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뭐가 났다.
정확히는 입술에, 보다 정확히는 입술과 얼굴 피부의 경계 어딘가에 수포가 돋아났다. 아 이거 그건데. 그거. 아무튼 그거로군. 피곤하면 걸리는 그거. 전 세계 인류의 다섯명 중 네 명이 한번쯤 고생한다는 그거. 이름이 뭐였더라. 머리가 지끈거리고, 그것의 이름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는 폭풍을 뚫고 제주에 다녀온 친구와 보모어를 폭풍처럼 마셨다. 지나간 폭풍을 기념하며 탈리스커 스톰도 두어 잔 마셨다. 물론 그라거나 폭풍 같은 핑계가 없었더라도 나는 어제 무언가를 마셔댔을 것이고, 아침에는 머리가 지끈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서 입 주변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혼잣말을 했을 것이다. 입에 뭐가 났군. 그런데 이게 뭐더라.
커피를 마셨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한주간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기 때문이다. 분명히 열흘 전 쯤에는 금연을 고민하며 몇몇 금연 정보를 찾고 있었는데, 지난주가 문제였다. 자영업이란 게 그러하다. 아니, 삶이란 게 그러하다. 뭔가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일들이 물집처럼 돋아났고, 하나하나 힘겹게 짜냈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꽤 받았고, 입맛이 떨어져 뭘 제대로 먹지 않았고, 낮에는 책상에서 서류와 씨름하며 담배를 태워댔고, 밤에는 바테이블에서 술잔과 씨름하며 술을 마셨댔다. 몸살이라거나 편도선염이라거나 인후염이라거나 종기 같은 것이 주말에 도착하기로 확정된 상태였고, 그렇게 예정대로 입에 뭐가 났다. 그래서 그거 이름이 뭐더라. 이쯤이면 이름이 기억날 만도 한데.
평소라면 그냥 약국에 가서 '입술에 뭐 났어요'라고 하고 주는 연고를 받아 발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다음 주까지 신경을 곤두서게 할 문제들이 몇 개 준비되어 있었기에 나는 병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컨디션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런 놈이 어째서 아침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술을 처마셨다고 묻는다면, 에이 왜 그래 알면서들 주말 하루 그럴 수도 있는거지. 하여 나는 이 병의 병명을 떠올리려 열심히 노력했다. 알고 병원에 가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나으니까.
커피를 삼분의 이 정도 마셨을 때 드디어 Cold sore라는 단어가 머리속을 스쳐갔다. 맞다. 콜드 소어구나. 기억났다. Cold sore다. 그래서 그게 한국어로 뭐더라. 구글에 cold sore를 검색해보니 영어로 된 다양한 의학적 지식이 나열된다. 이게 아니로군. 네이버에 이르러 헤매던 기억을 찾았다.
cold sore. 구순포진
그런데 왜 구순포진이 아닌 콜드 소어, 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기억을 떠올려본다. 콜드 소어. 콜드 소어. 그래. 기억났다. 9년 전 이맘때, 대학원에 입학한 해에, 학회 일로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출국 전날까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연구를 붙잡고 있었고, 미국에 도착한 날에는 같이 간 친구와 선배와 교수와 신나게 마셔댔다. 다음날 몸이 으슬으슬하고, 입술에 뭐가 났다. 아, 이거 어쩌지.
물론 그 전에도 입술에 수포가 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보통의 정신없는 20대가 그렇듯, 죽을 만큼 아픈 게 아니면 병원이나 약국에 하지 않는 편이었다. 입술에 뭐가 나는 병은 보통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며, 보통 며칠이면 가라앉는다. 그렇기에 나는 입술에 수포가 돋아나는 병에 관심도 없었고 이름도 몰랐다. 허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학회 참석을 앞두고 입술에 뭐가 난다는 건 역시 조금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매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곤란에 빠진 친구를 기꺼이 돕는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친구 하나가 나를 호텔 근처의 약국으로 데려갔다. 약사는 콜드 소어 어쩌고가 써 있는 연고를 주었다. 연고의 케이스에는 다섯 명 중 네 명이 걸리는 병이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도 있었다. 마음이 놓였다. 병명을 알았고, 다섯 명 중 네 명이 걸리는 가벼운 병이라는 걸 알았고, 약도 받았으니까. 그리고 겨우 입술에 뭐가 난 정도로 아파하기에는 좀 애매한 상황이었다. 같이 간 동기녀석 중 하나가 자전거를 타다 굴러서 얼굴과 팔에 붕대를 둘둘 감은 채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서 자전거를 탄 걸까 그 녀석은.
