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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8 18:17
옛날에는 김재규 의사가 박정희를 쏨으로써 민중이 직접 그를 끌어내려 심판할 기회를 잃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요즘은 그 잔인한 억압의 시대에 그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설령 가능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광주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김재규 의사와 그 부하들이 희생한 것이 더 값진 일이 아니었는가 싶네요. 특히 차지철이 했다는 캄보디아 드립을 알고 나니 더더욱...
16/12/08 18:20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절때 민중이 박정희를 끌어내리지 못했을거에요.
박정희는 이승만이나 전두환과는 달리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어마어마했거든요. 절때 4.19나 6.29처럼 전국민이 한뜻으로 모일수가 없었다고 봐요. 그렇게 해서 박정희가 80년대를 맞이하고 3저호황 수혜를 입고 올림픽 개최까지 가면 그야말로 반인반신이 아닌 신이 되는거죠.
16/12/08 18:22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정말로 부마 같은 곳이 시범 케이스로 잔인하게 짓밟혔다면 반대자는 더 억눌렸을 것이고 지지자도 많았으니 그 잔인한 일들이 빨갱이들의 폭동 진압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16/12/08 18:25
10.26이 어땠냐와는 별개로 지금 현 상황에서도 청와대에 있는 저거 하나 끌어내리기가 이렇게나 힘든데 그 땐 정말 힘들었을거예요. 심지어 많은 민중들은 끌어내릴 생각도 없었......
16/12/08 18:21
저도 동의하는게 김재규 씨가 거사를 하지 않았으면 부마에서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겠죠. 그리고 3저 호황이 전두환 정권 때 와서 지금도 전두환 때 경제는 좋았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걸 보면 그 때 까지 유신정권이 버텼으면 아직도 독재 치하일지도 모르죠.
16/12/08 18:26
이미 없어진 권력이고 박정희보다 지지율도 낮았고 더 짧은 시간 있었고 무엇보다 국민의 손으로 직접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전두환도 일베 같은 무리들에 의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박정희가 만약 광주랑 같은 짓을 부마에서 했다면... 그게 나쁜 짓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조차 김재규 의사 말마따나 2, 30년은 더 걸렸을 것 같아요. 혹은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까지도 독재 치하일지도 모르고...
16/12/08 18:50
차우세스쿠를 민중이 끌어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의 현재 경제형편이 좋지 못하다보니 차우세스쿠를 그리워하는 세력이 꾸물꾸물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민중이 그를 끌어내렸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야 덜하겠지만) 분명 그리워하는 노년층은 다수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유신 반대투표 찍고 경찰서 불려가서 사상조사 받았고, 87/92/97년에 김대중, 02년에 노무현 대통령을 찍으신 그 나이대에서는 매우 드문 분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집안은 충청도 토박이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후한 것을 보면 노년층 세대들에게 박정희라는 이름 석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16/12/08 18:55
확실히, 차우세스쿠의 예를 생각하면 그도 그렇군요... 말씀하신 점을 생각하면 독재자를 잡는 칼에는 흑묘백묘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뽑을 때 희생이 적은 칼이 좋은 칼이죠.
16/12/08 19:52
말씀하신 것만큼의 일이 일어났거나... 최소한 잘 풀리더라도 2, 30년은 기다려야 했지 싶네요. 혹여 진짜진짜 모든 게 잘 풀려서 곧 민주혁명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희생 당했을 부마의 인명 피해는 무시할 수 없기도 하구요...
16/12/08 20:13
김재규로 인해 유신시대를 종식시킨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분명 시기의 문제지 박정희는 끌어 내려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금 우리의 역사보다 더 많은 피를 흘렸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민낯을 볼 수 있었겠죠. 역사의 만약은 없고 어떤 역사가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신을 종결 시켰지만, 신 군부를 탄생시킨 인물. 박정희 만큼이나 평가가 힘든 인물이죠.
16/12/08 21:32
하긴 평가가 쉽지 않다는 생각은 합니다. 저 개인은 좋게 보지만 나쁘게 보는 분들 유보하시는 분들 모두 논리적인 근거가 있으니... 다만 말씀처럼 피를 적게 흘리게 했다는 것, 그 대신 결과적으로든 뭐든 자기 피를 흘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싶어요.
16/12/08 18:18
주갤 최고의 치트키 입갤이군요. 최순실-박근혜 덕에 후일 박정희는 더욱 안좋은쪽으로 그것만큼 김재규는 좋게 기술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요즘 강하게 들긴 합니다.
16/12/08 18:20
김재규의 경우 박정희의 뒤를 이은 정권이 군부세력이므로 그 당위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더 폄하된 부분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사료가 나오면 나올 수록 재평가되겠죠.
16/12/08 18:22
역사가 바뀌고 있는거 같가는 합니다.
게임으로 치면 종편출범 -> 손석희 사장 JTBC취임 -> 최순실 테블릿PC 발견 같은 퀘스트가 완료되면서 대한민국이 변화고 있다는거?
16/12/08 18:23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요샛말로 부역자잖아요? 심지어 '중정부장'이었죠.
뭐 예전부터 술 안따라줘서 쏜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비전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아요. 그렇다고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거짓이냐..하면 그것도 아닌 것같긴 한데... 그래서 김재규는 좀 아리까리한 인물이긴 합니다. 저는 웃자는 말로 중이병에 좀 빠졌던거 아닌가 싶은..
16/12/08 18:34
정운찬이 엠비때 총리를 하긴했지만 엠비랑 생각이 달라서 결국 사임하고 나왔죠.
요새는 동반성장을 외치고있구요. 군사정권에서 부역했어도 생각은 다를수도 있는거죠. 나치군인이면서 학살당하는 타국인들을 구하기위해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도 있었지않습니까.
16/12/08 18:40
그..저도 최규하 김종인 뭐 이런 행정가들은 괜찮아요. 근데 중정은 다르다 이거죠.
나치 당원 중에도 사람 구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 있긴 했지만, 원수나 대장급에선 없었고, 있다 한들 그 지위를 덮을 수도 없는 거니까요.
16/12/08 18:44
지위보다는 해당지위에서 어떤일을 했느냐가 중요한거죠.
나치 고위장성들도 실제로 나치에충성하며 유태인학살을 방조한사람들이나 전범취급받지 아닌사람들은 전범으로 안봅니다.
16/12/08 18:28
관심은 있었지만 중이병 느낌이라고 치부한다면야 사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어느 시민과 운동가들도 그런 잣대에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쿠데타 집권에 직접 참여한 인물이 아니고, 중정부장 임기간 내부에서 할 수 있는 개선 노력에 나름대로 손을 쓴 흔적도 있는 만큼 감안해 평가해줄 부분은 있겠죠. "완전 선의의 인물"이야 아니겠지만(그런 사람이 또 얼마나 되겠느냐만) 부역자 카테고리에 묶이긴 또 억울하달까요.
16/12/08 18:40
한 인물이 그 뒤에 일어날 역사적 흐름을 추측하긴 어렵겠죠.
적어도 저 마음만은 진심이였을거라 봅니다. 님 말처럼 에이급 부역잔데 쏴죽일 이유가 없거든요.. 본문글은 처음 보는데 구구절절 동감이가고 저 상황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렇게 단순한 개인의 시해보다 그뜻을 좀 더 확장해서 비전까지 가졌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16/12/08 18:23
그동안 과오가 부각되었다, 사실은 그보다 좀 더 의인이다. 뭐 이정도까지는 오케이 하겠는데 안중근 의사는 너무 갔다고 봅니다.
16/12/08 18:24
그 후에 전두환이 집권만 안했어도..김재규는 확실히 고평가 받을 수 있었겠죠.
독재의 시대를 끝낸 인물로 말이죠. 물론 그 시절 안기부장으로서 했던 온갖 정치 탄압과 인권 유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요. 아무튼 그 시절로 보자면 박정희의 독재와 민주적 시위에 대한 탄압과 학살을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걸 직접 해낸 사람이라는건 맞는거 같습니다. 직접적인 목적이 다른 거라는 말도 많지만 자신이 저기에 쓴 생각이 바닥에 깔리지 않는 이상 목숨을 걸고 할 수는 없는 큰 일이죠.
16/12/08 18:27
어쩌면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박정희라는 인물이 남긴 유산(유산인지 쓰레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이 모두 없어지고 김재규라는 인물과 대한민국의 사회 사이의 관계가 희박해질 때에나 올바른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건 아마도 아주 먼 훗날이 될 테구요. 언제 김재규라는 인물이 다시 또 평가가 뒤집어질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죠. 그렇게 불완전하게 바라보고 또 불완전한 것을 감수해 가면서 최대한 올바르게 평가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현실이자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명쾌하게 한 줄로 현대 한국사에 긍정적이다 혹은 부정적이다라고 평가를 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은 인물이라구요.
