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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5/14 21:41:27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탐욕과 오만 ⑤ 통수장인 통수맞다
촉과 오의 군사동맹은 차후 위를 멸하면 그 영토를 양분하자는 것이 주요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손권의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손권의 욕심처럼 위가 호락호락하게 자신들의 땅을 내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석정에서의 대패전은 장강 이북의 양주의 위오 세력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위가 주방의 위계에 넘어가 남동전선의 전력을 들어 공격했다가 석정에서 패전한 이후 합비 인근의 여강과 환현 일대는 오에 넘어갔죠. 만총이 30년 가까이 오의 공세를 전면에서 막아온 합비 구(舊)성을 파괴하고 합비 신(新)성을 쌓은 이유는 1차 방어선격인 환현이 넘어간 이상 1차적으로 오군을 영격할 지역이 없었고 이에 오군이 환성에서 군사행동을 시작했을 경우 사전에 방어할 방벽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내륙으로 신성을 쌓아 지키면 주 전력이 수군인 오군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 기습하지 못할것이라는 의도였습니다.

석정 전투 후 손권이 합비 공격 계획을 일부러 누설합니다. 그 지역을 방어하던 만총은 연주와 예주의 군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오군은 공격해보지도 않고 급히 물러나죠. 여강과 환을 장악한 오군이 연주와 예주의 지원병력이 온다는 첩보만으로 퇴각하는 것을 보고 만총은 이것은 거짓퇴각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지원군 철수를 명령한 조예에게 표를 올려 다시 지원군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10여일 후 손권은 지원군이 물러날 것이라 믿고 합비성으로 쇄도하지만 여전히 위의 지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그대로 물러납니다. 손권은 석정 전투처럼 적을 속여 끌어들이기 위해서 중랑장으로 있던 손포를 거짓항복시켜 양주자사 왕릉을 죽이고 합비를 기습하려합니다. 하지만 이런 계책에 두번 속을 만총이 아니었습니다. 정동장군 도독중외제군사로서 양주의 병마를 총괄하던 만총은 손포를 맞이할 병력을 요청하는 왕릉의 요청을 각하시킵니다. 세설신어에는 왕릉이 표를 올려 만총이 나이가 많고 술을 좋아해 직무에 부적당하다고 조예에게 보고합니다. 조예는 만총을 중앙으로 소환하려 하죠. 그런데 급사중으로 있던 곽모라는 사람이 조예에게 조언하죠.

곽모 : 만총은 여남태수, 예주자사 같이 남동에서 20여년 이상을 있으면서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오는 그가 회수 이남에 있자 그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왕릉이 혹여 거짓으로 말할수 있으니 알아볼 겸 궁으로 불러들이면서 남동전선의 상황을 들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조예는 그 말을 따라 만총을 불러들여 술을 한 말이나 주면서 여러가지를 물었지만 만총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조예는 만총을 치하하고 다시 합비로 되돌려 보내죠.

이 사이에 왕릉은 만총이 빈 사이에 만총이 없는 사령부로 달려가 군사를 내놓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만총은 낙양에 가기 직전 자신의 직무를 대행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왕릉이 와서 영접을 위해 병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절대 병력을 주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만총의 부하들이 만총의 명을 이유로 병력을 내놓지 않자 왕릉은 휘하의 장수 하나에 보기 7백의 적은 병력을 보냅니다. 손포는 따르다가 야간에 이 병력을 습격해 장수는 겨우 도망가고 병력은 절반의 피해를 받습니다.



(사도 왕윤의 조카인 왕릉은 이각과 곽사를 피해 도망갔다가 지방관으로서 공적을 쌓은 이후 조휴 아래에서 복무합니다. 협석에서 포위당한 조휴를 목숨 걸고 싸워 구출한 공으로 양주와 예주 자사를 역임하고 이후 남동 전선의 최고 책임자인 정동장군 가절 도독양주제군사가 됩니다. 이후 삼공 중 하나인 사공으로 재직하던 중 천자를 폐립하고 사마의를 실각시키려는 기도가 발각되어 수춘 인근에서 음독자살하고 죽은 이후 부관참시당합니다.)

여강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지만 합비 구성과 신성 지역을 장악하지 못하면서 수춘과 여남쪽으로 나가지 못했던 손권은 공격 방향을 바꿔야된다고 판단합니다. 남군 방면을 뚫자니 이 지역은 함부로 나가지 못할 상황이고 강하성 쪽은 혹여 반격이라도 당하면 무창이 위험했고 무창이 점령당하면 형남과 오군의 연계가 끊어져 위험하게되죠.

