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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1/10 10:06:54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제갈량에 대한 이해.


현재 - 사실 현재라기보단 7~8년전이 전성기였겠지요.-
한국 삼국지 매니아층에서 상당한 토론과 진실찾기, 거기에 삼국지 정사의 출판으로 인해
삼국지에 대한 깊이와 넓이가 깊고 넓어진 이 시점에서 연의의 삼국지를 역사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다못해 이문열 삼국지에서 연의라는 소설 내에서의 사건들을 역사적인 증명적인 척하며 분석한 부분의 오류들를
거의 다 잡아낸 상황에까지 이르러 이제는 논쟁조차 되지 않는 시기가 되어버렸죠.

(사실 전 이문열 삼국지보다는 고우영의 삼국지를 훨씬 더 높게치는데요.
삼국지를 연의 내에서만 분석하고 해석한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는
연의라는 소설안에서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즐길 수 있지만, 이문열 씨의 삼국지는 연의를 가지고 역사적인 분석과 해석을 해버려
독자층에게 혼란만 준 꼴이 되어버렸죠. 물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미는 충분했지만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소수의 매니아층을 제외한 상당수의 분들이 제갈량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정사에 대한 분석이 처음 나오기 시작할 때 독자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조자룡에 관한 허구 부분입니다. 실제 조자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유비군에서 비중있는 장수가 아니었고,
그 활약 역시 연의에서 나오는 화려한 부분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자룡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지만,
여하튼 한창 삼국지 진실을 파해칠 때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수인 조자룡에 대한 진실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죠.

그리고 그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건 제갈량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조조를 가지고 놀듯이하고
삼국지 소설 내에서 어떤 장군과 책사와 군주를 다 합쳐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 제갈량입니다.
그러나 삼국지 전반에 걸쳐 그가 한 모든 계책적 부분은 허구이지요. 이런 사실을 독자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고
그에 반박하여 여러 가설과 의견을 내놓지만, 결국엔 '정치에는 능한 인물, 그러나 전략에는 그렇지 못한 인물' 로
평가되게 됩니다.

그런 배신감 때문인지 어떤지 연의에서 신처럼 평가받던 제갈량이 역사 매니아들 사이에서 과소평가받기 시작합니다.
정치만 좀 잘했지, 군을 이끄는데에는 무능력했고 그 한계가 여실이 들어난 인물.. 이런 식으로요.
그러나 연의를 100% 배제하고 정사만으로 놓고 봤을 때, 전체적인 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인물은
역시 조조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을 뽑는다면 전 주저없이 제갈량을 뽑을 것입니다.

제갈량은 과거 시대에는 너무 신격화되고 오히려 너무 신격화되어 인간적인 면조차 없었던 인물이라면,
인간 제갈량은 훨씬 더 인간적이고, 인간으로서 이보다 훌륭할 수 있을까. 하는 존경심까지 생기게 되는 인물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먼저 제갈량을 제대로 이해하시려면 연의의 삼국지가 아닌 역사의 삼국지를 이해해야합니다.
삼국지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은 정사보다는 연의를 읽는 걸 추천드리고요. 연의를 읽지 않은 분은 별로 없을 테니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역사적인 삼국지에 대한 이해를 하기 시작하면 인간 제갈량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의에서 가장 비중있게 차지하는 부분은 책략과 전략입니다. 책사들이 전략을 짜고 전투를 하고
거기에 강력한 장수들이 무예를 뽐내며 이긴다. 이것이 삼국지 연의가 가장 잘 사용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실제 삼국지의 이런 부분은 여포의 시대까지만 통용되었습니다.
여포의 시대가 무엇이냐면 중원 근처에서 소규모 전투를 계속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정확한 역사적인 부분은 언급되진 않지만, 정사를 봤을 때도 이 때까지는 보급에 대한 언급이
그리 많지 않고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포의 시대가 끝나고 조조와 원소의 시대가 되었고 황하를 끼고 싸우기 시작할 때부터
보급은 점차 중요해집니다. 실제로 조조가 원소와 전투를 치룰 때 그가 가장 고민한 부분은
계책도 전략도 뭐도 아닌 보급이었습니다. 삼국지 게임에서야 그냥 한 번 식량 왕창가지고 가서
30일만에 전쟁 끝내면 되지만, 실제 전쟁이 30일만에 끝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요.

일단 전쟁을 할 때는 거점을 잡고 그 거점에서 진을 친 뒤에 각개의 진 사이의 병사들은 전투를하고
그 거점으로 본거지에서 식량을 보급을 하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었습니다.
게임처럼 한 번에 식량을 왕창 들고 가서 그 식량 소비할 때까지 싸우는 게 아니라
식량은 전투가 끝날 떄까지 계속 보급되야하는 정확히 반대되는 형태를 띄고 있었죠.

식량이 없으면 계책이고 뭐고 전투의 존속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었고,
전투의 무대가 중원에서 강동, 형주등으로 확산될 수록 보급의 중요성은 더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렇기에 한 세력에서 가장 믿을만하고 능력있는 자가 보급을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며,
그에 가장 대표되는 인물이 순욱과 제갈량입니다.

그러나 제갈량의 능력은 단순히 능력있고 보급을 잘 담당했던 인물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제갈량이 처음으로 난세에 들어나 유비 수하에서 활동한 첫 행동은,
연의에서는.. 무슨 화공으로 하후돈 물리쳤던 거 같은데, 실제 정사에서는
손오로 넘어가 한 외교활동이었죠.

당시 판세는 난세가 거의 종결되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다음에 글쓸 기회가 있으면 적도록하지요.)
그 시점에서 나타난 제갈량은 갑작스럽게 손오로 넘어가 유비 - 손권의 동맹을 결성시켜버립니다.
이 때 발휘한 제갈량의 외교능력은 타월했었죠. 사실 당시 유비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뭐, 당시뿐만 아니라 제갈량 전까지 유비는 언제나 가진 게 없었습니다.
그런 유비를 데리고 강동의 지배자인 손권과 유비를 동급에 놓고 동맹까지 성사시킵니다.
이 동맹을 많은 사람들은 결국 주는 손권이었고 유비는 뒤치닥거리만한 동맹이다. 라고 평가를 하시는데
사실 이 동맹에서 가장 많은 걸 얻은 사람은 조조도 손권도 아닌 유비였습니다.

항복직전인 손권이 조조에게 반기를 드는 순간 조조의 시선은 완전히 손권으로 집중되게 되었고
그 동안 유비는 형주를 차지할 시간을 벌게 됩니다. 그렇게 유비가 제대로 된 첫 세력을 만드는 외교를
성사시킨 인물이 제갈량었고 이런 큰 사건이 제갈량의 첫 행보였습니다.


그럼 이제 사람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정치적으로는 뛰어난 인물' 이라는 부분을 보겠습니다.
제갈량은 정치적으로 뛰어난 부분 정도가 아니라 소설에서 제갈량은 전략의 신이었다면,
역사의 제갈량은 정치의 신이라 불려도 과장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정도로 제갈량은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다만, 연의에선 이 정치가 전혀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정작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
소설 내에선 생략이 되어버린 꼴이 되어버렸죠.

제갈량은 기본적으로 법가사상을 가진 정치인입니다. 의와 덕만을 중시했던 유비세력의 기본 베이스를
제갈량이란 인물 하나가 그 틀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죠. 물론 유비생전엔 의니 협이니 하는 것들이
어느정도 남아있었지만, 유비가 한중왕이 되서부터는 유비조차 제갈량이 세운 이 법치주의를 따랐습니다.

그럼 단순히 제갈량이 뛰어난 법치주의를 이루었기 때문에 훌륭한 정치인이냐.
아닙니다.
제갈량의 정치적인 엄청남은 유비가 촉을 얻는 시점부터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조조의 위나, 손권의 오는 각자 나름대로의 국가 형태를 시간에 의해 자연스럽게 띄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세력을 키우고, 헌제를 옹립하고 중앙의 패권을 장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한에서 위로 흘러가는 국가의 모습을 띄고 있었고,
손권의 경우는 군주주의 국가라고 하기엔 군주로서의 힘이 조조보단 강력하진 않았지만,
오랜시간 동오를 장악하면서 조금은 기형적이면서 독자적인 형태의 국가모습을 띄게 됩니다.

하지만, 이 유비의 경우는 언제나 유랑을 했었고 붙어있는 자라곤 죄다 덕이니 협이니하는 것들로
붙어있는 사람들 뿐이었기에 국가라기보다는 단순한 패거리 무리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한계를 가장 절실히 알고 있었던 건 제갈량이었고 유비가 형주를 차지했을 때부터
그 행보를 시작했고 유비가 촉을 차지하면서 바로 촉과라는 법전을 만들고
장수들의 지위를 구체화 시키며 완벽한 국가의 모습을 띄게 세력을 바꾸어 버립니다.

이 시간이 지금 제게 자료가 없어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불과 2~3년 남짓한 기간이었고
조조가 20년이 넘게 흘러 발전시킨 국가의 모습을
제갈량이라는 인물 하나로 유비는 정확히 2~3년만에 완성시켜버립니다.
그리고 유비가 한중왕에 오를만큼 촉이 안정이 됐을 때 이미 국가로서의 모습은 촉이 오를 앞선 상황까지 되어버렸죠.


제갈량은 이렇듯 유비의 세력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약점을 바로 수정해 유랑자 유비를 한중왕 유비로 바꾸어버립니다.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건 단순히 조조를 따라가고자한 행보가 아니라
제갈량이 형주와 촉을 차지하고 그 세력이 한중왕이라는 이름을 내걸만큼
국가적으로 완성된 형태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갈량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신적인 존재에 대한 과대평가의 배신감을
접어둔 채 인간 제갈량으로 다가간다면,
우리가 언제나 흥미를 가지는 전투와 전략의 연의를 접어둔 채
역사로서의 삼국지로 다가간다면,
그의 행보가 당시로서 얼마나 파격적이고 대단한 행보였는지
다시 보이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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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09/01/10 10:34
수정 아이콘
연의 역효과로도 과소평가 받지만,

연의 효과로도 과소평가 받는 3인방은 정작 촉의 제갈량, 관우, 장비 -_-

정사에서 부동의 No.1, 2 장수는 관우, 장비인데, 여포에게 발리고.

제갈량은 진짜 중요한 순간에 별 역할 못하는 인물처럼 나오죠 -_-
09/01/10 10:48
수정 아이콘
다시 보게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9/01/10 10:55
수정 아이콘
사실 삼국지 연의도 한 몫 했지만 KOEI삼국지 시리즈가 아주 단단히 한 몫했죠. 조운의 엄청난 스탯에 따른 사람들의 고평가는 머 이루 말할수가 없죠. 정사에서도 나오지만 조운은 무예가 출중하기 보다는 담이 아주 큰 장수였기에 주로 호위를 하는 직책을 맡곤 했죠. 하지만 KOEI에서는 무력이 늘 95이상을 찍어주시느라 사람들이 착각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인이나 곽회의 듣보잡화라든지 장합의 저평가(이 부분은 얼마전 자주 나왔던 네이버에 삼국전투기로 인해 사람들이 그나마 평가가 나아졌더군요) 등은 연의에서도 마찬가지이고 KOEI삼국지 스탯도 엉망이죠. 사람들의 인물들에 대한 인식이 연의+KOEI삼국지 스탯을 토대로 거의 굳혀져 있는게 대부분이더군요.
09/01/10 10:59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보급의 중요성에 대한 중요성이 나오는 연의부분을 그나마 살펴보자면 이엄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제갈량이 이엄에 대한 평가로 이엄은 육손에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부대의 모든 보급에 대한 총책임을 맡기죠. 단적인 예이겠지만 그만큼 보급이 엄청나게 중요했다는거죠.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0:59
수정 아이콘
본문과 김연아님 댓글에 대체적으로 공감합니다.
연의때문에 과대평가가 되었다지만 그 반작용으로 또 지나치게 과소평가 되는 인물들이 제갈량,관우,장비죠.
제갈량은 정사만 봐도 지존에 가까운 인물이고 관-장은 기록이 다소 적을 뿐 (촉나라 인물이기에) 만인지적에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은 장수들인데 '연의? 그거 다 가짜잖아. 관우 사실은 여몽한테 발린 허접아님?'하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죠.

