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7/07/29 13:15:03
Name OrBef
Subject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관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시작하기 전에 사과말씀부터 드릴랍니다.

글이 너무나 난잡해서 제가봐도 짜증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능력에 이 주제를 좀 더 다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하여 눈물을 머금고 그냥 올립니다.

해서 난잡한 글 중간에 길을 잃으시는 일이 없도록, 제가 말하려는 내용을 미리 말씀드리고 시작합니다.

ㅇ. 친일파라는 것이 현대에 생각하는 만큼 당시 국민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ㅇ. 친일수구세력이 독재자들과 연합해서 현대까지 살아남았다고 편하게들 생각하지만, 저거야 말로 현대에 살아남아있는 친일파들의 물타기이고, 사실 친일 본좌들은 야당 민주화 세력에 더 많이 남아있었다. ( 수정 : 여당 계열에 없었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또한 이후 민주당을 통해 민주화를 이룩해보려던 많은 열사들을 폄하하려는 뜻도 없습니다. 그분들은 달리 갈 데가 없었죠 )
( 첨가 : ㅇ. 이완용같은 극렬 친일 분자와는 달리, 일제 말기의 친일 계열 지식인들은 나름대로 이해할만한 여지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말기 변절자들과 독립운동가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까지 소원하진 않았다. 이승만+윤치호, 김구+한민당, 송진우+장덕수 등의 예 )

정도입니다. 그럼 글 시작합니다.


1. 애국가를 지은 사람이 친일파.. 어??!!!

우리 나라의 국가인 '애국가', 이 노래의 가사를 지은 사람의 이름은 '윤치호', '윤치호' 는 흔히들 말하는 을사오적급 친일파...

.... 해방이후 임시정부 첫 국무회의가 열린 자리에서 논공 행상논의로 회의 분위기가 어수선해 지자 이승만은 윤치호와 도중에 나오면서 "저 사람들 지금 공로나 따지고 있을 때인가, 한심한 일이군." 하고 다시는 참석하지 않았다.....

친일파가 임정 국무회의에 참석했다고...???

윤치호 연보에 보면, '해방이 되자 친일파로 몰림을 슬퍼하여 자결하였다.'

친일파로 몰리긴 뭐가 몰려. 친일파 맞지. 그래도 뭔가 기분이 이상하긴 합니다.

윤치호의 가족관계 : 조카 윤보선.... 어??!!! * 3

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아스트랄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된 이후 언젠가는 써보고 싶었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제 친일파에 대한 지식은 깊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일단 말씀드려야 할 것 같고, 그런 제약으로 인해 본 글에 너무 많은 에피소드는 다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있으시던 분들로서는 대부분 아시는 이야기일 듯 하고, 모르는 분들께는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드리고 이 분야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로부터는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즉, 이 글은 일종의 Wikipedia 입니다. 좋은 리플이 달린다면 본문을 지속적으로 수정해볼 용의가 있습니다.

( 추가분: 1.5. 독립협회의 초대 회장은 이완용.

뭐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그렇습니다. 그 독립협회에서 출판하던 독립신문이 이토 히로부미가 방한했던 1898년에 실었던 기사를 인용하자면,

“일본 유명한 정치가 후작 이등박문씨가 이달 23일쯤 입성한다 하니 이등박문씨는 당금 세계에 유명한 정치가요 또 우리 대한 독립한 사업에 대공이 있는 사람이라. 이번에는 유람차로 오니 정부와 인민이 각별히 후대하기를 바라노라.”

그렇습니다. 김옥균이 모셨던 후쿠자와 유키지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는 개화기 지식인의 생성 단계부터 일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또 그들이 말하던 '독립' 은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독립' 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유명한 독립운동가 서재필씨는 미국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권유하자 '귀찮다!' 라는 탄원서를 내고 미국에 잔류한 분입니다.)

즉, 우리의 개화한 지식인 부류가 이미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이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한 그런 상황이 아니라, 아버지로 믿고 따르던 일본에게 뒤통수 맞은 형국으로 당시 상황을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죠. 고로 시작부터 일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단순한 '증오' 가 아니라 '애증' 에 가까운 개념이었다고 믿습니다. )

2. 해방 이후의 정치 투쟁이 친일파 vs 민족주의자 였을까?

해방 당시 가장 유력한 토착 독립 운동 세력이라면 아무래도 건국동맹이고, 그 건국동맹은 패망 직전 총독부와의 협상을 거쳐 건국준비위원회로 거듭납니다. ( 뭐 건국동맹의 리더였던 여운형씨도 상해 임정에 한동안 머물러있었으니, 적어도 해방 전까지는 국내파와 해외파의 사이가 분열 양상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

당시 국호는 인민 공화국(!)

