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09/18 10:37:16
Name 유유히
Link #1 https://pgr21.com/pb/pb.php?id=humor&no=161681
Subject [일반] (생각거리) 기억은 나인가
https://pgr21.com/pb/pb.php?id=humor&no=161681

예전 피지알에도 올라온 바 있던 "5억년 버튼" 이라는 만화입니다. 버튼 한번을 누르면 현실의 내가 백만 엔을 받고, 그 사이 다른 시공간으로 날아가 5억년을 홀로 지내다가 돌아온다는 내용의 SF 만화입니다. 5억년 동안 죽지도 못하고, 잠들지도 못하고, 1초 1초 느껴야만 한다는 것이 섬뜩한 공포입니다.

그 5억년은 돌아오고 나서 기억이 안 나고, 육체적인 상흔(이를 뽑는다던지 하는)도 전혀 남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은 그 겪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타카하시 명인(1초에 버튼 16연타하던 80년대 오락기 명인)이 되어 5억년 버튼을 연타(..)한 엔딩을 맞이합니다.

위 링크를 보면 아시겠지만, 대다수의 댓글 반응은 "저런 거 천억원을 줘도 절대 안한다. 내가 겪는 고통은 실존한다. 다른 사람 꼬셔서 누르게 하자" 등등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5억년의 공포에 짓눌려 제대로 "안 누른다" 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리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한 이후에 할 수 있는 대답이었거든요.



"특이점이 온다" 등 최근 미래를 예측한 서적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뇌를 에뮬레이팅할 수 있다고 합니다. MAME를 현대의 PC로 에뮬레이팅하듯이, 연산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에뮬레이터는 대상을 가상으로 에뮬레이팅할 수 있습니다. 만약 뉴런의 작동기제가 밝혀지고, 인간의 뇌가 컴퓨터 속에 가상으로 구현될 수 있다면, 그래서 기억과 자아의 "백업"이 가능해진다면, 과학은 현재의 나의 뇌를 복제할 수 있게 됩니다. 나처럼 행동하고 나처럼 기억하고 나의 무의미한 습관을 가진, 내 복제 자아가 디스크 안에 생겨나는 셈입니다. 육체까지는 재현되지 않겠죠. 그건 생명과학의 영역이고 윤리 이슈에 막혀 있습니다. 그런 나-프로그램-는, 나일까요? 왠지 아닐 것 같습니다. 그건 그냥 디스크 안에 들어 있는 0과 1로 된 디지털 신호에 불과합니다. 내-프로그램-가 어느 지옥에서 고통받건 말건 나는 두 다리 뻗고 쭉 잡니다.

(뱀발. 현재 인류는 C.Eleganse 라고 하는 짚신벌레 비슷한 선형동물을 컴퓨터 속에서 에뮬레이팅 성공했습니다. 가상의 물 속에서 헤엄도 칩니다.  인류까지는 멀고도 멀지만 언젠가 도달 가능하겠죠. https://m.blog.naver.com/wjdrkdxhlekd/220275325703)

그렇다면 가상 뉴런에 자극을 줄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에뮬레이팅하지 않는 이상은, 복제된 내 자아는 5억년 버튼을 누른 상태나 다름없군요. 그 어떤 자극도 없고 죽을 수도 없으니까요. (잠은 잘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뇌가 휴식을 원하는 것이 수면이고 육체(뇌의 하드웨어)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마 힘들 것 같기는 합니다.)

이 가상의 내가 5억년 동안 고통받는 것과, 내가 5억년 버튼을 누른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만약 그 차이가 없다고 인정한다면, 그렇다면 기억-지금 이 순간 매초 매초 더해지고 있는 현실인식까지 포함하여-이 나인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여기까지 사고가 도달하고 나면 많은 의문들이 생깁니다. 자체 사고 검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프로포폴 등 마취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의료 성범죄가 있었다. 그 성범죄는 여자가 기억하지 못하는데 일어나지 않은 범죄(다른 사람에게 저질러진 범죄) 인가?

