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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24 09:05
밑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논리의 비약이 많은 데도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정자라는 위치가 생각해보면 힘든 자리인 것 같아요. 김영삼 전 대통령도 그렇고, 지나간 인물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살아왔는지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좋은 자리인것만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15/11/23 12:52
문제가 다르면 답이 달라야 하듯
반란과 혁명 모두 이 시기를 이끌기 위한 방법에 불과했음을 잊으면 안되겠죠. 사회 변화의 필요성이 더욱 절박해지거나 아니면 변화를 주도할 강력한 동력이 생기게 되면 그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바뀌겠지요. 지금이 그런 절박한 시기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15/11/24 09:02
네. 역사의 고비마다 조상님(...)들은 다른 방식의 해답을 찾아오셨으니까요. 이젠 우리 세대가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겠죠. 그 방법이 굳이 반란이나 혁명을 통한 방법으로 한정되어 있다고는 저도 생각하지 않고요. 다만 절박함의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사실 저도 고도성장의 끝물을 빨고 자란 세대라 잘 몰랐는데, 요즘 제가 강의 나가는 수업의 어린 친구들을 보니 굉장히 심각하게 문제를 받아들이더라고요. 제가 그 나이또래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적잖이 충격을 먹고 있습니다.
15/11/23 16:22
변화를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방법일 수록 최소한의 피해로 변화를 이끌어 내겠지요 A아니면 B 둘중에 선택해 같은 폭력적인 방법외에 많은 선택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선 먼저 자기만의 이득 또는 우리편만의 이득이 아닌 공익을 생각해야하고 그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겠죠 이 글은 내용은 둘째치고 설득하기 위한 글로는 부적합해보입니다 (이 것도 벌점이려나..? 분란조장글이라면서 소신있는 발언에 벌점주는 행태에 마치 유신시대를 떠올리게 되는건 어떨 수 없네요)
15/11/23 16:46
죄송합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습니다..
지나친 억측에 가까운 논리전개라는 제 느낌이 맞았네요 미국과 한국 생활에서의 차이를 설명 하면서 일터밖에서의 자유를 예로 들었는데 미국이든 한국이든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범죄가 아닌이상 원하는 자유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미국 한국의 차이가 극단적 몰인간성이라고 표현될 만큼은 아니고 자본주의의 실패를 논하면서 든 근거는 딱한가지 본인의 미국생활에서의 일터밖에서의 자유인데 논리적 연결점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 빈약한 논리구조속애서 결론은 반란이나 혁명의 필연성에 대해 말하는데 결론의 폭력성 또는 끔찍한 결과에 비해 근거가 개인적이고 또 설득력도 부족하네요... 뭐 이런글에 추천에 좋은 글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자유겠지만.. 정상적인 논리로 판단하시는 분들이라면 긴글에서 건져낼만한것이 없다는 것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15/11/23 23:32
아이고. 긴 글을 무리해서 읽어주시면서 이렇게 반박을 해주시니 저로서는 노고에 감사드릴 뿐이고요. 일단 이 글의 장르는 [푸념글]입니다. 주제는 [살기 겁네 힘드네]이고요. 포장은 난삽하지만 주제는 단순합니다. 푸념글을 논설문처럼 써 놓은게 제 잘못이네요.
그리고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은 저로서는 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의미없는 야근 강요에 주말, 휴일 없이 애니콜 해대는 한국의 직장풍경을 보면서 직장 밖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이 없다니요. 괜히 손학규씨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온게 아닐텐데요. 그리고 자본주의의 실패를 논하는 사례로서 한국과 미국을 대비한 이유는, 적어도 미국에서는 저녁을 보장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빈민, 저소득층의 삶을 제가 직접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제가 관찰한 상당한 수의 샘플들에서는 이런 차이가 있더라고요. 자본주의의 실패를 이야기 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일터 안과 밖이 분리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게 제 생각이고, 이게 바로 미국에서의 제 경험을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제 생각과의 논리적 연결점입니다. 그리고 글을 읽으셨으면 느끼셨겠지만 혁명과 필연성을 전 리퍼런스를 따라서 구분했습니다. 삶의 필연성에서 오는 것은 반란이고, 혁명은 삶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죠. 그리고, 그런 혁명이나 반란이 폭력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인류가 역사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동원한 혁명과 반란을 많이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요. 마틴 루터 킹의 흑인 해방운동 또한 흑인.유색인종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고 불릴 수 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몹시 언짢게 생각하는 일에 대해 한마디 드리자면, 본인의 생각으로 [정상적인 논리로 판단]하시는 분들을 재단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인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 외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논리로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시는 것 같아 몹시 불편하군요.
15/11/24 08:19
푸념글 제목이 자본과 탈인격이군요...