손권의 북진은 결국 저지당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손권이 생각해낸 것은 요동의 공손연이었습니다.



공손연의 할아버지인 공손도 시대부터 요동은 공손씨 가문의 땅이었습니다. 공손도전에는 원래 공손도의 아버지인 공손연이 관리의 추적을 피해 고향인 요동군 양평현이 아닌 현도군에서 살았다고 나옵니다. 공손도는 현도태수로 있던 공손역의 도움으로 학문을 배웠고 낭중,상서랑을 거쳐 기주자사가 되었다가 파면된 후 동탁의 중랑장으로서 같은 고향 출신인 서영의 도움으로 요동태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공손도는 요동태수가 되었지만 그는 현도군의 말단관리였었기 때문에 고향이자 임지인 요동에서 대우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들인 공손강은 양평현령으로 있던 공손소 아래에서 현재의 부사관격인 오장이라는 하급 지휘관으로 있었는데 이것을 안 공손도는 요동태수로 부임한 이후 공손소를 잡아다 양평현의 시장에서 때려죽입니다. 그리고 요동 지역의 전소를 비롯한 유력 호족들과 향리의 실력자들을 잡아죽였는데 이 가문들이 무려 백여 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후 190년 심복인 유의, 양의를 불러들여 한 왕조의 운명이 끝났으니 이 둘과 함께 왕업을 취하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공손도는 자신의 독자세력화에 불만을 품고 도망간 이민이라는 사람의 친척들을 모두 도륙하고 이민의 부친 묘를 파헤쳐 부관참시해버립니다. 이후 공손도는 요서 중료군을 두고 태수를 두고 자신을 요동후 평주목을 자칭하고 한고조와 광무제의 제묘를 세우고 단을 양평성 남쪽에 쌓고 왕이 가는 땅인 적전을 만들어 경작하고 황제와 왕이 타는 수레와 근위병을 두어 왕처럼 행세를 합니다.

조조는 공손도를 달래기 위해서 무위장군 영녕향후로 봉합니다만 공손도는 "내가 요동의 왕인데 영녕향후가 무엇이야!"라고 소리치면서 인수를 무기창고에다가 처박아버립니다. 공손도가 204년에 사망하고 그 아들인 공손강이 요동태수 자리를 계승하고, 둘째 아들인 공손공은 영녕향후의 직위를 승계합니다. 관도대전 이후 원소가 죽고 하북에서 원담-상간의 내분에 의해서 업이 함락되고 원가의 세력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조조의 세력이 강해지자 조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207년에 원상 등이 공손강에게 도망오자 공손강은 이들을 목베서 조조에게 보냅니다. 이후 공손강이 죽자 그 지위는 장남인 공손황이나 차남인 공손연에게 이어지지 않고 동생인 공손공이 요동태수 직을 잇습니다. 공손공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큰조카인 공손황을 조조에게 인질로 보냅니다. 공손공은 조비가 황제로 즉위하자 거기장군 평곽후가 되고, 공손강은 대사마의 관위를 추증합니다.

하지만 그가 유명했던 것은 정사에서도 나와있든 그가 성불구자라는 점이었죠.



228년 공손연은 공손공을 협박해 요동태수 직위를 빼앗습니다. 공손도전에는 공손공이 자질이 부족해 봉국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나왔지만 공손강 아래에서 공손황을 인질로 보내는 것 때문에 공손연이 어린나이부터 숙부에게 큰 위협을 느꼈고, 공손강의 세력이 공손연 아래로 결집했고, 이 세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공손공이 실각했던 모양입니다. 공손연은 삼촌인 공손공을 유폐시킵니다. 위는 이러한 요동의 상황에 별 대응을 하지 않고 공손연을 양열장군 요동태수를 제수해 공손연의 지위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공손공은 요동에서의 힘이 약했지만 조위의 조정 내에는 상당한 지지자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인 229년 손권은 4월에 칭제한 이후 5월에 교위 장강과 관독을 요동에 파견합니다. 공손연은 이 사신들이 돌아갈때 손권에게 올리는 표를 올려 귀부할 뜻을 표했고, 이 첩보를 입수한 위는 촉과 오의 압박에 오환까지 북방을 침입하는 상황에서 요동까지 불안하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에 공손연을 달래기로 결정합니다. 230년 조예는 요동에 공문을 내립니다. 낭중으로 있던 위신과 소모를 보내서 만일 오와 교통한 사람들의 죄를 묻지 않고 사면하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2월 15일 촉과의 전쟁에 공이 많았던 대장군 조진을 대사마로, 표기장군 사마의를 대장군으로 승진 포상합니다. 이때 요동태수로 있던 공손연을 거기장군으로 삼습니다. 요동태수로서 어떠한 공적도 없는 공손연이 중앙의 주요 군직인 거기장군으로 삼은 것은 오와의 연계를 끊도록 공손연을 회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위가 단순히 온건책만 쓴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딱히 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중령군으로 있던 양기라는 사람이 한 사람을 추천합니다.