당연히 친일파를 포함한 보수파들이 싫어했겠죠. 그래서 친일파들은 해방후 한달만에 정치세력화하는데 성공해 한민당을 창당하였고, ( 수정합니다. 한민당은 100% 친일파로만 이루어진 정당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부자연합에 가까운 보수 정당이었고, 성향상 친일파가 주류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합니다 ) 건준에 맞서고자 토착 독립세력인 건준을 인정하지 않고 상해 임정을 우리 정통 정부로 끌어들입니다. 우리한테 '당연한' 상해 임정이 정통이라는 사상은 사실은 친일파인 한민당이 시작한 개념이라는 것이죠. ( 당시 미 군정은 친중 성향의 상해 임정을 싫어했습니다. ) 이 당시만 해도 앞서 말씀드렸더 윤치호같은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 지식인을 자처하려던 시기였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김구 선생 김구 선생 하지만 적어도 군정 치하시절까지는 진짜로 민중의 지지를 탄탄하게 받았던 사람들은 박헌영이나 여운형같은 국내파들이었습니다. 해방 직후에 건국 준비위원회를 꾸민 것도 이사람들이었죠. 다만 이사람들의 애로사항이라면, 이분들은 사회주의 색채가 짙었고, 이미 이념대립이 전세계적으로 심화되던 당시 시대상황때문에 선거를 통한 집권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군정에서는 김구(는 사실 좀 싫고), 이승만, 혹은 친일세력 정도에게 정권을 넘겨준다는 장기 계획이 있었지,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생각은 꿈에도 없었던 것이죠. 그 친일세력으로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기붕 조병옥 등이 조직한 한민당이 있었죠.

그래서 당시의 정치 투쟁은 ‘친일파’ vs ‘일본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사람들’ 의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지지가 있지만 불법세력화 되어버린 토착 독립운동가 + 사회주의자’ vs ‘친일파 + 해외파(?) 민족주의자 + 기타 등등’ 의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보자면, 김구의 한독당과 소원해진 한민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연합하고 정권을 잡죠. 그랬기 때문에 광복 직후에 행해졌었다면 거의 완벽했었을 친일 청산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제 의문은,

하나. 저 해외파(?) 민족주의 세력이 친일 세력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시각입니다. 진심으로 '천하의 몹쓸 놈들' 이라고 생각했다면 현실적 필요에 의해 잠시 연합하더라도 이내 숙청에 숙청을 거듭했어야 맞는데, 실제로는 그 유대가 점점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뭐 취중에 실언도 하긴 하지만, 저 두 세력은 같이 술도 잘 먹으러 다니고 그랬습니다.

둘. 48년 5.10 총선에서 한민당은 29석의 의석을 얻어냅니다. 왜? 누가 뽑아준 걸까요? 더구나 이승만 계열이나 무소속으로 탈바꿈해서 의석을 따낸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친일파들이 사실상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했던 셈입니다. 당시 선거는 직선제였고 투표율은 90% 를 넘었었습니다. 즉, 거칠게 말해서 저것이 우리 국민의 뜻이었던 겁니다. 우리 국민은 과연 당시에 친일파는 나쁜 놈이라는 개념을 정말로 갖고 있었던 것일까요?

해서 드는 생각은,

하나. 당시 지식인들 간에 '독립운동'을 지지하느냐 '일본 휘하의 이등국민'을 지지하느냐는 현대 지식인들 간에 '분배' 를 지지하느냐 '성장'을 지지하느냐 정도의 맥락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좋은 놈은 독립운동하고 나쁜 놈은 친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각자 소신껏 살았고, 그랬기 때문에 해방 이후 의외로 서로간에 융화가 쉽게 이루어진 것 아닐까 하는 것이죠.

둘. 일반 국민들은 거의 예외없이 수동적 친일파였고, 때문에 우리 국민 특유의 '열나 관대하기' 전통을 이어, 해방 이후에도 역시 친일파들에 대해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 듯 합니다. 애초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에 대해서는 묘도 파헤쳤지만, 일제 치하 35년을 거치면서 서서히 친일파로 변한 사람들은 뭐 사는게 다 그렇지정도 쳐줬다는 거죠.

( 추가분 : 2.1. 당시 우익은 친일파고 좌익이 민족주의자였을까?

좌/우익의 대결 양상, 미국의 개입을 빼고는 현대사를 얘기할 수 없다는 몇몇 분들의 리플에 대한 추가분입니다.

당시 우익과 좌익은 현대의 우익과 좌익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우익이 지지하는 것은 자유경쟁이 아니라 계급사회에 가까웠을 것이고, 좌익이 지지하는 것은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지는 복지사회가 아니라 국가의 소멸과 공산 사회의 도래였겠죠. 때문에 우익은 현대의 우익보다 훨씬 더 이익 집단에 가까웠을 것이고, 좌익은 현대의 좌익보다 훨씬 더 과격했을 겁니다.