구강성교를 시도했다면 입안에 이물감이 남을 것이고 성기를 만졌다면 성기에 세균이 남을 것입니다. 남겨진 육체에 영향을 주는데 당연히 범죄입니다. 만약 얼굴을 보고 자위한다던가 하는 접촉이 없는 성범죄라면 누군가에 대한 (정도 심한) 뒷담화와 같은 성격이 될 것입니다. 알려지면 모욕죄, 명예훼손죄가 되겠지만 그 사람이 모르고 넘어간다면 소리소문 없는 완전범죄가 되겠지요.

2. 만약 기억상실증에 걸린 흉악범죄자가 있고 그 범죄사실을 잊어버렸다면, 그 사람은 범죄자가 아닌가?

피해자 입장에서야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완전히 기억이 삭제된 상태라면 범죄자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2 에피소드 2 "화이트베어" 에도 나오는 내용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뇌를 완전정복하여 하드디스크의 폴더 삭제하듯이 특정 기억만 싹 잊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기억 삭제를 처벌이자 교화의 수단으로 삼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범죄를 재발할 위험이 있으니 마이너리티 리포트식으로 관리 리스트에 넣고, 초범은 기억 삭제 1년 및 범죄예방교육 수료, 재범은 기억삭제 3년 및 강화 범죄예방교육 등.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현재는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교화를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이 중 교화 목적을 강화한다면 기억 삭제가 유효한 해결책이 됩니다. 다만 위험한 반사회적 범죄자에 대한 사회 격리는 하지 못합니다. 연쇄살인 등 더 끔찍한 범죄자에 대해서는 20년 삭제 등의 중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경우는 그 사람의 인격이 사라지는 수준이니, 처벌을 받는 범죄자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어, 범죄 유발 억제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3. 치매 걸린 노인은 그 사람이 아닌가?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 사람이 아니게 되어가는 중" 이라 해야 합니다. 마치 듬성듬성 구멍이 난 것처럼 기존의 기억들이 사라져가고, 심해지면 벽지에 분변을 바르기 시작하고, 가끔 제정신이 돌아와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한탄하는 노인. 이 부분은 치매가 가장 잔인한 병이라고 불리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기억(인격)이 죽어가고 육체만 살아남는 과정이니까요. 제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를 내가 알던 그 사람으로 인정하기가 참으로 힘이 들더군요. 그러다가도 가끔씩 제정신이 돌아와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만약에 인격의 백업이 가능해지면 그런 환자의 치료도 가능해질 것 같네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나의 기억이다' 라고 답하는 것이 100퍼센트 들어맞는 정답은 아니겠죠. 하지만 상당히 유효한 부분점수를 얻을 수는 있어 보입니다.