(골든 전예도 좋지만 전 이게 더 좋아요.)

그렇습니다. 바로 전예입니다. 전예는 원래 북방의 가비능을 막고 있었고 오환왕 골진을 죽였고 오환 교위를 지내던 9년간 오환의 단결을 저지하고 이간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도록합니다. 하지만 전예는 당시 유주자사로 있던 왕웅의 모략으로 인해 필요하지 않는 분란을 만든다고 모함당해 여남태수로 전임됩니다.

여남태수로 재직중이던 전예는 공손연을 막기 위해 여남태수와 독청주제군사를 겸임하면서 청지 지역을 지킵니다. 이 지역을 살핀 전예는 현재 겨울이라 풍랑이 오면 풍랑을 피하기 위해 성산 지역으로 온다고 판단하고 인근 해안을 시찰하면서 산동 해안의 섬들에 방어기지를 쌓아놓고 각 요충지에 군사를 배치합니다. 전예 아래의 장군들은 이러한 전예의 행동을 비웃습니다. 적이 어디로, 언제, 그리고 표류할지도 모르는데 이런 빈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오의 사자로 갔던 주하가 풍랑을 만나 성산 지역으로 표류했는데 전예는 이 주하를 공격해 목을 벱니다. 이렇게 공을 세운 것을 본 장수들은 적의 배를 모두 끌어올려 적을 치자고 주장하지만 적이 궁지에 몰리면 피해가 커질것을 우려한 전예는 공격을 불허합니다.

전예가 이러한 큰 공을 세웠지만 전예는 어떠한 포상도 받지 못합니다. 원래 여남태수였다가 청주의 군사를 관할하는 직위로 급 승진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군수로 있다가 군 사령관으로 승진한 격이었죠. 청주자사로 있던 정희라는 사람은 하급자라 볼수 있던 전예가 자신을 뛰어넘은 직위에 올라간 것에 질투를 느꼈고 거기에 오의 사자를 목베는 등의 공을 세우는 것에 질투심이 폭발합니다. 그는 조예가 구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조예에게 표를 올립니다.

정희 : 전예가 전공이 있지만 군기가 느슨하고 노획한 무기, 진주, 금이 많았지만 상부에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전예가 큰 공을 세웠지만 부하의 모함으로 그 공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최훈은 전예나 견초가 승진하거나 공을 인정받지 못한 것은 변방에서 공을 세웠기때문이라지만 전예는 왕웅이나 정희처럼 그의 공을 탐냈던 사람들에 의해 모함을 받아 높은 직위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가 은퇴하기 직전에 맡은 직위는 위위였는데 황실과 궁성수비를 담당하는 수비대장 정도에 그칩니다.

위가 이렇게 오와 공손연의 연계를 끊으려 하자 공손연은 숙서와 손종을 파견해 손권에게 속국이라 숙이고 들어가고 공물로 모피와 준마를 바칩니다. 손권은 233년 정월에 조서를 내려 공손연은 연왕으로 봉합니다.

그리고 3월 숙서와 손종을 다시 공손연에게 되돌려보내고 태상 장미, 집금오 허안, 장군 하달과 병력 1만을 데리고 가게 합니다. 이들은 금과 보물등을 가지고 공손연에게 내릴 구석의 징표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승상으로 있던 고옹과 노대신 장소까지도 공손연에게 이런 대우를 하지 말고 숙서와 손종에게 병사 몇백만 붙여 보내는 정도면 된다고 말합니다. 장소는 손권이 이러한 의견을 무시하자 집의 문을 흙으로 봉해버리고 집 안에 칩거해버리기까지 하죠. 이렇게 말렸음에도 손권은 그의 계획을 강행합니다.

그리고 요동에 도착한 장미와 허안은 얼마 안가 공손연에 의해 살해되고 목이 잘려 위로 보내집니다. 주석으로 달린 위략에는 공손연이 조예에게 올린 표문이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해보죠.

