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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2/25 18:47:02
Name Nao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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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애완동물 이야기


오늘은 신변잡기 이야기로 자유게시판을 찾아봅니다.
지난 토요일 친구랑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주된 이야기 내용은 애완동물!
그 친구는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고, 저는 보시다시피 개를 키우고 있는지라 만나면 애완동물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거든요.
친구는 이제 막 한살이 된 고양이가 예전보다 밥도 잘안먹고 활동적이지 않아서 계속해서 걱정스럽다고 했습니다.
데리고 병원에 가보아도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해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말이죠.
저는 이제 성묘가 되서 운동량이 적어진 것 뿐일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헤어졌죠.

그런데 어제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집에 있는 와중에 고양이가 발작을 일으켜서 병원에 뛰쳐갔더니 간에는 구멍이 있고, 신장이 너무 커서 다른 기관들을 누르고 있는 상태라고...
그동안 어쩌면 잘 못먹었던 것이 그러한 이유 때문일거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거죠.
더욱 큰 문제는 이게 병으로 잘못된 것도 아니라 선천성 기형일 확률이 높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이었습니다. (병이라면 치료 수단이라도 찾아볼테지만 선천성 기형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지라 더욱 큰 문제입니다.)
대학교 부속 동물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라는 말과 함께 친구는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계속해서 울고 발작을 일으키는 고양이를 보면서 제 친구는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고양이가 너무 기운이 없어서, 서울로 데리고 올라와 병원 검진을 받는 것조차 도중에 도리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친구에게 그래도 어떻게든 빨리 검사를 받는 것이 좋을거란 얘기를 해주었죠.
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대학교 부속 병원 관련 글들을 찾아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저 역시도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고, 그 애완동물이 건강하지 않은 나이가 많은 개이기 때문이죠.

처음 애완동물을 키우기 시작할 때에야 얘가 죽을거란 생각도 하지도 않고 아플거란 생각도 못하지만, 저도 저희집 개도 나이가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희집 개가 바로 사진의 시츄인데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견종 중에 하나입니다.
국내에서 시츄가 많이 선호되는 것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견종인데다가, 개체차는 있겠습니다만 성격도 유한 종류의 개이기 때문입니다.
털도 장모종에 속하지만 그렇게 빠지지 않아서 아파트가 많고, 정원있는 공간이 적은 한국에서 키워볼 만한 견종입니다.
그렇지만 시츄의 큰 눈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병을 안게 됩니다. 그리고 꽤 식탐이 있는 녀석들이라 체중 관리도 신경써줘야 하죠.

저희집 개도 10살이 넘어가면서 슬슬 이런저런 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제일 처음은 역시 눈. 저희 집 개는 눈물샘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생명에 치명적이지는 않고 사실상 개들에게 시력이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처음 간 병원에서 시력을 잃을 것이란 진단을 받았을 땐 얼마나 속상하던지...
그렇지만 다른 병원에서는 약만 잘 넣어주면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구원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좀 더 심각한 병은 심장병입니다.
시츄의 식탐을 조절해주지 못한 죄로, 10살쯤 되었을 때 꽤나 비만이었는데 이것이 결국 심장병이라는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너무 흥분해서 정신을 잃었을 때 너무나도 놀랐었고, 동물 병원에서 진료받으면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슴이 터질것 같았습니다.
수술이나 이런 수단은 쓸수가 없고,(이미 심장이 너무 비대해 진 상태라...) 계속 집에서 관리해줄 수 밖에 없다고, 흥분하면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제가 저의 개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약 3년이 지났고, 이전에 비해 털색깔도 많이 바라고, 앞도 잘 못보고, 심장병으로 가끔 켁켁거리고, 운동량도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제곁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친구의 고양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도 이제까지 제 곁에서 건강히 버텨준 녀석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채워지기를 기대하면서 그냥 끄적끄적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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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쥴레이
14/02/25 18:58
수정 아이콘
얼마전 동물농장에서 강원래씨 부부 나올때 기르던 반려견이 죽는 장면을 보니 참 울컥하면서 충격적이더군요...
와이프네 집에서 기르는 닥스훈트 녀석이 있는데 이녀석을 본지 이제 5년이 넘어가는거 같아요.

너무 뚱뚱해서 비만이 되었는데 걱정입니다.

