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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6/06 17:31:39
Name Naomi
Subject [일반] 20세기 팜므파탈의 원형, <판도라의 상자>
휴일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저도 슬쩍 거들어 봅니다.

당신에게 팜므파탈이란 무엇입니까?

   팜므파탈. 한국어로 “치명적인 여자”라고 해석이 되는 이 단어는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몰고 가는 수많은 여성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팜므파탈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팜므파탈의 외형적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은 재미있습니다.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떠올려봐라고 요청하면 보통 이렇지 않을까요?

   “검은 머리에 고양이 같은 인상. 짙은 립스틱.”

   이러한 팜므파탈의 이미지가 자리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물으신다면, 20세기 초반 아주 위대한 영화에 출연한 한 전설적인 여배우 덕택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판도라의 상자>, 그리고 루이즈 브룩스


[1920년대의 루이즈 브룩스의 사진. 국내에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인기인 그녀가 바로 그녀]

  
[영화 <판도라의 상자>]

   1929년에 개봉된 영화 <판도라의 상자>는 게오르그 빌헬름 파브스트의 대표작이자, 무성영화의 걸작 중 하나로 이야기 됩니다. 이 영화는 독일의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두 작품 『지령』과 『판도라의 상자』를 묶어서 영상화 한 것입니다. (두 연극의 주인공은 루루라는 동일인물이기 때문에 연극을 할 때도 두 연극을 묶어서 “루루의 연극”으로 공연되는 사례가 더 많습니다.)



   [내용 스포일러가 시작됩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싶으신 분들을 아래 내용을 미리 읽지 않으시길]



   “루루의 연극”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끊임없이 남성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루루가 결국 스스로도 파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루루는 쉬골흐라는 범죄자의 딸로 길거리 생활을 하고 있다 부유한 신문사 사장 쉰에 의해서 구해집니다. 쉰은 루루와 연인관계가 되지만, 자신보다 더 사회적으로 적합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병원장 골 박사와 결혼시킵니다. 루루는 그다지 헌신적인 아내가 아닙니다. 루루는 젊은 화가 슈바르츠를 유혹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루루를 보고 골 박사는 졸도하여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하여 루루는 불륜 상대였던 슈바르츠와 결혼하지만 슈바르츠가 곧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고 그는 자살합니다. 루루는 쉰이 귀족 여성과 결혼하려는 것을 방해하고, 결국 쉰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루루는 결혼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쉰의 아들인 알바 포함;), 이를 참다못한 쉰은 그녀에게 권총을 건내고 자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루루는 건네준 권총으로 쉰을 쏴버리고 살인죄로 기소됩니다. 그러나 동성연인 관계인 게슈비츠 백작부인의 도움으로 빠져나가 자신이 살해한 남편의 아들인 알바와 파리로 사랑의 도피를 합니다. 알바와 루루는 그곳에서 결혼하고 흥청망청하고 살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의 협박에 의해 결국 한 푼도 없이 런던으로 도망치게 되고 그곳에서 생계를 위해 몸을 팔다가 잭 더 리퍼에 의해 살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연극의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만, 연극에서 루루가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주변 사람들을 유혹하고 파괴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그려진다면, 영화화 되면서 조금 달라진 점들은 루루를 조금 더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연극에서는 루루가 쉰을 정말 살해한 것으로 그려지지만, 영화에서는 쉰이 루루에게 자살을 강요하다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또한 루루가 파멸로 이르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알바의 도박 문제로 보여줌으로서 루루의 파멸의 문제가 루루보다도 루루 주변 인물들의 문제로 그려냅니다. 루루 역시 일부러 주변 사람들을 유혹한다기보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빠져들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나죠. (순수하고 아름다운 루루가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파멸로 빠진다는 점에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물론 뛰어난 연출력도 있었습니다만, 루루의 역할을 맡은 루이스 브룩스의 모습과 연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역할로 루이스 브룩스가 스타덤에 올랐을 뿐 아니라, 지금의 팜므파탈의 원형이 되었죠. 역할은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와 꼭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만, 루이스 브룩스는 참 안타깝게도 그녀가 연기했던 루루처럼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했고 몇 번의 운명적인 사랑도 했습니다만, 친절하고 부드러운 관계에 기댈 수 없었고, 알콜중독과 낭비벽으로 일생 어렵게 살았죠.