16/12/08 18:29
박정희나 김재규 등 3~4공화국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는 한참 후에나 가능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신화가 깨지고 있다지만 현재진행형이고...관련자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16/12/08 18:29
카를되니츠가 종전에 협조적이였고 민간구호를 조금했더라도 나치랑 상관없는 개념인일리는없죠.
그정도 높은직책과 권력을 가졌으면 적어도 나치즘에 동조했거나 묵인한 사람이지.
16/12/08 18:31
뭐 민주화투사까진 오바라고 생각하고 그냥 독재세력내의 온건파가 김재규인데 갈수록 강경파가 득세를 하고 자기가 모으는 정보를 바탕으로는 이대로 가다간 다 큰일나겠다 싶었고 개인적인 은원한까지 있어서 반우발적으로 저지른일이 아닌가 싶네요 중정부장이라는 양반의 사후대처가 지나치게 엉망이었으니까요 민주주의같은건 좀 자기포장에 가깝다고 봅니다.
16/12/09 08:05
재판과정에서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이 박정희에게 '누'가 될만한 진술을 하려고 할 때마다 제지한거 보면 역시 민주화투사라 하기엔 좀 그렇지 않았나 싶네요.
16/12/08 18:31
그냥 소 뒷걸음에 쥐잡듯 결과에 과정을 끼워맞히는 재평가입니다.
이 사람이 뮤슨 대의나 자유민주주의적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거사를 치른걸로 포장되는데 말그대로 허울뿐인 그건 명목이고 그 결과가 37년뒤에 이런식으로 나타나서 그렇지 그냥 저 인간도 독재자에 기생해서 국민들 고혈 빨아재낀 패거리죠. 그것도 십몇년간 심복으로 잇으면서 말입니다. 국민에 손에 끌어내려져야할 독재자가 배신자의 총에 죽엇으니, 국민들의 동정을 사서 박근혜가 집권하데 되엇죠. 가깝게는 비상시해시국을 명목으로 12 12사태와 신군부의 등장을 정당화햇고요. 부마항쟁의 열기가 고조되고 야당 총재가 제명된 상황에서 국민적인 민주화 열기가 엄청 낫습니다. 당장 혁명이 다시 터질판이엇죠. 80년대에 유신과 박정희를 망령도 없이 청산가능한 판을 이 인간이 권력욕에 기반한 치기로 판을 엎은겁니다. 거사 이후에도 이 인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립을 위한 아무런 플랜이나 성명이 없엇습니다. 재평가는 개뿔. 디시에서 트롤링으로 김재규 추앙하고 시국이 이러다보니 주목받는거지, 그냥 이 인간은 상대팀에 잇는 트롤러죠. 이런 논리라면 일제패망을 앞당긴 도조 히데키의 진주만 침공도 독립운동이라고 말나오습니다.
16/12/08 20:04
정확한 통찰, 맞는 말 사이다네요.
안중근에 빗대면서 진지하게 오오~ 리얼 위인 오오.... 이러는 거 자유지만 정말 어리석어 보입니다. 막 황장엽 애국 열사님 존경합니다.. 이러는 꼴이랄까요
16/12/08 21:41
김재규의 악행만 알려졌을 때 지배적이던 평가(빗대자면 십수 년 전 고등학교 근현대사 선생님 의견) 복붙한 수준의 글인데... 이게 정확한 통찰에 사이다라니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도 물론 자유겠지만 증세가 좀 심각하시네요.
16/12/08 22:24
안스브저그님 댓글이 부정확하다고 생각하시면 왜 그런지도 좀 첨부해서 알려주시지 수준 얘기만;
누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증세가 심각한 건지 재평가 됐으면 좋겠네여 크
16/12/08 22:40
죄송한데 전 아래 세츠나님의 댓글에 가장 공감하는 입장입니다. 회색분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자료가 충분치 않으니 정확한 판단은 무리라는 생각이죠. 그런데 시나브로 님과 위의 안스브님은 완벽하게 한쪽에 치우친 입장을 고수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김재규의 어두운 면만이 알려졌을 때 지배적이던 평가를 그대로 답습하는 레벨이에요. (애써 제가 반박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여기 리플들만 읽어 봐도 그 댓글에 반박할 거리만 한 트럭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버이 연합 할아버지들을 볼 때와 비슷한 기분이네요.) 다소 조롱조의 댓글이라 기분이 나쁘셨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실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댓글 달아 봤습니다.
16/12/08 18:35
김재규가 없었으면 박정희 절때 국민들이 못 끌어내렸다고 봅니다.
박정희는 이승만, 전두환처럼 한쪽으로 평가가 쏠리는 정치인이 아니에요.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당시는 어땠을까요. 절때 국민들이 못 끌어내립니다. 국민들이 힘을 한데로 모을수가 없어요. 뭐 지금만 보더라도 박근혜가 아버지 후광으로 대통령이 되는데 7~80년대의 박정희를 국민들이 끌어내린다? 불가능하죠. 거기다 박정희가 계속 살아 80년대 3저호황 수혜를 받고 올림픽 까지 개최하면 그냥 박정희가 신이되는거죠. 김재규가 자기 목숨 걸고 박정희 죽이지 않았으면 아직도 박정희 시대가 계속 되고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김재규 때문에 국민들이 박정희 끌어내릴 기회를 놓쳤다고 까는건 솔직히 너무 속편한 소리에요.
16/12/08 18:39
저도 이건 동의합니다. 박정희를 끌어내릴수있었으면 80년에 전두환이 정권을 잡진못했겠죠 그리고 그당시에 박정희를 끌어내리진 못했어도 그 후에 국민손에 끌려내려온 전두환의 자리에 박정희가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16/12/08 18:49
전두환은 끌어내릴수 있어도 박정희는 끌어내릴수 없습니다.
일단 국민손이라고 하시는데 전두환은 대다수가 불호지만 박정희는 아직도 호불호가 갈리는 정치인이에요. 국민이 하나로 뜻을 모아 끌어내린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이 안됩니다. 더더군다나 3저호황 누리고 올림픽까지 개최한 박정희라면... 여전히 지지율 5~60% 이상 넘지 않을까요. 박근혜만 해도 박정희 후광만으로 대통령이 된걸보면.. 그깟 박정희 주니어따위 가 아니라 진짜 박정희가 훨씬 더 지지율이 높겠죠.
16/12/08 18:53
그 호불호가 갈리는게 그나마 그때 죽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이미 유신말기에 인기도고 뭐고 개판이었는데 전두환보다 빨리 무너졌을걸요 올림픽 삼저호황 박정희가 계속 집권했다고 전두환때 처럼 됐을리도 없죠
16/12/08 18:58
인기가 없다와 반드시 내려야 한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때도 보셨듯이, 인기가 개판이고 선거 또하면 노무현 뽑긴 싫다 와 지금 반드시 내려야 한다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요. 하물며 그 내리기 위해서 목숨걸고 싸워야 한다면 상황은 200배쯤 또 다르죠. 구 박정희가 임기말에 인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목숨걸고 싸울 수 있었을지는 무척 회의적입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차이는 인기의 문제보다는 미국을 무시할 수 있었나 없었나의 차이가 더 크다고 봐요. 박정희는 미국 무시하고 30만을 죽일 수도 있는 인간이었으니 더 내리기가 힘들었던거죠.
16/12/08 18:37
저도 복잡한 감정 느끼고 박정희 죽였다는 사실이 입맛에 맞으니 애써 띄우는 느낌 받습니다 막줄 오버라는 생각 들고요.