저랑 산책을 몇시간이고 돌던 녀석이 이제는 30분만 돌아도 헉헉 되고 주저 앉으니 슬프더군요. ㅠ_ㅠ
14/02/26 00:41
수정 아이콘
저희 어머니도 동물농장 보시면서 매일 아침 일요일마다 눈물을... 참고로 전 차마 보지도 못하는 정도;;입니다.

닥스훈트는 비만이 되면 많이 고생하는 종이죠.
짧은 다리가 귀엽지만, 귀여운만큼 신경써줘야 한다고 해요.
특히 비만인 녀석들은 나이들어 관절염이 생길 확율이 높아서 꼭 다이어트를 시켜주는게 좋다고 하더라구요.

저희집 개도 인형 던지고 놀기를 매일 한시간도 넘게 해달라고 조를때가 어제만 같은데, 요즘은 한번 던지고 가지고 오는 것도 버거워해요. ㅠ_ㅠ
최종병기캐리어
14/02/25 18:59
수정 아이콘
저희집 강아지는 큰 병치레 없이 잘 지내다가 수명 다하고 떠나서 다행이었는데...

여자친구네 강아지는 나이가 들면서 가끔씩 기절하는 일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그때마다 한의사이신 아버님이 콧잔등에 침을 놔서 깨운다고....

은근 그런 경우가 잦은가보네요...
14/02/26 00:46
수정 아이콘
저희 가족들의 최고로 큰 소망 중에 하나가 그거예요. 이 이상 더 크게 아픈일 없이 잘 지내다가 가는 거.

아무래도 심장 쪽에 질환이 있으면 흥분할 때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그런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집 강아지는 주로 집에 손님이 오면 너무 반가워하다가 그 흥분에 마비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지난 번엔 TV 수리 때문에 기사님들 두분이 집에 오셨는데, 두분을 한꺼번에 보고 너무 신나서 마비가;;;
상황 자체가 너무 웃기기도 한데, 이렇게 죽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좀 있어요.
방과후티타임
14/02/25 19:13
수정 아이콘
저희 집 시츄도 이제 12살이 됐는데, 이 아이도 체중이 많이 불어서 걱정되네요...
14/02/26 00:49
수정 아이콘
시츄 식탐 후;
저희 집 개도 심장병이 걸리기 전에 다이어트 시도했다가, 다이어트 사료도 안먹겠다고 찡찡거리고 산책도 싫어해서 실패했는데...
심장병이 걸린 후에 살을 빼주려니 더욱 힘들더라구요. 무엇보다 심장병때문에 운동을 시킬 수가 없어서 오로지 식단으로만 빼야됐거든요.
그래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크니까 안먹겠다고 난리를 치던 어쨌던 사료 바꿔주고 간식 안주고... 이것만으로도 체중이 줄긴 하더라구요.

