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에 군주론의 집필가로 명성을 높인 마키아밸리는 피렌체의 제 2서기국 국장이었고,
어느 사이에 대통령의 보좌관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현인 로렌초 메디치 사후 메디치의 통치가 붕괴, 뒤이은 사보나롤라의
광신적인 금욕정치가 무너진 이후 공화정으로 이행한 불안정한 상태. 그의 직속 상관인 제1서기국 국장은
조직의 수장에 걸맞는 당당한 배경과 권위, 과묵한 성품을 지닌 상급자였고, 그가 보좌하는 통령은 위기에 빠진
유력자들이 중재안으로 선택한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자였습니다.
뛰어난 인재가 참모이자 비선으로 활약하기에 적합한 이 상황에서 그는 만족스럽게 일했습니다.
대통령 보좌관과 제2서기국 국장을 겸하면서도 보좌관의 급여인 214 두카토가 아닌 제2서기국 국장의 190두카토를
받는 것에는 불만이었지만.
이탈리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용병으로 대리전을 치루는 이탈리아의 관행을
제거해야한다는 생각을 확신한 마키아밸리는 국민병을 실현시키기 위해 각지의 실권자를 다방면으로 설득하였고,
결국 그가 강력히 주장했던 국민병이 모집되어 피렌체의 염원이던 피사 입성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도시국가간의 국지전이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교황령 등의 이권이
개입한 전쟁에서 피렌체의 국민병은 참패,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 복귀하였고, 그의 직속상관인
제 1 서기국 국장이 살아남은 것에 비해 정권의 주요참모이자 비선이기도 했던 그는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고문을 동반한 수감 생활 끝에 사면된 마키아밸리는 다시 공직에 나서려는 의욕으로
충만해 있지만 왠걸 잘 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쫓아낸 메디치 가문에게
군주론을 헌정하기도 하지만 메디치는 그에게 몇가지 집필업무 등을 맡기면서도 간절하게 바라는 공직이나 정치업무와는
완연히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메디치가 다시 무너지자, 이번에야말로 공직에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공직선거에 나서지만 큰 격차로 패배합니다.
한때의 카테리나 스포르차와 체사레 보르지아를 비롯해 각지의 명사들과 인연이 있었으며
교황군 사령관과는 개인적으로도 밀접한 관계, 과거부터 당대의 관료들에게 뛰어난 식견으로 인정받았던
그가 공직으로 복귀하지 못했던 이유는 知의 사람보다는 忠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활약할 수 있게 한 대통령이 추방될때 좋은 자리와 동행을 제안받았지만 함께하지 않았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새로운 권력자 메디치에게 다양하게 접근하려 시도했으며, 메디치가 무너지자 다시 새로운 정부의
공직에 입후보하여 낙선합니다. 그리고 그는 열흘만에 숨을 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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