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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4/26 19:57:07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탐욕과 오만 ② 욕먹으면 오래산다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39297&page=4&sn1=on&divpage=7&sn=on&keyword=후추통

칠종칠금을 잘 읽어보신 분들은 기억하실겁니다. 남만이라 불리던 남중지역은 촉오간 사이가 험악한 상황에 친촉파와 친오파가 서로 다투다가 손권의 후원을 받은 친오파가 반란을 일으켰고, 촉오동맹이 회복된 이후 지원이 끊겨버린 친오파는 제갈량과 이회, 마충이 진압에 나서자 서로 내분을 일으키다가 알아서 망해줬죠. 제갈량은 이 반란을 진압하고 사후 대책 및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남중을 촉의 직할지로 만들었고, 반촉 반란군들을 죽이지 않고 전부 성도 인근으로 사민시켜 이들을 군둔전 운영에 투입하고, 이들로 오부군이라는 부대를 편성합니다. 사실 제갈량이 촉의 경제력을 오히려 발전시킨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시지만 실제로는 이 오부군에 소속된 군둔을 통해서 이 군둔전에서 생산된 물자로 북벌군의 보급물자를 충당했습니다. 유선이 등애에게 항복할 당시 28만 호라는 적은 민호임에도 국고에 있는 물자는 미곡 40여만 섬을 비롯해 비단이 80여 만 필에 달할 정도였으니까요.

226년 7월 강하군 석양현을 비롯한 양양, 환성 공격에 실패하고 돌아온 손권은 단양, 오군, 회계군에서 10개 현을 떼어내 동안군을 임명합니다. 그리고 이 동안태수에는 전종을 임명하죠. 전종은  이후 산월 토벌에 종사한 것을 보면 이 지역은 산월이 설치던 지역이었고 따라서 이 지역을 따로 분할해 전종에게 맡긴 것이죠.

이러던 11월 교주자사 사섭이 90세에 사망합니다.



사섭은 137년 생으로 조조나 유비 세대가 아니고 동탁과 비슷한 연배였습니다. 사섭의 조상은 왕망의 난을 피해 교지로 내려왔고 6대가 쭉 교주에 살면서 그곳에 근거를 마련했죠. 사섭의 부친인 사사는 환제때 일남군의 태수를 지냈고 사섭은 낙양으로 유학을 가 영천의 유자기에게 교육을 받았고 효렴이 되어 상서랑으로 임명되었다가 얼마 안가 관직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아버지 사사가 죽었다는 것을 봐서 쫓겨나기보다는 아버지의 상때문에 관직을 관두었다고 보이고, 환영제 시대에 조정이 혼탁해 있었기 때문에 이를 피해서 교주로 돌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사섭은 무현의 현령이 되었다가 교주태수가 되죠. 동생인 사일은 교주군의 독우(감사관)이 되었습니다. 태수가 형이고 그를 감사해야할 감사관이 동생인 점을 보면 사씨 일족이 6대에 걸쳐서 엄청난 세력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죠. 교주자사로 있던 정궁은 낙양으로 돌아갈 당시 사일이 자신을 잘 모셨다 하고 그는 자신이 삼공이 되면 사일을 불러들이겠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정궁은 사도가 되자 사일을 낙양으로 불러들였는데, 사일이 도착할 때 쯤 정궁은 파직되었고 황완이 후임이 되죠. 하지만 황완은 사일을 예우합니다. 사일을 통해 교주지역의 대호족인 사씨 가문을 제어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십상시의 난과 하진 살해, 그리고 동탁이 발호하는 혼란한 가운데 사일은 낙양에서 탈출해 교주로 귀환합니다.



