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09/02/05 14:34:31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YG클랜 공부 게시판에 올리는 글인데,
몇 번 올리다보니 시리즈물이 되어가서 왠지 아까워 여기에도 올립니다.
1~3편까시 썼는데 하나로 묶으니 엄청나게 기네요.
와이지에선 사람들이 한편씩도 길다고 잘 안 읽던데, 여긴 그래도 긴 글 잘 읽는 분들이 많으니
올려봅니다.
편의상 반말체로 글 씁니다.

1.


나한텐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졸업을 이제 1년 앞둔 예비 졸업반 연대 피아노과 학생이다.

동생이 피아노를 처음 시작한 건 5살 때 정도였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본인의 흥미 잃음으로 체르니 40번정도까지 쳤다가
피아노를 완전히 그만뒀다.

그렇게 한 5년쯤 지났나..
이 애가 유키구라모토를 듣더니 중학교 2학년 때쯤 갑자기 피아노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을 하다가, 갑자기 진짜 음악은 클래식이다 어쩌구 그러며
클래식 피아노곡에 취미를 가지는 거 같더니 중학교 2학년 여름쯤에 예고를 가고 싶다고 하는 거다.

피아노를 쳤다고는 하나 5년전 이야기라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학과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악보조차 제대로 못 읽는 아이가 1년을 준비하고
예고를 가겠다니, 삼당을 하던 담당 음악선생님은 기가찰 뿐이었고
부모님은 가도 돈이 많이드니 반대하셨다.

그런데 동생이 너무 진지하게 하고 싶다고 하길래
간신히 부모님을 설득해서 부모님의 지원을 얻었다.
그리고나서 학교 음악 담당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정말로 지원을하고 싶으면 안양 예고를 지원하라고 했다.

그러나 동생은 안양 예고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서울예고나 선화예고는 현실적으로 정말 불가능했고
계원 예고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건 음악 선생님의 조소 뿐..
정말 선생이 학생을 그렇게 비웃는 건 처음본 거 같았다.


그리고나서 동네 근처의 전문 학원을 가봤는데, 역시 무리라고 하더라.
피아노를 친 게 너무 오래전이고, 준비시간이 너무 짧다고.
특히 치명적인 게 학교 내신이 너무 안 좋다는 거였다.
실기에서 못따라가면 내신으로라도 성적을 커버해야하는데,
반에서 거의 성적이 하위권이었던 내 동생이기에 희망 자체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동생은 정말 가고 싶었던지 정말 열심히 피아노를 쳤고
기적같이 계원 예고에 합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합격자 가운데에서 내신은 꼴지였었는데,
실기 2등으로 간신히 합격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내 동생의 예고 생활은 시작되었는데,
역시 피아노를 늦게 시작한만큼 힘든 점이 많았다.

첫번째는 초견이다.
초견이 뭐냐면 악보를 처음보고 그 악보를 그대로 따라치는 것인데,
이건 어렸을 때 음악교육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좀 많이 좌우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동생은 반주능력이 상당히 많이 떨어진다.
(이건 결혼식 반주 알바하며 많이 좋아졌다고....한다-_-:)
그래서 동생은 곡을 익히기 위해서 듣고 외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두 번째는 환경이었다.
동생이 학교에 입학 할 당시에 피아노 과에서 집에 그랜드 피아노가 없는 학생은
동생이 유일했다. 학교 등록비야 그렇다쳐도 레슨비의 부담도 심했기에
부모님은 선뜻 그랜드 피아노를 사줄 수가 없었다.
결국 동생은 고3이 되어서야 겨우 중고 그랜드 피아노를 살 수 있었다.

세 번째는 공백이었다.
5년간의 공백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공백이었던 거 같다.
아주 어렸을 때 배운, 그것도 아주 시골 피아노 학원에서 배웠던 만큼
전문적인 음악 공부라던가 그런 게 되어있을리가 없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해야했는데 그러기에 동생은 나이가 너무 많았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17살의 나이는 정말로 적지 않은 나이였다.

그럼에도 애가 재능이 있었는지 고1 2학기 부터는 실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이 되면 예고에선 정기 연주회라는 것을 한다.
정기 연주회는 그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연주회를 여는 것인데,
이건 아마 예고 시절에서 대학 입시 다음으로 중요한 것으로 취급이 된다.

