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09/02/12 17:23:05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6


사실 난 할림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동생이 할림 선생님 할림 선생님 그래서 그냥 그런가 할 뿐이지
정확한 본명도 잘 알지 못한다.

일단 할림 선생님이라하면 세계적인 거장, 클래식 음악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다 알만한 호로비츠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져 있고
현재 NYU의 교수로 계신 분이라고 한다.
동생과 찍은 사진을 보면 백인은 아닌 거 같고
동양, 특히 인도계의 느낌이 조금 나는 분이었다.

여하튼 동생과 할림 선생님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 초청강사로 계원 예고에 잠시 들려서 학생들을 지도 하셨었는데,
당시 동생을 꽤 눈여겨 보셨던 거 같았고, 동생도 할림 선생님을 굉장히 많이 따랐다.

며칠뒤 할림 선생님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동생과 할림 선생님과의 짧은 인연은 끝이났다.
다만, 할람 선생님에게 배우기 위해 같은 고등학교였었던 동생 친구는 NYU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친구를 통해 동생의 안부를 자주 묻는다는 정도만 전해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후, 대학생이 된 동생이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있었을 때 할림 선생님이 다시 한국에 오신 것이었다.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동생과 할림선생님은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할림선생님이 굉장히 많이 놀랐다고 한다.

내 추측일 뿐이지만, 당시 피아노에 한 없이 열정적이던
동생의 모습은 온대간대없고 정말 진심으로 피아노에 지쳐하는 동생의 모습이
할림선생님에게도 보였던 것 같다.

할림 선생님은 너무 놀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망가졌냐고 물었단다.
당연히 동생은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의 슬럼프에 대한 설움이 한 번에 몰려왔는지
거의 울듯이 말도 안 되는 영어로 하소연을 했고, 할림 선생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주셨다고 한다.


동생의 가장 큰 문제는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내 동생이지만, 동생의 가장 큰 매력은 평소엔 이보다 심한 바보가 없어 보이는데,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할 땐 나로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저게 내가 알던 바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한다.

특히 피아노에 앉아 있을 때는 외출할 때 여자 특유의 가식적인 모습이나,
집에 있을 때의 더러운 두 모습이 모두 사라지고,
정말 괴물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게 동생의 모습이었다.

말로서 설명이 안 되는, 동생이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모습인데,
이미 그 괴물같은 모습이 사라진지는 아주 오래 되었다.


그리고 분명히 할림 선생님도 그것을 눈치 채셨을 거라 생각했다.
둘이 데이트.. 비스무리한 걸 하면서 할림 선생님이 동생에게 3가지 약속을 하자고 했는데,
첫 번째는 피아노를 쉬지 말것.
두 번째는 영어 공부를 할 것.
세 번째는 운전 면허를 딸 것이었다.

아마도 동생이 유학을 갈 때를 대비해서 내어준 숙제였던 거 같다.


동생이 할림 선생님을 만나고 와서 동생의 그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피아노를 즐거워하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음악이란 즐겁게만 할 수가 없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동생이 피아노를 가장 열심히 쳤던 고등학교 때도
동생이 즐겁게 피아노를 치는 것보다는 힘겹고 울면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았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동생이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아무리 칠수록 부족한 열망과 욕심은 재미를 뛰어넘은
본인도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 또 다른 쾌락을 주었다고 난 확신한다.


그 쾌락을 잃어버린 동생에게 피아노의 재미를 찾아주기란 쉬운 게 아니었는데,
할림 선생님과의 두어 번의 만남이 동생에게 피아노의 재미를 찾아주었다.


동생은 할림 선생님이 추구하는 음악이 자신과 너무 비슷하다면서 좋아했고,
그가 보여주는 음악에 대한 철학을 너무나 존경했다.
그렇게 며칠후 할림 선생님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동생은 한국에 남았다.


어쩌면 그 때가 동생이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Sansonalization
09/02/12 17:43
수정 아이콘
아 마지막줄이 의미심장하군요.
09/02/12 17:47
수정 아이콘
이야기가 슬퍼질 것 같은.. 느낌....?
머신테란 윤얄
09/02/12 18:01
수정 아이콘
마지막줄....
hysterical
09/02/12 18:28
수정 아이콘
노다메를 보는듯한 느낌이..
결말이 궁금하네요...
09/02/12 18:29
수정 아이콘
왠지 연재 소설 보는 느낌이네요.. 너무 리얼하고 무척 자세한 것 같아요. 더군다나 고수들만 시전한다는 절단신공까지!!! 빨리 뒷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현재 동생분의 모습이 어떨지도요. 설마 동생분이 손을 다치시거나 하지는 않았겠죠? 제발 해피 앤딩이기를.. ㅜㅜ
마동왕
09/02/12 19:38
수정 아이콘
정말 소설 같네요^^ 흥미진진합니다.
미스터풀스윙
09/02/12 21:21
수정 아이콘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정말결말이 궁금하네요.
09/02/12 22:21
수정 아이콘
글쓰는 실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037 [일반] 한화대 SK 경기 보시는 분 안 계시나요? [28] sungsik-3994 09/04/17 3994 0
11777 [일반] 예프게니 키신의 내한이 있었군요. [7] sungsik-3121 09/04/04 3121 0
11215 [일반] 트래비스 내한 공연. [6] sungsik-4773 09/03/02 4773 0
11000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7 [9] sungsik-4060 09/02/17 4060 0
10895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6 [8] sungsik-4086 09/02/12 4086 0
10793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5 [14] sungsik-4951 09/02/08 4951 0
10757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4편 [24] sungsik-4702 09/02/06 4702 2
10739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25] sungsik6276 09/02/05 6276 2
10310 [일반] 적벽대전은 어떤 전쟁인가... [57] sungsik-6235 09/01/13 6235 0
10255 [일반] 제갈량에 대한 이해. [102] sungsik-8224 09/01/10 8224 2
9140 [일반] 예술의 전당의 대중 가수의 공연. [20] sungsik-4879 08/11/05 4879 0
9079 [일반] 베토벤 바이러스, 천재도 제발 어느정도... [58] sungsik-8919 08/10/31 8919 0
2431 [일반] 왜 PGR에선 섹스에 관련된 얘기가 안 올라오는 거죠? [37] sungsik-6394 07/08/25 6394 0
1920 [일반] UCCC동영상. 해외 거주자에겐 가장 고마운 동영상입니다. [18] sungsik-3452 07/07/15 345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