박정희 일본군 자원해서 친일 행적한 거랑 김재규 박정희 부하 돼서 최측근 최고위층으로 살아온 거랑 다른 케이스라고 생각하는 건지 反수구, 反박정희 마인드 가진 사람이 '박정희 친일 행적만으로 쓰레기라 판단해 공이 뭐든 아오안이다, 김재규도 박정희랑 붙어먹은 행적만으로 공이 뭐든 아오안이다.' 이러면 한결같은 일리에 공감하겠지만 '김재규는 박정희랑 붙어먹었었지만 박정희 죽여서 좋아. 그리고 알고 보니까 공도 많음. 엄청 훌륭한 사람임.' 찬양 수준으로 하면 정말 가증스럽게 느낄 것 같네요. 난장토론에서 박정희 자기 의사로 자발해서 무려(잘못된 어법이지만) 일본 육사 들어가서 일본군 장교 된 거 자체가 문제라는 진중권 주장도 생각나고요. 김재규는 자기 의사로 박정희 수족 돼서 무려 중앙정보부 부장까지 되어 그런 일들 한 거 자체가 이미 문제예요. 처음부터 박정희 죽일 목적으로 최측근 된 것도 아니고, 민주화 세력 도와주기 위한 첩자도 아니고 그냥 리얼 최측근인데 재평가라며 안중근 의사급 위인 얘기를 박정희 잘한 일 분명히 있고 또 있어도 세종대왕, 이순신 얘기하듯 '영웅 박정희' 하면 웃기죠? 일본 육사 출신 장교, 폭압적 독재라는 거대한 타이틀로 영웅 칭호가 사리에 안 맞듯 저런 김재규에게 잘한 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점들 있다고 의사 얘기가 가당합니까
16/12/08 18:37
적어도 이 사람땜에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십만의 목숨은 살렸다고 봐야죠. 민주화 열기고 뭐고간에 독재자는 진짜로 탱크로 밀어버리려고 작정한 상황에서 그 독재자를 국민이 직접 끌어내릴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뒀어야 한다는 얘기는 명분 이전에 사람 목숨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 핏값은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닙니다. 광주항쟁 희생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고초를 받다가 겨우 누명에서 벗어났는데 그런 일을 한 번이나마 막은 사람이 평가받을 이유가 없다니 흰소리도 이 정도면 정도가 좀 지나치다고 봐야.
16/12/08 18:46
제가 차지철 캄보디아 드립을 알기 전에는 부마가 얼마나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었는가를 몰랐는데...
[(김재규가 부마항쟁을 박정희에게 보고한 뒤, 박정희가 강경진압을 지시하자) 차지철은 이 말 끝에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 정도를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읍니까?'하는 무시무시한 말들을 함부로 하는 것이었읍니다. - 김재규. 79고군형항제550호(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후) 항소이유보충서] 이걸 보니 이건 무조건 잘한 일이다 싶더군요. 독재자는 민중의 손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그 훌륭한 명분을 위해서 그 앞에서 1~200만의 사람이 죽는 걸 감수할 수는 없죠...
16/12/08 18:56
맞는 말씀입니다. 가까운 예로 중국의 천안문사태가 있죠.
그당시 중국 국민들의 민주화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최루탄과 몽둥이로 아무리 진압해도 천안문에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고... 서양의 언론들은 모두 중국의 민주화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은 설마하고 있었죠... 그리고... 천안문에 탱크가 진입하고... 그 이후로 중국은 여태까지 민주화 동력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16/12/08 18:39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60년대 후반 출생자까지 존재합니다.
게다가 상당히 진하구요. 그래서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아직 20년은 필요하다고 보여지네요.
16/12/08 18:42
의도는 잘 모르겠고, 결과는 여태까지는 좋지 않았다고 평가 받았으나 지금에 와서는 재평가 받고 있는건 분명하죠.
의도야 관련 자료가 나오지 않는 한 정확히 밝히긴 어렵겠습니다만, 재판 과정에서의 영상 등을 보면 최소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쏜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우발적으로 쏜 사람이 재판에서 저런식으로 말 할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어느정도 재평가 받을 부분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16/12/08 18:51
사실 그래서 유머가 위험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베가 하는 헛소리들도 유머로 포장되어 나오니 걍 낄낄대다가 점차 그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사람들이 있던것 처럼...
16/12/08 19:07
네 원래 주장하던 사람들이있었지만 일반대중에, 특히 웹상에서 그다지 논의되던 떡밥은 아니었죠. 지금 웹상에서 김재규 재평가시도가 들어가는건 재규어드립이 흥하고 그에 현 시국이 맞아떨어지면서 얘기가 나오는거라는 말입니다.
16/12/08 19:13
긍정적인 면도 있죠. 지금처럼 박정희를 우리가 제대로 평가하게 된건 이런 유머들의 영향도 대단히 컸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고등학교때까지 교과서 보고 공부하면서 박정희가 약간의 과오가 있는 위인인줄 알았습니다.
16/12/08 19:14
딱히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저같은경우는 다른 커뮤니티를 하지 않기에 언급하신 재규어드립이 뭔지도(아마 김재규씨를 일컫는 말이긴 하겠죠) 몰랐습니다. 저같은경우에는 최순실사태 이후 최태민이라는 사람을 찾아보다보니 김재규씨에 대해 더 깊게 알게 된 계기가 되어보니 충분히 진지하게 재평가를 해봐야할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드립으로 생각해본일은 없네요.
16/12/08 20:23
모든 사람들이 드립으로 알다가 인식이 바뀌어서 재평가하게 됬다는 건 아닙니다. 님처럼 드립을 모르고 있다가 새롭게 알게되서 재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다만 그런 사람들도 지금 웹상의 김재규재평가meme 열풍 때문에 인식을 새롭게 할 기회와 자료를 더 쉽게 얻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만약 지금처럼 재규어드립이 흥하고 재평가가 인터넷meme이 되어서 널리퍼지지 않았다면 김재규가 최태민에 대해 경고했다는게 별다른 주목을 못받았을겁니다. 그러니 최태민에 대해서 알아보다 그게 김재규 재평가까지 연결되는 사람도 없거나 잇어도 얼마 없었을테죠. 그리고 지금처럼 그 사실이 김재규재평가글에 한줄 덧붙여서 설득력을 더하는데 쓰이지도 않았을테구요. 비슷한 예로 전두환이 유병언에 대해 경고한 사실이 세월호사건 이후에 재발굴 된게 있죠. 디시야갤이나 일베등지에서 전두환을 전장군님하며 찬양하며 드립치는 meme이 있는데 그 드립치는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터진후에 전두환이 유병언에대해서 "유병언은 믿을수없어서 그가만든 배는 안타겠다"라고하며 유람선시승을 거부했던 사실을 발굴해내서 역시전장군님! 하면서 찬양했었죠. 만약 전두환찬양meme이 없었으면 전두환이 유병언에대해서 그런말을 한게 새삼 발굴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16/12/08 18:51
정말 요즘 시대에도 박정희 후광 하나로 뭣도 아닌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나라인데 그 박정희가 살아있을 때는 더더욱 국민이 끌어내리지 못했겠죠..
16/12/08 18:52
나폴레옹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부르주아 혁명을 온 유럽에 퍼뜨린 ... '역사의 간지' 이런 거 좀 위험한 개념이긴 하지만,, 그냥 가끔씩 보면 저런 게 딱 맞아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김영삼이 하나회 척결하고 금융실명제 하고 한 것도 행위 주체의 의도와 실제 역사적 결과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16/12/08 18:53
저는 어떤 점에서는 안중근 의사보다 대단한 점도 있다고 봅니다.
안중근 의사는 당시 피지배민족의 일원으로 그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거셨다면, 김재규는 그저 부역자 노릇만 하면 대대손손 부와 명예를 모두 쥐었을 기득권층의 일원 이었으면서도 그걸 희생했다는 점입니다..
16/12/08 20:45
함세웅 신부가 김재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이거죠. 가만히 은퇴했으면 대대로 권세를 누렸을 사람인데 그걸 치워두고 거사를 치른 부분...
16/12/09 10:56
격하게 공감합니다.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 그것을 포기하고 이런 대사를 일으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김재규는 충분히 있었을 법한 수백만의 민중 학살을 막은 것만으로도 의사 자격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16/12/08 18:54
의도가 뭐였는지, 우발적인건 아니었는지, 중정부장으로써의 책임이 있는게 아닌지 이런건 다 맞는말이고 충분히 논의가능합니다.
그런데, '국민 손으로 박정희를 내릴 기회를 빼앗았다, 김재규가 아니었어도 결국 박정희는 물러나게 되있었다'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전자는 설득력의 문제를 넘어서 '명분'을 위해선 수십만명이 죽어도 할 수 없다는 수준의 주장이라 논할 가치조차 없는것 같네요. 후자도 설득력 떨어지는게 위에 다른분들 적었듯이 민주화 되고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박정희 좋아하는 사람이 저번 대선까지만 해도 국민의 반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박정희가 살아있던 당시에 온 국민이 힘을 모으는게 가능이나 했겠습니까? 그냥 십수만명이 국민적 지지를 못얻은채 박정희를 막으려다가 탱크에 깔려죽고 총에 맞아죽는 결말만 있었을 뿐입니다.
16/12/08 19:00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의 결말이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면 우발적 동기건, 불타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건 수천에서 수만의 목숨 대신에 자기 혼자 짊어지고 독재자를 축출해 냈다는데 점수를 후하게 줄 만 하다고 봅니다.