조운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의에서 상당히 윤색되고 띄워진 인물이기도 하지만 정사가 유행하면서 사실과 다르게 너무 깎아내리는 분들이 많더군요. 조운이 유비의 호위직책이었다든지 위연보다 공적이 적었다든지 하는 건 대표적인 조운에 대한 오해죠.
래몽래인
09/01/10 11:02
수정 아이콘
벅시 / 그리고 또 잘못된 예의 하나가 호위 장수에 대한 저평가 입니다. 호위장수를 담당했다는 하나만으로도 얼마만큼 주군에게 평가를 받고 능력이 좋은 장수인지 생각해보세요. 왜 관우가 주창을 그렇게 데리고 다녔는지 조조가 전위를 아꼈는지 손권이...
조운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1:03
수정 아이콘
벅시님// 조운은 호위를 맡은 적이 없습니다. 있다면 단한번 당양에서 유비의 가족을 보호한 공적인데 이 공적으로 인해 승진되고 후에 유선이 따로 감사의 뜻을 나타낼 정도로 큰 공적이었습니다. 이게 연의에서는 하루 사이 적장 50명을 배고 백만대군을 돌파한 장면으로 나오죠. (물론 작가의 허구부분)
유비의 호위장군 조운-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09/01/10 11:08
수정 아이콘
래몽래인님// 아 저는 호위장수라고 해서 저평가가 되야 된다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KOEI의 후덜덜한 스탯만큼의 능력은 좀 과대평가가 아닌가 해서 말한겁니다.
RedOrangeYellowGreen님// 아 저도 삼국지를 한참 미친듯이 읽다가 안본지 몇년이 지나니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써서 정확한 사실이 아닌걸 사실처럼 썻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다시 좀 뒤져보니 조운이 호위를 한 장수가 아니라 호위장군이라고 불렸었군요. 물론 여기서 호위장군이 호위를 해서 호위장군은 아니구요.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1:13
수정 아이콘
벅시님// 한중 공성계 이후 유비가 조운을 칭찬한 부분에서 호위장군이 유래되었죠.
물론 말씀하신대로 KOEI 조자룡의 후덜덜한 스탯은 과장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적어도 조인이 조운보다 무력 부분에서 낮게 평가될 이유는 없는데 말입니다. 삼국지 5 조운 스탯은 말도 안되더군요 -_-;
뭐 그래도 이해가 가는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가 정사보다 연의쪽에 기반을 둔 게임이니까... 또 일본쪽에선 아무래도 조자룡이 인기가 많다보니 그럴거라고 생각합니다.
러브포보아
09/01/10 11:27
수정 아이콘
제갈량이 군사에 그리 뛰어나지 못한 것은 맞습니다. 정치적인면에 비해서는 말이죠.
본문에 나와있는 하후돈을 박망파에서 화공으로 물리친 것은 제갈량이 한것이 아니라 선주(유비)가 한 것이죠.
정사선주전에 보면 나옵니다.
그리고 제갈량이 북벌을 하기전까지 위나라에서는 제갈량의 존재자체도 몰랐던게 대부분입니다.
제갈량의 직책또한 그리 높지도 않았구요.
선주가 백제성에서 운명을 달리한뒤에 한승상으로 진급하면서부터 군사적인 실권을 쥐게 되었고, 그전에는 군사적인 실권은
대부분 선주에게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촉으로 침공할때도 제갈량을 남겨두고 직접 선주가 간 것이구요.
제갈량이 융중에서 나오면서부터 군사적 정치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기보다는 그도 인간이기때문에
차근차근 노력하고 전공을 쌓아서 선주사후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덧붙여서,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무장은 관우라고 생각됩니다.
진수등도 관우 장비를 가장 으뜸으로치고 황충과 조운을 그다음으로 쳤습니다. 촉내에서요.(황충이 아니라 마초든가....)
그리고 제갈량이 마초를 평가할때도 "그의 용맹은 조자룡과 견줄만하나 미염공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었구요.

연의에서는 관우가 조자룡보다 딸리게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ㅡㅡ
그리고 제 생각에 가장 연의와 KOEI에 피해를 본 장수는 조인이나 장합이 아니라 장료...
관우마저도 함부로하지 못한....800명으로 손권의 10만명을 궤멸직전으로 몰아간 합비대전....
그러나 무력과 지력 등은 그저 A급장수일뿐 관우 조자룡 심지어는 강유랑 삐까한 스탯...
레인저
09/01/10 11:33
수정 아이콘
위나라 장수가 KOEI 게임 스탯이 실제보다 떨어지는건 첫째는 정사가 아닌 연의를 반영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게임 밸런스 때문이죠.

실제 사실에 가까운 능력치를 적용할 경우 조인이나 하후돈을 비롯한 조조의 오대장들이 지금보다 무력, 통솔이 +5 이상은 더 올라가게 될텐데 이렇게되면 위나라 쪽으로 밸런스가 너무 크게 기울죠.
sungsik-
09/01/10 11:34
수정 아이콘
본문과는 관계없지만 다들 스탯놀음에 너무 많이 빠지시는 거 같네요.
연의의 함정으로 정치라는 걸 완벽하게 무시하고 삼국지를 이해하는 것처럼
코에이의 함정으로 스탯이라는 걸로 장수들의 순위를 매기는 습성이 있는 거 같습니다.

무력이 조운이 쎈지 관우가 센지는 정사고 연의고 어떤한 자료를 다 찾아봐도
알 수가 없습니다.
둘이 1:1로 붙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실제 이 1:1능력이 정작 삼국지 시대엔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고요.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1:36
수정 아이콘
sungsik-님//
무력이 조운이 센지 관우가 센지 붙어보지 않았으니 100% 확신할 수 없고 당시에 게임처럼 일기토를 한 것도 아니지만 사료를 통해 전반적으로 어떤 장수가 더 맹장으로 알려졌는지 객관적으로 추측은 해볼 수 있죠.
저도 조운을 좋아하지만 정사 어떤 구절을 봐도 관우가 조운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장수임은 절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스케일이나 명성면에서 관우와 조운은 비교대상이라고 보기 힘들죠.
러브포보아
09/01/10 11:43
수정 아이콘
RedOrangeYellowGreen님// 맞는말씀입니다.
sungsik-님// 관우가 벤 장수중에서 이름있는 장수는 안량,문추정도가 있는데 안량은 사실 조조군이 죽인거고 문추정도가 있는데
조자룡이 벤 장수중에는 그리 이름있는 장수는 없죠. 한씨부자정도밖에 ㅡㅡ
그리고 선주가 그 중요한 형주를 누구에게 맡겨는지만 봐도 답은 나오죠.
조자룡이 문추를 만났으면 벨 수 도 있었다고쳐도 위에 말씀한신대로 1:1 능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고 군대를 다스리는 능력이 중요한데
그런점에서 선주가 관우를 신임했기에 형주를 지키게했고 위무제는 그에 쫄아서 수도를 옮길 생각까지 했으니 말 다한거죠.
조인같은 장수도 형주공략에 번번히 실패했으니깐요.
sungsik-
09/01/10 11:43
수정 아이콘
그니까 제 말의 포인트는 이런 순위매김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코에이 숫자놀음에 빠져서 원래는 누가 더 쎈데 누가 더 쎄게 나왔다. 말도 안 돼.
이런 건 논의의 가치 자체가 없다는 거죠. 얼마나 유치한 발상입니까.

게임은 게임일 뿐이고 연의가 역사가 아니듯이 게임도 역사가 아닙니다.
거기에 흥분해서 말도 안 돼 이럴 필요가 없는 거죠.
이미 삼국지는 역사라기보다는 하나의 큰 판타지에 더 가깝고
그 판타지를 어떻게 꾸미느냐는 작가나 제작사의 역량에 따른 것 뿐이라 생각되네요.

제 글 역시 연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갈량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어줍잖게 어디서 들은 몇가지 지식으로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며 이상한 말을 하는 삼국지팬에게
보여주고 싶어 쓴 글일 뿐이었고요.
星夜舞人
09/01/10 11:46
수정 아이콘
야전사령관으로써의 조운의 능력은 과장되었다고 보지만, (이것도 실제로 확인할길은 없지만) 후방 보급 사령관으로써의 조운의 능력이 과장되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걸 어떻게 수치로 보느냐에 문제인데, 많은 전략사를 보더라도 언제나 전방에서 전투하는 지휘관이 높게 평가받게 됩니다. 허나, 후방을 도모해서 보급을 원활하게 하고, 적에게 뒤를 근심하지 않게 하는것만큼 뛰어난것도 없습니다. 이걸 통솔력이라는 수치하나만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이구요. 또한 전투력이라는 개념을 지휘를 잘해 상대를 물리친다라는 개념과 개인의 순수한 무력을 나타낼경우 그 높낮이 비교도 힘들구요. 제갈량이 언제나 높은 평가를 받은것도 전투를 하기위해 보급과 후방안정이 우선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맹획을 일곱번 잡아서 일곱번 놔준것도 이런면에서) 최초의 전략가기 떄문에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전방의 전투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갈리겠지만요. 정치면에서도 완전 외부세력이 토호를 무리없이 지배하고, 유선이 아무리 무능했어도 (이것도 평가가 다르지만) 내란한번 토호들의 내란한번 안일어난거 보면, 얼마나 제도를 확실하게 잡았다는걸 알수 있을겁니다.
오우거
09/01/10 11:47
수정 아이콘
KOEI 스탯은 일관성은 있더군요...

언제나 매력 1위는 유비
통솔력 1위는 조조
무력 1위는 여포
지력 1위는 제갈량.....(정사를 최대한 반영한다면 정치력 1위가 제갈량이 되어야...)

문득 댓글을 쓰다가 드는 생각....

1 : 이 죽일놈의 삼국지 떡밥!!!
2: 삼국지 12는 언제 나오는 건지...
레인저
09/01/10 11:47
수정 아이콘
실제로 정사에서 등장하는 일기토는 거의 드물다시피하고 무예실력만큼 간과할수 없는 요소가 그날 군대의 사기, 장수의 컨디션이 변수가 될수 있으므로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긴다...식의 단언은 불가능한건 맞습니다. 단지 사서에서의 武를 뽐낸 기록들이나 인물평 정도를 참고하여 누가 더 강할것이다...라고 추측하는것 뿐이죠.