교주의 상황도 좋질 못했는데 중앙이 각 지역에 신경을 쓰지 못하자 교주지역의 이민족(이라기 보단 베트남계 토착민들인듯 합니다.)들이 반란을 일으켜 교주자사로 있던 주부라는 사람이 이들에게 살해당합니다. 사섭은 중앙에 표를 올려 동생 사일을 합포태수로 둘째동생인 사위는 서문현령에서 구진태수를 겸임시키고 셋째 동생 사무는 남해태수를 겸임하게 합니다. 동탁의 난과 이은 동탁토벌전으로 시끄러웠던 중앙에서는 이 지역에 신경을 쓸수 없었고 따라서 사섭과 그 동생들은 교주 전 지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반란은 사섭이 교주 전 지역을 장악하면서 사그라들었습니다. 조정은 어느정도 안정을 찾자 이 지역을 다시 통치하기 위해 장진을 교주자사로 삼아 보내지만 장진은 부장인 구경에게 살해당했고, 유표는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창오태수 사황이 죽자 영릉 사람 뇌공을 교주자사로 오거를 창오태수로 보내죠. 조정은 유표가 이 지역에 손을 뻗으려하자 조서를 내려 사섭을 수남중랑장을 임명하고 남해, 창오, 울림, 합포, 교지, 구진, 일남군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교지태수를 겸하도록합니다. 이후 사섭은 안원장군 용도정후로 올리죠. 유표가 내려보낸 뇌공과 오거는 서로 반목하고 싸우다가 힘에서 밀린 뇌공은 영릉으로 도망갑니다.

교주에서 사섭의 위세는 정말 강대했습니다. 사섭과 그 형제들이 외출하거나 돌아올때 종과 경을 울리고 의장을 갖추고 군악대가 따랐고 수레와 말로 호위하도록 하면서 수십의 이민족 병사들이 향을 사르게 했으며 처첩들은 덮개가 있는 여성용 수레에 타고, 자녀들은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중원의 혼란한 전쟁통에서 비껴나 있던 교주지역은 문약한 선비들이 마음 높고 살 수 있었고 사섭은 좌씨춘추를 연구하고 춘추에 주석을 달 정도로 유학에 통달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원의 선비 수백명은 사섭에게 의탁했죠. 그러던 210년 손권은 보즐을 이곳에 보내 교주자사로 삼습니다. 그리고 보즐이 이 지역에 도착하자 사섭은 일가를 데리고 손권에게 종속했고, 유표가 내려보낸 창오태수 오거는 나오지 않다가 보즐에게 살해당합니다. 오거와 교주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던 사섭이 손권에게 종속하면서 오거를 제거한 것이죠. 손권은 종속해온 사섭에게 좌장군의 지위를 내립니다.

219년 사섭은 아들인 사흠을 인질로 보내고, 손권은 사흠에게 무창태수를 제수하고 사섭과 사일의 아들들을 전부 중랑장 직위를 내립니다. 손권은 이 지역 뿐만 아니라 촉과 맞닿은 남중 지역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사섭을 이용해 남중 지역에 반촉친오 세력을 만들고 반란을 일으키도록 사주합니다. 이 공작으로 인해 옹개가 친오파로 돌아서서 반란을 일으켰고 사섭은 그 공을 인정받아 위장군 용편후가 되고 사일은 편장군 도향후가 됩니다. 사섭은 손권에게 사람을 보낼때 마다 매번 명주와 조개껍질,유리,비취를 비롯한 보석과 진기한 과일, 화초 등을 매년 보냅니다. 교주는 비취와 루비등을 비롯한 보물의 산지였던데다 동남아시아와 중국과의 교역을 독점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민족의 땅이라지만 경제력은 상당히 탄탄했죠. 이러한 이권때문에 사섭이 반 독립적 형태를 띠었어도 묵인했고, 유표도 오거와 뇌공을 보내 이 지역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사섭이 오에 종속하는 태세를 취하는 통에 이 지역을 무력적으로 병합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226년 사섭이 사망하자 손권은 합포 북쪽을 나누어 교주와 광주로 분할했고, 광주자사로 여대를 보냅니다.



