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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8 10:49
복제된 인간은 각자 같은 펌웨어 버전을 가졌지만 다른 시리얼 넘버가 찍힌 제품이죠.
5억년을 기억하지 못하긴 하는데, 버튼은 제가 눌렀고 기억하지 못하는건 왠지 다른 사람이지 싶네요. 이미 저는 5억년 지내고 죽은걸로..
18/09/18 11:04
저도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나’ 라는 것은 우리가 편의상 만든 개념일 뿐이지 숫자라던지 삼단논법처럼 설령 인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성립하는 개념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유인원이 진화해서 인류가 되었는데 그럼 언제부터 인간이고 어디까지 유인원인가? 하는 질문에 딱하니 답이 없듯이, 어디까지 나이고 어디서부터 그냥 연산 작용인가? 하는 질문에도 깔끔한 답이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저는 훈련받은 철학자가 아니니 제 생각은 그냥 술자리 안주 수준일 뿐입니다.
18/09/18 13:25
불교에서는 육신의 너머에 실존하는 고유의 자아라는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으로, 진리가 아닌 사견으로 봅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할수 있는 감각 조건이 뭉쳐져서 일시적으로 조합되었을 뿐 그 것을 뒤에서 관찰하고 있는 영혼이니 자아니 같은 실체는 없다고 말하죠.
18/09/18 11:07
저 예쁜꼬마선충의 움직임을 에뮬레이팅(아마 시뮬레이션인 것 같은데)해서 컴퓨터 속에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지 검색을 좀 해보다가 말았습니다. 어려운 주제네요. 참고로 예쁜꼬마선충에 관한 연구가 각각 02, 06, 08년도 노벨상을 탔네요.
18/09/18 11:15
컴퓨터 속에서 '살아있다' 라고 말하기가 힘든데.. '살아있는' 게 무엇인지 정의를 해야 하거든요. 인격과 자아를 가진 게 살아있는 것인지, 먹고 자고 번식하는 생체활동을 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인지, 그 어미와 아비로부터 유전자를 받은 것인지.. 이전에는 간단한 문제였는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네요.
18/09/18 12:35
현재 있어서 생명의 의미는 "대사작용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적응(항상성을 유지)하고 자가복제를 통해 영속성을 잠정적으로 유지하는 계통에 속해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대상"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생명과 무생물이 그 정의로 인해 갈리니 직관적으로 좋은 정의라고 할 수 있겠죠. 또 "현실의 모든 사건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정확한 시뮬레이션과 구별 할 수 없다"는 명제를 결합하면 가상세계에서 생명의 정의를 충족시키는 대상을 생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생물학도 사실상 이런 가정들을 기반으로 생성된 학문이죠.
18/09/18 11:22
저 동물이 세포수가 가장 적어서 재현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보니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슨의 저서에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18/09/18 11:21
먼 미래에 기억을 상실한 범죄자는 육체를 벌주면 될 거 같아요. 기억을 잃어버린 인격을 백업하고 육신은 없애버리면.. 이런게 아이디 영강 수준으로 받아들여질 날도 있겠죠. (딴 아이디 파면 되지..?)
'AI의 유전자' 추천합니다. 흥미롭게 잘 그렸어요. 소프트 공각기동대랄까
18/09/18 11:26
제가 좋아하는 주제라 흥미롭게 읽었네요. 태세우스의 배 등 고대로부터 '나'라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현대과학으로 오면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고있는 세포단위를 그대로 복제할 수가 있다면 그 또한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끊임없이 인류가 궁금해하는 분야이기도 하죠.
18/09/18 11:46
저도 가끔 멍 때릴때마다 생각나는 만화 중 하나 이기는 합니다. 어찌보면 평범한 - 찌질해 보일 수 있는 사람도 5억년이라는 시간 내이라면 해탈(?) 할 수 있는가....모 작품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걸 그만두는것이 30만년이나 걸리는데 5억년이라..너무 길군요...
18/09/18 12:00
5억년 버튼 사고실험에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기억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억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일화기억이나 외현기억이 사라져도, 트라우마와 관계되는 암묵기억이 잔존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생각에 의한 두려움이 있어서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은 사람들의 직관처럼 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뇌신경게를 포함하는) 신체와 세계 사이에 걸쳐져 있는 형태로 남아있고, 사고실험이 아닌 다음에야 문자 그대로 "모든 기억"을 삭제한다는 일은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18/09/18 12:38
기억은 나라고 착각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대상이라 봅니다. 그렇다고 나가 없다 할 수 있는가? 지도를 보고 상상하는 국경의 모습이 실체적인 작용을 하듯 나라는 것도 마 비슷한 게 아닌가 싶네요. 물론 그 나가 어떤 주체성을 가진 나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보구요.