공손연 : 저는 전에 숙서와 손종을 보내 손권을 유인했습니다. 손권은 미혹되어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배와 사자 장수와 사졸들을 보내 봉배하였습니다. 적은 요동군의 답진 나루로 왔습니다. 장미와 허안과 만태, 배잠을 속여 관리와 군사 4백명이 문서와 관복, 집기를 지니고 제 땅으로 오게했습니다. 만태와 배잠은 따로 군마를 구입하려 했고 장수로 온 하달과 우자는 배를 지켰습니다. 소신은 때를 기다려 장미 등을 죽이려했지만 오군이 많아서 오의 명을 받들지 않으면 의심할까 두려워해 태도를 바꿔 병력을 보내 포위하고 오의 장수들의 수급을 베었습니다. 관리들은 모두 급사나 서기정도였는데 항복하니 죽이지 않고 변경의 성으로 옮겨 노역을 하도록했습니다. 따로 군을 보내 환영행사를 베푸는 척 하면서 하달과 우자를 유인하고 군사를 풀어 말을 거래하는 것처럼 위장하였습니다만 그들이 의심을 풀지 않고 부하를 보내자 결국 화살을 쏘아 3백여 급의 목을 베고 2백여명을 익사시켰습니다. 숙서와 손종이 오에 갔을때 손권이 제 자식에 대해 묻고 자식들에게 인수와 부책을 주었습니다. 노획한 은도장과 구리도장, 병기, 화물, 인수, 부책, 구석, 집물과 장미등이 가진 가짜 부절과 인수, 수급을 바칩니다.

네 그렇습니다. 항상 뒤통수 치기를 잘했던 손권이 공손연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이죠. 조예는 공손연을 대사마 낙랑공의 직위를 내립니다.

오주전에는 이에 관한 이상한 글이 있습니다. 공손연에게 붙잡힌 수행원들은 현도군에 있었습니다. 이중 진단, 장군, 두덕, 황강을 비롯한 소리들은 탈출하기로 결정하고 8월 19일을 거사날로 잡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누설되어 현도태수로 있던 왕찬은 병력을 모으고 성문을 닫아 이들을 잡아들이려하지만 이들은 모두 탈출하는데 성공하지만 장군의 부상으로 인해 두덕은 장군을 지키면서 과일과 나물을 따먹으면서 생존하고 진단과 황강은 고구려로 도착해 고구려왕에게 가서 자신들은 오의 사신으로 고구려에 왔는데 고구려에 내릴 조서와 예물을 공손연에게 빼앗겼다고 속여말합니다. 설령 이들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사신의 대표단인 장미,허안 등이 이러한 서류들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하급관리인 이들 수행원들이 이 중요 문서들을 가질 이유가 없죠. 어쨌든 동천왕은 기뻐하면서 부하들을 보내 장군과 두덕을 맞아들이고 25명의 사신단을 구성해 이들을 오로 귀환시키고 담비가죽 등을 비롯한 예물을 손권에게 바칩니다. 이들이 귀환하자 손권은 매우 기뻐하며 장군, 두덕, 진단, 황강을 모두 교위로 임명합니다.



뒤통수 치기만 했던 손권이 공손연에게 뒤통수를 맞자 손권은 크게 분노합니다. 그리고 공손연을 칠 병력을 모으기 시작하죠. 하지만 대도독인 육손은 표를 올려 손권을 말리죠.

전력을 들여 공손연 포섭작전을 실행하던 손권에게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거기에 공손연에게 아주 크게 당했죠. 거기에 엄청난 재물을 썼음에도 전예에게 1차로 당했고 2차로는 공손연에게 뒤통수를 맞았죠.

화가 난 손권은 이제 볼것도 없다는 듯이 위의 접경지대에 대한 대규모 공격작전을 구상합니다. 후방 교란이 안먹혔으니 힘으로 뚫고 들어가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합비 신성에서 손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던 만총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조예에게 보고합니다.

하지만 231년 무릉군의 오계만이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불안해지기 시작하죠. 오에 크게 당해 세력이 약화되었던 오계만이들의 피해가 대부분 수습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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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
13/05/15 01:32
수정 아이콘
손제리 노망의 전조가 끝나고 본격화 되는군요. 잘 봤습니다.
아침바람
13/05/15 03:30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니다. 요즘 삼국지 간간이 하는데 생각하니 더 재미있어집니다.
이제 본격 손권의 시대가 오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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