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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4 00:45
'내가 어떤 현상에 대해 모른다' 는 것을 아는 것도 일종의 지식이 아닐까요.
지식은 내가 무엇에 대해 아는지를 아는 것, 내가 무엇에 대해 모르는지를 아는 것, 내가 가진 지식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 - 이 세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쓸모없다고 치부하는 무지도 다르게 생각하면 쓸모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자 해설서를 참 열심히 읽었는데, 장자에서 나온 일화 하나 소개해드립니다. "목수 장석匠石이 제나라로 가다가 사당 앞에 있는 큰 도토리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천마리의 소를 덮을 만하였고, 그 둘레는 백 아름이나 되었으며, 그 높이는 산을 위에서 내려다볼 만하였다. …… 구경꾼들이 장터를 이루었지만 장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가버렸다. 그의 제자가 장석에게 달려가 말했다. "제가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래로 이처럼 훌륭한 재목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장석이 말했다. “그런 말 말아라. 쓸데없는 나무다.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빨리 썩어버리고, 그릇을 만들면 쉬이 깨져버리고, 문짝을 만들면 나무진이 흘러내리고, 기둥을 만들면 곧 좀이 먹는다. 그것은 재목이 못 될 나무야. 쓸모가 없어서 그토록 오래 살고 있는 것이야.” 장석이 집에 돌아와 잠을 자는데 그 큰 나무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그대는 나를 어디에다 견주려는 것인가? 그대는 나를 좋은 재목에 견주려는 것인가? 아니면 돌배, 배, 귤, 유자 등 과일나무에 견주려는 것인가? 과일나무는 과일이 열리면 따게 되고, 딸 적에는 욕을 당하게 된다.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어진다. 이들은 자기의 재능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그래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이다.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쓸모없기를 바란지가 오래다.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뜻대로 되어 쓸모없음이 나의 큰 쓸모가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렇게 커질 수 있었겠는가? 그대와 나는 다 같이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하여 서로를 하찮은 것이라고 헐뜯을 수 있겠는가? 그대처럼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쓸모없는 사람이 어찌 쓸모없는 나무를 알 수가 있겠는가?”"
22/08/24 02:07
도널드 럼스펠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을 진정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22/08/24 08:32
이렇게 인용되니 느낌이 또 다르군요 크크크
이게 [이라크와 테러리스트가 관계가 있다는 증거를 찾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면 명언의 반열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22/08/24 00:49
님 글을 읽다보면 교회에 계신 후임목사님이 떠오르는 말투입니다 좋은 의미로요 크크
아마 종교인이 되셨다면 수석으로 입학 졸업을 하셨을듯 공감하는게... 겉핧기로 아는 지식이 분야 불문 제일 무섭습니다 PGR에 글을 남겨주시는 몇몇 인상깊은 회원님들도 자기 분야 아니면 안건드리죠 같은 계열이라도 오류를 범할수 있습니다 정보전달만큼 중요한게 정확성이니까요
22/08/24 00:58
무지의 합리성이라기보단 [무지의 도박]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겠죠. 즉 무지의 경우와 아닐 때 제일 큰 차이점은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모를 땐 이유가 없으니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아요. 그것이 설사 '비트코인을 모르기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선택이라 할지라도요.
글은 무지의 경우 가만히 있을 것(겸손을 수반?)과 지식이 있는 경우 활발한 활동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한 것 같은데, 경험칙상 무지할 때도 소위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기에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 전개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단순히 결과만을 사후적으로 분석하여 무지가 합리적일 수 있다고 표현하기 보단, 무지가 (우연히) 이득이 될 때도 많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2/08/24 01:04
말씀하신 경우가 맞는 경우도 있고, 많습니다. 하지만 주체적 선택 역시 언제나 절대적으로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마약을 맛보고 맛을 알고서 마약 복용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상태보다는 마약에 대해 무지한 상태가 더 유익하겠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무지가 우연히 이득이 되는 때도 많고, 무지가 필연적으로 이득이 되는 때도 적지만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22/08/24 01:21
일반론을 부정하진 않습니다만 비트코인이라는 예시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비트코인은 현재에도 초기 개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죠. 당시 비트코인의 개념을 공부해보았던 적지 않은 수는 이건 될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저를 비롯한 전산학과 동기 및 선후배중에서도 당시에 비트코인이 성공할 것이란 생각을 했던 사람은 물론 투자를 했던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2017년 초반까지도 말이죠.
오히려 주변에서 투자했던 사람들은 막연한 판타지를 믿고 들어간 사람들이었고, 지식을 기반으로 투자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막연한 판타지를 믿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22/08/24 01:45
직장 생활 짧게 했습니다만, 가장 믿음이 가는 상사는
"나도 잘 모른다."라는 말을 할 줄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본문과 같이 겸손하게 인정하시는 분이셨죠. 반면 "니가 더 잘 알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분과는 일하기 힘들더군요.
22/08/24 02:08
저도 그렇지만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 아는 척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정보가 부족한 사건에도 의견을 보태고 쉽게 분노하니 어이없는 마녀사냥 사태가 발생합니다.
무지를 인정하고 의사 결정을 지연할 용기, 즉 [무지의 용기]가 되려 사람 됨됨이가 더 있어 보입니다.
22/08/24 05:16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글을 기반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지식을 알고 있다는 내러티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무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를 꺼리는 경향이 많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보다 더 자주 충돌이 일어나는것 같기도 하구요.
22/08/24 09:11
맛있는 요리를 먹어도 일반인들보다 쉐프들은 그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겠죠.
아는것이 힘이 될수도 있지만 모르는게 약일때도 있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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