그나마 다른 악기는 오케스트라등이나 성악등이 있어서 여러명이 되기도 하지만,
피아노는 무조건 딱 한 명의 학생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나서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뒤에 서서 성악 노래를 부르게 되어있다.
피아노를 치는 학생이 노래를 한다는 게 정말로 치욕적이기 때문에,
아마 예고 2학년 생은 1년이라는 시간을 이것 하나에 모든 걸 투자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정기 연주회 오디션은 다가왔고, 가장 유력한 후보가
동생과 실기 2등을 하던 학생이었다. 이 오디션은 예고 내에선 상당한 축제 비슷한 느낌인지
정말 많은 학생들이 모여 오디션을 구경한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중에서 단 한 명만 선택받는 것이고, 그 긴장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동생의 차례가 왔고 피아노 연주를 겨우 마치자 주위에서 아주 큰 박수소리가 터졌고
동생은 많은 인파를 뚫고 교실을 나와서 그대로 계속 울었다고 한다.

동생과 그 동생의 친구가 오디션 전에 대화를 나눴는데,
친구는 '난 네가 되어도 웃으면서 축하해줄 수 있을 거 같아.'
라고 했는데 동생은 '난 만약 네가 되면 순수하게 웃으며 축하해주지 못할 거 같아..'
라고 했다고 한다.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인지, 아니면 너무 극도의 긴장감이 한 번에 풀려서인지
동생은 정말 하루종일 울었다고 한다. 여하튼 동생도 그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진 못했다.


그렇게 결과가 나왔고 동생이 정기 연주회 피아노과 연주자로 선택되었다.

2등을 한 그 동생의 친한 친구는 다행히 다른 독주의 반주파트가 필요해서
그 반주를 하게 됨으로 메인은 아니었지만, 정기연주회에 참가는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기 연주회가 시작 되었다.
계원예고의 정기연주회 장소는 지금은 바뀌었다고 하는데
당시엔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이었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아무나 공연이 불가능하다.
돈만 준다고 공연이 가능하지도 않다.
동생을 가르쳤던 모든 선생님들도 한 번도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동생의 첫 공연은 그렇게 큰 무대에서 성사되었다.


2.


그렇게 큰 무대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느낀 첫 느낌은
클래식은 절대 조용하고 엄숙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클래식에 대한 나의 선입견과 편견을 한 번에 바꾼 것이 바로
그 정기 연주회였었는데, 분위가와 열기는 한마디로 축제나
웬만한 락 콘서트 이상의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물론, 연주를 할 때는 엄숙하고 조용히 해야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외의 공연과 공연 사이의 느낌은
이게 과연 클래식 연주회인가를 방불케할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그런 무대를 무사히 잘 마치고 그렇게 동생의 고등학교 2학년 생활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됐고 3학년에 올라가자마자 동생은
처음으로 콩쿨이란 걸 준비하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상당수의 콩쿨이 있는데
동생은 그 때까지 콩쿨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5월쯤인가 무슨 콩쿨을 나갔는데,
보란듯이 예선에서 낙방했다.

동생도 첫 콩쿨이라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설마 1차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곤 생각치 않았는지 상당히 충격을 받았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고민은 무대 공포증이다.
실제로 평소 연습 실력의 절반만 무대에서 보여줘도 성공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무대에서 보여주는 그것은 상당히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두 번째 콩쿨을 나갔고,
이번엔 간신히 예선은 통과가 되었다.
콩쿨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1~200명의 전국에서 모인 연주자들이
예선을 보고 그 중에서 10명정도의 본선자를 뽑는다.

아마 그 콩쿨은 음연 콩쿨이라고 해서 100명 조금 넘는 예선자들이 왔다고 한다.
음연 콩쿨은 일반 대학 콩쿨과 다르게 수준 낮은 연주자들이 잘 오지 않아
경쟁률이 대학콩쿨보다 쎄지 않은데 입상은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은 저번 콩쿨보다 훨씬 더 걱정하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간신히 예선에 통과한 동생은 본선을 치루게 되었다.
본선을 마친 동생은 본선이 끝나자마자 입상을 못할 것을 확신해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자기가 어떻게 쳤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첫 콩쿨 때는 그래도 본선은 가지 않을까라고 자신했던 동생이었는데,
한 번의 실패이후로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듯 싶었다.