인간이든 개든 만병의 근원은 비만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방과후티타임 댁의 시츄도 한번 시도해보세요!
14/02/26 00:55
수정 아이콘
원래 시츄가 식탐이 심한가요? 저희 강아지도 식탐이...옆 강아지 입에 넣은 것까지 뺏어먹을 정도라 두손 두발 다 들었어요. 눈치도 백단이라 비닐만 부스럭대도 먹는건줄 알고 달라고 낑낑거려서...저희 강아지만 그런줄 알았더니 종특인가 보네요
14/02/26 01:16
수정 아이콘
전 저희집 개를 시츄 전문 캐터리에서 분양받았는데, 시츄의 식탐은 종특인 면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허허
다른 종보다 먹을 걸 좋아하고 잘 먹는지라, 음식 조절 잘해줘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쥴리아님 다른 코멘트를 읽었는데, 유기견이었던 애들은 한층 심할거예요.
유기견으로 있었을 때, 늘 음식이 부족한 상황을 겪고나서의 개들은 음식만 있으면 최대한 많이 먹어 놓자는 생각이 강해진다고 하더라구요.
14/02/26 01:23
수정 아이콘
에휴...나오미님 댓글 읽으니 왠지 찡하네요.
이 녀석이 유기견이었어서 이렇게 식탐이 강했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먹을 거 밝힌다고 혼만 내서 미안하구요...
그렇다고 또 너무 줘도 그렇고...ㅠㅠ
14/02/25 19:41
수정 아이콘
16살먹은 시츄를 하늘나라로 보낸지 6개월정도 지났네요. 저희집 강아지 또한 시력을 점점 잃었으며 나중에는 눈한쪽이 엄청 커져서 저는 눈알이 튀어나올것같아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도 나이많이 먹은 강아지는 수술이 위험하고 그냥 잘 보살펴주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더이상 복구가 안되서 안구를 빼내는 수술을 하려 했었는데 갑자기 알아서 (눈알을 뺸적이 없는데..;) 눈이 쪼그라 들더니 애꾸눈처럼 되더군요. 평생 다리 장애가 있어서 기어다녔는데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앞을 못봐도 밥은 필사적으로 잘먹었었는데 갑자기 밥을 안먹더니 2~3일만에 바로 죽더군요. 1살부터 키워서 반평생을 함께 한 강아지였는데...ㅜㅜ 남은시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14/02/26 00:55
수정 아이콘
덱스터님댁 시츄 녀석 고생 많이했겠군요. 덱스터님도 평생 장애가 있는 녀석을 돌봐주신 노고가 정말 대단하세요.
역시 시츄는 눈때문에 고생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참...
저도 처음 병원 갔을때 의안해주라는 소리 들었었어요. 한쪽 눈만 심하게 부풀고 했어서 어느 순간부터 눈을 못떠서..
그런데 원래 다니던 병원에 갔을때 약만 넣어도 된다고 했을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좋은 수의사님 만나는 것도 진짜 복인것 같아요)
3가지 종류의 약을 2,3시간마다 계속해서 넣어줘야 한다는게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아직 눈이 괜찮아요. 정말 다행이죠.
남은 시간도 열심히 부대끼면서 살아보려구요.
꼬꼬마씌
14/02/25 21:10
수정 아이콘
저희 집 시츄도 이제 13살인데.. 한 쪽눈에는 백내장이 오고, 신장이랑 간도 안좋아서 약으로 버티고 있는데 이제 점점 마음의 준비를 할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산책도 많이 안데리고 나가고 한게 정말 안타깝게 느껴지는...
14/02/26 01:01
수정 아이콘
시츄들은 백내장은 기본으로 있는 병 같아요. 헝...
요즘 저도 못해준 것만 자꾸 기억이 나서 아쉽운 생각이 들기는 한데, 이미 지난일보다는 남아있는 날들이라도 좋아하는 것들을 맘껏 해주려구요.
슬픈 일이지만 이별의 준비를 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준비 없이 맞이하는 건 참 다른일인것 같아요.
꼬꼬마씌님도 시츄도 남은 시간을 잘 보내시길 바라요!
14/02/26 00:31
수정 아이콘
강아지 긔엽...눈빛이 애절하네요 ㅠㅠ
저희 시츄도 우리집에 온지 7년이 넘어가니 슬슬 아픈데가 많아지는 느낌이에요. 유기견이라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요. 눈에 눈꼽도 심하게 끼고 피부병도 생기구요...
어느 날 왠 유기견 한마리가 저희 어머니를 졸졸 쫓아와서 나가라도 해도 집에서 버티고 안나가길래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데리고 키우기 시작한게 벌써 7년째네요. 오랜만에 집에 가면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이 녀석이 없으면 너무나 허전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이랴도 잘해줘야죠.
Naomi님 강아지도 좋은 주인 만나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거예요~같이 있는 시간이라도 후회없이 잘해주세요.
14/02/26 01:13
수정 아이콘
일광욕 중에 부른거라 애절... 하하
확실히 개들은 10살 전후로 아픈데가 늘더라구요. 피부병->눈병->심장병의 과정을 거쳤던 지난 몇 년...
저도 이 녀석 챙기느라 다른 개를 키울 엄두는 못내지만, 유기견 애들 분양하는 것만 보면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특히 시츄 애들은 보면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요.
쥴리아님댁 애는 직접 따라온 걸 보니까 정말 평생의 인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
좋은 말씀 감사해요. 쥴리아님도 쥴리아님 강아지도 별탈없이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14/02/26 01:27
수정 아이콘
아직까지는 산책도 잘 다니고 건강한데 슬슬 마음의 준비와 깨지는 병원비의 압박을 견뎌내야죠 흐흐...
전에는 강아지 수술에 몇백 썼다는 사람들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이해가 되는 걸 보니 정이라는 게 무섭긴 무섭네요...ㅠㅠ
오빠나추워
14/02/26 01:28
수정 아이콘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써주시면 좀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저희집 강아지는 아직은 너무 건강한데 나이많은 반려견 키우시는 분들 말씀 들어보면 벌써 부터 걱정 됩니다.
14/02/26 04:38
수정 아이콘
아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저도 살아보니 애완보다는 반려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표준어는 애완동물이라 일단은 이렇게 :)...

