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모두가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유머글을 올려주세요.
- 유게에서는 정치/종교 관련 등 논란성 글 및 개인 비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Date 2005/05/10 18:20:10
Name zephyrus
Subject [유머] 방화.....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궁금한 것은 꼭 알아내야만 하는 성격이었다...

.
.
.

매우 수척한 모습의 한 남자가 까페로 들어왔다..
한참을 둘러보더니 다가왔다..
'친구'.. 아니 이제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이상하다..

"기후... 맞냐?"

"그래.. 성식이구나.. 10년만이네... 잘.. 지냈고?"

"그럴 수가 없다는거 잘 알잖아..."

.
.
.
.
.
.
.
.
.

10년 전..

"이자식. 약속 시간좀 잘 지켜라.."

"놔둬라 성식아. 기후 이자식 늦는게 하루이틀이냐.."

성식이와 민욱이는 벌써 약속장소에 와 있었다. 성식이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들떠 있었고, 우리 넷 중 가장 착했던 민욱이는
조금은 긴장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20분가지고 뭘 그러냐? 아직 주환이도 안왔잖아.."

난 전혀 잘못이 없다는 듯,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
.

성식이와 민욱이, 주환이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은 어릴 때 부터 한
동네에서 함께 컸다. 같은 또래 남자 아이들이라고는 우리 넷 뿐
이었고, 동갑이었기 때문에 매우 친했고, 악동으로 소문나 있었
다. 그저 악동이라고 부르기에는 사고도 많이 쳤고, 그래서 동네
어른들은 않좋게 보는 분들도 많았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맞이해서 우리는 스스로의 졸업을 자축하기로
했다. 나는 대학을, 그리고 나머지도 다들 취업 등 스스로의 갈길
로 가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들 갈라지기 전에 마지막 '축제'를
벌이기로 했다.

방화....

근처 마을에 마을 회관이 하나 있었다. 좀 오래된 건물인데 얼마
안가서 허물고 새 건물을 다시 지을 계획 중인 곳이었다. 게다가
동떨어진 건물이라 주위로 불이 옮겨붙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주환이가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꺼냈고, 나와 성식이는 금방
찬성했다. 민욱이는 처음엔 반대했지만, 어짜피 곧 허물 건물이
라고 우리가 계속 설득해서 결국 같이 하기로 했다.

실행 일시는 졸업식 날 밤 12시.

.
.

밤 12시 반..

주환이가 기름통을 들고 낑낑거리며 걸어왔다.

"너는 어떻게 나보다도 늦게오냐?"

내가 웃으면서 주환이를 나무랐다.

"어이가 없네-_-; 자기 항상 늦는건 생각도 안하는 녀석.."

성식이가 역시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야 그래도 이거(기름) 구해오느라 힘들었다고... 쫌 봐주라.."

"얼른 시작하자.. 1시에 시작하기로 했잖아.."

내가 약간은 긴장한 말투로 재촉했다.

"약속은 제일 안지키는게 꼭 시간 잘 맞추는 것처럼 티내기는..
그래 알았다 얼른 준비하자.."

.
.

새벽 한시가 되고, 마을 전체가 조용해졌을 때 우리는 준비해둔
마른 나뭇가지, 짚단 등을 회관 벽 주위에 놓고 기름을 뿌린 후
불을 붙였다.

'화악'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매우 빨리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넋놓고 불꽃을 지켜봤다. 가장 재밌는게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
고 하지 않았던가..

주환이가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제 다들 갈라지겠지만 그래도 연락 자주 하자고.."

"기후 너는 혼자 대학생이라고 우리 무시하지 말고.. 이왕 대학
가는거 심리학 박사까지 돼라.. 우리도 박사 친구한명 둬야지.. 하하"

"그래 알겠다. 내가 박사 되면 성식이 너부터 가장 먼저 찾아가마."

"휴... 아무튼 우리도 이제 쫌 착하게 살아보는게 어떠냐?"
가장 긴장했던 민욱이도 이제는 긴장이 풀렸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불꽃은 크고 아름답게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
.

"꺄아악......"
"아악...."
"으아아아앙..."

불이 타오르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던 고요함을 깨뜨리고 갑자
기 어린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울음 소리가 들렸다. 순간 다들 아
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주환이가 건물로 뛰어들려고 했
다. 하지만 내가 주환이를 붙잡았다.