후에 콜드 소어를 찾아보고, 그제서야 <구순포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구순포진이라. 앞으로 평생 쓸 일이 없는 단어였으면 했지만 이 병은 완치가 거의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가끔씩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뭔가 몸이 또 이렇게 오염되는군.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몇 번 구순포진이 찾아왔다. 아파 죽을 것 같거나 급한 일은 없었기에 나는 보통 병명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대신 '아 입에 또 뭐 났네'라고 생각하며 약국에 가서 '입술에 뭐 났는데요'라고 하고, 약사가 건네주는 맛 없는 연고를 발랐다. 그렇게 9년이 지났고, 오랜만에 콜드 소어, 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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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금문교에서 자전거를 타다 얼굴을 갈아먹은 동기는 올해 미국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나를 재빨리 약국에 데려갔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애로운 친구는 UN에서 식량 지원 정책인가 식량 생산 정책인가를 담당하고 있다. 뭐랄까, 9년 전 그 날에도 뭔가 어렴풋하게 그들의 미래가 보였던 느낌이다. 얼굴을 긁어먹은 친구는 학회 참석단 중 유일하게 정규 세션 발표를 했던 친구였고(석사 1학기 주제에!), 영어를 잘 하며 착한 친구는 착하고 영어를 잘 했으니까. 9년 전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준 사람은 몇 년 전에 등단했고, 9년 전에 나를 가장 빡치게 한 사람도 얼마 전에 등단해 작가가 되었다. 그래. 삼십대 중반이란 뭔가 중간 결산이 이루어질 나이인가 싶다.
9년 전의 나는, 처음으로 <콜드 소어>로 인지된 무엇에게 습격당한 나는 오늘의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뭐, 퇴근 길 홀로 코인노래방에 가서 옛날 러브송을 몇 곡 부르고 집에 오는 바텐더라거나 하는 걸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마흔 네 살 먹은 가수의 사진을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쓰며 콘서트에 따라다니는 삶을 상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년 전 내 핸드폰 바탕화면은 연구실 화이트보드와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끝없이 끝없이 끝나지 않는. 그래도 글쓰는 걸 좋아하니 책을 몇 권 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몇 권 내기는 했다. 기술 번역서라거나 구성 원고라거나 철학서 번역이라거나 잡문 모음집이라거나. 차라리 안 내는 쪽이 덜 민망했을 라인업인 느낌이다. 그 시절 관심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관심이 조금은 남아있는) 사회학이라거나 문학이라거나 하는 건 목록에 없다. 9년 후에 콜드 소어에 습격당하게 된다는 것도 물론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학자금 대출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뭐라도 뭔가 될 줄 알았는데, 뭔가 X된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하고 뭐 그러하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떤 것들은 변했고 어떤 것들은 사라졌고 어떤 것들은 미끄러졌고 어떤 것들은 조금 피어났다. 지금의 나도 9년 전의 내가 조금 익숙치 않고, 9년 전의 나도 지금의 내가 그렇게 탐탁치는 않을 것이다. 9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입술에 난 무엇에 대한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그거. 그거. 이름이 뭐더라. 콜드 소어. 근데 그거 한국어로 뭐더라. 야. 구글 찾아봐라. 아, 어제 마신 위스키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이라거나 정치적 입장, 삶의 향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는 쪽이 좋겠다. 백프로 불쾌한 싸움이 날 테니까.
10년 뒤의 나는 또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때도 콜드 소어를 콜드 소어라 기억하게 될까. 그러기를 바란다. 구순포진, 이라는 병명에 친근해질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기를 바라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또, 음. 위스키를 많이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