그리고 사서의 활약상이나 인물평을 보면 조운보다는 관우가 확실히 더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요소가 많은것은 분명한것 같습니다. 오호대장의 서열도 관장마황조 순이었구요. 실제로 효도르와 본야스키가 붙어본적이 없지만 지금까지의 커리어나 전적을 봤을때 "효도르가 더 강하다" 라고 평가할수 있는것과 같은 이치라고 봅니다.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1:48
수정 아이콘
星夜舞人님// 자꾸 이곳저곳 태클만 거는거 같아 죄송합니다만 조운은 후방 보급 사령관을 한적이 없습니다.
1차 북벌시 등지와 별동대 비슷한 개념의 군을 이끈 적은 있습니다만..
레인저
09/01/10 11:51
수정 아이콘
후방 보급 사령관은 하후돈이 맡은 역할에 가장 가깝지요. 조운은 제가 알기로도 그런 역할을 수행한 적이 거의 없던걸로 압니다.
星夜舞人
09/01/10 11:59
수정 아이콘
RedOrangeYellowGreen님// 후방보급사령관이라는 이야기는 후방지휘관이라는 표현을 쓴것입니다. 어차피 후방지휘관이 보급 관리도 같이 하는것이 상식아닌까요? 물론 보급에 개념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전선 중간에 보급을 관리하는 장수를 보급사령관이라고만 보신다면 저로써는 할말이 없겠지만, 보급이라는 개념이 전투에 필요한 본국에서 물자 보내고, 그물자를 전선 가까운곳에서 관리하고, 그곳에서 전선으로 투입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운이 이 중간단계의 물자만 관리하는 장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울리스타
09/01/10 11:59
수정 아이콘
연의만 읽어서 감히 고수님들께 태클은 못 걸겠지만,

조운이 최근들어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그의 미칠듯한 무예도 있지만, 크게 부각된 '인간성'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유비의 포스가 뿜어져 나와서 아무도 태클 못 걸던 시기에도 계속해서 옳은 말을 했었죠. 또한 나름 유비진영의 고참급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관직이 낮았지만, 그가 마초, 황충, 위연 등과 갈등을 빚었다는 말도 없었던 것 같구요.

그 반대로 관우가 최강의 무장이 맞기는 하지만, 자꾸 묻히는 이유는 말년에 보여주는 지나친 '자만'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09/01/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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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태사룡의 거꾸로 가는 삼국지를 읽었는데, 이건머..창천항로라는 만화보다 더한 삼국지 조조전 이더군요.(조조는 고구려의 후손

인 동이족...)

물론 저도 유비보다는 조조를 인물로서 으뜸으로 치기는 하지만, 머 유비가75만 대군을 일으켜 손권을 칠때에 이 중요한 전쟁에 왜

제갈량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유선이야 어차피 바보고, 자신이 촉의 황제나 황제는 못돼더라도 조조처럼 실권을 장악하고 싶어서 라고

작가는 해석하더군요. 유비패거리의 수족과도 같은 관우와 장비도 일부러 죽게 만들고, 출세를 위하여 조조에게 가지않고 유비를 스스로

선택한점, 덕이없어 오로지 꾀만을 쓰며 사람을 쓸때도 오로지 꾀로만 사람을 이용할줄 알았기에 스스로 황제를 자처할순 없었다..라고

작가는 해석하더군요..향후 300여년간 전국시대가 펼쳐진걸 생각하면 제갈량이 조금더 내실을 다지며 향후 몇십년을 내다봤으면 무모한

북벌도 감행하진 않았겠죠..머 제갈량 자신도 사람이기에 천하일통의 꿈을 가지고 그렇게 무모하게 수없이 북벌을 시도했겠지만요..

삼국지라는 역사소설도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어떻게 진실인진 알수없죠~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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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夜舞人님// 그러니까 조운은 보급이나 후방관리를 맡은 적이 없습니다.
조운의 전공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전방에서 싸운 장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운이 후방에서 물자 관리와 보급을 맡은 예가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유비의 동오 공격시 강주를 맡은 걸 말씀하신다면 그건 전투와 크게 상관이 없는 후방 수비와 관리를 맡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상 촉-오 전쟁때 조운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서포트의 개념 및 관활이었지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석하는게 타당합니다.
겨울나기
09/01/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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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유비의 황제 즉위 때 승상으로 임명됩니다.

또한 유비 세력은 조위나 손오에 비해 관직의 서열 관계가 비교적 느슨했던 편이었죠.
제갈량전에서.
'성도가 평정되자 제갈량을 군사장군으로 삼았고, 좌장군부의 일을 맡겼으며, 선주가 밖으로 나가면 제갈량은 항상 성도를 지켰고, 식량과 병사를 풍족하게 하였다.' 라고 언급됩니다.
그리고 양홍전을 보면
'당시 촉군태수였던 법정이 선주를 따라 북으로 가자 제갈량이 표를 올려 양홍에게 촉군태수를 대신케 하였다'는 내용이 있죠.

직위 고하를 불문하고 유비 세력 내에서 유비 다음의 위치를 지녔던 것이 제갈량입니다.


실상 손오동맹을 성사시킨 것도 제갈량인데, 조조가 이를 몰랐을 리가 없죠.
星夜舞人
09/01/1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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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저도 보급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위에서 보낸 물자를 전선 가까운곳에 배치하기 위해 그 물자를 가지고 이성저성에 배급했던 장수가 하후돈인건 맞습니다. 허나 보급이라는것이 위에서 지시 ---> 장수를 통한 전선 가까운 곳에 저장고에 비축 ---> 그곳에서의 관리 ---> 다시 관리한곳에서 전선으로 배급.. 이런순서인데, 어떤사람은 보급사령관으로 봐야 될까요? 지시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저장고에 비축하는 사람 아니면 관리한곳에서 전선으로 원활하게 가기 위해 보급한 사람을 의미할까요?? 저도 확실히 결론내리기가 힘드네요~
레인저
09/01/1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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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夜舞人님 // 조운의 역할은 주로 유비를 호위하는 임무였습니다. 타국으로 비유를 하자면 위나라의 허저나 오나라의 주태같은 역할입니다. 이런 임무를 맡은 장수가 보급을 지시, 총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설령 星夜舞人님처럼 보급사령관의 개념을 후방에서 물자를 총지원하는 장수가 아닌 전방에서 보급에 대한 지시를 내리는 인물이라고 보아도 조운이 이에 부합하는 역할을 담당했거나 보여준 기록이 전무합니다.

라울리스타님 // 관우와 조운 비교논란이 항상 시작되는걸 보면 대부분이 조운 쪽에서 "만약 조운이 형주의 대장이었으면 형주를 잃지 않았을것이다" 라는 가정을 시작하기에 일어나고는 하죠. 자오곡 논란이 "위연의 계책을 썼으면..." 으로 시작하는것 처럼 말이죠.
겨울나기
09/01/1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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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조운이 호위업무를 주로 한 적은 없습니다.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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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당양에서 가족의 보호를 맡은 것외에 조운은 호위를 맡은 적이 없습니다만..
허저와의 비교는 부적절합니다. 조운이 원소 수하에 있을 떄 선주와 한침상에서 잤다는 걸 호위로 해석하는건 곤란하죠.
러브포보아
09/01/1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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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님// 제가 잘못적었네요. 말씀하신대로 선주가 황제에 즉위하고 승상으로 봉해지고 후주가 즉위했을때 무향후로 봉해집니다.
한승상무향후제갈량 이게 북벌때 쓰였던 제갈량 깃발이구요.
그러나 군사장군의 위치는 오히려 미축이나 허정보다도 낮았습니다.
손오동맹을 성사시킨 것은 제갈량이지만, 조조는 몰랐습니다.
적벽대전의 영웅은 제갈량이 아니라 주유이고(동남풍은 커녕 고육지계책도 허구지요.) 관우가 죽자 조조는 이제 촉에는
두려워할만한 자가 없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했을때 촉에서 북벌을 하자, 모두들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에서 제갈량의 존재가 위에서 두드러진 거구요.

오나라와는 직접교류가 잦은 제갈량이기에 오에서는 알려져있지만 위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나옵니다.
그 중 이유는 선주가 살아있을 때는 늘 후방에 남아서 군수물자 조달에 힘썼던 이유도 있지요.
레인저
09/01/1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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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rangeYellowGreen님 // 조운이 당양에서의 공로로 인해 아문장군으로 승진하게 되는데 삼국시대 관직설명을 보면 아문장의 역할이 호위하는 역할이라 나와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입촉 이후에도 유비의 새부인과 아두의 신변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구요.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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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촉나라의 관직 체계는 후한과도 다른걸로 알고 있고 위에 겨울나기님 말씀대로 관직의 서열관계나 직책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아문장군이 호위역할의 직책이었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촉에서 아문장군을 거친 장수들의 행적을 보면 대부분 호위기록보단 전투 참가 기록이 많고 조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아문장군이 호위장군의 직책이었다면 유비의 입촉시 조운이 동행하지 않은 것도 설명이 되지 않죠.

그리고 입촉후에 조운은 아문장군이 아닌 익군장군이었고 유비의 새부인과 아두의 신변을 담당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만.. 손부인이 오나라로 돌아가는 걸 가로막은걸 호위라고 보는건 지나친 비약일뿐더러 당시 손부인을 막은건 조운만이 아니라 장비도 함께였습니다.
러브포보아
09/01/1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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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당양전투에서 활약으로 조자룡이 아문장군으로 승진한 것은 맞습니다만 입촉때의 활약으로 다시 익군장군으로 봉해집니다.
그리고 그후에 정남장군에 임명되는데 정남장군은 정벌전쟁을 주관하는 직책입니다만....
그후 영창정후 진동장군으로 승진하는데 이 역시 정벌전쟁을 주관하는 직책입니다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잊고 있는 사실.
조운이 유비보다 형이다 ㅡㅡ
러브포보아
09/01/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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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에 대해서 쓴 소설이 있지요.
-공명의 선택- 한번 쯤 읽어보시면 재미는 있습니다^^*
星夜舞人
09/01/1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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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제가 1차 한중정벌때에 누구랑 착각했나 봅니다. 이건 죄송하구요. (도대체 누구랑 착각했지?)
러브포보아님// 유비가 161년생이고 조운이 168년생으로 알고 있는데요... 유비가 형아닌가요?? ^^;

이문열 삼국지는 오장원쯤에서 거의 마무리를 하는데, 제가 전에 읽었던 삼국지에선 10권분량의 책에서 8권반쯤에 제갈걍이 오장원에서 죽고, 그 이후 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삼국지 누가 썼는지 아시는분~~)

그것보다도 주대황의 반삼국지 읽으시면 (3권짜리) 통쾌하실겁니다...
후삼국지는 삼국의 후손들이 펼치는 이야기이구요.
김평수
09/01/1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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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의 출생시기는 아직 명확한게없습니다 이것도 학자들의 떡밥거리죠(연의에서 첫등장시엔 분명 소년장수였는데 북벌때 한씨부자 바를때 70노인이라고 나오기도 하고)유비보다 많았다고 보는 이들도 있고 영화나 게임처럼 장비보다도 어렸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관우의 경우에도 유비보다 오히려 나이가 많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시대사람들의 몰년은 알기 쉽지만 출생연도는 알기힘듭니다
러브포보아
09/01/1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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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夜舞人님// 유비가 조자룡을 만났을때 조자룡보고 소년장수라고 했었지요.
근데 조자룡이 북벌을 할때 쯤되면 70대라고 나옵니다.
즉, 나이계산을 하면 유비는 161년생인데 조자룡은 227년 북벌때 70대라고 했으니 70살이라고쳐도 157년이됩니다.
그리고 조자룡의 출생년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자료로 추측해보건대 유비보다는 형이다라는 설이 유력하구요.

반삼국지 저도 읽었습니다.
사마의의 폭탄사와 그걸보고 마음아픈 제갈량 사망콤보
끝까지 살아남은 방통.
여기서도 영웅이되는 조자룡.
그리고 2번째 영웅 마맹기.

대부분 반삼국지는 나이보다 일찍죽어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장수들을 많이 활약하게 그린...
예외)조자룡 얘는 연의 정사에도 오래살지만 여기서도 끝내 안죽는다.
예외2) 주유 얘는 소교와의 지나친 정사와 밤낮 전쟁과 음주에 시달리다가 조기사망.
레인저
09/01/1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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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rangeYellowGreen님// 입촉후 조운이 익군장군으로 승진한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이 익군장군에 대해 기록을 뒤져봤는데 무슨 역할인지 언급된 사서가 하나도 없어서 이 시기에 있어서 확실히 호위역할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단언할수 없을것 같군요. 진동장군, 정남장군으로의 승진은 유비 사후의 일이죠.

