지는 걸 보고 어떤 장교가 "낙동강에 오리알 떨어진다"고 했다고 하죠. 좀 섬뜩하긴 합니다. -_-a 육군 대학에서는 이를 요즘 많이 쓰는 말로 "왕따"라고 설명하지만, 그냥 "점마들 남자 성기, 그러니까 음경 됐다"에 가까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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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타르
12/09/01 20:08
수정 아이콘
용산에 살고 있다보니까 저 동상을 자주 보게 되는데,
사연이 있는 동상인줄은 정말 몰랐네요. 동상을 볼 때마다 숙연한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복제자
12/09/01 20:46
수정 아이콘
낙동강 오리알 저거 정말인가요 덜덜
Je ne sais quoi
12/09/01 21:19
수정 아이콘
아.. 저 형제 이야기가 정말이라니.. 슬픈 이야기 많지만 정말 슬프네요.
吉高由里子
12/09/02 01:1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서글프고 먹먹해져서 글을 클릭할 때 한숨 한번 쉬고 클릭하게 되네요.
시지프스
12/09/04 14:53
수정 아이콘
눈시BBver.2 님// 좋은 글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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