16/12/08 19:02
수십만명이 힘을 모으면 독재자 내릴 수 있다. 안타깝게도 시민의 의지는 독재종식의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전세계의 수없는 사례가 독재자 내리는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줘왔습니다. 지지자가 소수 측근밖에 없는 수준의 독재자도 군대만 잡고있으면 10만명을 죽여서라도 버팁니다. 박정희는 미국 눈치도 안봤고, 지지자도 매우 많았고(=국민 단합도 어렵고), 요즘까지 국민을 혼란케 만들정도로 소위 업적까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국민 손으로 내리는게 가능했다고 보이지가 않습니다.
16/12/08 18:55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여서 박정희가 신격화 되었다고 비판 하지만
박정희가 살았다면 북한은 김씨왕조, 남한은 박씨 왕조, 또는 최씨 신성왕국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겠죠 결과적으론 잘했다고 봅니다.
16/12/08 18:56
http://m.clien.net/cs3/board?bo_style=view&bo_table=park&page=1&wr_id=51076623
이게 사실이라면 확고한 민주의식은 몰라도 현세태가 심한게 아닌가, 바꿔야한다 정도는 분명 있었다 봐야할 것인데 어디까지가 검증된건지 알려주실분 있나요
16/12/08 18:56
롤에서 라인전내내 똥싸다가 한타캐리하면
그것은 캐리인가요 트롤인가요 랑 비슷한문제지않나... 시간은 흐르고 평가는 변할테니 지켜봐야죠
16/12/08 19:51
김재규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 한타캐리도 본인이 계획적으로 한게 아니라 어쩌다 소뒷발에 뒷걸음치듯 이니시건게 잘걸려놓고 채팅창으로 정치한다고 생각하는거죠.
16/12/08 19:55
솔직히 재규어 픽은 캐리라고 봐야죠. 윗분들 말씀처럼 최소 수십만의 목숨을 살린 건데... 의도나 본심이 어찌 되었든 말이죠. 위의 캄보디아 드립 보면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16/12/08 19:00
재평가 될만 하다고 보는게 21세기에도 저리 국민들 말 안듣고 끝까지 버텨대는데 당시에는 더 했죠.김재규가 아니었어도 국민들 손으로 내려왔을것이다라는건 너무 낙관적으로 당시 상황을 보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6/12/08 19:00
박정희 암살이 우발적이 아니었다는 김재규의 옥중 일기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81601&s_no=281601&kind=search&search_table_name=bestofbest&page=1&keyfield=subject&keyword=%EA%B9%80%EC%9E%AC%EA%B7%9C 여기서 보면 5차례나 암살 및 하야를 시도했다고 나옵니다. --------------- 김재규에 대한 부하들의 마지만 유언 박선호 박선호는 김재규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다. 해병대 대령으로 전역했던 박선호는 상명하복식의 군대와는 전혀 다른 사회의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김재규의 도움을 받아 중앙정보부에 들어왔고 평소 김재규가 "거만하게 행동치 말라", "책을 많이 읽어라"등 따뜻한 조언을 해주었기에 김재규에게 큰 존경심을 가졌다. 하지만 의전과장이란 자리가 박정희의 술시중을 드는 여자나 섭외하는 소위 채홍사 같은 자리라는걸 겪게 되고 독실한 크리스챤인 그는 사퇴를 고민하였으나 김재규가 "자네가 없으면 궁정동 일을 어떻게 하겠나"하고 간곡히 만류하여 10.26 직전까지도 김재규 때문에 일을 하고 있었다 한다. 최후 진술에서 박선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김재규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저로 하여금 항상 인간으로 일깨워 주시고, 국가의 앞날을 버러지의 눈이 아니라 창공을 나는 새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똑바른 눈이 될 수 있도록 길러 주신 데 항상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는 그 길 밖에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박흥주 박흥주는 당시 국내 최고 명문 고등학교중 하나였던 서울고를 최고 수준의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나 집이 너무도 가난했기 때문에 학비를 댈 형편이 안되어 서울대가 아닌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였다. 육사에서도 공부벌레란 말을 들을 정도로 학문에 열중하여 18기 생도 중 최우수로 졸업하며 포병소위로 임관하였다. 박흥주가 전속부관이 되었을 때 사단장이 김재규였는데 이때부터 박흥주는 김재규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굉장히 유능했기 때문에 39세에 대령을 다는 초고속승진을 했으며 엄청난 권력을 가진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동구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사는등 군인으로서 흠잡을데 없는 청렴함과 인간성을 보였다. 10.26 이후 사형을 선고받았을때는 김재규를 원망키는 커녕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글을 적었다고 한다. 다음은 육군대령 박흥주 수행비서의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유서의 일부이다. -부인에게- '애들에겐 이 아빠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으며 그때 조건도 그러했다는 점을 잘 이해시켜 열등감에 빠지지 않도록 긍지를 불어넣어 주시오. 앞으로 살아갈 식구를 위해 할 말은 못하고 말았지만 세상이 다 알게 될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가정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게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의연하게 떳떳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겠소.' -두 딸에게- '아빠가 없다고 절대로 기 죽지 말고 전처럼 매사 떳떳하게 지내라. 아빠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너희들은 자라나는동안 어머니와 친척어른들의 지도를 받고 양육되겠지만 결국 너희 자신은 커서 독립하여 살아야 하는것이다. 독립정신을 굳게 가져야한다. 조금 더 철이 들 무렵이나 어른이 된 후에도 공연히 마음이 약해지거나 기죽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헤쳐나가려는 강한 정신력을 가져야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겠느냐. 자기 판단에 의해 선택하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지게 되어 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한다.' --------------------------------------- 김재규가 아니었어도 부마 항쟁을 비롯한 민중들의 힘으로 박정희를 끌어내릴 수 있었다는 의견에 대해서 굳이 제가 답변할 필요없이 댓글들로 쭉 달아주셨네요. 설혹 국민들의 힘으로 끌어내렸더라도 핏값이 엄청 났겠지요. 저 역시 그 사태를 막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평가 받을만하다고 봅니다 ---------------------------------------- 결국 평가는 지금이 아닌 훗날의 역사가 할 거라고 봅니다. 역시 지금은 너무 이르지요.
16/12/08 19:01
그당시 박정희의 권력욕이나 국가관.. 등등에 비추어볼 때, 부마항쟁의 결과는 89년 천안문항쟁때와 동일했을 겁니다.
똑같은 6월 항쟁이 일어났어도, 그걸 짓밟을 수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아래 링크는 89년 천안문항쟁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 보여줍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4/06/05/story_n_5450192.html
16/12/08 19:10
["우리는 지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제 여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피를 흘리는 것은 원치 않지만 피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는 아직 300만 군대가 있다. 20만 명이 죽는다 해도 국면을 통제하고 20년의 안녕을 쟁취할 것이다. " - 덩샤오핑, 1989.4.25 연설 중]
말씀을 듣고 찾아 보니... 자칫했으면 이 말을 1989년의 베이징 이전에 한국에서 부마 학살을 통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16/12/08 19:34
저 역시 동의합니다.
국민들은 천안문 사태처럼 짓밟히고 김영삼,김대중은 역사에서 사라졌을거라고 봅니다. 이후는 삼저호황을 통한 유신독재가 공고해졌을것이구요. 아마 1990년 초반까지 이어지다가 후반이나 2000년초쯤 박지만이 차기 대통령이 되고 박정희가 죽고 난 2010년 즈음에서야 민주화니 뭐니 온나라가 시끄러운 그런 역사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16/12/08 19:03
제가 할수 있는 모든 고려를 종합한 판단으로 김재규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하나회를 끝낸 것으로 김영삼을 3당합당을 인정하게 된게 있네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정치권력이 군을 장악하고 있다는것은 엄청나게 무서운겁니다. 큰 IF이긴하지만, 저는 여전히, 3당합당과 같은 과정없이 민주정권이 수립되었을때 군에서 무난하게 자기들의 권력을 내려놓았을거라는데에는 회의적입니다. 지금처럼 전국민의 5%가 참여하는 시위도 결국 군이 개입않게 되고, 비폭력이 가능해졌기때문에 이루어진겁니다. 물론 이들이 결코, 민주 투사나 의인, 위인이라고 생각해야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긍정적으로 보기어려운 구석도 많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보았을때,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꾸라지고 마는, 통과하기 극히 어려운 맥점을 돌파하는데, 빼놓기 어려운 역할을 한것은 분명합니다.
16/12/08 19:06
저는 김재규 없었어도 박정희정권 오래못갔다고 봅니다. 2차오일쇼크 탓에 70년대 말에 경제상황이 너무 안좋았어요. 우리나라가 광복이후 마이너스 성장한 게 딱 2번인데 그게 79년과 98년이거든요. 박정희 정권 내내 요직을 두루거친 김재규조차도 유신헌법이후에 이 정권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을정도면 일반국민들 사이에서는 인심을 잃었다고 보는 게 맞겠죠. 여기에 먹고사는 문제가 겹치면 힘들다고 봐야죠.