그리고 아문장에 대한 설명은 후한의 관직도에 나와있는걸로 압니다. 물론 이때 유협패거리의 서열관계나 직책이 명확하지 않은것은 사실입니다만 아문장으로 있던 시기때 유선과 손부인의 신변을 담당했던 기록을 보아서는 직책에 크게 벗어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장비전에는 이같은 기록이 없는것으로 보았을때 조운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 추측합니다.

애초에 전선에서 활약한 사례도 많지 않고, 대장의 임무를 맡은것도 한번뿐이며 이릉전투의 사례를 가지고 후방전선을 담당하는 대장이었다고 보기에는 개전의 반대론자로 찍혀 거의 배제되었다는 성질이 강하니 조운의 역할을 딱히 정의할만한 것이 없기는 하네요.
09/01/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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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의 선택. 3권의 책이라서 좀 많기는 합니다만 삼국지 팬들에게 3권이 머가 많은거겠습니까? 저도 그 책은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능력에 대한 평가중 제가 KOEI삼국지의 스탯에 관한 말을 꺼냈다가 댓글이 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거도 있네요. 전 게임의 스탯을 통한 아니면 그당시의 기록을 통한 장수들의 능력을 스탯화하거나 우열을 가리고자 한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평가의 과대, 과소를 말하고 싶었던거죠.
오늘 삼국지 만년 떡밥 다 나오겠는데요? 자오곡 계책, 관우의 형주유배설, 장수들의 나이 등. 삼국지는 역시 우리나라 남자들이 참 많이 읽고 많이들 아셔서 이런 재밌는 논쟁이 나오는거 같네요. 그리고 제가 위에 잘못 쓴 조운의 호위 여부에 대해 좀 알아보다가 진도라는 인물이 주로 후방 보급과 호위 역할을 담당했다고 나오네요. 진도는 연의에는 나오지 않지만 정사에서는 조운보다 먼저 유비군에 참가해 조운 다음가는 직책을 항상 받아왔던 인물이네요.
그리고 제갈량은 확실히 한나라 개국공신 3명중 소하와 가장 비슷하다고 느껴지네요. 장량은 방통에 가깝구요. 이거도 떡밥일련가요?^^;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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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익군장군은 잡호직에 가까운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위에도 말씀드렸지만 삼국시대와 후한의 관직 체계와 직책은 차이점이 많이 있습니다. 후한 관직 체계에서도 아문장에 대한 해석이 확실치 않은 것으로 아는데 촉에서 아문장을 거친 장수들의 공적을 보면 호위부분에 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왕평,장억등등)
제갈량이 군사장군으로서 많은 일을 총괄한 것도 같은 이치이죠.

그리고 조운이 손부인과 관련하여 받은 직책은 아문장이 아니라 유영사마입니다. 그리고 유영사마는 근위직이 아니라 감찰직이죠.
그 부분을 근거로 조운=호위장군으로 해석하는 건 관우가 하비태수였을 때 유비의 가족들을 보호했으니 관우=호위직이네? 하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조운이 유비의 호위를 주임무로 맡았다고 볼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09/01/1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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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강유, 학소는 정사에서 어떻게 평가받나요?
김평수
09/01/1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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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은 천하의 기재로다'
'짐에게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찌 이리 수고스럽겠는가'
ㅜ_ㅜ 성식님 글잘쓰시네요 잘봤습니다
유비에게있어 장량은 법정이 아닐까요 히히 촉입성시와 한중쟁탈전시 책사역할은 법정이 담당했죠
부기나이트
09/01/1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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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정사포함 삼국지관련도서만 방에 200권이 넘고 다 외울 지경입니다만,

누가 삼국지중에 하나 추천해달라고 하면 '창천항로'보라고 합니다. 재미있으면 장땡이고. 순위놀음은 참 의미없어 보입니다.
레인저
09/01/1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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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rangeYellowGreen님 // 관우와는 달리 입촉전까지의 조운의 활약상을 보면 유비 측근들의 신변을 담당한게 전부입니다. 드러난 공적도 없으며 조범 대신 계양태수로 임명된것 말고는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선에 투입되서 전투에 가담한 사례가 더욱 드문데 그만큼 조운에 대한 사서의 기록 자체가 빈약합니다.
09/01/1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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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gplay 님// 제가 아는대로 적어드리면 우선 강유는 능력에 있어서는 출중하다고 나옵니다. 제갈량의 강유에 대한 평가중에 『"강백약(姜伯約)은 그 시대의 일을 충성스럽고 근면하게 하며 사려가 정밀하며,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을 살펴보면, 영남 및 계상 등의 사람들도 그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양주에서 최고의 인물입니다."』 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영남은 이소고 계상은 유명한 마속의 형 백미 마량입니다. 물론 전 제갈량의 사람 보는눈엔 약간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부실했던 촉 말기에서 훌륭한 인재였던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등애를 한번도 이기지 못했죠. 물론 국력의 차도 있었지만 정사에서 강유가 등애에게 이겼던건 마지막 종회를 이용한 자폭 전술 정도일까요?^^
학소는 연의에서보다 조금 더 뛰어나보입니다. 특별히 언급된 말들은 많지는 않지만 연의에서는 10만 군사로 제갈량을 막았다고 나오지만 정사에서는 단 3천 군사로 진창성에서 제갈량의 북벌을 20일가량 막아 촉군을 후퇴하게 만들었다고 나옵니다. 임종시에는『"나는 장수로 일생을 살았으나 그게 썩 좋은 일은 아니었던 듯싶다. 나는 종종 무덤을 파헤쳐 거기서 나오는 돌이나 나무토막을 성을 공격하는 데 썼다. 따라서 깊이 묻는다고 죽은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당부한다. 부디 내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라. 사람은 그때그때 맞추어 살아가면 되는 법, 죽음도 크게 두려워할 건 못 된다. 좋은자리가 따로 없고 정한 방위가 따로 없으니 내 무덤은 동서남북 어디든 네 맘대로 써라." 』라는 제가 참 좋아하는 명언도 남기구요.
김평수
09/01/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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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는 학소전이 따로 없고
젊은시절부터 군에 투신하여 잡호장군까지 승진했는데(잡호장군이 높은 직위는 아닙니다)
제갈량의 2차북벌때 진창에서의 수비로 인해 단숨에 열후로 봉해집니다 얼마안가 병으로 사망하구요
강유는 장완과 동윤 비의생존시에는 북벌같은거 못했더랬죠
그들이 모두 죽고나서야 제갈량이 했던것처럼 기산으로 몇번이고 진출하지만 그때마다 등애와 진태에게 격파당합니다
종회는 강유를 보고 중원의 명사 제갈탄과 하후현보다 낫다고 평했으며 제갈량은 죽기전 강유의 재능을 양주지방 최고라고 칭했고 극정은 청렴하고 소박하며 근면했다고 평했습니다
겨울나기
09/01/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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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포보아님//

유비 사후 촉이 좀 누그러지겠거니 했는데 북벌에 들어가서 놀랐던 것 뿐이고.
문제(조비) 즉위 뒤 바로 북벌에 들어간 게 아닙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가후전 중 문제가 '내가 남쪽 애들을 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함?'이라고 가후에게 묻자 가후가 '제갈량은 정치를 잘 하니'라고 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제갈량의 처가는 형주의 명문가였고, 그와 형주 시절 수학했던 서서, 석도 등이 위에 임관해 있었으며, 형 제갈근은 손권의 측근이었습니다. 단순한 무명인사가 아니란 말이죠.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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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입촉전까지 유비 측근들의 신변을 담당한 기록이 무엇이 있는지요. 호위를 했다고만 하지 마시고 사료를 통해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입촉전엔 유비의 세력자체가 미미했기에 일군을 통솔하여 따로 전투를 한 장수 자체가 없습니다만. 해봐야 관우정도일까.

조운의 입촉전 공적을 크게 분류하자면

당양에서 유비의 가족들을 보호하여 아문장으로 승진.
형주 4군 정벌에 종군하여 계양태수로 임명됨. (기록이 미미할 뿐 분명히 전투에 참가한 사례입니다)
손부인이 오나라의 관원과 군사들을 끌고와 어지럽게 하자 유영사마로 임명되어 감찰과 통제를 함과 더불어 손부인이 오나라로 도주하려하자 군사를 이끌고 장비와 함꼐 막음. (위에도 말씀드렸듯이 유영사마는 근위직이 아닙니다.)
가맹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부르자 장비와 함께 따로 일군을 이끌고 군현을 평정하며 입촉.

어떤 부분을 근거로 주로 호위직을 맡았다고 하시는지요?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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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호위무장 떡밥은 많은 삼국지 사이트에서 얘기가 되었지만
늘 결론은 같았습니다.
제가 본 어떤 삼국지 고수분의 의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촉전도 그러하고 전체적인 조운의 일생을 볼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http://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0020104&page=1&searchtype=1&query=익군장군&searchdate=all&articlemedia=0&sortby=date&articleid=151070

입촉후에 관한 이야기라 주제와 상통하는 건 아니지만 이 글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레인저
09/01/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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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rangeYellowGreen님 // 당양에서의 활약과 위에도 언급했던 아두와 손부인의 신변을 담당했던 사건이 호위를 담당했던 기록들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많지 않은 사례인건 사실입니다만, 이건 애초에 조운에 대한 기록 자체가 적기 때문이죠. 호위 뿐만이 아니라 모든 방면에 있어서 조운의 기록 자체가 적습니다.

그리고 형주 4군을 직접 정벌한것도 유비입니다. 조운은 그 전투에 종군했다고만 기록에 나오구요. 이 사실은 조운이 유비를 따랐다...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입촉때 유비와의 합류과정에서 일군을 이끌었다는 기록도 없구요.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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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아두와 손부인의 신변을 담당한게 아닙니다만 -_-;
계속 말씀드리지만 유영사마는 근위직이 아니라 감찰직으로서 단순히 손부인과 아두를 호위하는 직책이 아닙니다..

레인저님 말씀대로면 형주 4군을 직접 정벌한 인물은 유비밖에 없다고 봐야됩니다. 촉진영의 어떤 장수도 형주 4군 정벌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된 인물은 없습니다. 그런식이면 촉나라에서 군공을 내세울 장수가 누가 있을까요?