[당신은 누르면 100만엔이 나오는 5억년 버튼을 누르실 건가요? 다만 당신은 그 5억년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누르겠습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겪은 것이 아니니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Zoya Yaschenko
18/09/18 10:49
수정 아이콘
복제된 인간은 각자 같은 펌웨어 버전을 가졌지만 다른 시리얼 넘버가 찍힌 제품이죠.
5억년을 기억하지 못하긴 하는데, 버튼은 제가 눌렀고 기억하지 못하는건 왠지 다른 사람이지 싶네요.
이미 저는 5억년 지내고 죽은걸로..
18/09/18 11:04
수정 아이콘
저도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나’ 라는 것은 우리가 편의상 만든 개념일 뿐이지 숫자라던지 삼단논법처럼 설령 인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성립하는 개념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유인원이 진화해서 인류가 되었는데 그럼 언제부터 인간이고 어디까지 유인원인가? 하는 질문에 딱하니 답이 없듯이, 어디까지 나이고 어디서부터 그냥 연산 작용인가? 하는 질문에도 깔끔한 답이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저는 훈련받은 철학자가 아니니 제 생각은 그냥 술자리 안주 수준일 뿐입니다.
Zoya Yaschenko
18/09/18 11:06
수정 아이콘
일단 운전할 때 저보다 빠르거나 느리다면 유인원입니다.
18/09/18 11:07
수정 아이콘
저보다 느리면 유인원이고 저보다 빠르면 미친 사람 아닌가요 하하하
킬고어
18/09/18 11:52
수정 아이콘
어쩐지 데닛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댓글이네요.크크
18/09/18 12:02
수정 아이콘
제가 데닛 빠돌이이긴 합니다 :)
18/09/18 13:25
수정 아이콘
불교에서는 육신의 너머에 실존하는 고유의 자아라는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으로, 진리가 아닌 사견으로 봅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할수 있는 감각 조건이 뭉쳐져서 일시적으로 조합되었을 뿐 그 것을 뒤에서 관찰하고 있는 영혼이니 자아니 같은 실체는 없다고 말하죠.
히화화
18/09/18 11:07
수정 아이콘
저 예쁜꼬마선충의 움직임을 에뮬레이팅(아마 시뮬레이션인 것 같은데)해서 컴퓨터 속에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지 검색을 좀 해보다가 말았습니다. 어려운 주제네요. 참고로 예쁜꼬마선충에 관한 연구가 각각 02, 06, 08년도 노벨상을 탔네요.
유유히
18/09/18 11:15
수정 아이콘
컴퓨터 속에서 '살아있다' 라고 말하기가 힘든데.. '살아있는' 게 무엇인지 정의를 해야 하거든요. 인격과 자아를 가진 게 살아있는 것인지, 먹고 자고 번식하는 생체활동을 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인지, 그 어미와 아비로부터 유전자를 받은 것인지.. 이전에는 간단한 문제였는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네요.
킬고어
18/09/18 12:35
수정 아이콘
현재 있어서 생명의 의미는 "대사작용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적응(항상성을 유지)하고 자가복제를 통해 영속성을 잠정적으로 유지하는 계통에 속해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대상"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생명과 무생물이 그 정의로 인해 갈리니 직관적으로 좋은 정의라고 할 수 있겠죠. 또 "현실의 모든 사건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정확한 시뮬레이션과 구별 할 수 없다"는 명제를 결합하면 가상세계에서 생명의 정의를 충족시키는 대상을 생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생물학도 사실상 이런 가정들을 기반으로 생성된 학문이죠.
아점화한틱
18/09/18 11:22
수정 아이콘
저 동물이 세포수가 가장 적어서 재현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보니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슨의 저서에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사악군
18/09/18 11:21
수정 아이콘
먼 미래에 기억을 상실한 범죄자는 육체를 벌주면 될 거 같아요. 기억을 잃어버린 인격을 백업하고 육신은 없애버리면.. 이런게 아이디 영강 수준으로 받아들여질 날도 있겠죠. (딴 아이디 파면 되지..?)