16/12/08 19:25
상관이 왜 없나요. 군부내에서도 또다른 쿠데타가 발생할지도 모르는데요.
박정희가 무리를 하면서도 하나회를 작정하고 밀어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텐데요.
16/12/08 19:31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민심때문에 오래가지 못했을 거라는 의견에 대해서 군분 장악시에는 그게 정권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는 의미죠. 이미 다른분들이 다른 나라의 역사적인 사실을 댓글로 많이 들어주셨습니다.
16/12/08 19:19
아프리카 수많은 독재정권들이 인기가 좋아서 버티는게 아닙니다. 군대 잡고있으면 지지자가 5%여도 버팁니다. 지금 우리와 달라요.
16/12/08 19:42
아프리카는 종교나 부족문제도 있는데 우리와 직접비교는 힘들구요. 저는 독재를 연장하면서 사회 각부분에 피로가 쌓이면 결국 터지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계기가 70년대 말 경제위기였을 거라고 봐요.
다만,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을 막은 건 인정합니다.
16/12/08 22:38
그래서 유신을 해놨죠.
70년대는 그걸로 벼텼을 거고, 70년대 말을 넘겼으면 경제 상황은 다시 좋아졌을 테니 장기 집권은 문제가 없었으리라 봅니다.
16/12/08 19:06
부산 마산에 킬링 필드 안 벌어지게 막은 거만 해도 엄청난거죠
제가 부산사람이라 여기서 +++ 가산점입니다. 더해서 반우발반계획이라고 해도 중정부장 위치에서 하기 힘들었던 일인거도 맞고 간첩조작 및 고문금지, 민주계인사 지원 등도 아무나 할 수 있었던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뒷다리로 쥐잡는 일로 벌어진거라도 역사적 의지와 합치되면 좋게 평가해도 괜찮다고 봅니다.
16/12/08 19:13
박근혜를 향한 가장 강력한 조롱이 김재규 추앙이라고 보는바,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한 분분한 평가와는 별개로 응원하는 행보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먼저 갑니다. 다가올 자유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16/12/08 19:17
사실 저도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크크크 김재규 자체는 뭐 위에서 공을 열심히 적긴 했지만 중정부장이었다는 원죄가 있죠. 근데 김재규를 지금 재평가하는거야말로 독재 세력에 대한 가장 통렬한 조롱중 하나입니다.
16/12/08 19:1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8&aid=0003786861
하다하다 이젠 별~! 친박들 용쓴다 용써 아나!
16/12/08 19:17
김재규는 박정희 죽인거 빼면 잘한게 없지요 민주주의 운동가를 억압하고 사람납치를 주도한 중앙정부보의 수장이며 박정희가 차지철에게 사랑을 쏟기 전 그의 충실한 개였을 뿐입니다.
16/12/08 19:42
제 말이요.
박정희 죽인 거 하나로 부각돼서 그 밖에 잘한 일들 조명하며 '개인적으로는 근대사에서 안중근 의사 정도로 비중이 높은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오유에 가끔 흑백논리로 김재규를 부정하는 사람 은근히 있는것 같던데 개안하세요. 아니면 까더라도 알고까세요. 단순히 박정희정권 부역자라는 사실만으로 부정하지말고' '여태까지는 저도 세간의 평이 그런데로 단순 권력 싸움에 밀려서 홧김에 박정희를 살해한 사람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런저런 글들을 읽고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최소 김재규란 사람이 치졸한 권력다툼 후 홧김에 자기 상관을 살해할만한 사람은 절대 아닌 것 같아 보이더군요. 어쩌면 안중근 의사 이상으로 존중받아야 할 위인을 매우 오해하고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조심스레 듭니다.' 이러는 모습들 웃기지 않은지. 안중근을 갖다대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최측근이나 일제 최고위층으로 계속 동조하고 붙어먹어 오다가 가치관이 심하게 어긋났든지 어떠한 이유로 틀어져서 이토 히로부미 죽였다고 그거 하나만으로도 온니 짱짱맨 하는 꼴이에요. 왜 박정희도 과거 행적이나 딴거 다~ 빼고 잘한 거만 내세우면서 '박정희는 개인적으로는 현대사에서 세종대왕 정도로 비중이 높은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가끔 흑백논리, 진영논리로 박정희를 부정하는 사람 은근히 있는 것 같던데 개안하세요. 아니면 까더라도 알고 까세요. 단순히 일본군 장교 출신 반민족행위자, 독재자라는 사실만으로 부정하지 말고' '여태까지는 저도 세간의 평이 그런데로 단순한 독재자, 살인자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런저런 글들을 읽고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최소 일신 영달만을 위해 산 사람은 절대 아닌 것 같아 보이더군요. 대한민국 기틀 닦고 성장, 발전시킨 영향력과 공헌도가 정말 어마어마해요. 어쩌면 세종대왕 이상으로 존중 받아야 할 위인을 매우 오해하고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조심스레 듭니다.' 이러지-_-a
16/12/08 20:54
안중근에까지 비유하는건 저도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도 단순히 '꿀빨다가 빡쳐서 상관살해하고 잡혀서 어차피 죽을것같으니 간지나는 대사치고 죽은 부역자'라는 정도로 치부할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추앙합시다 이런건 물론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재평가가 필요하다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16/12/08 19:24
호랑이를 잡기 위해선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되고,
더러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권력의 중심까지가야된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행했다가는 고생은 고생대로 다하고 업적은 아예 평가가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차피 부역자 소리들을꺼 진짜로 부역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지 않게끔 대중이 여론조성을 해줘야 하지 않나 싶으네요.
16/12/08 19:25
권력싸움에서 밀린 개가 질투심때문에 주인을 문거지요. 이 양반이 무슨 재평가고 자시고가 있습니까. 민주주의 어쩌고 하는거야 법정에서 한번 살아보겠다고 한소리지.. 박정희나 김재규나 그 나물에 그밥 독재자와 독재정권 실세의 관계일 뿐입니다. 그나마 박정희는 민주주의 후퇴란 과에 대하여 경제발전공로로 비벼볼 건덕지라도 있기나 하지 김재규는 뭐..
이딴 이승만국부만들기 수준의 공작 안해도 이미 박근혜는 똥됐습니다. 괜한 이런짓은 안했으면 좋겠군요.
16/12/08 19:35
법정에서 살아보려고 저런 말을 했다는건 전혀 말도 안되는데요...
그리고 첫번째 하신 발언에 대해 근거는 있으신지? 김재규의 암살에 의도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건 없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을 공작이라고 매도하시지 말았으면 하네요
16/12/08 20:16
뭐 시선은 다양하게 볼수 있으니 존중하겠습니다만 이런 재평가가 이승만 국부공작과 동일한 선은 단연코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16/12/08 19:38
이것이야말로 전두환 일파가 바랐던 반응입니다. 5공세력은 김재규를 폄훼해야 정당성을 확보활 수 있었기 때문에... 김재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16/12/08 19:45
정당성이고 나발이고 이미 국민한테 총쏜 내란죄 주범인데 뭘 전두환 일파의 모략어쩌고 하십니까.
저도 10.26 이전 이후의 국내 정세및 권력관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호기심때문에 알아볼만큼은 알아본 사람입니다. 님이 더 자세히 알아보라는 내용은 뭔지 궁금하군요.
16/12/08 19:47
그러니까 김재규가 국민한테 총쐈다는 근거는 어디서 나오는 말입니까? 지금 님께서는 논리로 안 되니까 억지부리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16/12/08 20:56
권력싸움에서 밀려서 쐈다는 건 정황을 보면 전두환이 퍼뜨린 프레임으로 보입니다. 실제론 김재규는 부마항쟁 전에 중정부장 자리 사표를 냈다가 후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된 일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부마항쟁 때문에 다시 박정희 살해를 결심하게 된 거고요. 권력욕에 불타는 사람이 넘버3였던 중정부장 자리를 사표낼 리가 있나요? 그리고 경제발전 관련해서 김재규도 공이 없지는 않습니다. 박정희가 중동 개발 지시했을 때 실무 담당하던 건설부장관이 김재규였습니다.
16/12/08 19:26
그리고 참고로 남산이 아니라 육본으로 간 판단 자체만 봐도 얼마나 멍청한지 알수 있는 사람이구요. 거기서 남산으로만 갔어도 본인욕심 없었다는 전제하에 전두환이 등장하진 않았을텐데..