입촉때 일군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조운전만 찾아보셔도 있습니다.
강주에 도착한 후 조운을 따로 보내 외수를 따라 강양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죠.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3:39
수정 아이콘
그리고 당양에서도 조운이 애초에 유비 식솔들을 호위하는 직책을 맡았더 것이 아니고 유비가 가족들을 버리고 달아나자 따로 나서서 보호를 한 것입니다. 이건 조운전에 직접 기술이 되어있기도 하고 조운별전을 통해 정황을 추측해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sungsik-
09/01/1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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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를 담당한 장수냐 아니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직까지 싸우고 계시네요.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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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sik-님//
싸우는게 아닙니다만 -_-;
단순히 호위직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고 조운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라 적어도 한국에서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떡밥하나 물고 아웅다웅하는게 아닙니다.
레인저
09/01/10 13:50
수정 아이콘
RedOrangeYellowGreen님 // 물론 유비 이외에 기록된 인물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기록을 가지고 "했을것이다" 라는 추측은 역사적 근거가 될수 없겠지요. 게다가 유영사마가 감찰직이라 하더라도 오나라로 아두를 데리고 가는 손부인을 만류하고 아두를 데리고 온 사실은 아두를 신변을 지켜낸 공적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럼 대체 님은 조운의 역할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봉부대, 특정거점의 방위대장, 후방 지원 사령관 등...어느것도 조운을 정의할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입촉전까지 나타난 제가 말한 것들이 조운의 대표적인 공적들이고 4군 평정때 유비를 따라다닌것과 제갈량과 장비와 따라 유비와 합류했던 기록들은 저것들에 비하면 기록에서도 부각되고 있지 않습니다만...
09/01/10 13:53
수정 아이콘
벅시님//
보급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시킨 인물이 소하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하, 장량, 한신 중에 제갈량에 젤 가까운 인물 1명만 꼽자면 소하이겠지만, 실제 능력으로 보자면... 소하 + 장량 정도가 될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3:56
수정 아이콘
레인저님// 역사는 사료를 가지고 이야기해야됩니다.
형주 4군 정벌에 종군했고 계양태수가 되었으면 그걸 그냥 사실로서 받아들여야지 단순히 기록이 적으니 유비 따라 참가하기는 했는데 그냥 따라간거고 전투는 쥐뿔도 한거 없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한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운이 워낙 초기부터 종군한 인물이라 역할을 딱히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적어도 조운이 주로 수행한 역할이 호위직이 절대 아니며 군사쪽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점이죠.
레인저님처럼 단순히 분량을 가지고 논하더라도 조운전중 호위나 보호에 관한 부분은 정말 거의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당양에서 유비가 버리고 간 가족을 찾아온것이나 유영사마로서의 공적을 호위에 집어 넣더라도 그의 10배 이상 되는 분량은 군사,정치,품성에 관한 부분입니다.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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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손부인과 아두에 관한 것은 별전에 기록된 부분이고 4군평정과 입촉과정은 본전에 기록된 내용인데 당연히 분량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죠. 그렇다고 그 분량으로 중요도를 따지시다니.
그런식이면 조운의 행적중 제갈량을 따라 1차 북벌에 참가한 것보다 한중에서 공성지계로 조조군을 대파한 것이 몇배는 더 중요한 일이 되버립니다. -_-;

하나만 덧붙이자면 조운이 손부인의 도주를 막을 떄 오나라에선 누이를 맞이하기 위해 선박을 대거 보냈고 조운은 장비와 함꼐 군사를 이끌고 막았다고 기록되있습니다. 이걸 정말 단순히 신변 호위로 보시는지요. 쉽게 말해 당시 조운이 맡은 임무는 수도방위에 가까운 것이지 경호실장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레인저
09/01/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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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rangeYellowGreen님 // 조운이 전투를 쥐뿔도 한적이 없다고 말한적은 없습니다. 단지 유비를 따라서 전투참여...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뿐이지요. 오히려 "종군" 했다는 말밖에 없는데도 거기서 조운이라면 뭔가 했을거라고, 4군이나 정벌했는데 유비말고 없었겠느냐...라며 생각하는게 더 추측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한중에서 황충을 지원하여 조조군을 격파한 내용 분량이 1차북벌보다 많은건 조운별전의 내용이 주석으로 달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4군 평정도 본전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근데 조운이 4군 정벌때 종군했다는 내용은 그 조운별전에서조차 조운에 대한 언급이 극히 적습니다.

그리고 님께서는 조운이 군사쪽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조운이 주로 혹은 가장 잘했던 역할에 대해서 설명했고 그것때문에 호위역할을 언급했지...조운이 호위말고는 한게 없다고 말한것도 아닌데 그런 말씀을 보니 참 난감하군요. ...-_-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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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단지 유비를 따라서 전투참여-> 말 그대로 전투를 하고 종군을 한 것입니다.
그 후에 계양태수로 임명되었죠. 이 부분은 님이 조운은 호위나 경호를 주로 맡았을 분 전투에 참가한 적이 없다고 하시길래 그에 대한 반례로 끌어온 것 뿐입니다.
그리고 조운이 손부인의 도주를 막은 분량이 많은 것도 그것이 별전의 내용이기 떄문입니다. 입촉보다 중요해서 분량이 많은게 아니고요 -_-;

더불어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조운이 주로 혹은 가장 잘했던 것이 호위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일생을 통틀어 조운이 주로 호위를 맡았다고 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이 곳이 pgr이라서 그렇지 삼도나 삼갤같은 삼국지 커뮤니티 가서 조운=호위장군 아님? 식의 글을 올리시면 굉장한 반박이 들어옵니다.
단순히 조운빠들이 많아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사료만 놓고 봐도 사실이 아니기 떄문이죠.
sungsik-
09/01/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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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싸우세요-_-
레인저
09/01/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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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rangeYellowGreen님 // 그래서 저는 RedOrangeYellowGreen님의 의견도 듣고 싶어서 조운은 어떤 인물인가 물었습니다만 "군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라는 대답밖에 들을수 없었습니다.

이런 말은 마치 김택용이 어떤 플레이를 잘하는가? 라는 물음에 "저그전을 잘한다" 라는 식의 대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저도 조운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임은 알고 있습니다. 단지 조운이 최고로 두각을 나타낸 분야에 있어서 저는 호위라는 언급을 했었는데 이것을 님께서는 반박하셨다면 "조운? 글쎄...근데 호위는 아냐" 보다는 "조운은 호위보다 ~~한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쪽의 답을 저는 원하는 것입니다. RedOrangeYellowGreen님께서도 나름대로 조운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의를 해주시는게 더욱 생산적인 토론이 될것 같습니다.
레인저
09/01/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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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rangeYellowGreen님 // 저는 조운이 전투에 참가한적이 별로 없다고 한적이 없는데요? 제가 최초에 조운 호위 이야기를 꺼낸것도 조운이 후방사령관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하신 星夜舞人님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그 과정에서 호위 이야기를 하였지, 전투의 참겨여부로 호위 이야기를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맨처음에 님께서 제 의견에 최초로 반론하신것도 "호위" 개념 때문이었지 전투참겨여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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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군평정이 본전이 아닌 별전에 기록된 부분인건 레인저님 말씀이 맞네요.


원소 수하에 있을 때 부곡을 모아 유비진영에 합류.
당양에서 유비가 가족들을 버리고 도망가자 이들을 직접 찾아 보호하고 아문장으로 승진.
형주 4군 정벌에 종군하여 계양태수로 임명됨.
손부인이 오나라의 관원과 군사들을 끌고와 어지럽게 하자 유영사마로 임명되어 감찰과 통제를 함과 더불어 손부인이 오나라의 군사와 함께 도주하려하자 군사를 이끌고 장비와 함꼐 막음.
가맹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부르자 장비와 함께 따로 일군을 이끌고 군현을 평정하며 입촉.
익주가 평정되자 익군장군에 임명되고 전답을 백성들에게 나눠줄 것을 건의.
한중전 때 공성계로 황충을 구하고 조조군을 대파하여 호위장군 (호랑이와 같은 위세를 가진 장군)이라는 칭찬을 들음.
유비가 동오정벌을 계획하자 이를 만류하고 유비가 진격한 후에 강주독이 되어 패하는 유비군을 맞이했으나 이미 오군은 모두 물러남.
제갈량의 1차 북벌 때 기곡으로 나아가 본대의 패배로 물러났으나 몸소 뒤를 막아내어 피해가 없었음. 제갈량과 함께 책임을 지고 벼슬이 강등됨.

진수의평-강하고 용맹하여 조아와 같은 인물들이었으니 관영과 하후영에 비할만 하다.

조운의 공적들을 대강 정리해보았습니다.
직책으로 보나 실적으로 보나 대체 어떤 걸 근거로 주로 호위직을 맡았다고 주장하실건가요?
레인저님께서 그 의견에 그토록 자신있으시다면 삼국지 커뮤니티에 한번만 그와 관련된 글을 올려보십시오. 당장에 수많은 반박들이 들어옵니다.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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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이 어떤 인물이었나-
그냥 진수의 평가로 대신 답해드리죠.
강하고 용맹하여 조아와 같은 인물들이었으니 관영과 하후영에 비할만 하다.

어떤 역할이었는지 짧게 요약하자면 유비군의 핵심 장수로서 일생을 전투와 함께한 문무겸장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레인저
09/01/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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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스타 능력이 별볼일 없는 저도 "이제동은 르까프의 핵심 선수이다" 정도는 말할수 있습니다.

아까부터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조운이 어떤 능력에 있어서 가장 뛰어났느냐, 무엇을 가장 잘했는가" 에 대하여 "호위" 개념을 언급했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해왔는데 저런식의 말씀은 좀 난감하군요. 진수의 평가는 사서를 찾아봐도 볼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걸가지고 토론을 하자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진수의 평이 아닌 레드옐로우오렌지그린님의 평가를 보고 싶습니다만...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4:47
수정 아이콘
조운이 어떤 능력에서 가장 뛰어났는지 자꾸 이야기 하라고 요구하시는데
저는 '조운이 다방면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애초에 논란의 발단은 '조운이 가장 잘하는게 무엇이냐?'가 아니고 '조운이 주로 맡은 임무가 무엇이냐?' 아니었나요?

조운의 역할은 주로 유비를 호위하는 임무였습니다. 타국으로 비유를 하자면 위나라의 허저나 오나라의 주태같은 역할입니다.
->레인저님이 위에 다셨던 댓글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반박을 한 것이구요.

그리고 진수의 평가는 당연히 사서에서 찾을 수 있는 부분이죠.사서에 기록된 부분인데요.
OvertheTop
09/01/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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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글을 읽다보니 삼국지게임을 다시하고 싶은 생각이 샘솟는군요. 책임지세욧.
레인저
09/01/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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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OrangeYellowGreen님 // 군사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장수, 핵심장수, 다재다능...
저런식의 평가는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하물며 저런건 KOEI 게임 켜놓고 조운 능력치만 봐도 알수 있는 것들이죠.

조운에 대한 역사 기록 자체가 워낙 적어서 RedOrangeYellowGreen님의 의견도 좀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만 포기해야겠습니다....-_-
RedOrangeYellowGreen
09/01/1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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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핵심장수,다재다능외에 어떤 표현이 필요하신지요?

조운은 때론 별동대의 사령관이 되기도 했었고 유비를 따라 전투에 참가해 공적을 올리기도 했었고 선봉에 나서 적군을 격파하기도 했었고 후방에 남아 남쪽을 관할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식견으로 유비에게 간언을 하기도 했었고 뛰어난 인품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말씀하신대로 유비의 식솔들을 보호하기도 했었죠.

이걸 핵심장수,다재다능외에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라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본전만 놓고 보면 조운에 대한 기록이 매우 적은게 사실이지만 배주까지 합치면 촉진영 장수들중에 적은 편이 아닙니다. (마초나 황충보다 많죠)
나이트해머
09/01/1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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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핵심적인 역할이라, 주로 맡은 임무라면 군을 지휘하는 역할이죠. 뻔하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호위로 뛰진 않았죠. 허저처럼 보디가드로 활동했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역사 왜곡입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했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게 사실인걸 어떻합니까. 야구로 따지면 그때그때 팀의 필요에 따라 내야에도 있었다가, 외야로도 갔다가, 포수도 보고, 가끔은 투수도 보는 선수입니다. 특징이 없어보이지만, 어떤 역할을 맡아도 다 잘 해낸 장수인 겁니다.
레인저
09/01/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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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처음에 허저, 주태를 언급한게 이렇게 문제가 되는것 같은데 조조생전에 항상 조조의 보디가드 역할만 담당해온 허저와의 비교는 좀 무리가 있겠군요.

내야수도 보고, 외야수도 보고, 투수도 하는데 투수로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선수는 투수로서의 활약을 놓고 주로 이야기 하겠지요. 제가 조운을 놓고 호위개념을 이야기한것도 그런 의미로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09/01/1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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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과 크게 공감합니다.