푸념글이라면 결론 또한 개인적 감상일테니 혁명과 반란같은 단어 또한 개인의 상태에 대한 비유적표현이라고 보면 될까요? 푸념글에서 사회적변화를 요구하진 않을테니 반란과 혁명으로 인해 나타날 피해를 고려한다면 개인의 감정상태는 최대한 자재 하는게 맞는거죠 오늘은 혁명을 하고 싶은데 내일은 그냥 햄버거나 먹으러 가고 싶은 기분이 될지 누가 압니까 개인적감상인 푸념글이라고 하시면 그 설득력 의도나 설득력도 크지 않을테니 데가 정상 비정상을 논한 것도 과한 표현이 되겠지만 누가봐도 푸념글로는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본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있다가 달겠습니다
15/11/24 08:58
푸념글 제목이 자본과 탈인격인게 뭐가 문제인가요.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개인적 감상 맞습니다. 이 글이 무슨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글도 아니고요. 푸념을 늘어놓은 끝에, 아, 정말 어떻게 되려고 이러냐 라고 결론을 맺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푸념글에서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게 그로 인한 피해를 고려할 때 개인의 감정상태를 자[제]한다는 말씀부터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제 글도 논리적 비약이 있는건 인정하는데, 후후하하하님의 댓글도 논리적으로 쉽게 이해가 가는 구조로 쓰이진 않은 것 같네요. 그리고 하나 더 지적하자면, 누가 봐도 푸념글이 아니라고 하시는 부분에서 또 자기를 일반의 기준으로 놓으시는 오류를 저지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길게 키배를 하고싶으시다면 제게 쪽지를 보내주시거나 아니면 채팅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하죠. 자게에서 배설에 가까운 글을 써낸 제게 일차적인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게에 올려진 글에 개인적인 키배를 하면서 다른 이용자분들 눈이 찌푸려지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15/11/24 10:36
일터밖인간에 대한 방종에 가까운 자유가 단순히 야근 없는 저녁을 비유한거라면 단어 선택이 너무 아쉬운데요..
온라인이라서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푸념글은 '~가 힘듭니다' '~를 겪었다' 정도로 제목부터 개인의 감정이 섞여있는 글이라는것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쓴이의 감정을 모두가 느껴야 되는 건지 아니면 본인 혼자느끼는 것이고 공감해줘야 하는건지 판단 못한 상태에서 혼란을 겪게 되겠죠 예를 들면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가 날뻔했고 그 분노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글쓰신 분처럼 한다면 인간과 대중교통의 불필요성 교통사고만 유발하는 모든 차는 없어져야 합니다 이런식의 감정섞인 글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 정말로 차는 없어져야 하는구나 저분이 저렇게 강하고 진지하게 격식을 차리면서 저렇게 주장하는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오해할 수가 있죠 남을 설득하려면 최대한 중립성을 갖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조심합시다는 모두가 용납하지만 내가 다니는 동네는 ***에서는 운전을 조심합시다라고 하면 공감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겠죠 결국 설득력이 떨어지는 글이 되구요 단순 키배로 생각하신다니 안타깝네요 배틀에는 공감이 있을 수 없고 제 생각을 공감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전 긴글 읽느라 참 힘들었는데 말이죠..
15/11/24 10:48
죄송한데 글의 줄바꿈 등이 정렬되어 있지 않아 제가 제대로 글을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일단 긴 글 읽으시는데 힘드셨다니 죄송하고요. 푸념글이 갖춰야 하는 형식이 어떤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좀 더 감정적인 부분을 드러나게 적지 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형태로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불만이 없다는 말은 아니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표현하는 방식이 건조하다고 해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논조를 통해서 글쓴이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으니까요. 제 글이 그 부분에 대해서 미흡한 점을 지적하신 것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 글재주가 모자름을 탓해야겠죠.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생각을 공감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하시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여쭈었습니다. 어떤 부분을 지적하시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 제가 정확히 이해가 가지 않는데 제가 후후하하하님의 생각을 공감하기는 더욱 힘들죠. 글을 통해 의사소통이 전개된다는 전제 하에 공감 여부를 결정할텐데 말씀하신 논조가 정확히 무엇인지 윗윗 댓글과 윗댓글에서는 알기가 참 힘드네요.
15/11/24 10:51
이렇게까지 길게 어떻게 보면 글쓴분이 무안해질정도로 댓글을 다는 이유는 혁명과 반란도 가능하다는 또는 필연적이다라는 주장은 지금처럼 is가 성행하고 불안정한 현실사회에서 위험성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푸념글에 올릴만한 단어치고는 너무 내포하고 있는 위험이 커요 제가 변화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변화에는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굳이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위기의식을 가질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사회가 엉망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15/11/24 11:08
제가 혁명과 반란을 인용한 부분은 한나 아렌트의 정의를 통해 그 두 가지가 어떤 방식으로 개념적 차이를 보이는지를 표현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이런 두 가지의 다른 움직임이 현대 사상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결과물을 낳았다는 사실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기도 하지요. 그리고 저는 혁명과 반란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혁명과 반란이라는 두 가지 개념적 움직임이 무엇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는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필연성에서의 해방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자유의 확립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는거죠. 정확히는 위정자들이 그런 고민을 왜 하지 않는가에 대한 불만이고요.