그리고 결과가 발표가 났는데 동생은 기적같이 입상을 했다.
수상 결과는 1등이 없는 3위.
보통 음악 콩쿨은 1위의 자격이 없을 땐 1위 수상을 공석으로 채우기도 한다고 한다.

자기가 어떻게 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동생은
그렇게 첫 입상을 했다.


그 뒤로 몇 번 더 쇼규모 콩쿨을 봤는데 동생은 계속 2등, 3등 정도를 반복해서 수상했다.

그리고 콩쿨 중에서 상당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리 콩쿨에 동생이 참가하게 됐다.
한 2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시험에 봤고 다시 본선에 올라갔다.
그렇게 몇 번 콩쿨을 나가고 나니 본선쯤 올라가면 눈에 익은 연주자들이 생기고,
나름 친분도 생기고 한단다.

여튼 이번엔 상당히 큰 대회였는지 동생은 또 다시 상당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콩쿨의 중요성은 그저 입상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무대 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한
연습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결국 입시자들의 최종 목표는 대학이기 때문에, 콩쿨에서의 수상 자체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연주 실력을 평가원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생은 다시 좀 심각하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선을 마치고 온 동생은 또 다시 음연 때와 비슷한 말을 했다.

연주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동생은 극도의 긴장을 하면서 떨었는데, 오히려 난 이 말을 들으니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동생이 연주를 기억 못할 때가 동생 결과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이 콩쿨에서 동생은 1등은 또 놓쳤지만, 2등 수상으로 기대 이상의 상당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 맘 때쯤 동생이 새로운 교수에게 레슨을 받게 되었는데,
아마 동생이 처음으로 받는 유명 교수의 레슨이었을 거다.
예종 교수로 김대진만큼이나 국내에선 명성이 있는 교수인데..
이름을... 까먹었다.

여튼 그 교수를 만나고오니 동생이 굉장히 좋아하는 거다.
사실 동생은 레슨 선생님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 학생이다.
동생 자체가 좀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면 꼭 그 방법으로
따라가지 않고 제 멋대로 치기 때문에 레슨 선생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동생이 이 교수를 상당히 좋아했다.
이유인즉,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부분을 이 교수는 상당히 큰 장점이라고 칭찬한다는 거다.
초견이 좋지 못했던 동생은 언제나 그걸 골치거리로 지적받았는데
이 교수와 동생은 악보 읽는 방법이나 순서가 동생과 완벽하게 일치한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음을 치는 방법, 음악을 해석하는 방법등이
동생과 너무 흡사했다는 거다.


그 맘 때쯤 동생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바로 연대 수시와 예종 정시의 선택이었다.
연대 수시와 예종은 같은 시기에 치루어지는데
일단 명성은 예종이 연대보다 조금 더 높았다.

문제가 연대 수시를 보면 예종 시험을 볼 기회를 잃어버리고,
예종 시험을 봐서 붙어 버리면 연대 정시를 볼 기회를 잃어버린다.

한 마디로 두 가지중 반드시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당시 예종 교수였던 레슨 선생님이,
아주 넌지시 예종 시험을 봐보는 것도 괜찮다고 하는 거다.
이 말은 그냥 단순한 권유의 말이 아니라고 한다.

예종 담당 교수가 자신이 레슨하는 고등학생 중 재능이 보이는 학생이 있을 때,
예종 시험을 보면 떨어질 거 같지만, 그냥 봐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다.
라는 정도만 말해도 그 학생은 예종에 합격한다는 거다.

그런데 교수가 동생에겐 거의 직접적으로 시험을 보라고 권유를 했다.
그 말은 넌 내 밑으로 와라라는 간접적인 의사표시이다.

동생은 상당히 갈등을 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는데, 결국 동생은 합격이 보장된 예종을 포기하고 연대 수시를 선택했다.


연대 수시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시험을 봐서 딱 1~2명만 선택된다.
이 기간에 동생은 콩쿨에 많이 나가서 입상을 거의 놓치지 않아
그래도 나름 자신감이 있었던 기간이었다.