사실 제갈량이 1인자가 된 것에 대해서는 법정의 죽음이 큽니다. 선주는 법정이 죽은 뒤에 이엄과 유파를 법정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릉대전 이후에 사망함으로 전권이 제갈량에게 넘어갑니다. 사실 제갈량의 입지는 비록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견고한 것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전공을 세운 것이 아니더라도 제갈량이 세운 업적은 굉장히 큰 것이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능력은 유비가 죽은 뒤에 유선의 무능함 뒤에서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갔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갈량이 엄격한 법가의 사람이었다는 점이 가장 큽니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뒤에 제갈량은 엄격한 법을 세우는 것을 단호히 강행했습니다. 유비와 법정은 이를 걱정했지만, 유장의 무능했던 통치로 약해진 법도를 내세워 제갈량은 끝까지 엄격하게 나갈 것을 주장하고, 결과적으로 이것은 촉나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군사적 재능은 사실 많이 아쉽죠. 사실 당시 촉나라에 이렇다 할 장수가 없었던 것도 기인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속은 제갈량의 실수였고, 위연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으며, 왕평이나 요화, 마대 등은 부장급이었지 장군감은 아니었으니까요. 야전의 경험도 없을 뿐더러 상장군이었지만 부릴 장수가 없었으니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을 시험할 여건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나이트해머
09/01/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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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가장 많은 부분에서 활동한 건 군 사령관입니다. 첫 등장부터 기병부대를 지휘, 형남 4군 정벌시 유비 휘하에서 종군, 입촉전 당시 별도로 일군을 이끌고 각 군현 평정, 한중전 당시 황충의 부장으로 활동. 남중 정벌시 강주에서 사전준비 및 백업, 제갈량 1차 북벌시 별동대를 이끌고 조진이 지휘하는 위 중앙군과 맞상대.
특히 별동대를 이끌고 사전 준비나 주력 부대를 엄호, 대규모 적 중앙군과 대치전 등 위험하고 중요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냈습니다.
나이트해머
09/01/1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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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ker_님//촉에 별 장수가 없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위연과의 관계는 나쁘다 할 수 없고(개인적으로 위연의 인간성이 좋지 않아 불평을 가지긴 했지만, 명령도 잘 들었습니다.) 왕평은 장합을 막아내고 나중엔 독한중으로 조상의 침공을 가볍게 격퇴해냅니다. 성격 나쁜 위연과 보조를 잘 맞춘 오의도 있고(외척이란 점으로 인한 견제와, 나중 종회의 난으로 사료가 상당수 소실된 덕분에, 열전도 없지만, 당대의 평가는 위연과 비슷하고, 둘이 보조를 맞춰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엔 강유도 있군요. 그리고 법정이 한중전 직후 죽었지만, 황권이 있었고, 둘 사이가 후계자라기엔 뭐하지만, 법정의 공백은 황권이 충분히 매꿔 냈습니다. 한중전의 작전 전개도 법정 혼자 짠 게 아니라 황권과 같이 짠 거죠.
09/01/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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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해머님// 장수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관우나 장비, 마초 등 총사령관 혹은 대장군감의 장수들의 부재를 말씀드린겁니다. 위나라로 치면 장료, 우금, 조인, 오나라로 치면 감녕, 능통, 여몽 정도 클래스의 능력을 가진 장수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제가 언급한 위와 오의 장수들을 보시면 제가 말하는 '대장군감' 이라는 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클래스를 쉽게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연이 그나마 제갈량이 죽은 뒤에 촉나라를 이끌만한 대장군감이었지만 이상한 마무리 때문에 죽음을 당했고, 강유의 경우 제갈량의 실질적인 후계자였다고 하지만 불운했습니다. 제갈량이 죽기 전에 말한 적임자들도 장완, 비위 등이었는데 그들은 재상감이었지 장군감은 아니었습니다. 황권이 법정의 빈자리를 잠시나마 메꾸었지만 이릉대전 당시 촉으로 가는 길이 끊겨 위나라에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장군감의 부재에 대한 배경은 북벌 당시입니다.

위나라의 장수들, 하후돈, 하후연, 장합, 장료, 악진, 서황 등은 조조의 친척들이자 의병을 일으킬 때부터 혹은 지방의 군벌이었을 적부터 종군한 사람들로 경험도 풍부하고 유대감도 깊었습니다. 그들은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 왕조를 세운 뒤에도 형식적이었을 수도 있으나 대장군, 대사마, 표기장군, 태위 등을 지내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유비를 따라 종군한 대장군급 장수들을 보면 관우, 장비, 조운(?) 뿐입니다. 나중에 황충, 마초, 위연까지 등장하면서 뭔가 하나 싶더니 조운과 위연을 빼고 모조리 병사, 전사, 혹은 전쟁 전에 부하에게 배신당해 죽음을 당합니다. 왕평, 오의, 오일, 마대 등은 실질적으로 제갈량 세대부터 군부에 합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관우, 장비, 마초 급의 공적과 능력을 기대하기는 제갈량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갈량도 항상 이 점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래서 관흥과 장포에게 한가닥 기대를 걸었는데 젊은 나이에 요절합니다. 물론 나이트해머님이 말씀하신 장수들이 능력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장수들의 공적을 비하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촉나라는 스타판이나 축구판을 쳐서 선수층이 매우 얇았다는 것이죠. 말하다보니 위와 촉의 배경부터가 애초에 비교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조건이네요 -_-;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정치에 있어서 재상감이 아니라 군사를 부리는 일에 있어서 대장군감의 장수들의 부재에 말씀드린겁니다.
재수니
09/01/1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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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이 엄청나게 뛰어난 장수임는 분명하죠 일명 무패의 장수이니.
천하무적 미남장군 장비님과 더불어 무패의 장군 서공명!!
하고싶다
09/01/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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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까들 열폭 쩌네요
나이트해머
09/01/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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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ker_님//정확하게 '대장군감' 이란 기준이 어떤 건지 모르겠군요. 총사령관을 맡을 수 있는 수준이라면 위도 촉과 대동소이합니다. 이름높은 위나라 초창기 장수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숫자였지만, 그나마도 제갈량 북벌기쯤 되면 남은 게 거의 없죠. 거기다가 조비 이후 구품 관인법의 등장으로 능력보다는 빽있고 이름있는 인재가 높게 등용되면서 이후로는 더 없습니다. 물론 인재풀의 총량이 많긴 하지만, 위는 촉 뿐만 아니라 오, 북방 유목민족을 맞상대하느라 여기저기 분산되서 대촉 전선의 인재풀은 그닥 나은 게 아니죠. 덕분에 계속 피를 보니까 나중엔 대촉 전선의 인재 집중도가 올라가지만.
창해일성소
09/01/10 20:15
수정 아이콘
Joker_님// 장료는 대장군감이 아닙니다. 실제로 장료가 대부대를 이끌고 독자적인 군사활동을 한 적은 한번도 없죠(합비에서는 소규모 병력으로 수비만 맡았고 게다가 전권을 위임받은 주도적인 위치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조조 생전에 위군에서 독자적인 대부대를 이끌었던 급이라고 해 봐야 조인 하나 뿐입니다(조조군의 후방을 일임받았던 순욱도 끼워줄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이런 조인 마저도 촉에서 관우나 제갈량이 이끌었던 만큼의 대부대를 공격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습니다.

조조 사후에도 대부대를 이끌었던 장수라 해 봐야 조진, 사마의, 조휴(딱 1번!), 종회(역시 딱 1번!!) 밖에 없죠. 이 시기동안 촉에서는 제갈량, 장완, 강유가 이런 위치에 있었죠. 그리고 넓게 보면 장합이나 곽회, 등애 정도의 병력을 독자적으로 이끌었던 장수는 촉에서도 꽤 있었습니다. 오의, 왕평, 장억, 마충 등...

관흥은 군사적인 재능을 보여주기도 전에 2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죽기 전 그의 관직은 중감군으로 장군직이 아닌 문관에 가까웠습니다), 장포는 실제 역사에서는 아버지 장비보다 일찍 죽습니다(아마 10대 초반에 급사한걸로 추정).
창해일성소
09/01/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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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ker_님// 유파가 법정의 후계자니 뭐니 할 레벨이 아니죠. 유장 밑에서나 유비 입촉 후에나 유파 >>>>> 법정 정도의 위치였습니다. 유파는 당시 익주 선비들의 태두나 다름없는 위치였고 법정은 출세하지 못한 무명의 문사였습니다. 관직은 황권이 유파보다 높았으나 유파의 위치는 상당히 실권이 큰 자리였죠.

이엄도 마찬가지로 법정이 담당했던 역할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유비가 고명대신으로 그를 선택한 것은 1) 구 익주 세력 가운데 비교적 가장 젋었고 2) 등주병(형주에서 익주로 이주한 출신)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구 익주세력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유비 사후 그가 맡았던 역할도 형주 방향에 주둔해 그쪽의 민심을 어루만지는 역할이었습니다.
창해일성소
09/01/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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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님// 조운은 호위장수엿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관우나 장비는 황건난 이후 유비가 평원승으로 재직했을때 잠시나마 유비를 경호했던 적이 있지만, 조운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박망파에서 부인과 아두를 구해 달아난 것은 유비가 도망가다가 미처 처자를 챙기지 못한 것을 커버한 것이지, 내내 호위만 했다는 게 아니죠(실제로 유비가 도망쳤을 때 유비를 호위하는 장수들 중에 조운은 없었습니다).

만약 조운이 호위장수 역할을 맡았더라도 분명 그는 잘 해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맡은 적이 없죠. 강한 어깨, 좋은 풋워크, 훌륭한 글러브질, 넓은 수비범위를 가진 1루수가 있다고 해서 그를 '좋은 유격수다'라고 하지는 않죠.
09/01/1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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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보다 유저님들의 댓글을 보며 더 많은것을 알아간 1인..
저도 광적이진 않지만 삼국지 좋아하는 유저로써
뒤집어 읽는 삼국지를 읽어보고 많은것을 알았는데..
무력에는 장비 관우나 여포나 많은 차이가 있었던건 아니지만 북방민족의 출신인 여포가 말을 잘 다루어서
좀더 장비 관우보다 잘싸웠다는 말이 있던데

이건 사실인지 무엇을 표현하는건지 궁금하네요 (단순한 질문입니다 . 아는것이 별로 없어서요..)
창해일성소
09/01/1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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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님// 여포는 북방민족이 아닙니다. 한족이죠.
09/01/1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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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일성소님//
네 아무튼 북방쪽에서 자랐다고 한건가 벌써부터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군요 감사합니다
09/01/1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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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삼국지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도 있었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나네요 곧 망해버렸지만
창해일성소
09/01/1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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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님// 여포의 고향인 오원군 구원이 흉노족과의 접경지대라서 그런 헛소문이 퍼진게 아닌가 싶군요.
창해일성소
09/01/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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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님// 삼국지 천명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래도 국산 전략 치고는 나름 성공했습니다(2까지 나온 국산 전략시뮬이 워낙 드물죠 -0-;;;).
09/01/1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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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일성소님// 아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근데 궁금한건 정말 말을 잘다뤄서 관우와 장비보다 조금더 잘싸웠다고 표현한게 맞는건지 ..
09/01/1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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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전략으로 뜬건 그.. 휴먼과 오크.. 아 기억이 안나네요 !! 영웅 시스템 갖춘 게임이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었는데 말이죠
아 이름이 뭐였지 .. 킹덤언더파이어네요
09/01/1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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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이각,곽사-강족
여포,장료,정원-흉노족
유비-한족
조조-동이족
공손찬-선비족
손권-?