이릉대전을 치르면서 보즐과 함께 이 지역을 통해 오계만이들을 견제하던 여대는 220년에 교주로 가서 반란을 일으킨 전박에게 항복을 받아내 그를 고량서부도위라는 직위에 올리고 울림군의 이민족을 토벌했으며 계양 지역의 왕금이 남해군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토벌합니다. 손권은 사섭이 죽은 것을 기회로 삼아 이 지역을 오의 직할지, 실제로는 자신의 통치를 받는 손가의 직할지로 만들고 싶었고, 여대는 이 지역에 오래 주둔하면서 사씨 일가와 친했기 때문에 손권에게 그 가이드맵을 제시하고 실행하죠. 손권은 사전정지작업으로 사섭의 아들 사휘를 안원장군 구진태수로 임명합니다. 여대는 교주를 분할해 교주와 광주로 분할하고 광주자사로는 자신을, 교주자사로는 진시를 임명합니다. 사섭의 아들인 사휘는 구진태수가 되어있었지만 다른 형제사촌들은 어떠한 지위를 맡지 못했고 거기에 손권은 노골적으로 이 지역을 오로 병합하려는 시도를 보입니다. 여대는 대량과 진시를 임지로 합포군으로 보냅니다. 이러한 노골적인 교주 병합의도에 사휘는 반발해 스스로 교지태수를 칭하면서 수하의 사병들을 보내 대량이 더이상 교주 지역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지하죠. 이를 보고 있던 교지군의 관리 환린은 사휘에게 대량을 막지 말도록 합니다. 여기에서 더 이상 트집거리를 주지 말고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땅을 되찾자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사휘는 화가나서 환린을 때려죽이죠. 그러나 환씨 역시 사씨 일족에게는 손색이 있었어도 어느정도 교주에 세력이 있던 모양입니다. 환린의 조카인 환발이 이에 격노해 사병을 이끌고 사휘를 공격한 것이죠. 사섭이 죽은 후 오가 이 지역을 분할통치하면서 사씨의 힘이 조금 약해졌던지 환발과 사휘는 몇달 동안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자 서로 화친을 맺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여대는 손권에게 사람을 보내 사휘의 토벌을 요청했고 손권의 명령을 받자 3천 군사를 이끌고 대량이 있는 합포로 달려갑니다. 여대의 부장 하나가 여대에게 말합니다.

"사씨는 교주에서 몇대에 걸쳐 힘을 쌓았고 교주의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니 쉽게 토벌할 수 없습니다."

여대 : 사휘는 반역할 마음을 품고 있지만 우리들이 갑자기 이를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들은 무방비 상태이니 빠르게 나아간다면 그를 격파할 수 있다. 설령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를 따르는 이민족들은 인원수가 많고 지모가 있는 자이더라도 우리 군에게 대처할 수 있겠소?

여대는 합포에 있던 대량과 함께 사휘가 있는 교지로 진격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사섭전과 여대전의 기록이 갈립니다. 여대전에는 여대의 신속한 행군으로 인해 사휘가 두려워하다가 항복했다고 하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 부분은 여대전보다는 사섭전의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습니다. 여대는 사일의 아들이자 사휘의 사촌인 사광과 매우 친했고 여대는 사광을 사우종사로 삼아 사광을 사휘에게 보내 죄를 시인하도록 설득하게 합니다. 그리고 여대는 사휘에게 이렇게 말하죠.

여대 : 군의 태수직은 잃을지라도 다른 위해는 끼치지 않겠다.

사광을 보내 이러한 약속을 하자 사휘는 그 약속을 믿고 여대에게 항복합니다. 성문을 열고 사휘를 비롯해 사지, 사간, 사송 등 여섯명의 형제가 사죄의 표시로 윗옷을 벗고 나왔고 여대는 이들에게 옷을 다시 입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여대는 그들의 뒤통수를 칩니다.

여대는 장막을 설치하고 사휘를 비롯한 형제들에게 순서대로 들어오라고 명령하자 사휘를 비롯한 그들의 빈객과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이 가득찹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여대는 부절을 들고 조서를 읽은 뒤 사휘를 비롯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두 포박해 목을 베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목은 무창에 있는 손권에게 보내고 손권은 무창에 있던 사일, 사위, 사광은 손권에게 출두되지만 훈방됩니다. 하지만 이 세명과 사흠까지 모두 관직에서 퍼면되었고 얼마 안가 법을 어겼다 해서 처형되었고 사흠은 병사합니다. 여대는 이어 불안해하던 사휘의 장수 감례와 비슷한 세력을 지녔던 환치를 공격해 이들을 죽인 뒤 광주를 폐지하고 다시 교주로 통합했고, 구진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설종과 함께 이들을 진압합니다. 손권은 원하는 대로 이 지역을 오의 직할로 병합하는 데 성공했고, 여대의 공을 높이 사 반우후라는 작위까지 내립니다. 이러한 손권과 여대의 사기극은 일견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진수는 여대에 대해 청명하고 공손하게 공적인 일을 위했다고 평을 적죠. 그러나 동시대 인들은 이러한 여대의 행위에 크게 분노했고 후대인인 손성마저도 신의를 어기고 그들을 죽이고 공로와 이익을 취하려 했으니 군자들은 이것으로 보아 여대 가문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대는 동시대인들에게 욕을 아주 푸짐하게 얻어먹었던지 무려 256년 96살까지 살았습니다. 그 후사는 아들인 여개가 이었는데 여개 이후로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손성의 말처럼 여대의 가문 대가 끊긴 모양입니다. 하지만 욕 많이 먹으면 장수한다는게 우리나라 속설만은 아닌듯 합니다. ㅡ_ㅡ;;;

이러한 교주 병합은 일견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형남 병합처럼요. 그러나 얼마 안가 이 일은 엄청난 역효과를 불러옵니다. 이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하죠.