그리고 수시를 봤는데... 아주 처참하게 떨어졌다.
이 때 아마 동생이 가장 충격을 받았던 모습을 봤다.
왜 예종을 가지 않았을까 아주 많이 후회하면서...

이제 동생에게 남은 시험은 연대 정시 뿐이었다.
연대 정시는 예종이나 수시와 다르게 성적을 본다..
그런데 성적을 다 보는 게 아니라, 20명 정도를 뽑는데
10명의 실기우선자를 선발하고, 나머지 공백의 10명은 실기 + 성적으로 선발한다.

수능 등급이 9,7,7 (-_-)인 동생이 성적이 포함된 선발에 통과될리가 없었다.
결국 무조건 10명의 실기우수자에 들어야한다는
아주 큰 핸디캡을 가지고 시험을 봐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입학을 하고 동기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2~3등급의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동생은 도저히 쪽팔려서 자신의 등급을 말하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


3.


음대생은 가군 나군 다군의 대학을
각각 개별적으로 가서 실기 시험을 치루게 되어있다.

동생이 가고자 한 대학은 연대 뿐이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경희대까지도 염두해두곤 있었다.


그렇게 가군에 있는 어떤 음대의 시험을 보았는데
그 학교 수석에 4년 전액 장학금으로 합격이 됐다.
물론, 동생은 갈 생각이 전혀 없었고 연대 시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시기가 아마 내가 동생연주를 가장 많이 들은 시기인데,
동생이 의외로 자신이 연주할 때 내가 옆에 있어주는 걸 좋아했다.
난 음악에 대해 완벽한 문외한이라 음악적 테크닉이나 해석같은 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동생이 연주를 하면 난 옆에서 듣고,
뭔가 저번 연주보다 깊이가 없는 거 같다니..
음악이 너무 힘이 없게 느껴진다느니..따위의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면
동생은 꽤나 진지하게 그걸 참고삼아 다시 연주를 했다.
연습을 할 때도 상당히 자주 떨었는데, 그럴 때면 그냥 우스겟소리나 연주 감상평을 좀 더 말해줘서
진정시켜주고 그런 식으로 연습을 해 나갔다.

여담이지만 동생 영향 덕에 난 피아노 연주를 상당히 좋아하고
꽤나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 동영상을 상당히 많이 보고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동생이 바로 옆에서 연주하던 그 때 이상의 연주를
난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사실 그 뒤로도 동생 연주를 많이 들었는데,
동생이 더이상 그 때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진정하게 연주하지 않아서인지
그 때의 감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여하튼, 연대 실기날이 되었고 동생은 실기를 치뤘다.
실기 시험이 어땠는지는 동생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지라
나도 들은 게 없기에 따로 설명을 할 내용이 없다.

그렇게 동생 연대 실기는 마쳤고,
발표도 나오지 않았는데 동생은 여전히 예종 시험을 보지 않을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 후 발표가 나기까지 동생이 얼마나 미쳐있었는지는..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합격 날짜 발표날에 동생은 성당에 아침미사를 어머니와 나갔고,
그 때 핸드폰으로 합격 통보가 왔다고 한다.
동생은 미사 도중에 정말 한 없이 울었고
미사가 끝난 뒤 많은 분들이 축하해줬다고 한다.


그렇게 동생의 고등학교 생활은 끝났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stralPlace
09/02/05 14:47
수정 아이콘
동생의 노력이 글에 그대로 묻어나오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런 분들에 비하면 정말 저는 대학을 날로 들어온 것 같아서 좀;

(실제로 거의 날로 먹다시피 들어왔고 그 부작용을 대학 내내 겪었습니다...)
higher templar
09/02/05 14:47
수정 아이콘
오.. 누구의 삶인들 드라마가 아니겠습니까 만은 정말 스토리가 있네요.
이철순
09/02/05 14:49
수정 아이콘
재미 있게 읽었네요..

