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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05/06 17:53:06 |
Name |
The xian |
Subject |
'잔디 빠진 운동장'에서의 경기는 제발 그만!! |
* 회사에서 땡땡이 중입니다. 물론 이것도 저녁 전까지만이죠. 논(論)하는 식으로 쓰기 쉽도록 평어로 씁니다.
* 단지 '다른 주제의 이야기'일 뿐, 오늘 공군 팀의 승리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식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인규 선수의 승리 및 공군 팀의 대역전승을 축하합니다.
최근 여러 가지 이유, 특히 공공 장비 문제로 인해 여러 곳에서 경기 중단 및 재경기 사태가 많이 일어났다. 그 사건(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아는 일이니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도 사실 싫다. 무슨 말만 하면 한 쪽에서는 음모다 뭐다 들끓어대면서 아예 말도 꺼내지도 못하게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제 2, 제 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검증을 해야 한다고 하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가 어느 쪽으로 머리끄덩이 잡혀 끌려들어가거나, 혹은 한 쪽의 사람들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다른 쪽으로 내팽개쳐지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분위기에서 그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봤댔자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일 뿐이다. 더군다나 '다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도 나온 일들에 대해서는.
여하튼 공공 장비 문제로 인한 경기 중단, 그리고 재경기로 인해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대략 이럴 것이다.
일단, 선수는 선수대로 맥이 빠진다. 보통 이럴 때 많은 이들이 상황이 불리했던 선수는 안도하고 있을 것이라 하지만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건 난 오산이라고 본다. 상대가 소위 '매너빌드'를 해서 같은 스타일로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한 번 위축된 마음이 그것으로 다 풀리지는 않는다. 물론, 상황이 유리했던 선수가 맥이 빠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억울한 마음이 없을 수가 없고, 좀 지나치면 마인드컨트롤 실패로 이어진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경기 준비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온 신경을 집중했던 것이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깨져 버리면 좋을 것이 없는 건 양 선수 모두 마찬가지이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두뇌를 써야 하는 콘텐츠를 이용한 경기에서 그런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 나는 그런 일을 겪는 선수들의 생명까지 걱정될 정도다.
이렇게 공공 장비 문제로 인한 경기 중단 → 재경기로 귀결되는 불쾌한 메커니즘은 선수의 정신을 분열시킨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신 분열'이란 말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이 승부에 그만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용어가 약간 생소하지만,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팬들 역시 맥이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팬들의 경우에는(특히 특정 응원 대상이 있는 팬들은) 직접 '경기 자체'에 집중하여 긴장을 하는 선수와는 달리 집중하는 주된 대상이 '경기 자체'라기보다는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유불리'이다 보니 그 상황에서 누가 조금 나았냐, 누가 조금 불리하냐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만을 가지고도 입장 차가 확연히 생기게 되고, 그 차이는 너무도 쉽게 드러난다. 거기에 경기 외적인 면이 결합되거나 하면 팬들 사이의 입장 차이는 더더욱 벌어진다.
물론 두 선수 중 누구의 팬도 아닌, 그 경기를 즐기는 입장인 이들은 그런 이유로 차이가 벌어지는 건 덜하겠지만 경기 자체를 즐기겠다는 마음이 가셔 버리는 것까지 어찌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격렬한 반응이 나오는 경우도 더 많이 발생한다. 마치 WOW의 '메카나르' 영웅난이도 보스 공략시 다른 극성의 디버프가 걸린 파티원들끼리 뭉치면 아무리 빵빵한 장비를 걸치고 실력이 출중한 캐릭터 5인이 뭉친 파티라 해도 단 10초만에 허무하게 전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기 중단 사태는 팬들의 지리멸렬하기까지 한 싸움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된다.
즉, 공공 장비 문제로 인한 경기 중단 → 재경기로 귀결되는 불쾌한 메커니즘은 팬들 역시 분열시킨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즐거운 승부가 되기 어렵다. 즐거운 승부는 이미 물 건너 갔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 번 산통이 깨졌고, 잔치 자리의 상이 한 번 뒤집어 엎어진 셈이다. 과연 그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새로운 잔치상이 차려졌다고 해서 잔치에 참여한 이들이 그 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물론 초대해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축하해 줘야 할 누구를 생각해서 겉으로는 참고 있을 지 모르나 속은 이미 까맣게 타 버렸을 것이다. 더 이상 잔치는 잔치가 아니게 된다.
2002년 월드컵으로 인해 축구전용구장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축구인들이 꺼낸 이야기는 '잔디구장',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축구 전용구장'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소년 축구 등을 위해 아직도 항상 하는 이야기이다. 왜일까.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맨땅에서 드리블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기 감각이 길러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축구 전용구장은 제대로 된 축구 선수들을 길러내고, 제대로 된 '축구'라는 스포츠를 만들기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물론 스타크래프트는 이미 번듯한 전용구장은 있다. 외형상으론 그렇다. 그러나 그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요즘의 경기 중단 - 재경기 사태를 보면 나는 잔디가 듬성듬성 나 있고 흉하게 흙더미가 드러난 축구장에서 경기를 하다가 이리 저리 헛발질을 하고, 제대로 된 태클조차 하지 못한 채 맥빠진 경기를 하는 과거의 축구장과, 그런 경기를 혀를 끌끌 차며 지켜보는, 시멘트로 된 관중석에 가물에 콩 나듯 앉아있는 관중들이 생각난다. E-Sport가 더 인정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이런 환경에서 E-Sport가 점수를 깎아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타고 열이 받을 뿐이다.
혹여나 관계자 분들이 그런 경기가 '몇십 경기에 하나 나올 뿐'이라고 안심하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 '몇십 경기에 하나'있는 작은 돌부리에 걸려넘어진 이들이 발걸음을 180도 돌려 버리고, 그런 일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E-Sport가 스포츠임을 불신하는 이들을 더욱 늘어나게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로 인해 생기는 악평을 환영하는 이들은 E-Sport의 팬들이 아니라, E-Sport를 스포츠라고 믿을 생각은 서캐 뒷다리만큼도 없는 이들일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경계해야 한다.
- The xian -
P.S. 이 글이 '재경기를 하지 말자'의 뜻으로 해석되는 일이나, 그 동안 일어났던 재경기와 관련된 논란 등이 확대 재생산되는 공간으로 변질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비슷한 글을 예전에 다른 곳에서 쓴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해석되는 광경을 보니 난감하기 그지없더군요.
P.S. II 협회 및 대회 주관사에 말합니다.
잔디가 듬성듬성 빠진 운동장에 선수를 몰아넣는 것이 큰 문제임을 직시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아울러 경기장 상태도 문제이지만, 경기를 주재하는 심판이 없는 것은 몇 배 더 큰 죄악이라는 점도 직시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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