개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처음에 심장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떡하지?" 이 생각만 가득했는데, 이제는 돌봐주는 것들이 꽤 익숙해졌어요.
가끔 오는 마비 상태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고 조취를 취해줄만큼요.
동물 병원에 가보면 온갖 병을 앓는 나이 많은 개들을 만나게 되는데, 암에 걸린 녀석들도 종종 만나거든요.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지만, 그것도 적응이 되나 보더라구요...
couplebada
14/02/26 08:58
수정 아이콘
현직 수의사입니다.

이런 글 보니 반갑네요. 예전에 시골에서 그냥 아무렇게나 묶어두고 키워 온 개들이 이제는 어엿한 가족 구성원의 하나로 자리 잡아 가는 모습을 보니 참 좋습니다.

수의대를 다니며, 수의사가 되어 진료를 보면서 느낀 바가 정말 많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 +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점 등으로 인해 다른 분들께 글을 쓸 수준은 되지 않아 그냥 혼자 생각중에 있습니다.

아시는 분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수의대를 졸업하고 임상에 임하는 수의사는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임상이 어려워 공무원, 취직 생활 등을 하다가 지쳐서 다시 돌아오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물론 반대로 임상을 쉽게 생각하다가 해보고 어려워서 그만 두시는 분들도 있구요.) 일단, 인재풀이 부족하고.. 또 하나의 문제는 체계적인 시스템의 부재입니다.. 수의대에는 현재 대학병원 인턴제도가 없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결국은 돈으로 귀결되는 문제인데... 수의대 6년 졸업하고 동물병원 나가서 인턴하면 월급주는데 대학병원에서는 그 돈을 지불 할 정도의 규모가 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수의사들도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저도 처음 입학했을때는 졸업 => 동물병원 인턴 => 개원이라는 일반적인 코스를 밟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6년을 다녔는데 아는게 별로 없는 상황이었던거죠. 제가 다닐때만해도 저희 학교에 동물병원 실습 커리큘럼이 없어서 그냥 졸업하고 나가면 임상에 관한 경험이 거~의 없는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물병원 실습은 원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4개월정도 하는데... 그 과정이 고된 과정입니다. 8시 출근에 6시 퇴근.. 토요일도 8시 출근.. 반면에 이 실습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그냥 편하게 학교 다니다가(특히 4학년 2학기는 수업이 4시간뿐) 졸업하면 어차피 똑같은 수의사라 똑같이 동물병원 인턴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고생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위에 썼던 것처럼 일반적인 코스를 밟으려다가.. 이대로 졸업하면 정말 아는게 없겠구나 싶어서 대학 동물병원 실습도 했고, 그 과정에서도 부족함을 느껴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대학병원 인턴제도가 없어서 대학원생들이 대학병원 진료를 봅니다.) 저희학교는 기업화가 안되어있어서 월급이.... 학비의 3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그냥 돈은 생각없이 일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내과 전공이었습니다. 수의대는 사람 병원처럼 과별로 세세하게 분류되어있지는 않고.. 크게 내과, 외과, 임상병리학과, 영상진단학과 (+ 산과 안과 피부과 이런 정도?)로 나뉘어져서 진료를 봅니다. 그런데 동물 병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동물병원은 과가 나뉘어져 있지 않고 원장님이 모든 진료를 보게 되죠. 월급수의사로 큰 병원에서 일하는게 아닌 이상 결국 수의사는 모든 진료를 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원 1년 다니고 내과진료만 보다보니 너무 반쪽수의사가 되는 느낌이라 잠시 휴학하고 지역 동물병원에서 근무중입니다.

지역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든 생각은.. 이 역시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입니다. 동물병원은 모든 진료를 다 봐야하는데.. 모든 진료를 다 '잘'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죠. 과를 세세하게 나눈 사람 병원에서도 오진이 나오는데 동물병원은? 답이 나오죠.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를 해도 그 모든 것을 다 따라잡는 것은 어렵습니다. 결국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규모가 작은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잘 본다는 것은.. 자기 병원이 그 환자를 치료할 능력과 장비가 되는지 빠르게 판단하고 더 큰 병원으로 보내는 것을 잘 해야한다. 사람 병원도 마찬가지구요.