저도 바이올린전공으로 하려다가 계원예고 시험보기 한달전에;;

공부하고 싶어서 그만 뒀었는데 동생 진짜 대단하네요 ^^
星夜舞人
09/02/05 14:50
수정 아이콘
동생분이 고난의 길을 가시는군요. 만약에 그냥 교사, 교수 혹은 레슨으로만 밥먹고 살거라면야 크게 고난이 없을것이라고 봅니다. (연대라면야 피아노학원 선생님정도해도 돈도꽤 벌겠죠.) 다만 동생분이 연주 프로를 목표로 한다면 지금하신것보다 더욱더 어려운 길을 가게 될것이라고 봅니다. 유명 국제콩쿨에 입상하기 위해 쓰는 비행기값과 레슨, 그나마 연주자가 되면 전적으로 동생분 스케줄에 매니저가 감당해야 되는데 없다면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중에 누군가가 직접 스케줄에 맞춰서 모든걸 해야 되고, 음악만 한다면야 참 힘든것이겠죠. 그리고, 돈이라도 벌면서 돌아다니는 프로연주자들은 이미 15-6세때 벌써 천재라고 불리며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옆에서 보기에도 참 안스럽습니다. 더구나 한국은 연주를 보는 문화가 크게 발달되 있지 않아서, 프로연주자들이 자생할수도 없는 환경이구요. (요즘 교향악단에서 경제위기라도 짜르는거 보면, 즐거움을 준다는 마인드자체가 없죠.)
라이시륜
09/02/05 14:58
수정 아이콘
참 어려운 길을 가시는 동생분이네요.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whiriana
09/02/05 14:59
수정 아이콘
한편의 영화같은 스토리.. 라고 할까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동생분에 대한 오빠의 사랑이 묻어나네요^^ 예능이나 체능쪽 수험생이 있는 가정은 정말..;;
09/02/05 15:03
수정 아이콘
현재진행형인 아름다운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쌩뚱맞게도, 이 글을 쓴 글쓴이분의 삶도 궁금해지는 것일까요.
여동생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이렇게 동생을 곁에서 따스하게, 진지하게, 관심있게 바라보는 오빠분이라면 참 좋은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천재...? 저는 믿지 않습니다.
동생분께는 예고 2학년때의 그 정기 연주회가, 큰 자산이 되겠네요.
예고 가겠다는 말에 비웃음까지 샀던, 늦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했던 피아노 연주가
그 쟁쟁하다는 예고에서 가장 피아노 잘 치는 학생으로 성장했는데, 천재라면 그것이 천재라고 해야겠지요.
그렇게 소중한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으니, 모두가 '너 안돼, 힘들거야' 라고 속닥대더라도
"난 이미 해 봤는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구."
라고 응수하며 꿋꿋이 살아 나갈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오빠 맞으시죠? 곰곰히 생각해 보니 글 중에 남자분이라는 언급을 못 본것 같아서;
아.. 아니라면?
honnysun
09/02/05 15:08
수정 아이콘
와 재밌게 읽었어요. 고등학교 정기회 연주는 갑자기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한장면이 스쳐가네요.
마지막 문장에 저도 눈물이.. 아..
얼음날개
09/02/05 15:13
수정 아이콘
동생분도 동생분이지만, 글쓴 분의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네요. 따스합니다.
sungsik-
09/02/05 15:15
수정 아이콘
저기.. 아직 얘기가 끝난 게 아닙니다-_-;;
현재까지 이야기 쓸 거에요...
제가 좀 귀찮아해서 자주자주 못쓸뿐..

그리고 오빠 맞습니다.
星夜舞人
09/02/05 15:20
수정 아이콘
DEICIDE님// 근데 음악에 천재라는 괴물이 있더라구요. -_-!! 몇년전에 15살짜리 프로연주자가 피아노연주하는거 보고 그냥 뻑 갔습니다. 으악이라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그냥 가면 가장 싼 티켓값도 50달러였는데, 학교에서 우연치 않게 공짜티켓을 얻어서 봤습니다.
WizardMo진종
09/02/05 15:25
수정 아이콘
헐;;;성식님 글이군요;;;
happyend
09/02/05 15:47
수정 아이콘
와...재밌네요.제가 알기로(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연대 피아노과...연대교수님에게 레슨을 받지 않은 경우에 들어가기 쉽지 않을텐데...대단합니다.여러가지로....