그리고 이런 논의 자체가 IS의 성행과 더불어 무슨 위험성의 증대를 갖고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9/11 테러 이후에도 문명의 충돌 따위를 이야기하면서 현실 사회가 나아갈 방향성과 지금 닥친 문제점의 역사적 근원점을 찾으려는 논의가 활발했는데요. 오히려 오늘날 불안정한 사회에서 이런 불안정성의 근원에 대해 토의하고 방향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사회가 이런 문제를 겪고있지않나 싶습니다.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이 크다는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단어의 위험성, 사회 부적합성 따위를 이야기 하면서 검열을 하던건 맨 윗댓글에서 말씀하시던 유신시대에나 하던 일이죠. 우리가 폭탄과 총이 등장하는 게임을 자주한다고 해서 잔인하고 폭력적인 인간이 되는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기의식을 가질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엉망이 아니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통계지표를 보시라고 하는 말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도시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국가 중 출산률 최하위, OECD 국가 중 자살률 최상위권임을 주지하시길 바랍니다. 스웨덴이 과거 비슷한 상황을 겪었지만, 적극적인 사회보장 정책을 20년이 넘게 추진한 끝에야 극적으로 두 가지 지표에서 선회를 했다는 점이 무엇을 말하는걸까요.
15/11/24 19:20
이건 한나 아렌트의 단어가 익숙하지 못하여 이해가 잘안되는 것도 있지만 전달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인정하셨듯이) 반란은 체제의 변화가 아닌 기본적인 욕구의 불만족에서 나오고 프링스혁명처럼 정부를 대상으로 한 무력에 가까운 행동이고
혁명은 기존의 체제를 바꾸는 예를 드신 미국의 투표 없이는 세금도 없다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기존 정부의 체제를 다른 시각으로 엎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는데 이게 맞는거라면 그리고 반란은 인간성 다시말해 현재 야근수당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야근을 시켜서 저녁을 자유롭게 누리고 싶은 욕구를 제제함으로 취할 수 있는 예를드신 프랑스혁명과 같은 현정권을 뒤집어 엎는것이고 혁명은 전제정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민주주의처럼 전제정처럼 느껴지는 현정권을 다시 한번 민주주의 국가로 만든다는 것이겠죠? 어떤 것이든 폭력이 수반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이게 아니라면 우리나라가 필연성의 확립이나 자유의 확립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몇가지 실제적인 예를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위정자라고 부르신 그들이 만약 이글을 본다면 조금더 이해하기 쉽도록 말이죠.. (그런데 위정자가 누구죠.? 이것도 예를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15/11/24 15:32
글쓴 분보다는 계속 헛딴지를 걸고 계시는 후후하하하님이 여지껏 무안해하지 않으시는게 좀 이상하네요. 죄송하지만 헛스윙도 세번정도 하셨으면 다음 타석을 기다리며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오히려 김수면님의 토론자세를 보고 좀 배우게 되네요. 나였으면 저런 댓글에도 꾸준히 배려하려 할 수 있었을까 싶군요.
15/11/24 16:37
그런 개인적 감정을 느끼셨다면야 유감이죠
개인적 감정을 어떻게 느끼던간 자유시니까요 헛딴지라고 하는건 글 내용과 제가 하는 지적들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다는 댓글인거겠죠?
15/11/24 22:02
혁명이 필요하다 느낄 때 혁명이 필요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후후하하하님께서는 토론의 첫 단추부터 완전 잘못 꿰신 것이 내 생각은 지금 혁명이 별로 필요한 것 같지 않다 라고는 말하실 수는 있지만 이러이러해서 그리 말하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것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 것이 수면왕김수면님의 푸념이든 선동이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죠. 후후하하하님께서 정권을 옹호하던 수면왕김수면님께서 정권을 비난하던 각자의 자유지만 정권을 옹호하고자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는것은 민주주의 하에선 절대 안될 일입니다. 역사상 어느 혁명이든 모든 시민이 공감하고 동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의 다수가 현실에 불만을 품고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면 권력을 쥐고 있는 정권도 자본가도 있을 테고 관심없는 사람들도 있을테죠. 혁명은 결론적으로 폭력적이고 끔찍하다는 말씀엔 뭐 반론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지만 헌법의 핵심인 전문에 3.1운동과 4.19혁명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왜 들어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라며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에 반하는 말씀은 그 뜻을 아는 사람들에겐 헛웃음거리밖에 되질 않습니다. 마치 님께서 이해 못하겠다고 상대성이론은 허구다 라고 말씀하시는것과 같이 말이죠. 혁명에 물론 폭력이 수반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 폭력의 정도는 시민이 아닌 정권의 폭력성에 비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로 알아들어 하야하거나 체제를 바꾸는 대대적 개혁으로 시민의 불만을 해소해준다면 폭력이 수반될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덕분에 한나 아렌트와 저서등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반세기넘게 전의 사상가여서 그런가 그냥 상식선에서 이해가는 얘기들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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