16/12/08 19:26
재평가 되는게 맞다 생각합니다.
김재규가 없었으면 박씨가문이 지금까지 해쳐 먹었겠죠?(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그랬지만) 박정희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가 되었겠죠.
16/12/08 19:39
박지만이죠.. 박지만은 나름 엘리트로 후계자코스를 밟던중이었으니까요.
뭐 마약에 손대면서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박철언의 도움으로 지금은 재계순위에 들어갈 부자가 됐지만서도..
16/12/08 20:45
박지만이 재계 순위 들만한 레벨은 아닙니다. 주식평가액 기준만으로 따질 때 400대 부자에도 들까말까한데, 다른 재산도 고려하면 더 힘든지라.. 딱 중견기업 오너 정도 레벨이죠.
16/12/08 19:40
미국조차 김재규를 "민주주의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얘기를 많이 하던" 특이한 중정부장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은 분명히 있었던 사람입니다. 또한 김영삼 및 장준하 등의 민주운동가들을 도와주기도 했고요. 전두환 일파의 중상모략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16/12/08 19:49
그거야 말로 위선이고 말뿐인 행동이죠.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사람이 일생을 독재자 밑에서 일을 했겠습니까?
예를들어 노회찬이 갑자기 이재용 밑으로 들어가서 삼성의 충직한 개로 살면서 인터뷰에서 립서비스로 재벌개혁해야됩니다 외치면서 다닌다면 그때도 노회찬을 재별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실건가요?
16/12/08 20:02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1977년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고,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박정희는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위 일화 뿐만 아니라 김재규는 차지철과 같이 권력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는 일절하지 않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매우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중앙정보부의 개혁을 시도하고 국내파트를 줄이고 해외파트를 육성하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김재규에 대해 함부러 왈가왈부 하기 전에 더 알아보세요
16/12/08 20:07
그를 평가할건 오로지 '~~하고자했으나 실패.'따위의 공허한 수사들 뿐이군요. 뭐하나 이뤄진것도 없지만 계속 박정희 밑에서 꿀은 빨던 사람이구요.
참 진짜 민주화 운동 하신 분들이 보면 혀를 차겠군요.
16/12/08 20:13
함세웅 신부는 이렇게 말했죠. "악인이었지만 유신 이후부터는 의인의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라고. 음으로 양으로 민주 세력을 지원한 바가 있다는 공도 인정했고요. 모든 운동가분들이 김재규에 대해 혀를 차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16/12/08 19:49
저도 조금은 재평가 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행적이나... 이런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박정희를 죽였고... 부마에서의 유혈사태를 막았고... 법정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 했으니... 속마음에 어떤 꿍꿍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결과적인 부분만 봐도 충분히 재평가 할만하다고 봅니다.
16/12/08 19:50
김재규가 어떤 인물인진 관심 없습니다.
단지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던 사람들 앞에서 김재규 이름을 들먹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더라구요.
16/12/08 19:51
그냥 간단하게 생각해서,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의 예상대로 대승한 가운데 우연히 JTBC가 태블릿 발견해서 크게 보도를 터뜨렸다고 합시다. 그런 상황에서 야당 지지자가 시위한들 박근혜가 눈이나 깜빡 했겠습니까. 박정희가 그 당시 국민들에게 그만한 지지는 못 받았더라도 반대파를 총칼로 짓밟을 힘은 충분했습니다.
한국이 나름 평화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서 그렇지 애초에 민주화는 피로 얼룩져야 그나마 될까 말까한 것입니다. 당장 자국민을 총칼로 제압하려는 독재자를 자기 한 목숨 바쳐서 제거한 사례가 세계에 얼마나 있습니까. 김재규 개인에 대한 평가야 다양할 수 있는데, 적어도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려야 할 독재자를 맘대로 죽인 놈은 재평가 가치도 없다라고 하시는 분들은 생각을 아주 잘못하고 있는겁니다. 그런 사고방식은 도대체 사람을 위해 정치가 있는건지 정치를 위해 사람이 있는건지 주객이 전도된거죠. 사람 죽이려는 독재 수괴를 죽인게 의로운 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의로운 일입니까?
16/12/08 20:00
지 분에 못이겨서 독재 수괴를 죽였는지도 잘 모르겠고,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자기 목숨 하나 죽고 다른 민초 수천내지 수만을 살렸다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평가 받을만 하죠. 적어도 독재자의 살해 대상이 될 뻔했던 부산 마산 시민들에게만큼은.
16/12/08 20:09
박정희를 암살한거 잘했냐?=어 잘했어
근데 그게 의롭고 정의로운 행동의 발로였나?=아니 같이 꿀빨던 주제에 지가 무슨 정의를 논해? 이정도라는 겁니다.
16/12/08 19:53
거시적으로 보면 김재규 개인의 의협심이 박정희를 쏜 게 아니라, 이미 정권의 동력이 상실되어 만들어낸 파열의 극한에서 김재규의 암살이라는 현상으로 표출된거지요. 위에 다른 분도 언급했지만 경제 위기도 있었고 (사실 부마항쟁의 가장 중요한 이유기도 합니다), 당시의 박정희 인기는 그다지 공고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복고 붐이 일어난건 김영삼 김대중 정권의 패착이후 부터입니다.
16/12/08 19:57
부산사는 제 입장에선 김재규는 의사입니다. 김재규가 없었다면 부산과 마산은 쑥대밭이 되었겠죠. 아마 제가 태어나지 않았을수도 있습니다.
16/12/08 20:04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면 저는 김재규 개인에 대한 재평가에는 별관심이 없습니다. 참고할만한 자료도 부족하구요.
제가 문제삼는 건 김재규가 없었다면 박정희를 못 끝냈다는 주장입니다. 독재정권에 대항해서 싸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은 의미가 없고, 오직 김재규의 총탄만 의미가 있었다는 일종의 영웅사관이잖습니까. 이렇게 보면 역사가 너무 허무해집니다. 우리가 가르쳐야할 역사도 아니구요.
16/12/08 20:14
김재규를 좋게 보는 사람들이 독재정권에 맞서싸운 사람들의 업적을 무시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그 민주화 작업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수 많은 사람들이 촛불 들고 비폭력 집회 한다고 이뤄지는건 더더욱 아니었고, 그 엄혹한 시대에 얼마의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할 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반드시 아래로부터의 저항만이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 편협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김재규의 행동이 결국 전두환 정권 탄생의 큰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더욱 정통성이 없었던 전두환 정권은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나게 됐죠.
지금 김재규에 대한 근거없는 폄하도 전두환 정권의 지속적인 평가절하가 가미된 것을 생각해 봤을때 군부정권의 몰락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절대 부인할 수 없습니다.
16/12/08 20:29
전 아래로부터 저항만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김재규 없었으면 아직도 박씨일가 치하에 살고 있을거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을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김재규의사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아래로부터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16/12/08 21:00
가르치기에 허망한 역사라서 문제 삼는 건 더더욱 문제 있는 거 아닌가요? 역사란 건 사실을 전달하는 거지 민족이 위대하다든가 시민의 힘이 위대하다같이 다른 의도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김재규가 아니었으면 박정희를 못 내렸다라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면 whynot님의 의견에 수긍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단지 그 총탄의 평가때문에 문제삼는거라면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총탄이 결정적 작용을 했더라도 수많은 시민들의 노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수많은 목소리를 외면하고 계속적으로 억압하는 박정희의 행태가 총살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고요.
16/12/08 20:05
저는 김재규의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기수로 나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의 입을 통해 조금 더 입체적으로 유신시대를 평가할 수 있었을꺼라 생각하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살려둘 이유가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의사와 테러리스트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과와 오가 너무 명확하고 충돌한다고 생각합니다.
16/12/08 20:07
단순 부역자로 보기 애매한게 김재규는 쿠테타 멤버도 하나회 멤버도 아니었죠. 이종찬 계열로 그저 나라에 충성하고 지키려는 정통 군인이었고, 박정희가 김재규를 중정에 강제로 군에서 예편시켜서 앉힌건 고향 후배고 나름 군내서 실력도 있고 인망도 있는 이를 끌어줬다기 보다는 그가 확실한 2인자를 거세하고 3인자 미만들이 2인자가 되기 위해 싸우는 그런 식의 인사와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었죠.