사실,제 동생(사촌동생)도 비슷하다고 할까요?깡촌에 몸이 불편한 부모님.그래서 혼자 미친듯이 그림그리고 (정말,전 걔가 그림에 미친앤줄 알았습니다) 공부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안한상태로 입시때 서울로 올라와 저희집에 머물렀죠.
괜히 집에 지내라고 하는 바람에 아침에 서울대까지 데려다주느라 쌩고생을 했는데,덜컥 붙더군요.시골학교라 미술선생님도 비웃기만 하였던 ...그래도 합격하고 나니,학교정문에 플랭카드가 나부끼고....
그런거 보면,진짜 재능은 숨긴다고 숨겨지는것이 아니고,그걸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제 동생은 집안형편상,개인지도를 받을 형편이 못되어 시골의 애들위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형이 돌봐준게 전부였죠.그래서 원래 원하는 전공을 배우지 못해 그 형이 돌봐줄 수 있는 전공을 선택했고,국립대학외엔 갈 수 없어서 서울대떨어지면 제주대를 가야했죠.(당연히 제주대도 수석합격했었습니다만).
동생은 그냥....미친사람으로 보이더군요.그림에....
성식님의 동생얘기를 보니,제 동생 생각이 나네요.
스타카토
09/02/05 15:50
수정 아이콘
이야기는 계속되지요?
그렇다고 믿습니다~~~
ilovenalra
09/02/05 16:05
수정 아이콘
멋있네요!!!!
다음편 계속 보고 싶은데 ㅠㅠ
빨리 올려주세요~~
e-motion
09/02/05 16:09
수정 아이콘
저도 여동생이 예고 - 국내 관현악과를 마치고 독일로 유학가서 지금 거기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습니다. 커리어도 비슷하겠군요. 여동생도 늦은 나이에 음악을 했고, 기대도 안했던 예고에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집안에서 고민이 심했죠. 예비 졸업반이라. 이제 인생에서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로군요. 일단 음악쪽에서 뜻을 이루고 싶으면 유학은 필수라고 보시면 됩니다. 국내에는 그 정도는 해줘야 음악판에서 플레이어로 인정해줍니다. 보통 집에 돈이 많을 경우 미국(특히 줄리어드), 돈이 없을 경우엔 독일로 가는데 미국은 돈이 많이 들지만 학위 따는 것이 상대적(상대적!입니다. 쉬운게 아닙니다.)으로 쉽고, 독일은 저렴한 대신 전문 연주자 학위를 따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위의 성야무인님께서 '돈이라도 벌면서 돌아다니는 프로연주자들은 이미 15-6세때 벌써 천재라고 불리며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하셨는데. 아닙니다. 손익분기점이 그나마 맞으려면 5-7살 사이에 천재 소리를 들으며, 세계적인 연주자로부터 사사를 받고 15-16세에는 각종 콩쿨을 휩쓸고 다니며 자신의 스타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연주를 남의 돈으로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어떤 분은 천재는 없다고 하셨는데, 예체능은 천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수의 천재가 그 바닥 돈을 대부분 가져갑니다. 그것도 전세계적으로 말이죠.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프로 게이머판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수많은 무명의 프로 게이머들이 단지 연습과 열정이 부족해서 임요환이 되지 못한 건 아닌 겁니다.

그럼 그 천재가 아닌 영재들은? 여기서 전문 연주자의 길을 택할지, 비즈니스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이 갈리게 됩니다. 일단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는다는 건 정말 수도승의 길을 걷는 거라 보시면 됩니다. 보통 유학 후 정말 잘 풀린 케이스가 어디 대학 교수로 가거나, 오케스트라에 부수석 급으로 들어가는 건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어느 교수에게 사사를 받았는지 어디 라인인지 하는 실력 외의 요소도 실력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모든 게 갖춰줘도 시기가 안 좋아 교수 임용이 취소되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영재들은 대학 강사 자리를 전전하고 자기 돈으로 공연하는 거죠. 예당, 세종 등에 보이는 그 수많은 개인 귀국독주회, 정기연주회들. 모두 자기 돈으로 공연대행사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게 전문 연주자의 커리어거든요. 이 길은 멀고 험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길입니다. 거기다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지요. 이미 성공의 대부분은 천재들이 챙겨갔거든요.
星夜舞人
09/02/05 16:27
수정 아이콘
e-motion님// 님이 하신 말씀과 비슷한 뜻으로 드렸는데, 전달은 그렇게 안되었나 보네요. 제 얘기는 어릴때부터 천재로써 이름을 떨치고, 15-6세쯤이면 프로연주자로 뛴다라는 뜻으로 드린거였는데, 전달이 잘못되었나 봅니다.
09/02/05 16:36
수정 아이콘
드라마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스토리군요+_+..