18/09/18 13:02
기억이 '나'인가라는 주제와 별개로 5억년 버튼은 누르지 않을 겁니다. 5억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에서 이미 나의 메인 정체성은 5억년이 현실이고 지금이 찰라의 꿈 속과 같다고 봅니다. 영화 인셉션에서도 자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꿈을 깨러 온다고 하는 대사가 있지요.
18/09/18 13:05
저도 이것 같고 많은 생각을 했는데 정체성과 동일성은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기억이고 따라서 알츠하이머 환자는 동일성은 그대로지만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18/09/18 14:12
기억은 한 인간의 구성의 상당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전체는 아닌 거 같아요. 컴퓨터를 예로들면 저장장치와 저장된 자료가 컴퓨터라는 건데 실제로 그렇진 않잖아요?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에서 인간은 기억이상의 무언가라고 봅니다.
18/09/18 14:29
순간순간의 인지와 사고를 기억에 포함시킨다면 CPU와 저장장치(램과 하드디스크) 정도를 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겠군요. 물론 만점을 받을 정의는 아니지만 부분점수가 꽤 존재하는 답안이라고 생각해요.
18/09/18 14:47
리미트리스라는 영화/미드를 보고 한 생각인데 동일한 인물의 동일한 기억에서 사고의 속도 인지의 속도가 약물에 의해 높아지니 아예 다른 사람같이 변해버리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야구나 게임을 예로 들면 같은 커리어지만 약을 해서 갑자기 홈런타자가 되어버린..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요) 그리고 5억년 버튼에 대해서.. 현실의 나는 모르는 잊혀진 기억속의 5억년이라 해도 누군가의 5억년의 고통인 것은 분명합니다. 만약 실재한다고 가정한다면 타인에게 5억년의 고통을 준 셈이라 그래도 상관 없다면 누르고 그렇지 않다면 누르지 않을 것 같아요.
18/09/18 15:25
수천년간 모든 인류가 고민하고도 모르는게 존재의 정의니까요.
그러나 나는 실존하고 있고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이 내 존재겠죠. 아무리 궤변을 들이민다고 해도 내 인생을 사는 건 현재의 나니까요.
18/09/18 16:04
꿈과 다름없다면(실제로 잠들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것이 흡사함) 그 고통마저 꿈일테니 컴퓨터 게임이나 다를바가 없을 겁니다.
어차피 지어낸 설정이라 어떻게 보던지 말이 되기도 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서, 만약에 실존하는 타인을 데려다 실제로' 저런 공간에 가두는 대가로 천만원이라면, 단 5년이라도 누르지 않을 겁니다.
18/09/18 17:29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물론 무척 흥미롭지만, 제 입장에서는 저 버튼을 누르냐 마느냐 하는 판단에 저 질문이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써봤습니다.
18/09/18 17:20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두 컴퓨터는 거의 똑같은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두 개체는 다른 존재입니다. 두 개체는 서로 베이스는 같지만 서로 물리적으로 연결되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며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복제인간도 내가 아닙니다. 특히, 인간을 복제하는 것은 유전적인 정보만 베끼는 거라서 성체의 기억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또한 컴퓨터 안에 시뮬레이팅 해놓은 존재는 내가 아닙니다. 이건 방법을 몰라서 기억까지 복제해 넣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나랑 물리적으로 분리된 존재죠. 나를 기본으로 해서 만들었지만 이 개체가 겪을 경험은 나와는 무관합니다. 예시에서 나온 사항은 사고 실험이기 때문에 이것이 먼저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원자로 이루어진 세상에 4원소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해봤자 현실성 없는 것 처럼요. 그럼에도 위 사고 실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전개해나가면, 둘 다 나인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버튼 누른 시점에서 평형세계로 분리해나간나죠. 하나의 내가 다른 하나의 나한테 영향을 못주니까요. 버튼 누르는 순간 확률적으로 이쪽의 나와 저쪽의 내가 나눠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18/09/18 21:34
본문에서 블랙미러를 언급하신 걸 보니, 크리스마스특별편은 당연히 보셨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도 쿠키라는 유사개념이 등장하는데, 그 독립된 자아나 그걸 이용하는 집단이나 법적허용 여부 등등 꽤나 흥미로운 설정이더군요. 혹시라도 못보셨으면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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