"너무 늦었어.. 지금은 들어가지도 못해! 일단 얼른 피하자"

내가 소리질러 하는 말에 모두들 약간 정신을 차리고 함께 피했
다.

.
.

우리는 1주일(정확한 일 수는 기억이 안난다.)을 여관방에 틀어
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있었다. 1주일 정도가 지난 후 내
가 밖에 나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오겠다고 했다.

"그래.. 매사에 넌 가장 냉정했었지.. 이럴 때 그나마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성식이는 그나마 조금 냉정을 찾고 있었다.

.
.

"애들이었대... 마을 애들... 그 날 생일인 애들이 셋이나 있어서
마을에서 생일잔치를 열고, 그 날 하루는 애들끼리 남아서 같이
놀고 있는 거였대.."

"...."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신차리고 들어..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지금 헤어지면 다들
갈 길로 가고, 당분간은 서로 만나지도 말자.

"...."

"알겠냐고!!"

"나도 너처럼 냉정해졌으면 좋겠다.. 난 당장 죽어버릴것만
같아."

민욱이가 울면서 말을 했다.

더 이상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
.

한달 후 민욱이는 운전 면허도 없는 상태에서 만취한 채로 새벽
에 자동차를 훔쳐 타고 교통사고를 내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민욱이의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만났었다. 하지만 다
들 수척해진 모습이었고, 별다른 말도 서로 하지 않고 다시 헤어
졌다.

.
.
.
.
.
.
.
.
.
.

"주환이도 떠났다. 두달 전에.."

한참을 조용히 있던 성식이가 말문을 열었다.

"결국 그렇게 누워 있다가 간거냐?"

"그래..."

주환이는 그 이후로 손에서 술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몸
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결국 시름 시름 앓다가 그렇게 먼저 가버
린 것이다.

"넌 그래도 박사가 됐구나.. 심리학 박사.."

"그래.. 난 어떻게는 잊으려고 공부만 한 것 같아.. 그래도 박사가
된 모습을 너한테는 보여주는구나.."

"그 날 이후로.. 거의 매일 꿈에 애들이 나와.. 사실 난, 아니 우린
그 애들이 누군지도 몇명인지도 모르는데.. 애들이 울면서 뜨겁
다고 나에게 다가와.. 꿈에서 깨어나면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
만.. 내가 꿈에서 보는 애들의 모습이 정말 그 애들의 모습일까?
심리학 박사인 니 생각은 어때?"

성식이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웃음은.. 마치 웃는 방법
을 모르는 사람의 웃음 같았다.

"내가 박사라도...."

"아냐... 그냥 해 본 소리야... 주환이를 한 번 만났었는데 주환이
도 항상 꿈에서 애들을 본다고 했어.. 가끔은 깨어있어도 환청이
들린다고... 그래서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다고 항상 말했어.."

"..."

"그래도 박사 친구가 하나 생겼네... 싫진 않은걸... 그래도... 이제
는 서로 만나지 말자... 그게 더 편할 것 같아."

성식이는 그렇게 카페를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성식이도 떠나갔다.
자살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
.
.
.
.
.
.
.

이제 나 혼자 남았다.
나도 곧 친구들(이제 '친구'라 부르기도 힘들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을 따라가야겠다. 인간 심리에 관한 마지막 논문을 끝내고....
아마 저승이 있다면.. 난 다른 곳으로 가겠지.

그리고.. 내 마지막 논문의 소재가 되어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뜻
을 전한다.

.
.
.
.
.
.
.
.
.

그리고 10년 전 어느 날 실감나는 비명소리를 녹음해 준 그 때의
그 꼬마들에게도 감사한다..


=============================================================================

뭐 웃긴 이야기는 아니네요.. -_-;(어디가 웃긴지 말하라면 낭패^^:;)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83년생, 제가 다닐 땐 국민학교였죠...)
공포특급 시리즈..
아무튼 이런 무서운 이야기 책 시리즈가 유행했었는데요..
그 책에 있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입니다.
내용이 뭐랄까 이전에 보던 공포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지만..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던 이야기이지요..

내용의 대략적인 기억만이 나서 기본 줄거리를 가지고 다시 한번 써 봤습니다.
원래 이야기는 저것보다는 짧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용도 조금은 더 허술했던
듯 해서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구성-_-으로 만들어 봤구요..