   어찌되었건 이 아름답고 영민한 여배우의 모습을 유튜브라는 매체로 편안히 집안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은 문명의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여유로운 주말 한 번 감상해보시길! 무성영화가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알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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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qwe123
14/06/06 17:39
수정 아이콘
게임에서 잭더리퍼라는 카드를 많이봐와서 그런데 명칭이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된건가요?
14/06/06 17:54
수정 아이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잭 더 리퍼"는 19세기 말엽에 런던 화이트채플 지구 근처에서 활동하던 연쇄살인범을 가리키는 별명입니다.
왜 이렇게 유명하냐면,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벌였고, 결국 못잡았기 때문이죠.
"잭"이란 이름이 익명의 범죄자를 매체에서 다룰때 쓰는 이름이었고, 이 연쇄살인범의 경우에는 결국 누구인지 알수없었기에 "도살자 잭"이란 이름으로 남게 된 경우라 하더군요.
이오덕
14/06/07 00:01
수정 아이콘
우리말로 이르면 칼재비 철수 정도?
王天君
14/06/06 18:02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에요
14/06/06 18:40
수정 아이콘
사실 PGR 자게에는 왕천군님을 비롯한 영화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 많아 영화에 대해 쓰기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오랜만에 다시 보니 참 좋아서 써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주한
14/06/06 18:03
수정 아이콘
{}
14/06/06 18:42
수정 아이콘
저는 <클로이>는 영화는 못보고, 포스터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거기서도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마성의 여성으로 나오죠.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너무 착한 인상의 미인이라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제로 어땠을지는 궁금하긴 하네요.
王天君
14/06/06 18:45
수정 아이콘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실제 성격은 똘기가 넘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박제를 좋아한다는 거나 섹스에 대해서 너무 거침없이, 음란 수준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떠벌린다거나.
14/06/06 23:06
수정 아이콘
오호라 그렇군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아갑니다.
김망아지
14/06/06 18:48
수정 아이콘
루이스 브룩스가 루루처럼 평탄치 못한 인생을 살다갔다고 하니 생각난 얘긴데, 작가나 가수 등이 자기가 쓴 작품, 노래가사 등과 비슷한 삶을 살다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하더라구요. 한시에서는 그걸 '시참(詩讖)' 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유명한 기생 설도가 어릴때(기생이 되기 전) 우물가 오동을 읊은 시가 '가지는 지나는 새 마중을 하고, 잎새는 오가는 바람 배웅하누나.' 였는데 그녀는 결국 화류계 생활을 했죠. 또 안명세라는 사람이 아홉살 때 그 아버지가 진달래를 따서 연적에 끼워놓고 시를 짓게 했더니, 어린애가 '진달래꽃 한떨기/푸른 산중에서 와/연적에 생애를 부치었으니/타향 나그네 신세와 한가지로다/' 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는 한평생 귀양살이 등과 떠돌이 생활로 객사했다 합니다. 뭐 보기에 따라서 끼워맞추기일 수도 있지만...언령의 힘으로 볼 수도 있고 그럴꺼 같아요. 저도 주로 우울한 영화, 노래 등을 좋아하는데 이런거보면 좀 조심해야겠어요 크크
14/06/06 23:09
수정 아이콘
언제나 진리의 "케바케"를 외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많은 예술가들에게 작품과 삶이 연결되어 엄청난 힘을 부여한 사례들이 상당히 있죠. 이 관련으로 생각나는 여배우가 하나 더 있는데, 그녀도 시간이 날 때쯤 소개해 보면 좋겠군요.
김망아지님 댓글 덕에 '시참'이라는 멋진 단어를 하나 배웠네요. 저도 좀 위험한 작품들을 좋아하는지라, 작품이 저를 잡아먹지 않게 조심해야 겠습니다.
BetterSuweet
14/06/06 19:03
수정 아이콘
각색된 영화의 줄거리처럼, 뭔가 동정하게되는 구질구질한 사연 같은게 진짜 팜므파탈을 만드는 거 같아요. 마치 '그녀는 원래 착한 여자인데....' 라고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스스로를 정당화 시킬 수 있으니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14/06/06 23:10
수정 아이콘
팜므파탈이 이야기를 만드는 건가, 이야기가 팜므파탈을 만드는 건가를 두고 생각한다면 저 역시도 후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콩먹는군락
14/06/07 13:00
수정 아이콘
반대로 남자가 저런경우는 옴 파탈
14/06/08 11:39
수정 아이콘
옴므 파탈도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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