엄청난 노력과 함께 천재성도 타고나신 것 같네요;;
wish burn
09/02/05 17:59
수정 아이콘
25살에 천재성을 발견한 강건우는 참..-_-
e-motion
09/02/05 18:05
수정 아이콘
星夜舞人님// 아. 그랬군요. 저 역시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 더 첨언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만약에 그냥 교사, 교수 혹은 레슨으로만 밥먹고 살거라면야 크게 고난이 없을것이라고 봅니다'

-> 사실 이 부분은 외국은 어느 정도 들어맞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이 부분도 사실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부분이 프로 연주자보다 더욱 힘든 고난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동생이 향수병을 느끼면서도 한국에 들어오는 걸 참 망설이는 이유기도 하지요.

1. 교사 : 제가 교육쪽은 전문가가 아니라 말하기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일단 음악 선생님 자리가 흔치 않습니다. 거기다 순수 음대는 음악교육과에게 점수에서 밀립니다. 유학파 출신의 기간제 교사 생각보다 수가 많습니다. 거기다 사립학교 정교사로 가는 건 역시 실력보다는 영업이 크지요. 대신 일단 들어가기만 한다면 별 노력 없이 자리가 보장되는 경향이 있긴 하죠.

2. 교수 : 많은 사람들이 저기 어디 유학 가서 박사 학위 따가지고 오면 교수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오해하시더군요. -_-; 제가 보기엔 제일 교수되기 어려운 게 예체능쪽 교수입니다. 공대나 문리대 같은 곳은 상대적으로 교수 임용이 투명한 편입니다만(역시 상대적입니다. 깨끗하다는 게 아니라), 이쪽은 제자 라인이 학부 시절부터 형성됩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능력을 가지지 못한 대부분의 영재들은 시간 강사를 전전하다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지요.

3. 레슨 : '연대라면야 피아노학원 선생님정도해도 돈도꽤 벌겠죠' -> 역시 아닙니다. 예종, 서울대, 연대 등 학부 경력은 별 필요없습니다. 한국에서 음악인 커리어는 무조건 미국, 유럽등에서 박사 학위 정도는 따고 와야 시작됩니다. 이래야 연주를 하건 관련 비지니스를 하건 뭔가 일이 됩니다. 그냥 학부 졸업해서는 할 수 있는 게 학교선생님,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한 학원선생, 잘 풀릴 경우 오케스트라 평단원 정도인데 다 돈 안됩니다. 특히, 피아노학원 역시 점점 제도권 진입에 실패한 유학파들이 하나 둘 씩 이쪽으로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라 국내파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죠. 원래 피아노학원 자체가 그리 돈이 되는 영역도 아니었구요.

그 돈 잘 번다는 소위 압구정 김선생 같은 입시, 영재교육관련 레슨 선생들. 대부분 매우 잘나가던 유학파 연주자 출신들입니다. 입시의 성공을 위해서는 교수와의 인맥이 중요하거든요. 한국 있을 때 모두 교수들의 총애를 받았던 애제자들이었지만, 연주자로서의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끼고 현재의 실력과 인맥을 통해 비지니스를 하는 것이죠. 거기다, 정말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직접 교수와 오케스트라 수석급등 전문 연주자들에게 직접 레슨을 받습니다. 이 글에서도 예종 교수에게 직접 레슨 받는다는 부분도 있구요. 국내 학부 졸업만으로는 명함을 내밀기 힘든 영역이죠.
星夜舞人
09/02/05 18:38
수정 아이콘
e-motion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건 국내로 가던 국외로 가던 프로연주자가 된다는게 교수, 교사, 혹은 피아노 학원보다 휠씬 어려울것이라는 의미에서 올린글이었습니다. 물론 교수, 교사 혹은 피아노 학원이 쉬울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수가 될려면 유학도 가야되고, 예체능계의 특성상 유학가서도 돈을 벌면서 대학원다니기 힘들다는것쯤을 알고 있구요. 교사야 임용고시봐야 되고, 피아노 학원차릴려면 어느정도 돈도 좀 있어야 되고, 애들 비위도 잘 맞춰야 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연주자보다는 안정적이고 자리도 많다는 의미에서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단순히 직업을 얻는다라는 개념에선 음대출신이 이공계에 비하면 휠어씬 자리가 없다는건 극명한 사실이고, 현시창이라는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MeineLiebe
09/02/05 23:24
수정 아이콘
저는 작곡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독일에 뻘짓하고 있네요~~

