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꼽자면 최우선으로 나올 것이 바로 디즈니랜드 한 번 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연이 좋아 친구와 함께 일본여행 같이 할 겸 가게 되었죠. 솔직히 일본 다른 곳에서 뭐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합니다. 디즈니랜드의 기억만 오롯이 박혀있지요. 첫 날은 아쿠아리움을 보았고, 둘째 날은 아키하바라를 쫙 돌았습니다. 셋째 날이 디즈니랜드였는데 계속 비가 오다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 즈음에 그치더군요.
도쿄 디즈니랜드의 피날레는 신데렐라 성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적당히 영상미있게 편집해서 쏴 주는 것입니다. 신데렐라 성이 저에게 보여준 것은 디즈니의 추억이었는데, 저는 그 추억에서 제가 살아온 날을 조금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일본 여행을 함께 갔던 걸 부러워했던 나날.
그런 친구가 없던 게 왠지 서글펐던 시절.
여자친구의 장애를 핑계로 여행 한번 제대로 한 적 없던 멍청한 사랑.
분명히 그럴 여유가 있었는데도 아니야 됐어 하며 숨을 놓았던 기억.
조금 더 인생을 효율적으로 놀아봤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 때 조금만 더 여유를 부렸다고 해도 지금이랑 그렇게 다른 삶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 때 한 번 눈 딱 감고 결심했으면 그녀와의 추억도 더 컬러풀했을 텐데.
왜 나는 이제야.
왜 나는 이제야....
저는 1년 이상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 경력은 디자인과 장비관리 뿐인데 얼마 전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는 예비 프로젝트 매니저라며 생전 처음 해보는 프로젝트 사무직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삶이라는 게 워낙 예측불가능이라지만, 이렇게 흥미도 없고 능력도 없는 일에 오만 스트레스와 야근을 받으며 월급 받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도대체 일학습병행제는 뭔데 절 퇴직도 못하게 하는 걸까. 물론 지금 나이에서 더 구직이 늦어지면 진짜 큰일난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백수가 아니니 백수가 그립습니다. 평생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제야 조금 회한이 쌓입니다. 그 전까지 한 일은 열심히 하면 늘었는데, 이번 일은 열심히 해도 늘 것 같지 않습니다. 불안정에 대한 안정감이 나날이 터져나갑니다.
그냥 오늘도 그 때 찍은 신데렐라성을 보면서, 철이 없어야 했을 때를 조금은 후회합니다.
이렇게 살 줄 알았으면, 조금은 더 즐겁게 살아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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