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전에, 저는 후보의 성향이 미래지향적인지를 최우선의 선택기준으로 삼겠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 윤석열은 이명박 시절보다도 더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뽑지 못하겠다고 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단 하나의 소양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집권 내내 미래로 나아가기는 커녕, 대한민국의 정치를 낡디낡은 이념의 싸움판으로 만들고 마침내 군부 쿠데타의 시대로 되돌렸습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죠.
외곬수로 살아 온 사람이 새로운 분야를 만나면 자신에게 익숙한 패턴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윤석열은 사람 자체도 진취적이거나 관심사가 다양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르고 새로운 것에 대한 포용력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검찰 공직생활 외에는 어떤 분야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한 나라의 국정이라는 오만가지 분야의 십만가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결정해야 하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국정을 위한 경험적 자산도, 인적 자산도, 그에 맞는 소양도 갖추지 못한 윤석열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자신의 기존 인맥에 기대거나 익숙한 검찰 직무수행의 패턴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모르고, 다른 의견을 따르는 것을 휘둘린다고 착각하며, 숙고하지 않는 즉흥적인 결정이 카리스마라고 오해하는 비뚤어진 검찰 꼰대가 대통령이라는 낯선 위치에서 가장 쉽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패턴으로 판을 만드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요직을 검찰 출신들이 장악합니다. 정치적 문제는 검찰 권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합니다.
양보와 협상이라는 정치의 기본을 배제한 채, 상대를 범죄자로 보고 국정을 내 기소가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겨루는 승부로만 인지합니다.
당연히 외로워지고, 스스로 이해못할 상황과 반작용들이 몰아칩니다. 슬프게도 윤석열에게 없는 결정적인 또 한 가지가 스스로 반성하고 통찰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실패에 부딪쳤을 때 외부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자신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해 줄 정서적 위안거리를 먼저 찾습니다. 그런 자에게 붙는 것이 간신들입니다.
윤석열 스스로 받는 스트레스 역시 엄청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스트레스를 다루고 책임지는 것에 대한 훈련을 포함합니다.
검찰총장으로 지낼 때보다 어떤 면에서는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더 적을수도 있는 자리가 대통령일 것입니다.
더 많이 벌고 더 유명하고 더 사랑받는 연예인들이 어떤 면에서는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더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정치 인턴인 윤석열에게는 그것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져야 할 당연한 대가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고 억울한 탄압이자 가해로 여겨졌을 겁니다.
야당이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고, 대통령 측근의 비위를 집요하게 문제삼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 대통령의 국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민들이 총선으로 엄중히 심판하는 것. 언론이 정권 홍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것.
이런 모든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자신이 타겟이 되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반국가단체의 획책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기형적인 국가비상사태로 받아들여집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국가의 안위와 자신의 안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망상의 상태로 몰고 갑니다.
윤석열 정권이 여타 정권과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은, 상식에 기반하여 예측되는 피드백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받고, 정치적 심판의 결과인 여소야대의 법률안, 영상과 통화기록 등 명백한 증거들이 있는 김건희 채상병 특검은 거부권으로 받고, 아무리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고 참담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도' 뭘 할 수 있는데'로 나오는 안하무인은 사람들을 분노에서 무기력으로 돌아서게 만듭니다.
인터넷 마녀사냥이 스포츠화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것이 사람들에게 쾌감과 효능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나의 의사표현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효능감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그런 행동을 합니다. 문재인 정권 때 넘쳐났던 정치글들 역시 그렇습니다.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면 다른 정책을 내놓고, 조국 사태가 터지면 검찰이 열심히 두들겨댑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주권자로서의 효능감을 느끼고 도덕적 우월감을 느낍니다. 최소한 다른 정권들은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대해 일정한 도파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도파민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허울좋은 추상적 존재로서의 주권자일 뿐, 실제로는 "뭘할 수 있는데"에 대답할 실체가 아무것도 없는, 무력한 민초에 지나지 않음을 매번 확인시켜줍니다. 자신의 초라함과 무력함을 반복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정치에서 눈을 돌립니다.
그러다 12. 3. 내란이 터졌습니다. 분노가 무력감의 역치를 넘어섰습니다.
여당대표인 한동훈조차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고 선언하고, 가담자들이 벌벌 떨며 진상을 자백합니다.
수많은 유튜브 채널과 알고리즘으로 파편화된 개인들의 정치 성향을 넘어, 하나된 분노와 단죄의 요구가 터져나왔습니다.
그 분노의 기저에 이번에야말로 우리의 의사표명과 참여가 무력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감이 깔려 있었습니다.
제아무리 윤석열과 국힘이라도 이런 정도의 짓을 저질러놓고 국민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우리의 역사와 민주주의의 본질이 말해주는 당연한 기대감입니다.
그런데 윤석열과 국민의 힘은 그런 당연하고 기본적인 기대마저 외면합니다.
만약 이번의 분노와 기대마저 꺾인다면,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정치에 어떠한 기대도 가질 수 없는 불감증에 빠질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하는 짓을 미치광이 윤석열 개인 뿐 아니라 국민의 힘이라는 당 차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내란수괴가 공천개입 혐의를 받고 있는 정당에, 계엄 직후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해제요구를 방해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드는 정당에, 탄핵 가부를 넘어 내란을 옹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의원들이 있는 정당에, 이런 정당이 탄핵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분노하게 만드는, 하물며 다수당도 아니고 어떠한 정당성도 없는 정당에 대통령의 권력까지 얹어주겠다는 담화를 해결책이랍시고 제시합니다.
국힘 의원들의 입장이 이해 계산에만 근거한 걸까요.
저는 원래 그런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의원이 아닌 유권자였어도 일부 극우 지지자들처럼 똑같은 얘기를 하고 똑같은 요구를 여당에게 했을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좌파를 때려잡기 위한 계엄 발동은 내란이 아니고 야당은 반국가세력이라는 비정상적인 혐오에 사로잡힌 인간들이요.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국민을 위한 결단을 해줄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윤석열과 똑같이 국가의 안위와 자신의 안위를 혼동하는 자들입니다.
나가려면 이제 이쯤에서 긴 하소연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정치는 긴 무기력에 빠지느냐, 419와 518, 6월 항쟁을 거쳐 이룩한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의 전통을 이어나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게임 글렀다고, 우리 팀이 더 밉다고 서렌치기 전에, 제발 다 같이 힘 모아 한타 한 번만 제대로 해 봅시다.
여의도에서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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