사실 우리나라는 인구 비율에 비해서 음악하는 사람 수가 너무 많습니다.
장르 할 것 없이 말이죠~
우스갯소리로 인천 공항에는 매일 음악관련 박사학위자가 12명은 귀국한다라는
얘기가 있지요.

e-motion님// 님의 동생의 경우는 대단히 잘 풀린 경우네요. 동생분 아마도 한국에 살려고 다시
들어올 생각은 거의 없을거라고 보네요. 사실 거기에 계속 있는게 당연한 얘기겠지만 낫습니다.
한국은 이미 포화 상태거든요.
Minkypapa
09/02/05 23:51
수정 아이콘
제가 아는 피아노 가장 잘치는 사람은 영국 로얄음악원까지 다녀오고도 한국에서 교수자리를 잡지못하고
강사만 몇년째인지... 솔직히 현재 실력만 보면 한국에 그정도 피아노치는 사람 10명 정도 있을까 싶은데, 피아노는 워낙 사람이 많아서
미래가 참 힘든것 같네요. 대학가서도 감동을 주는 연주로 꼭 잘풀리길 기원합니다.
MeineLiebe
09/02/06 00:00
수정 아이콘
Minkypapa님// 이미 포화 상태거든요.
아마 전국 음대교수모임이라는게 있어서 그 자리에 전국에 교수들이 다 모였다치고,
공군 미사일 오작동으로 그 모임장소를 명중했다고 치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전멸했다고 치면, 그나마 교수자리가 날랑말랑~
대부분의 음대생들은 멋도 모르고 입학 했다가,
교수의 안티가 되서 졸업합니다.
저희 학교는 정년퇴임이 65세 까지니깐 일반 다른 분야 보다
사골까지 우려먹을대로 우려먹는다고 봐야죠.
09/02/06 04:17
수정 아이콘
MeineLiebe님// 음악 뿐이겠습니까? 대학생도 너무 많습니다. 공대생은 두말 할 것도 없구요-_-a

글쓴분 리플에 좀 암울한 얘기만 쓰여져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것 같은데 원래 예체능이 많이 힘든 길이죠 ㅠㅠ
그렇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만큼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 많이 써주세요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037 [일반] 한화대 SK 경기 보시는 분 안 계시나요? [28] sungsik-3995 09/04/17 3995 0
11777 [일반] 예프게니 키신의 내한이 있었군요. [7] sungsik-3122 09/04/04 3122 0
11215 [일반] 트래비스 내한 공연. [6] sungsik-4774 09/03/02 4774 0
11000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7 [9] sungsik-4061 09/02/17 4061 0
10895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6 [8] sungsik-4086 09/02/12 4086 0
10793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5 [14] sungsik-4952 09/02/08 4952 0
10757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4편 [24] sungsik-4703 09/02/06 4703 2
10739 [일반] 음대생 동생 이야기. [25] sungsik6277 09/02/05 6277 2
10310 [일반] 적벽대전은 어떤 전쟁인가... [57] sungsik-6236 09/01/13 6236 0
10255 [일반] 제갈량에 대한 이해. [102] sungsik-8224 09/01/10 8224 2
9140 [일반] 예술의 전당의 대중 가수의 공연. [20] sungsik-4879 08/11/05 4879 0
9079 [일반] 베토벤 바이러스, 천재도 제발 어느정도... [58] sungsik-8919 08/10/31 8919 0
2431 [일반] 왜 PGR에선 섹스에 관련된 얘기가 안 올라오는 거죠? [37] sungsik-6394 07/08/25 6394 0
1920 [일반] UCCC동영상. 해외 거주자에겐 가장 고마운 동영상입니다. [18] sungsik-3452 07/07/15 345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