이거 아닌가요?
09/01/1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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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동이족이라 함은 고구려 태생이란 말인가요? 덜덜
그당시 제갈량이 쓴 문서에 있는 글에 보면 동이족은 고구려를 뜻하고 있는데요. 하도 오래전에 봐서 정확한 구절을 적어드릴수가 없지만 아무튼 동이족의 글자 뜻은 동쪽의 오랑캐란 뜻인데 그게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를 뜻했죠. 관구검의 고구려 침공도 동이족 정벌이란 이름하에 출정한거구요. 조조가 고구려 태생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놀랍군요.
09/01/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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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룡의 거꾸로 가는 삼국지에 보면 나옵니다. 조조는 고구려의 후손인 동이족이라고..
나이트해머
09/01/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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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족설, 거의 전부 뻥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여포 이민족설인데, 일단 이민족이라고 써놓은 사료가 없습니다. 그외에 고향을 들어 근거를 대는데, 여포 고향이 변방이라 이민족이면, 같은 고향 출신인 사도 왕윤도 이민족이고, 후한은 이민족 출신을 최고위직인 삼공까지 올려주는 엄청난 개방주의적인 코스모폴리탄 제국이 되겠지만, 당연 아니죠.
서로에 대해 인신공격이 횡횡하던 그시대에 이민족 혈통이였다면, 당장에 그걸 가지고 온갖 인신공격을 받았을 것이고, 사서에도 당연히 나옵니다. 조조만 해도 '환관놈 자식' 이란 소리 들었고, 유비는 '돗자리장수 주제에' 같은 소리 듣던 시대니 이민족 출신이면 바로 걸고 넘어질 겁니다. 그러나 없죠. 이민족 출신이면 아예 '어디 출신이다.' 고 나와요.
마초만 해도 어머니가 강족 출신이라고 떡 하니 적혀 있습니다.
낭만토스
09/01/1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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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다른건 거의 뻥인데 손권은 다른 족과 혼혈이라는 설이 있더군요.
Kiling본좌
09/01/1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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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떡밥 삼국지군요..
요새는 요술사 제갈량의 군지휘자적인 역량, 멍청한 군주 유선의 재조명이 화두더군요.

먼저 제갈량의 경우 6번이나 북벌을 감행했음에도 한치의 땅도 얻지 못한점, 연의에서의 요술사적인 요소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켜 그 군사적인 재능이 상당히 평가 절하되어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의 정치적, 법가적인 능력을 들어 뛰어난 재상으로 인정하지만, 그를 한신과 같은 군지휘자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재능을 상당히 평가절하하더군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갈량이 본격적으로 북벌을 감행하던 시기에 위, 오, 촉의 국력은(국토면적, 인구수, 생산력을 종합한..) 6 : 3 : 1, 심하게는 6 : 2 : 1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어찌됐건, 촉+오를 해도 위에 못미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정상적으로 보면 촉은 위의 비교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공세를 감당하기 힘듬에도 제갈량은 그가 죽는 234년까지 매우 공세적으로 국면을 주도합니다. 그를 상대했던 위나라의 사마의, 조진, 곽회등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에도 제갈량을 상대로는 '지키는 전략이 최고'란 것만 확인시켜줬죠. 스타로 치면 본진 플레이의 저그가 멀티 3개쯤 있는 테란 상대로 뮤탈 게릴라, 럴커 경락등을 통해 공세적으로 대등한 싸움을 한 셈입니다.

또한 제갈량은 삼국시대 전체에서 손꼽을 정도로 군사적인 거점 확보와 보급을 중시했고, 잘했던 인물입니다. 혹자는 매번 기산만 고집하던 그의 정공법을 꼬집어 촉과 위의 국력으로 실현가능성이 없는 무지한 전략으로 평가 절하하고, 오히려 위연이 주장하던 자오곡을 통한 장안 공략이 답이었다고 말합니다. 제갈량도 자오곡을 통한 장안 공략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조비가 오나라를 침공했을때, 조운을 시켜서 장안을 치게 하죠. 이에 놀란 조비는 급히 회군을 하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빈집의 효과일 뿐입니다.

제갈량이 당시 위를 칠 때의 군사는 말 그대로 촉의 전력이었습니다. 반면에 위는 20% 정도의 병력만으로 촉의 전력을 능히 앞설 수 있었고, 패한다 하더라도 쉽게 보충이 되는 상황이었구요. 촉은 패하면 끝입니다. 그 상황에서 불패의 땅만을 찍어 안정적인 전투를 하고, 보급에도 실패가 없었습니다. 6번이나 장안을 노리면서 한치의 땅도 뺴앗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거점 확보를 통해 패배의 피해를 최소화 했고, 가장 어렵다는 퇴각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역습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이 보는 당시 촉의 상황은 가만히 있으면 위나 오에 먹히는 것은 시간문제 였습니다. 제갈량은 가만히 앉아서 죽기보다는 나가서 활로를 찾기를 원했습니다. 오랜 북벌이 촉의 피폐를 가져왔다는 얘기도 있으나, 주 전장은 항상 위나라의 영토였다는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촉나라는 위나라에 비해 전쟁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갈량이 죽은 뒤 30년이 지나서야 위가 겨우 촉을 정벌하게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됐건 제갈량의 군사적인 역량은 북벌의 결과적인 실패로 평가되어선 안됩니다. 그는 위의 1/3도 안되는 전력을 가지고, 당대의 군략가인 사마의, 조진, 곽회등과 대등한 싸움을 했으며 오히려 국면을 주도했습니다. 제갈량의 군사적인 역량은 결코 정치적인 것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갈량 얘기가 길어졌는데, 유선 역시 삼국지에서 과소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 입니다. 유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제갈량, 강유 북벌에 대한 겐세이, 색을 밝히고 환관에 빠져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가고 , 적이 성앞에 이르자 바로 항복해 버리는 나약한 군주 정도인데요.
제 생각은 역시 이와 매우 다릅니다. 실제로 최근(사실 그리 최근도 아니군요..)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 유선은 매우 뛰어난 군주였고, 촉한공정의 대표적인 희생자 입니다.

유선이 욕먹는 대표적인 이유를 들어볼까요.

- 정사를 소홀히 하고 아첨꾼에 놀아나 나라를 망하게 함.
- 점쟁이 말만 믿고 강유의 북벌 저지.
- 크게 저항하지 않고 항복
- 촉 패망후 낙양의 연회에서 촉이 그립다는 어색한 눈물연기.

크게 4가지인데요. 먼저 1번의 경우는 사실과 다릅니다. 제갈량 등이 매번 상소하면서 넣는 멘트 중 하나가 "폐하는 덕이 많아서.."
뭐 이런식의 말들입니다. 물론 나라의 황제에게 하는 당연한 아부일 수도 있지만, 유선의 경우 실질적으로 덕이 많은 군주였습니다.

유선은 유비 사후 40년 이상을 촉의 황제로 있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촉의 내부에서는 오나 위와 달리 이렇다할 변란이나 쿠테타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있어봤자 제갈량 사후 위연과 양의의 대립, 위연 사후 양의의 불만 표출 정도군요. 그 이유가 촉의 신하들이 위, 오와는 달리 개념잡힌 군자들이라서 알아서 잘해서 였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선 그 자신의 정치력인 능력이 뛰어난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는 개념잡힌 신하들을(제갈량, 비위, 장완, 등윤등) 중용할 줄 알았고, 내정을 잘 꾸려나가게 했습니다. 그의 덕은 아버지인 유비 못지 않아서 배반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으며, 반역을 도모하던 양의 조차 사형대신 평민으로의 강등을 시킵니다.

제갈량 사후 유선이 30년 가까이 아무런 이상없이 통치한 것을 제갈량의 치적으로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는 솔직히 억지에 가깝습니다. 제갈량은 유선 재임 이후 11년만에 사망했고, 그중에 8년은 북벌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의 사후 촉이 평안했던 것은 제갈량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아니라, 유선의 능력이 뛰어나서라고 보고 싶습니다.

이는 촉을 정벌하는 위의 대동원령에서도 잘 알수 있습니다. 위는 '촉의 사정이 여의치 않음에도 강유가 무리한 북벌을 추진함으로 백성들을 혹사시키기에 이를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촉을 침략합니다. 유선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촉의 관료나 백성들이 유선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강유는 제갈량조차 이루지 못한 북벌을 9차례나 감행합니다. 이는 곽회등이 별로 어렵지 않게 패퇴시키죠.
자원은 없는데 무리한 공격으로 고갈만 되는 상황.. 점쟁이의 말을 빌어 강유의 북벌을 저지한 것은 실제로 점쟁이의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 강유의 무리한 북벌이 촉의 멸망을 앞당기고 있기에 이를 저지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삼국지의 독자들 눈에는 제갈량의 병서를 다 물려받은 유일한 후계자인 강유에게 태클만 거는 어리석은 군주일 뿐었죠.

위의 등애와 종회가 촉을 침공했을 때, 유선은 등애의 별동대가 성도에 이르자 그냥 항복합니다. 이는 촉한공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나약한 행위일 수 밖에 없죠. 하지만 과연 이게 잘못된 행동일까요. 유선은 이미 모든 카드를 써버린 상황입니다. 촉의 전력 50%이상을 가지고 있는 강유는 검각에서 종회랑 아웅다웅하기 바쁘고, 믿었던 제갈첨마저 패퇴한 상황에서, 유선이 할 수 있는 것은 성도의 백성들을 쥐어짜서 결사 항전하는 것 밖에 없는데요. 그래봤자 크게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성도에는 등애의 정예군을 상대할만한 변변한 장수조차 없었고, 강유 역시 종회와 백중의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원군을 보내기도 어려웠죠. 유선이 결사항전을 했다면 백성들의 희생만 늘었을 뿐입니다.

어찌됐건 촉은 멸망했고, 여차여차 해서 강유, 등애, 종회 모두 저세상으로 갑니다. 사마소는 유선을 위해 연회를 열고, 촉이 생각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기가 더 좋다는 말을 해서 모두를 경악 시킵니다. 이를 보다못한 극정이 유선에게 촉에 가고 싶으면 촉이 그립다며 눈물을 흘리라고 조언하자, 이를 실행하려 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아 모두의 비웃음을 사게 되죠. 과연 이 연회의 사건이 사실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선이 이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촉의 마지막 황제이자 여기저기서 촉의 부흥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유선은 백치처럼 행동해야만 살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명예로운 죽음이 치욕스런 삶보다 낫다는 말도 있긴 합니다만, 본인의 삶을 위해 저 정도의 행동을 하는 것은 제가 볼때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데 말이죠.

제가 생각하는 유선은 덕이 있고 조화를 중시하는 군주였습니다. 그가 황제로 있던 촉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촉이 위에 먹힌 것은 먹힐만한 국력차이 떄문에 먹힌 것입니다. 오히려 그만큼 버텼으면 잘버텼다고 하는 편이 맞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결과만을 기록할 뿐이고, 위나라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촉 정벌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는 촉의 마지막 황제는 무능하고 나라를 말아먹은 사람으로 기록할 수 밖에는 없었겠죠. 유선도 어찌보면 여러 사정에 의해 극히 저평가된 피해자일 뿐입니다.
라이시륜
09/01/1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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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에 관한 떡밥이었는데 조운의 군사적 재능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더니 마지막에는 유선까지 넘어왔네요ㅡ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재능을 분리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국내 정치에서 암습맞고 관직 박탈당하면 전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정치적 재능이 없는자가 부하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고 따르게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해야겠죠. 그 외에도 어느 한 인간의 재능의 영역을 구분짓는다는 것은 쉽지 않아보입니다) 후세 사람이 과거 재사(才士)들의 재능을 따지는데 당대의 인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은 꼭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로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유비를 빼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비는 덕있고 인자하여 그 본신의 능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주위 인재들의 도움으로 시대를 풍미한 영웅으로 그려지는게 일반적인데, 저는 유비의 군사적 재능이 후한 삼국시대의 인물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봅니다. 일단 다전으로 따져 유비보다 많은 인물이 조조를 제외하고 없고, 대부분의 전투가 불리한 상황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고, 고금의 병법가들이 가장 어려운 전투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후퇴전의 경험이 남들의 곱절의 곱절보다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몸 건사하여 일국을 이루어냈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인데요, 그런 유비가 군사적 측면에서 제갈량을 평가한 상황이 생전 두번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입촉 전쟁이었고, 두번째는 형주 수복전(관우 복수전) 때였죠. 두번 모두 유비가 내린 결정은 제갈량의 후방 지원이었습니다. 즉, 유비는 제갈량의 군사적 능력보다는 정치적 능력을 높게 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는데요, 바로 입촉 전쟁 당시의 상황입니다. 방통의 죽음으로 군사(軍師)를 잃은 유비는 제갈량을 불러들이는데요, 분명 당시 유비는 관우를 불러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제갈량을 선택하죠. 이는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을 관우의 그것보다 유비가 높게쳤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관우의 군사적 재능이야 두말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제갈량의 그것이 상당 수준이었음은 틀림없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보다 정치적 재능이 더 뛰어났기에 처음에는 후방에 두었던 것이죠.