이미 군에 있을때부터 박정희의 전횡과 독재에 실망해 여러번의 미수 계획이 있었고, 본인도 원치 않는 자리에 가는것을 탐탁치 않아했으며, 들어가서 사실 서슬 퍼런 정권 하에서 중정 부장이라 해도 할수 있는것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간첩 조작을 그만두고 고문을 막고 민주화 인사들을 후원하는등 할수 있는걸 한 양반인데 어차피 거기서 누릴걸 다 누린 부역자- 이런 이야기는 좀 너무 나간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재규 사후 재산이 얼마가- 하고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십거리가 있더군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김재규의 개인 소장품에서 나왔다고, 그 유명한 화백의 비싼 그림을 수집할 정도면 얼마나 착복을 했고 부패했겠는가 하고 전두환이 널리 널리 공표했는데... 아시다시피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가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계속 주장해왔고 최근 미인도는 천경자의 작품이 아니라는 권위있는 기관의 감식 발표가 떴던가요?
16/12/08 20:44
검찰 수사중이고, 수사 과정중 프랑스 전문 업체에 의해 위작 판정은 났습니다. 하지만, 아직 수사중이고, 법적으로 확정된건 아닙니다.
16/12/08 20:07
1980년 5월 23일이면 1212군사반란 ,517내란 ,518민주화운동 후인데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라니... 신문도 안보여줬나... 아니 신문에도 안나왔겠죠...?
16/12/08 20:10
그 당시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친절하게 TV나 신문 반입시키진 않았죠. 광주 민주화 운동의 경우는 아예 밖에 있는 민간인들도 대부분 몰랐는걸요.
16/12/08 20:16
그때 당시의 인권수준이야 처참했죠. 동네 양아치 같아보인다고 사람 데려다가 줘패고 정신이상 만들어버리던 시절보다도 훨씬 전이니.
죄수에게 신문이나 티비 라디오등은 아예 제공된다는 개념조차 없었겠죠...
16/12/08 20:07
현재까지의 생각: 약간의 재평가는 필요하나 열사 수준으로 극단적으로 평을 바꾸는건 이르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함.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인간적인 면모와 갈등과 약한 모습은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들은 초인이나 신이 아니고 인간이니까요. 그러나 어쨌건 그런 약함 속에서도 의지를 발휘하여 최종적으로 결심과 행동을 이끌어냈기에 존경받고 높이 평가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재규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만 가지고 생각하면 그런 투사 '워너비'까지는 맞는 것 같긴 한데 확고한 결기가 있었던건 아닌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고민 자체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그걸 행동에 옮길 정도로 확고하지 못했기에 박정희에게 끌려다녔고 일을 저지른 것도 현실적인 갈등으로 인해 고조된 감정 상태에서 홧김에 저지른 부분이 크다고 봅니다. 아마 이후에 재판 등 시간이 흐르며 '자기합리화' 과정에서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생각들이 완성된 것일거라 생각합니다. 여기까진 저와 비슷한 의견이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하고...그럼에도 결국 현실적 의미에서 독재를 끝낸 공이 있다는 점이나 단순히 부역자로만 보기엔 그 이전에도 친민주적 행보가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직 더 연구해볼만한 여지는 있는 것 같습니다.
16/12/08 20:08
아주 예~~전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김재규를 다룬적이 있었는데 꽤 괜찮게 평가되었습니다.
최소한 결과면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되어야 할 듯 합니다. 중2병 부분은...아마 위인일수록 그런 요소는 더 강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요새 중2병 드립이 사람의 꿈과 희망을 조소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고요.
16/12/08 20:29
저도 독재자를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릴수 없게 만든데서 부정적으로 봤는데, 항소이유 보충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향이 부산이기도 하고요.
16/12/08 21:08
적어도 부산시민이라면... 부정적으로 결코 볼수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김재규가 아니었다면 님이 태어나지 못했을수도 있으니까요.
16/12/08 20:33
김재규가 중앙정보부 수장임을 논하기에는 우린 어제도 티비로 김기춘을 봤잖아요. 박정희때 중앙정보부 인간이 전두환 노태우때도 한자리 차지하고 초원복집 우리가 남인가~로 박정희가 만든 지역감정을 이용해서 김영삼을 대통령 만들고 오늘날은 박정희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지요.
김기춘과 비교하면 김재규가 잘한 일이에요. 정말 잘한 일. 김영삼과 상도동계는 마지막 죽는날까지 군부독재와 싸워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들 하시겠지만 김기춘을 보면 야합도 이런 야합이 없고 유신 부역자들 같습니다. 한자리 하겠다고 청문회에서 박근혜 비호하는 한광옥, 박근혜쪽으로 간 한화갑, 김경재 같은 사람들도 유신 부역자
16/12/08 20:37
왜 확정적으로 단정짓고 다른쪽은 멍청이 취급하는 분들이 보이는지...
인간은 입체적인 동물이에요. 보고싶은 면만 보고 평가해서는 절대 진실에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16/12/08 21:14
지금까지는 안좋은 점만 부각되어 왔지만 최후에는 국민을 위한 선택을 했으니 당연히 재평가 되어야지요. 안중근급의 의인은 당연히 아니지만요.
선행과 악행 모두 있는데 지금까지 악행난 알려졌다면 이젠 선행도 부각될 차례인 거죠.
16/12/08 21:41
중2병 드립은 현실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소시민이 망상에 빠져 자기가 주인공인양 행세할 때 쓰는 말이지 실제 생각을 자기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한테 쓸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자기랑 동등한 수준이라 생각하고 비꼬는게 중2병이라 할 만 하겠네요.
16/12/08 21:51
확신 할 수 있는건 많은 자료들이 나올수록 재평가가 수십번 이뤄 질겁니다.
광해군이 그랬던 것 처럼요...(요즘은 부정적으로 다시 재평가 되고 있죠..) 역사라는게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자료가 나오면 나올수록 재평가 되는거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해석을 볼 수도 있는...아마 예상만 해보면 어둠과 빛을 둘다 해석 가능한 묘한 인물로 평가 될 것 같긴합니다.
16/12/08 22:08
박정희의 망령을 태어나게 만든 사람이라 별로 탐탁치는 않지만,
박정희를 내비 뒀다면 캄보디아 같은 일이 벌어졌을수도 있을거고. 애매하지만 열사라고 치켜세우기에는 아직 좀 더 지켜 봐야 한다고 봅니다.
16/12/08 22:14
긍정이건 부정이건 이미 논할 만큼 논해진 내용들의 환기같네요
새로운 평가엔 새로운 사료,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텐데.. 아직은 불충분한 듯한
16/12/08 22:15
사실만 적어보자면
지금 닭이 대통령이 된걸 보면 박정희가 죽은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걸 다 가진 인물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독재자를 죽였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죠 김재규가 무조건 잘했다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가만히 있었으면 모든걸 누렸을 인물이 독재자를 죽인건 엄청난 일이죠 그리고 김재규 주위 사람들 증언과, 간첩조작 및 고문금지 등을 본다면 그냥 무시할만한 인물은 절대로 아니라고 봅니다
16/12/08 22:21
의사까지는 아니지만 재평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도 제5공화국과 기타 자료들을 부지런히 다시 찾아보면서 평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권력의 핵심중에 핵심이라는 정보조직의 장이었다는 점에서 박정희정권의 이득을 누리지 않았다고 할 수 없으며 그것은 김재규라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유신 이후에 해온 행적을 보면 신기한 점은 분명 존재했으며, 끝이 존재했어야 할 박정희의 군사정권이 무기한 연장되는 상황으로 변하면서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부마항쟁 전에 직접 정보를 취합해본 결과는 피를 볼 수 있고 그것은 정권의 몰락이 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그당시 권력층중에 몇안되는 인물이었다고 봐야하니까요. (차지철은 탱크 드립에 몇백만쯤이야 라고 하고 있었고, 박정희는 중정이 무르다고 디스하고 있고...) 물론 10.26을 놓고 본다면 차지철이라는 존재가 급부상하며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기도 했던점이 있어 분명 그날 밤의 사건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의도했다기보단 우발적일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통상 10.26을 다룬 미디어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부분은 "고로시마스(.....)", "너 이... 건방져!", 신발조차 벗고 다니다가 부하들의 신발을 신는 장면이구요. 충분히 사전에 준비됐다고 보는 시각중에 하나가 안가에 정승화 총장을 불러서 대기시키고 있다가 함께 육본으로 간 점인데, 현재도 이 육본행에 대해선 김재규 최대의 실책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부분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막상 일저지르고 왜 남산으로 안갔는지에 대한 부분은 미스테리로 남아있으며 덤으로 그날 함께 있었던 김계원 비서실장의 입을 왜 막지 않았는지도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차라리 완전히 제압을 했으면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은 벌어졌고, 어리둥절하던 상황에서 대통령의 죽음을 빨리 눈치챈건 그당시 2대 정보조직(차지철은 별도로 경호실에서 사설 정보조직을 굴려서 3대라고도 합니다만..)인 보안사령관 전두환이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헤드가 전두환이 됐으며, 관련해서 일본에선 전두환이 사실상 실세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었죠. 그리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수사결과가 나온 부분들이 있는것은 어느정도 사실이라고 보기 때문에 재평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10.26 이후에 본인이 실권을 잡고 정국을 흔들지 않으면서 민주화로 가는 길만 열어냈다고 하면 김재규는 구국의 영웅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김재규는 박정희 정권에서 실세를 잡고 이득을 누린 점과, 일을 벌인것은 좋았는데 뒷수습에서 묘하게 멍때리다가 전두환으로 가는 또 한번의 군정의 길을 열어버린 부분이 저평가 되는 부분이겠죠.