다만, 당시 국내파 우익의 대부분이 친일파였을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당시 국내파 좌익이 진정한 민족주의 계열이었을 것이라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이 과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을까요?

당시의 좌파 계열의 거두라면 박헌영과 여운형인데, 박헌영은 국내파고 여운형은 국내와 해외에 걸쳐 활동한 사람이죠. 여운형은 민족의 독립이 계급투쟁에 우선했고, 그래서 독립 이후에는 중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반면에 박헌영은 조선반도의 계급투쟁에 주력했고, 그를 위해 조선일보 기자노릇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에 대한 뚜렷한 업적도 없죠. 당시 민중이 좌익을 지지했던 것은 그들이 독립운동에 이바지했기 때문에 아니라, 농지 개혁안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일례로 48년에 조선신문기자단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신탁통치를 반대하는가? 아니 별로 - 70%
토지개혁은 어떻게? 무상몰수 무상분배 - 70%
우리나라의 국호는 뭐가 좋을까? 조선인민공화국 - 70%

로 나왔었습니다. 즉 당시 인민들은 신탁통치를 받아도 좋으니 일단 분배만큼은 확실히 해다오! 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죠. ( 이걸 단순히 공산당의 조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그리고 중도 우익인 김구, 중도 좌익인 여운형은 남북한 통합 정권을 지지했지만, 이승만의 미국계 우익, 김일성의 소련계 좌익은 단정을 실시했다는 것을 보아도 이것을 단순히 우익만의 잘못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각자 자기 재산과 계급 투쟁을 위해 민족의 미래는 버린 것이죠. )

( 추가분 : 2.2. 그럼 북한은 친일파를 청산했나?

이것 역시 우리나라의 좌익이 만들어낸 신화입니다.

남로당의 당시 노선에서 명확히 보이듯이 공산당 자체는 친일 세력을 싫어했을지 모르나, 북쪽에 진주한 김일성 집단 역시 돈과 전문인력의 부족은 마찬가지로 겪었었고, 일정 수준 친일파와의 타협은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의 유명한 10월 평양 연설에 나오는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이바지하여야”

라는 말부터가 친일파에게 건국 사업에 이바지함으로써 면죄부를 발부받을 수 있다는 북조선 노동당 정책의 시작을 보여주며, 1946 년 3월 7일 채택한 「친일파, 민족반역자에 대한 규정」에서도 “현재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은 자와 건국사업을 적극 협력하는 자에 한하여서는 그 죄상을 감면할 수도 있다” 라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제시기 광산 지배인을 지냈던 정준택은 행정10국에서 산업국장으로 임명되었고 정부 수립후에는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북한 경제의 ‘총사령탑’에 앉았습니다. 일제 말 함흥철도국장을 지냈던 한희진은 행정10국과 뒤이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교통국장에 임명되었구요.

더구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수립되는 남한의 정치상황을 보고 다수의 친일파들은 남행을 단행합니다. 결국 북조선이 친일 청산을 완벽하게 했다기 보다는 사회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본질적으로 유산 계급과 잘 맞지 않았고, 그 결과 친일파의 대부분은 남행, 일부 잔류 계급은 북조선 건국에 협력함으로써 살아남았다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르다고 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한보다는 북조선의 친일 청산이 '조금' 나았다는 정도일까.. )

( 추가분 : 2.5. 친일 지식인의 현실.

언제나 지식인은 유약하다고 분류되지만, 적극적으로 권력에 유착해서 술이라도 얻어먹는 부류가 아닌 이상은 대부분 나름대로의 소신에 따라 살기 마련입니다. 뭐 겁이나서 반일은 못하겠지만, 친일이 싫다면 낙향이라도 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친일 지주 계급' 과 '친일 지식인 계급' 은 그 죄질이 상당히 다르다고 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 동료를 팔아먹은 사람과, 그것이 옳다고 믿어서 동료를 팔아먹은 사람. 설령 둘 다 사형에 처하더라도, 분명 둘은 다르죠.

세련되지 못한 무단 정치의 결과 조선에서는 3.1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일본은 조선에 대한 방침을 문화 통치 (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로 바꾸죠. 그 결과 1920 년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양대 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그 태생을 놓고 현대의 좌파는 조선/동아일보를 더러운 친일 신문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그 조선/동아일보야말로 조선 지식인의 보편적인 당시 모습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첫 사주들은 더러운 친일파 맞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조선일보 사주만 하더라도 14년간 조진태(친일) - 권병하(반일) - 송병준(헉!) - 이상재(이하 반일) ― 신석우 ― 안재홍 - 조만식 - 방응모(다시 친일. 이 일가가 현 사주) 로 이어지며 당시 지식인들간의 투쟁을 잘 보여줍니다.