'AI의 유전자' 추천합니다. 흥미롭게 잘 그렸어요. 소프트 공각기동대랄까
아점화한틱
18/09/18 11:26
수정 아이콘
제가 좋아하는 주제라 흥미롭게 읽었네요. 태세우스의 배 등 고대로부터 '나'라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현대과학으로 오면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고있는 세포단위를 그대로 복제할 수가 있다면 그 또한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끊임없이 인류가 궁금해하는 분야이기도 하죠.
18/09/18 11:32
수정 아이콘
저 만화 첫 댓글에서 비슷한 주제의 스티븐 킹 소설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어떤 소설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유유히
18/09/18 11:34
수정 아이콘
'조운트Jaunt' 라는 SF 소설입니다.
더스번 칼파랑
18/09/18 11:46
수정 아이콘
저도 가끔 멍 때릴때마다 생각나는 만화 중 하나 이기는 합니다. 어찌보면 평범한 - 찌질해 보일 수 있는 사람도 5억년이라는 시간 내이라면 해탈(?) 할 수 있는가....모 작품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걸 그만두는것이 30만년이나 걸리는데 5억년이라..너무 길군요...
18/09/18 13:29
수정 아이콘
부처님은 스스로 법을 알고 깨우치려면 4아승지겁 십만대겁이 걸린다고 합니다. 5억년은 찰나로 여길 수준이죠. 크크
페스티
18/09/18 11:57
수정 아이콘
가정부터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보고 있네요.
킬고어
18/09/18 12:00
수정 아이콘
5억년 버튼 사고실험에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기억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억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일화기억이나 외현기억이 사라져도, 트라우마와 관계되는 암묵기억이 잔존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생각에 의한 두려움이 있어서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은 사람들의 직관처럼 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뇌신경게를 포함하는) 신체와 세계 사이에 걸쳐져 있는 형태로 남아있고, 사고실험이 아닌 다음에야 문자 그대로 "모든 기억"을 삭제한다는 일은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생각안나
18/09/18 12:38
수정 아이콘
기억은 나라고 착각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대상이라 봅니다. 그렇다고 나가 없다 할 수 있는가? 지도를 보고 상상하는 국경의 모습이 실체적인 작용을 하듯 나라는 것도 마 비슷한 게 아닌가 싶네요. 물론 그 나가 어떤 주체성을 가진 나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보구요.
새벽포도
18/09/18 13:02
수정 아이콘
기억이 '나'인가라는 주제와 별개로 5억년 버튼은 누르지 않을 겁니다. 5억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에서 이미 나의 메인 정체성은 5억년이 현실이고 지금이 찰라의 꿈 속과 같다고 봅니다. 영화 인셉션에서도 자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꿈을 깨러 온다고 하는 대사가 있지요.
18/09/18 13:05
수정 아이콘
저도 이것 같고 많은 생각을 했는데 정체성과 동일성은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기억이고 따라서 알츠하이머 환자는 동일성은 그대로지만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애플망고
18/09/18 14:12
수정 아이콘
기억은 한 인간의 구성의 상당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전체는 아닌 거 같아요. 컴퓨터를 예로들면 저장장치와 저장된 자료가 컴퓨터라는 건데 실제로 그렇진 않잖아요?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에서 인간은 기억이상의 무언가라고 봅니다.
유유히
18/09/18 14:29
수정 아이콘
순간순간의 인지와 사고를 기억에 포함시킨다면 CPU와 저장장치(램과 하드디스크) 정도를 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겠군요. 물론 만점을 받을 정의는 아니지만 부분점수가 꽤 존재하는 답안이라고 생각해요.
애플망고
18/09/18 14:4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리미트리스라는 영화/미드를 보고 한 생각인데 동일한 인물의 동일한 기억에서 사고의 속도 인지의 속도가 약물에 의해 높아지니 아예 다른 사람같이 변해버리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야구나 게임을 예로 들면 같은 커리어지만 약을 해서 갑자기 홈런타자가 되어버린..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요)
그리고 5억년 버튼에 대해서.. 현실의 나는 모르는 잊혀진 기억속의 5억년이라 해도 누군가의 5억년의 고통인 것은 분명합니다. 만약 실재한다고 가정한다면
타인에게 5억년의 고통을 준 셈이라 그래도 상관 없다면 누르고 그렇지 않다면 누르지 않을 것 같아요.
홍승식
18/09/18 15:25
수정 아이콘
수천년간 모든 인류가 고민하고도 모르는게 존재의 정의니까요.
그러나 나는 실존하고 있고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이 내 존재겠죠.
아무리 궤변을 들이민다고 해도 내 인생을 사는 건 현재의 나니까요.
18/09/18 15:58
수정 아이콘
저는 저 버튼을 눌렀을 때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5억년 동안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누르지 못할 것 같네요.
유유히
18/09/18 16:04
수정 아이콘
꿈과 다름없다면(실제로 잠들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것이 흡사함) 그 고통마저 꿈일테니 컴퓨터 게임이나 다를바가 없을 겁니다.