227년, 225년 겨울에 반란을 일으킨 파양의 팽기가 생포되어 처형됩니다. 손권은 교주를 남중처럼 배후기지로 삼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손권과 여대는 제갈량처럼 이 지역을 안정시키면서 순순히 오로 귀속되는 유화책보다는 사씨를 비롯한 유력세력을 무력으로 제거하고 강압적으로 이 지역을 압박했죠. 어느 누가 봐도 당연히 역효과가 나올 일이었습니다.

자 이제 오 내부의 관위문제를 한번 다뤄보죠. 손권과 사사건건 깐깐한 할아버지 한분과의 일입니다. 누굴거 같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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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Rhapsody
13/04/26 20:15
수정 아이콘
장소 할아버지 나오시겠네요. 그리고 손권의 퐈이아~

주유는 조조의 선단을 태우고, 육손은 유비의 진영을 태우고, 손권은 집 하나를 홀랑..

화계하면 역시 오나라입니다. (응?)
후추통
13/04/26 20:46
수정 아이콘
손권이 욕먹어야되는 거도 있지만....이후 관위 배치를..특히 승상직 배치를 보면 참 말이 안나오긴 하죠...뭐 자세한건 다음글에서 나올거고요...탐욕과 오만 편은 본격 손제리 까기입니다 흐흐흐
13/04/26 21:17
수정 아이콘
진짜 고생을 사서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우리의 손제리..
지금뭐하고있니
13/04/26 21:17
수정 아이콘
드디어 나왔군요...제리 타임..
후추통
13/04/26 21:29
수정 아이콘
제리 깔거에요 이 편이 제리까기타임이에요.
13/04/26 21:19
수정 아이콘
제가 본 삼국지 만화책에선 손권이 제갈량이 위연, 양의를 세웠다는 걸 듣고 웃었다고 해서 제갈량이 "아 역시 손권은 안목이 있어"라고 한 걸 보아 대단한 군주인줄 알았는데 인터넷에 보니까 다들 손제리라고 하네요
후추통
13/04/26 21:21
수정 아이콘
인재보는 안목이라...저는 정사보고 난 뒤에 그 대목보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물론 이건 다음이야기에 나올거에요~ 하하하
Je ne sais quoi
13/04/26 22:0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잘 안 나오는 지방 이야기도 참 재미있네요.
13/04/26 22:07
수정 아이콘
삼국지를 보면 믿지 않아야 할 사람을 믿어서 크게 당하는 이들이 많던데, 일방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이들(여포?)은 별론으로 하고, 조조가 재밌는건 신의를 다 해야 할 사람에겐 신의를 다 하고, 그렇지 않을 사람들은 철저히 구분했다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욕먹으면 귀를 막아 버리면 그만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고금의 현실이죠.

위 글에 욕먹어서 대가 끊겼다는 역사적 기록을 읽고 조금 위안을 얻고 갑니다.
후추통
13/04/26 22:49
수정 아이콘
일단 조조는 얘가 뒤통수 칠거 같은데? 그러면 일단 죽였죠. 거기에 자신이 못쓰는 인재는 남에게도 주지 않는다! 라는 조건으로 변양, 예형을 죽이기도 했죠. 사실 이런 조조의 원칙이 무너진 예가 단 한명 관우였는데 당시에 전혀 명성이 없던 관우를 자신의 원칙을 유일하게 무너뜨린 것을 보면 조조란 사람도 참 대단합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3/04/26 23:19
수정 아이콘
그건 사랑이라는...
펠릭스
13/04/27 01:33
수정 아이콘
진짜 사랑입니다.

아마 관공이 츤츤 하지 않았다면 조조도 그만큼 데레데레하지 않았겠지요.

원래 튕기면 애가 타는 법 아니겠슴미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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