새삼 깨달은 것은... 글 쓰는게 매우 힘들다는 것..
머릿속으로 장면은 확실하게 떠오르는데 그걸 글로 옮기는게 정말 힘드네요..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모진종,WizardMo
05/05/10 18:27
수정 아이콘
반전 괜찮네요
COnTROL_P
05/05/10 18:30
수정 아이콘
공포특급..!!! 특히 안경쓰면 보이던..무서운사진들..-_-;;
무섭게 읽었는대 지금봐도 무서울듯..-_ㅠ 특히 이 얘기는..
유머는 아니지만 굉장히 소름돋고 무섭내요..뭐랄까 이글이
80년대 글이면..80년대부터 유행을 앞질러 반전을 얘기한글..캬..
마지막 반전은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하내요
zephyrus
05/05/10 18:36
수정 아이콘
90년대 글이죠-_-;; 83년생이니 90년대에 초등(국민)학교 다님..
05/05/10 20:35
수정 아이콘
83년생은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생이죠^^
TheInferno [FAS]
05/05/11 01:22
수정 아이콘
공포특급 1편은 지금 읽어도 새롭죠
그러나 후속작이랍시고 나온 23456 편은... -_-+
눈시울
05/05/11 03:14
수정 아이콘
친구들을 죽이기 위해서 저랬던 건가요.. 정말 무섭네요.
눈시울
05/05/11 03:15
수정 아이콘
그리고 다음부터 무서운 글은 무섭다고 꼭 제목에 달아주세요. ㅠ_-+++
zephyrus
05/05/11 10:47
수정 아이콘
음.. 친구들을 죽이기 위해서... 라기 보다도...

실제로 저지르지 않은 일이라도 자기가 믿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가?
혹은.. 꿈 같은 정신적인 세계에 대한 궁금증 ... 때문이아니었을까요?-_-

뭐 어쨌든.. 결론은 싸이코......-_-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4484 [유머] 네이버 초등학생몸짱. 리플이 너무 옷겨서.. [21] MaestroX8929 05/07/06 8929
14404 [유머] 국민의례???????? [26] BluSkai5899 05/07/04 5899
13978 [유머] 뜬금없이 나의 첫사랑이던 여인네들.... [13] 유르유르7982 05/06/20 7982
13831 [유머] 세상에는 참 도라이들 많습니다. [22] Ace of Base9248 05/06/15 9248
13785 [유머] <별헤는밤> ver.타조알 - (윤동주님 죄송합니다) [11] 타조알5421 05/06/13 5421
13777 [유머] 국민들이 본프레레감독을 믿지 못하는이유..! [7] Clausewitz6136 05/06/13 6136
13724 [유머] 거스히딩크.... [26] 스트라디바리8919 05/06/11 8919
13681 [유머] 국민들이 본프레레를 못 믿는이유.. [11] Zakk Wylde7431 05/06/10 7431
13677 [유머] 쿠웨이트전 끝나고 국대선수들의 인터뷰 [42] SEIJI9605 05/06/09 9605
13634 [유머] 시사퀴즈 20선 - 정치편 [22] 한량7099 05/06/07 7099
13625 [유머] 개똥녀를 위한 변명 [10] 오케이컴퓨터8548 05/06/07 8548
13455 [유머] “일간지 기사 퍼갈 때는 조심하세요” [4] 리부미6771 05/06/01 6771
13437 [유머] [펌] K리그 대구:수원 서포터간 폭력사건 정황 [52] zozic2310690 05/05/31 10690
13248 [유머] 일본인의 한국식 사죄 요구에 대한 풍자.. [12] 마린스7218 05/05/23 7218
13230 [유머] 중앙일보 사과문 [30] 올빼미8328 05/05/22 8328
13188 [유머] 추억의 게임들 기억하세요? [15] ForeverFree6723 05/05/21 6723
13164 [유머] 일본에도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사람이있었군요 [15] 반전9628 05/05/20 9628
13065 [유머]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9] 처제테란 이윤7379 05/05/15 7379
12965 [유머] 방화..... 그리고...... [8] zephyrus6656 05/05/10 6656
12943 [유머] KBS와 KT. [3] skehdwo6591 05/05/09 6591
12709 [유머] 일본인들의 국민성이 과연 이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21] ForeverFree8233 05/04/28 8233
12380 [유머] 추억의 추리소설시리즈... [29] 저녁달빛8069 05/04/15 8069
12357 [유머] 하하. mp3플레이어 하나 날렸습니다. [13] 하수태란8809 05/04/14 880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