어차피 지어낸 설정이라 어떻게 보던지 말이 되기도 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서, 만약에 실존하는 타인을 데려다 실제로' 저런 공간에 가두는 대가로 천만원이라면, 단 5년이라도 누르지 않을 겁니다.
18/09/18 17:29
수정 아이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물론 무척 흥미롭지만, 제 입장에서는 저 버튼을 누르냐 마느냐 하는 판단에 저 질문이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써봤습니다.
18/09/18 17:20
수정 아이콘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두 컴퓨터는 거의 똑같은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두 개체는 다른 존재입니다. 두 개체는 서로 베이스는 같지만 서로 물리적으로 연결되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며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복제인간도 내가 아닙니다. 특히, 인간을 복제하는 것은 유전적인 정보만 베끼는 거라서 성체의 기억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또한 컴퓨터 안에 시뮬레이팅 해놓은 존재는 내가 아닙니다. 이건 방법을 몰라서 기억까지 복제해 넣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나랑 물리적으로 분리된 존재죠. 나를 기본으로 해서 만들었지만 이 개체가 겪을 경험은 나와는 무관합니다.
예시에서 나온 사항은 사고 실험이기 때문에 이것이 먼저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원자로 이루어진 세상에 4원소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해봤자 현실성 없는 것 처럼요.
그럼에도 위 사고 실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전개해나가면, 둘 다 나인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버튼 누른 시점에서 평형세계로 분리해나간나죠. 하나의 내가 다른 하나의 나한테 영향을 못주니까요. 버튼 누르는 순간 확률적으로 이쪽의 나와 저쪽의 내가 나눠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Thanatos.OIOF7I
18/09/18 21:34
수정 아이콘
본문에서 블랙미러를 언급하신 걸 보니, 크리스마스특별편은 당연히 보셨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도 쿠키라는 유사개념이 등장하는데, 그 독립된 자아나 그걸 이용하는 집단이나 법적허용 여부 등등 꽤나 흥미로운 설정이더군요. 혹시라도 못보셨으면 추천드립니다.
유유히
18/09/19 07:49
수정 아이콘
크리스마스 특별편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추천에 감사드리며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넷플릭스는 참 위대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La La Land
18/09/19 01:38
수정 아이콘
'5억년을 경험하고 기억을 잃은 나' 입니다

저는 안누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8268 [일반] 인도적 체류자도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11] 달과별6557 18/09/18 6557 6
78267 [일반] 제 주변 여성들 이야기 [59] 히화화14468 18/09/18 14468 10
78266 [일반] (생각거리) 기억은 나인가 [33] 유유히6258 18/09/18 6258 9
78265 [일반] 넷플릭스 신작 애니 '힐다' [5] 인간흑인대머리남캐11048 18/09/18 11048 3
78264 [일반] 고려 판 여진족 시빌워 - 누가 진정한 여진의 왕인가? [17] 신불해14523 18/09/18 14523 56
78263 [일반] 문재인과 페미니즘 [283] 윤광15225 18/09/18 15225 51
78262 [일반] 경기의료원 수술방 CCTV 도입 결정 [78] ZzZz10148 18/09/17 10148 13
78261 [일반] 다스뵈이다 32회 정세현, 시리아 그리고 언인플루언싱 [17] 히야시13860 18/09/17 13860 15
78260 [일반] 미용실 남자모델 되어주실분 계실까요? [35] 다비치이해리9770 18/09/17 9770 1
78259 [일반]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 [316] 아하스페르츠18681 18/09/17 18681 72
78258 [일반] 카카오톡 5분내 삭제기능 도입. [39] 캠릿브지대핳생11024 18/09/17 11024 1
78257 [일반] 여론조작 및 선거개입 정황이 담긴 이명박씨의 녹취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71] The xian13739 18/09/17 13739 35
78256 [일반] 일하다 죽는 사람이 남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찾아보니.... [177] 마르키아르17743 18/09/17 17743 36
78255 [일반] 영화 <미쓰백> 예고편에 대한 감상 [8] GGMT5998 18/09/17 5998 1
78254 [일반]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남녀차별? [112] 완자하하16792 18/09/17 16792 63
78253 [일반] 눈치 안보는 아이 [16] Secundo5264 18/09/17 5264 12
78252 [일반] 일본여행 이야기 [2] 말랑6155 18/09/17 6155 11
78251 [일반]  하나뿐인 내편을 잠깐 본 소감. [21] 아타락시아19175 18/09/16 9175 2
78250 [일반]  [뉴스 모음] No.194. 게임업계의 노조 이야기 외 [26] The xian9458 18/09/16 9458 18
78249 [일반] 첫 한국형 시험발사체 ‘누리호’ 10월25일 발사한다 [51] 홍승식9148 18/09/16 9148 2
78248 [일반] 눈치보는 아이 [36] 혜우-惠雨10560 18/09/16 10560 27
78247 [일반] 황당한 대리운전 [105] 비개인오후18327 18/09/16 18327 4
78246 [일반]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상품 국립굿즈 충동 구매기 [50] 김솔로_35년산14676 18/09/16 14676 6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