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 3학년이었을 때 어머니는 다니던 교회에서 나왔다.
교회의 조직도는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아마도 어머니는 일반 신도보단 조금 높은
몇 명의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는 자리에 오른 것 같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자리에서 어머니는 갈등과 고통을 겪었고
다니던 교회에 대한 회의감으로 다시 신앙을 이어갈 새로운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니게 된, 아니 믿게 된 종교는 신천지였다.
수능을 보고, 재수를 결정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머니는 그 동안 신천지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운영하고 있던 피부관리실도 정리하고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던 할머니를 신천지에 끌여들였다.
그리고 재수라는 명목하에 집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던 나 또한 끌여들이려했다.
나는 무신론자이고, 그 때도 무신론자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끈질기게 포교하려했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실망했고, 부딪혔다.
직접 돈을 벌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주체적인 모습이
경제활동은 아버지에게 맡기고 신천지의 일에만 치중하는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은 내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어떤 목사가 하는 강연회에 오면 십만원을 주겠다던가, 할머니와 함께 나를 포교하려고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싸웠다.
하지만 그 싸움은 승자가 없는 싸움이었다.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 뿐인 싸움은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했고 부모자식간의 애정은 차게 식어갔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징병신체검사를 받게되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컴퓨터로 설문지를 작성하고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는다.
그 동안 컴퓨터로 했던 조사의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추가적으로 검사를 받을 사람이 정해진다.
추가검사는 수기로 설문지를 작성하고 1:1 면담을 하게된다. 면담이 끝나고 내가 받은 등급은 7등급.
치료 후 재검사였다. 의심되는 것은, 우울증.
추호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버지에겐 공군에 가고싶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와 수기, 그리고 면담을 통해 나온 것을 의심할 수는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약 한 달 뒤 병무청 지정병원에서 비싼 돈을 들여 받은 검사는 내가 기분조절장애, 흔히 말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와 어머니간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간단히 말해서, 어머니는 책임을 부정했다.
자신의 포교가 자식에게 우울증을 걸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했고
어떻게든 책임을 전가하려 들었다. 그 것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내 방 아래에 수맥이 흘러서 우울증에 걸렸으니 침대의 위치를 바꿔야 한다는 건 가벼운 것이었다.
내 이름이 우울증에 걸릴수밖에 없는 이름이니, 비싼 돈을 들여 새 이름을 받아왔다는 건 끔찍한 편이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내가 개명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새 이름으로 부른 것.
그리고 새 이름을 친척들에게 퍼트려 명절 때마다 원하지도 않던 새 이름으로 불려야만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하고, 슬펐으며 날 좌절하게 했던 것은
내가 나약해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어릴 때부터 이상한 애였다고
자기도 교회에 다니면서 우울증이 나았으니 너도 신천지에 나오라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들었던 말이 그 것이었다.
이 집은 내 것이니, 신천지를 믿지 않을 거면 나가라.
머리로서는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그 당시 성인이었으니까. 갓 스물이 되어 재수하는 중이라고 해도 아무튼 성인이니
부모님이 날 부양할 의무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마음으로는 자식에게 그렇게 대하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
그리고 쫒겨날것이라는 공포만이 가득 찼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울면서 가방을 챙겼다. 옷가지들과 세면도구정도가 들어간 말그대로 쫒겨났을 때를 대비한 가방을.
그렇게 살아가며 나는 생각했다.
대체 모성애라는 것은 얼마나 같잖기에 자식을 영이 다르다고 싫어할 수 있는가?
아니면 종교가, 신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자식을 내쫒아버릴 수 있는가?
그리고 언제나 '내가 옳고 너가 틀려야' 하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와 나의 종교적 갈등만이 내 우울증의 원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별거, 친구와의 싸움, 따돌림, 가정을 신경쓰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
그 모든 것이 원인이고 문제이며 어머니와의 갈등은 방아쇠를 당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총과 총알을 사서 총알을 넣고 관자놀이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 까지 모두
온갖 잡다한 이유를 만들어 떠넘겨버리고 자신은 완벽하게 결백하다는 듯이 나를 보는 어머니가
너무 역겨웠다.
내가 겪은 일들은 어쩌면 그렇게 불행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보다 더 힘든, 더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은 내 나약함때문일 수도 있다.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들의 천국에서라도 당신의 책임만은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ps. 너무 개인적인 글이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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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pgr에서 답글을 답니다.
종교문제는 아니었습니다만, 저도 어른이 되기 전부터 벽을 보고 대화하는 것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직 저도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 경험으로 부모님과의 문제는 무조건 장기전입니다.
본인의 자식에게 이런식으로 대하는 경우의 부모님은 의견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내가 부모님보다 강해져서 다시 생각하시게 만들어야하는데 이게 내가 더더 많이 커야하더군요. 글쓴 분 잘못한 것 없어요. 부모님이 이상한 종교에 빠지신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종교를 강요하시는 것은 부모님이 잘못하시는 것이고, 글쓴이에게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입니다.
부모님을 내 부모님이라는 이유로 이해해 드리려고 하지마세요. 그분들 잘못을 이해하고 합리화해 드리려고 하지마세요. 다 버리고 본인을 먼저 챙기시고요. 재수시라고 하셨는데 입시는 잘 치루셨는지.. 우울증 치료 꾸준히 하시고.. 가능한 연락 최소화 하셨으면 하고.. 내가 잘 살다보면 부모님 생각이 바뀌는 날이 올겁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잘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기적이 되셨으면 합니다. 제가 오버하는 거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