16/12/09 08:30
말씀하신대로 정승화 총장하고 김정섭 차장을 안가로 불러들였고 부하들 시켜서 경호원 사살을 지시했기에 우발적이었다 보기가 참으로 애매하고 그렇다고 계획적이었다고 보기엔 사후대처가 너무도 엉망이었죠. 물론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과 실세였던 경호실장을 쐈으니 본인도 정신이 없었겠지만...... 박정희의 시대를 마감했다는 공로와 함께 전두환을 위시로 하는 신군부가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독재정권 부역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사도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16/12/08 23:38
의사가 오점 없는 사람을 뜻합니까? 의로운 명분에 따라 행동해 목숨을 바쳤고 사람들이 그것을 의롭다고 생각하면 의사겠지요.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슈타우펜베르크도 한때 나치를 지지하고 히틀러에게 복명하던 장교였으니 부역자이며 의사가 아닌가요? 나치가 전 세계를 제패할 것 같던 시기가 아니라 전황이 불리해지던 1944년에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으니 순수하지 못한 건가요? 그 동기가 어떠하던지 간에, 설령 순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죄책감이었든 독재권력의 폭주에 대한 불만이었든 가만히 있으면 지금의 김기춘처럼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살았을 김재규의 거사의 이유가 개인의 명리를 위해서가 아니며, 종신 집권을 꾀하는 독재자의 처단에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를 의사, 혹은 열사로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16/12/09 00:12
저는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건 보다 오히려 김재규와 장준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재평가 할만한 인물인가 호기심이 들었네요
확실히 장준하의 영향을 받았고 또 그 영향력 안에 있던것은 아닐까 싶은 추측을 해 봅니다 그리고 김재규의 부역에 대한 이야기는...글쎄요 이시영 초대 부통령도 이승만정권하에 몇년간 부통령을 지냈는데 부역자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단순 직책보다 그 직위에서 행했던 행적을 들여야 볼 필요는 있는것 같습니다
16/12/09 01:05
박정희 박근혜 빠들이 부들거리는것 만으로도 김재규는 의사입니다. 십사년째 존경하고 있습니다 김재규 장군님
그리고 박정희 옹호하는 몇안되는 분들 이제 내가 노무현대통령이 핍박받을때 느꼈던 마음을 너네들이 받을 차례입니다. 그쪽턴 끝났으니 이빨이나 꽝 무시죠
16/12/09 05:25
박정희의 고향후배 군후배입니다. 직장 후배이자 고향후배라는게 아직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시대에, 그것도 군 출신의 권력자 사이의 일이에요. 그걸 그렇게 쉽게 저버릴 수 있습니까? 까놓고 말해 10살 많은 고향선배이자 (직업)군 선배앞에서 꼼짝 못할 사람들 아직도 많을텐데요? 게다가 어쨌거나 자기한테 신뢰를 주던 선배이구요. 그런 상황에서 단순한 부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물며 김재규는 쿠데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가담도 안한 사람입니다. 재평가 하자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게 아니에요. 박근혜의 패악질 때문에 지나치게 급작스러워진 감은 있지만.
16/12/09 05:26
...까지는 진지빨고 한 이야기고... 재규어 장군님 존경합니다... 내년 5웡 24일에 꼭 성묘가겠습니다...
묘하게 기일이 노무현과 하루 차이더라구요. 만약 같은 날이었다면, 어땠을까 궁금궁금.
16/12/09 09:50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말이 필요없다는데 많은 분들이 만약~을 놓고 얘기하시네요.
저도 만약~을 넣는다면, 김재규의 사살 없이도 박정희는 제 3자에게 맞아죽거나 국민봉기로 무너지고 해외도피라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1. 박정희는 그 당시 실력으로 보면 부마사태 진압가능했다?라는 가정 가능했을 겁니다. 다만 정권은 천안문사태직후 중국공산당처럼 계속 가능했겠는가에는 부정적입니다. 독재정권은 그 권력의 정당성, 정통성이 없기에 뭔가 가시적 업적-대부분 경제 업적-을 보여줘야하고 유신 전까지만해도 가능했죠. 그러나 유신이후 오일쇼크와 중화학 공업에 대한 과잉투자로 경제가 무척 어려웠지요. 부마사태는 경제적 위기의 누적과 독재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그 모순이 폭발했고, 정경유착으로 최소한의 경제적 과실조차 정-경으로 흘러갈뿐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이미 그게 구조적으로 진행되어 경제 상황이 호전되어도 불만을 누그러뜨릴만큼 국민에게 내어줄 과실이 없어서 불만은 더욱 커져갔을 겁니다. 중국공산당이 천안문 사태를 저지르고도 정권이 계속된 건 그 이후에도 개혁개방에 따른 과실이 인민에게 일정정도 흘러갔기 때문이지, 만약 지금처럼 전세계전인 경제 위기와 과도한 빈부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라면 얘기가 또 달라질지 모르겠지요. 2. 군부의 지지가 확고하므로 국민봉기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라는 과정 군부의 지지가 확고한 만큼 한국 사회의 다른 부문도 많이 실력이 성장해있었고, 계속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군부는 더 이상 뛰어난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무리한 진압으로 백만이나 죽어나가게 되면 사병과 초급 장교에서부터 무리가 생겨났을 확률이 큽니다. 적어도 대대장 선까지는 명령 수행이 힘들게 됩니다. 왜냐하며 앞으로 자신의 출세를 보장할 육사 외의 장교층이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3. 박정희의 정신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었을 거라는 점 육영수 피격 이후 갈수록 피폐해지는게 박정희 정신상태였죠. 그 이후 한마디로 간신배들이 날뛰는 상황이 되었고, 박씨 왕조를 세우려해도 아들은 뽕쟁이, 딸은 사이비교도...한 다디로 측근들이 봐도 노답인데다가 측근들도 충직한 사람들보다는 간신배가 실권을 잡았으니 박정희가 상왕 지위로 물러날 수도 없죠. 결국 박정희는 무리한 정책만을 펼치다가 자멸할 확률이 높았겠죠. 4. 미국이 좌시한다? 라는 가정 미국이 한국의 민주화를 바라지는 않더라도 미국의 최우선정책은 친미적인 인사의 집권이면 됩니다. 말도 안듣고 무리수만 두는 박정희보다야 말만 잘 듣는다면(전두환이 집권시 미사일 및 핵개발 포기한거 아시죠?) 노골적인 파쇼만 아니라면 충분히 손잡을 수 있죠. 미국이 해외 정권 전복시킨 정권이 몇 인데, 이러한 혼란한 정국에서 반박정희 인사와 손잡고 제거했을 가능성은 상당하죠. 다만 야당 인사보다는 군부에서 온건파와(예를 들어 김재규 정도) 손을 잡았을 확률이 컸겠지요. 5. 부마사태가 실제로 백만은 아니더라도 몇 십만은 죽어나갔더라면?이라는 가정 참 끔찍한 가정이긴 한데 그러하다면 박정희 사후 30년도 넘게 지속되어온 영호남 갈등은 물론, 지역 구도 자체 성립이 어려웠겠지요. 해방이 민족 자체의 역량보다 해외역량이 압도적이어서 이후 분단이라는 모순을 배태한만큼, 국민의 힘보다는 김재규의 한 방이 박정권의 종말에 압도적이었던만큼 그 이후 전두환의 등장과 지역분할이라는 모순을 지금까지 이어받은게 아닐까요? 인생사, 역사 모두 공짜란 없는 법이고 그 대가는 어떤 형태로든 치루는게 정답이니까요. 김재규의 공이 계획이냐 우발적인 것이냐에 따른 논란이 많은 식으로 만약~이라는 얘기를 이루어내는데 그냥 그대로 봄이 옳다고 봅니다. 너무 기록이 미미해서 그의 진심을 알 수도 없고, 이후 정권도 잡지못해 그 진심을 확인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냥 역사상 폭군을 암살한 수많은 암살자 가운데 하나라고 역사는 판단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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