그리고 9주 중 촉은 1주, 오는 2주 하고도 반, 위는 나머지 5주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게다가 촉의 땅은 중국이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 당 시대 단 한차례만 융성하였고, 오의 양자강 유역 땅은 송나라 이전까지는 미개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여겨졌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 위에 맞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제갈량의 군사적, 정치적 재능은 두말할 나위 없지 않나 싶습니다.
09/01/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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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ing본좌님// 유선은 환관을 중용했다는 점에서 군주로서 낙제점을 받죠. 그리고 강유를 실질적인 바지사장으로 만들어 버린것도 유선입니다. 강유의 북벌이 미약한 수준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유선에게 있죠. 그리고 마지막 촉한 멸망 때도 유선이 강유 말만 잘 들었더라면 촉은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제갈량 사후 촉의 권력구조는 수도가 포함된 익주의 행정권-군사권-왕실 자문권으로 나뉘고 이 세가지를 장완-비의가 승계하며 중앙 권력의 핵심에 섭니다. 비의가 암살되기 전에 강유는 군사권에서는 비의 다음이자 왕실 자문권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가 비의가 암살당하면서 강유가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승계했어야 할 익주의 행정권 및 중앙 조정대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유선은 이렇게 붕 떠버린 강유를 방치해 버리죠. 덕분에 강유는 촉한의 군사권을 쥐고 있음에도 조정에서 자신보다 하급 관원인 자보다 영향력이 떨어지고 북벌시에도 최대 5만, 직속군은 그보다 더 적은 규모밖에 같지 못했습니다. 유선은 강유가 이렇게 붕 떠버리는 동안에 황호와 놀아났고요. 유선이 현명한 군주였다면 황호를 멀리하고 강유에게 힘을 실어줬어야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정치 감각이 정말 없었죠.

강유의 북벌은 직속으로 2만 정도밖에 거느리지 못한, 제갈량 시대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고 실제로 별로 패배도 하지 않았습니다. 패한 것은 마지막 북벌 뿐이고, 오히려 효율 면에서는 제갈량보다 더 나았죠. 많은 승리를 챙겼고 위에게 출혈을 강요했습니다. 다만 그걸 지역 점령과 영토 확장으로 이어낼만큼의 병력이 없어서 소모전을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보급 문제로 결국 철수하기가 다반사였고요.(실제로 강유는 북벌을 통해서 촉 전담 장군을 죽이기도 했고 일시적으로 옹주까지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강유의 북벌이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로 대규모로 진행되지 못했기에 유선이 무리한 북벌 추진을 막으려고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비의 사후 조정대권을 진 진지가 익주의 행정권을 관할하는 상황인지라 애당초 강유는 촉에 무리가 될 수준의 병력과 보급을 끌고 북벌을 해보지도 못 했죠.(진지는 황호쪽 인사)

게다가 강유는 제갈량의 북벌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아 행했던 초기 북벌이 실패로 끝나자 이후 북벌보다는 위의 침략에 대응하기위한 방위책을 수립하는데 매우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강유가 수립해둔 방어책이 제대로 작동 되었으면 장익과 요화의 군대로 산을 가로질러온 등애군을 막고, 종회군을 한중 바깥에서 저지하면서 시간을 번 후에 한중의 험한 지세를 역으로 이용, 위를 격멸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문제는 강유가 유선에게 '장익과 요화로 음평과 교두를 막으세요.'라고 말했는데 유선이 황호말을 듣고 장익과 요화를 보내지를 않았죠. 결과는 등애에게 털리고 촉 멸망.

유선은 그리 영민한 군주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촉 멸망의 원흉이었거든요. 장완-비의로 이어지는 수준급의 재상라인과 부족한 지원에도 위를 위협한 강유를 버리고 황호를 중용했고 결국 사사건건 강유의 발목을 잡다가 촉을 말아먹었으니까요.
낭만토스
09/01/1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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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ing본좌님// 긴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유선에 대한 재평가 부분에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네요. 성공할 뻔 했던 북벌을 소문에 현혹되어 제갈량을 소환한 일화를 봐도 참 멍청한 군주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가정교육 실패라고 보는데요. 조조의 아들들...대표적으로 조비의 경우는 공적은 없을지 몰라도 어려서부터 여러 전투에 참여했고, 손견의 아들 손책은 소패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엄청난 공적을 자랑했죠. 손권도 항상 손책과 붙어다니며 아버지인 손견에게 많은 것을 배웠죠. 반면에 유선은 어려서부터 부잣집도령의 수준으로 편안하게만 커왔죠. 따라서 전투적, 정치적 감이 제로에 수렴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혹자는 우스개소리로 장판파에서 유비가 바닥으로 아두를 던져서 그때 머리가 고장났다고 하는 분도 있죠 -_-;;;
적어도 황호와 같은 환관무리들을 가까히 했다는 점에서 군주로의 평점은 좋지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Kiling본좌
09/01/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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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l2님, 낭만토스님/ 지적 감사합니다. 하지만 유선이 황제로 있는 기간 내내 내시 황호에게 놀아났다는 말은 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유선이 223년에 황제가 되고, 황호가 정권을 잡은 것은 258년 무렵입니다. 재상이었던 비위가 죽은 것은 254년인가 그렇구요.(촉은 263년에 멸망하죠)
유선이 황호를 가깝게 한 것은 최소 황제가 된 후 30년 이상이 지난 후입니다. 하지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선이 제갈량 사후 내신들만 싸고 돈다고 생각하고 있는걸까요. 그건 우리가 읽은 삼국지의 문제도 있습니다. 황건적이 출몰하던 시기부터 사마염의 천하통일까지 약 100년의 기간을 삼국지의 연도로 본다면 제갈량이 죽는 234년은 딱 그 절반정도의 시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삼국지는 이 제갈량의 죽음까지를 9할이상의 분량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죠. 제갈량 사후 나머지 절반의 삼국지는 책 반권정도의 분량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 반권의 분량에서 정말 촉의 후반부에 활동한 황호의 비중이 꽤나 높게 다뤄졌고, 대부분의 연도의 많은 사건들이 스킵됩니다. 강유의 북벌 역시 한 두줄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요. 저역시 처음 삼국지를 읽을때에는 제갈량이 죽고나서 5,6년만에 촉이 망한 줄 알았습니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호가 제갈량 사후 유선을 좌지우지 한줄 알지만 이는 정말 사실과 다릅니다.

또한 정사를 보면 연의에서 드러나는 황호의 악행(강유가 다이긴 전투에서 퇴각하게 한다든지.. 점쟁이 말만 믿고 강유를 답중으로 보낸 것등)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정사에서는 오히려 9차례나 무리한 북벌을 감행해 촉을 거덜낸 강유를 촉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황호뿐만 아니라 제갈첨, 염우, 극정등 촉의 내노라 하는 대신들은 모두 강유의 무리한 북벌을 말리는 입장이었고, 백성들 모두 강유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위의 대동원령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위가 당시 촉을 치면서 내세웠던 명분이 '강유의 북벌로 인해 피폐해진 촉 백성들을 구하고자' 입니다.
어쨌든 강유는 조정의 대부분이 자신의 안티인지라 감히 한중으로 가지 못하고, 촉의 주력군을 답중으로 빼버립니다. 이는 조조나 사마의조차 쉽사리 빼앗지 못했던, 촉의 목구멍이라는 한중을 등애와 종회에게 너무도 쉽게 빼앗겨 버리죠. 한중을 빼앗기면 촉같은 약소국은 위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정사에서의 강유는 무리한 북벌과 주력군의 이탈이라는 큰 실수를 해서 촉의 멸망을 앞당겼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연의에서의 강유는 제갈량의 남은 유업을 혼자 이어받아 멍청한 유선의 겐세이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그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히어로죠. 제가 볼땐 강유야 말로 촉한공정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한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09/01/11 23:23
수정 아이콘
Kiling본좌님// 제갈첨이 강유의 북벌에 반대한 것은 군 사령관 강유를 불러들여 황호를 누르기 위함이었죠. 제갈첨은 실제로 조정에서 황호를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었고 안티 황호의 핵심 격인 인물이었습니다. 제가 누차 말하지만 진수의 삼국지와는 달리 여타 촉에 관한 기록을 보면 강유의 북벌은 촉을 거덜낼 정도의 규모로 나가 보지도 못 했습니다. 강유가 조정 바깥으로 것돌게 된 근본 원인이 유선에 있는 것이죠.

위가 말하는 대의명분은 이유가 되지 못 합니다. 당장 제2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 작전명이 '이라크의 평화'였으니까요. 여러 문헌들을 살펴 보건데 강유의 북벌은 5만 정도선의 병력, 직속군은 그보다 적은 규모였고 장기간 결전을 해보지도 못 했습니다. 늘 보급문제로 퇴각해야만 했죠.

한중을 등애에게 빼앗긴 것도 강유가 유선에게 전언한 대로 요화와 장익을 보냈으면 등애를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선이 그렇게 하지 않아 빼앗긴 것이죠. 강유의 한중 방어책은 실제로 그 이전 위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던 것과 매우 유사한 형태였습니다. 한중으로 들어오는 적의 진군을 막고, 보급문제를 야기시킨후 격멸하는 것이었죠. 유선이 제대로 머리만 박혔어도 등애에 의해 한중이 아주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강유의 무리한 북벌이라고 계속 하시는데 강유는 무리한 북벌을 해본적도 없을 뿐더러, 그로 인해 촉이 별로 피폐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강유 군대가 큰 피해를 당했다는 기록은 상대측인 위에도 많지 않으며 늘 자기보다 1.5배 이상 많은 적을 상대로 상당한 피해를 입힌게 강유입니다.

황호가 재상이 된 것은 말씀대로 258년 무렵입니다만 유선은 그 이전부터 황호를 싸고 돌았습니다. 비의 사후에 강유가 당연히 승계해야할 익주 행정권이 황호측 인사인 진지에게 넘어가 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덕분에 강유는 관직은 진지보다 높은데도 조정에 대한 영향력이나 군사 보급문제에 대해 훨씬 약한 영향력만 갖게 됩니다.

유선이 훌륭했으면 왜 장완과 비의가 죽고난 후 촉의 중앙이 사분오열 되었을까요? 제갈량이 그토록 철저히 시스템화 시켰음에도 비의 사후 심심치않게 하극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모든걸 야기한게 유선입니다.
창해일성소
09/01/12 15:16
수정 아이콘
Kiling본좌님// 유선이 간신배들에게 놀아나기 시작한 것은 황호 등장 이전 진지라는 인물부터 시작됩니다(환관은 아니었지만...). 진지는 몇년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처형되지만... 그 후로 유선은 다시 환관 황호를 총애하게 되죠. 그러나 황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총애를 받던 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완-동윤-비의가 모두 죽을 때 까지 과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유선의 신임을 독차지합니다. 그리고 253년 비의까지 죽자 성도에는 황호를 제어할 만한 인물은 단 한명도 없었죠. 그리고 강유에 대한 여론 조작을 시작합니다(강유가 돌아온다면 자신은 진지와 같은 운명이 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성도에 있는 신료들 중 대부분이 강유를 깠던 것도 한정된 정보밖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죠(실제로 강유의 전투를 본 적이 있는 번건이나 극정은 강유를 옹호해 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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