쓸데없이 인생사를 늘어놓으며 리플이 길어졌습니다;; 뭔가 결론을 내리고 싶었는데 그냥 평소에 하던 생각들을 끄적이는 수준의 리플이 되었네요. 기회가 된다면 긴 글을 써보고 싶고... 혹시 궁금한 점 있으시면 제 능력이 되는 한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
14/02/26 23:12
수정 아이콘
커플바다님 우와!... 수의사시라니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점차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가 커져가고 요즘은 미디어에 자주 유망 산업군으로 이야기 되고는 하지만, "유망"이라는 표현 자체가 아직은 열악한 환경이라는 걸 반향하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대다수의 동물병원의 원장님들이 온갖 진료를 다 맡아 보시는 걸 보면서, 저 온갖 질병과 분과를 다 공부하시는 건가하고 궁금했었는데, 역시 분과별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군요.
커플바다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수의사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가, 또 얼마나 수의사가 된 이후도 험난한가에 대해 깨닫고 있습니다.
(갑자기 저희 개를 봐주시는 피골이 상접한 수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이번에 잠시 미국에 지인의 집에 머물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생후 4개월 된 웰시코기를 키우고 있어서 미국의 반려동물 시스템을 살짝 경험하고 왔는데 부러운 부분이 많더라구요.
일단 분양단계에서 분양 받는 가정에 어떠한 과정들을 겪게 될건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책자 같은걸 주더라구요. 개월 단위로 나뉘어져 있고, 강아지의 행동 변화와 그에따라 주인이 그때그때 해주어야 할 것들에 대해 꼼꼼히 적혀 있어 처음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모든 개들은 국가에 정식으로 등록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법이구요.
또 한달여간 머무는 동안 강아지가 급작스레 아픈 적이 있었는데, 병원에 가면 담당 주치의가 정해져 있고 분과별 진료가 가능한 상황이라는 점도 대단하단 생각이...
물론 당연히 미국의 의료계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청구합니다만, 반려동물들에게도 보험이 있어 60%까지 부담이 되더라구요.
무엇보다 개를 정말 하나의 가족의 일원으로써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달까요.
회사에 갈때 어느정도 훈련이 되어있다면 같이 출근하는 것도 상관 없고, 어린 반려동물을 보러가기 위해서 점심시간을 남들보다 초과해서 쓰는 점도 이해해주는 사회적 환경 자체가 참 부럽다고 느끼고 왔네요.

커플바다님의 생생한(?) 한국 동물병원 현장의 이야기들이 궁금하네요!..
한번 따로 글을 내어 작성하실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미우누리
14/02/26 20:05
수정 아이콘
제작년 유기묘 출신으로 7년간 함께했던 고양이를 보내고
작년 수술을 한 장애 유기견을 14년간 함께 한 사람으로
남의 일이 아닌 글이네요.
고양이보내며 한차례 크게 앓았지만
더 오랜 시간 함께한 강아지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주룩주룩 ㅠㅠ
아파서 십년살면 오래살겠다 싶었는데
벌써 열네살이네요.
딱 삼년만 더 살아줘도 행복할것같아요

고양이는... 돌연사가 참 많더라구요
저희집도 그랬고 케이스를 몇번봐서...
어떻게 조치를 취하거나 뭔가 해줄수없다는게 참 가슴아프고 황망하죠...
14/02/26 23:18
수정 아이콘
미우누리님. 정말 힘든 과정들을 넘어오셨네요.
아무리 마주해도 이별하는 과정들은 정말 쉽지 않아요.
저도 일부러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하고 있는데 막상 얘가 떠나면 하늘이 무너질듯 해서 겁이 많이 나요.
저도 한 3년 정도만 더 있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참, 어제 새벽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결국 친구네 집 고양이도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구요.
너무 급작스레 떠나서 황망한데, 계속해서 너무 아픈데 곁에 있어달란 것도 욕심이었던 것 같다고 한 친구의 말에 마음이 참 아프더라구요.
결국 저도 아침에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조금 울다가, 장례 치루고 했단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래도 내곁에 잠시라도 머물러줘서 고마워"하는 친구의 말이 참 애틋했던 하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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