뭐 간단히 말해서, 당시 많은 수의 거물급 조선 지식인들은 꼭 만주에서 독립운동한 민족세력과 조선 반도에 남은 친일파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조선 내부의 지식인들 중 적극적 친일파가 아니었던 그들이 일본에서 던져주는 '자치권'을 조선의 미래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일단 그거라도 받아들여 조선족의 실력 양성에 힘쓰자고 생각했는지는 사실 불분명합니다. 처음 생각과 이후 생각이 달라진 경우도 많았을 테고, 자신의 본심을 대놓고 말하기 힘든 시대이기도 했으니까요. )

( 추가분: 2.6. 중일전쟁 이후의 조선의 상황.

1937년 중일전쟁. 이 시점의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은 34년간 그들이 일으킨 모든 전쟁에서 진 적이 없었습니다. 하물며 세계대전에서마저. 당시 조선인들이 느꼈을 그들의 포스는 현대 미국와 견줄만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일 합방이 된 지 어언 27년. 합방 당시 철모르는 7~8살 어린이들까지 포함하면 사회의 핵심 인력인 30대 중반까지가 '조선 왕조'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사람들인 것이죠.
일제 말기의 대규모 전시 동원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조선의 산업화와 교육의 보급등 일반 대중의 삶의 질은 크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 이거야 키워서 먹을라고 한거지 조선를 위해 일본이 해준게 아니란 말야! 라고 말씀하시려는 분이 계시다면, 세상 정치세력중 안그런 사람들은 적십자 빼고는 없다고 답하겠습니다 )

즉...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가능성은 0%
일반 대중은 서서히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를 망각해가고 있고,
모르긴 해도 대중의 일본에 대한 반감 역시 크지 않던 시대.

이것이 중일전쟁 당시의 우리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터진 중일전쟁. 일본은 구한말에 써먹었던 아시아 공영권을 다시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일본에 협력함으로써 조선인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약속을 합니다.

이런 일본의 입장이 사실이었을까요 거짓이었을까요. 만약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편에 가담하고 2차 세계대전에서도 승전국으로 남았다면, 그리고 만주와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일본의 아시아 제패가 현실화 되었다면, 조선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요 못해졌을까요.

당시 많은 지식인들 - 윤치호, 이광수, 모윤숙 - 등은 이 시기를 조선인이 드디어 역사에 '강자'로 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고, 그들은 그 신념에 충실했습니다. 현대의 젊은이 아직까지도 종종 심취하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의 첫 번역본을 조선에 소개한 사람이 이광수라는 것은 그의 신념이 얼마나 진실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민족주의자 이광수는 외친다. 전쟁의 무대에 당당한 주연으로 발탁되기 위해 힘을 기르라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우주의 힘’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강해지라고.

어떻게 하면 조선 민족이 힘을 갖출 수 있는가. 조선 민족의 자력으로? 어림없는 일이다. 뼈와 살뿐만 아니라 골수까지 철두철미하게 ‘천황폐하’의 적자(嫡子)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

'대일본민족’의 일원으로 ‘대일본제국’의 국민·신민이 되는 길,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바쳐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일본의 지도 아래 대동아공영권을 수립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 < 한겨레 21 중에서 > )

3. 그래서 한민당은 어떻게 됐나.

49년 5월에 이르러서는 이윽고 이승만과 한민당의 연합이 깨지고 이승만 세력은 자유당으로 한민당은 민국당으로 탈바꿈 합니다. 근데 어이없게도 이 정당이 바람직한 형태의 이념에 따른 분당인 ‘민족주의자’ 와 ‘친일파’ 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당시의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분당이 됩니다. 즉,

자유당 : 이승만, (장택상, 이기붕)
민국당 :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

앞에 쓴 사람들은 해외파(?) 민족주의계열, 뒤에 쓴 사람들은 친일 계열입니다. 결국 이시점에서 이미 대한민국의 정당은 개념이 없어진 것이죠.

이후 4.19 에 이르러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 가 이루어진 듯 했지만, 실상은 세련되지 못했던 자유당이 무너지고, 세련되게 살아남은 민국당이 정권을 잡은 것(당시 민의원 의석수의 75%).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보도연맹이니 4.3 사태니 이야기 하지만, 예를 들어 4.3 사태의 주범은 민국당의 조병옥씨입니다. ( 여담이지만 이분이 당시에 남긴 명언이, "대한민국을 위해 전 도에 휘발유를 부어 30만 도민을 모두 죽이고 모든 것을 태워 버려라"  였죠. )

그리고 이분의 아드님이 현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시죠. 물론 현 민주당의 전신이 저 한민당이구요.

즉, 가장 정통파 친일 정당인 한민당은 이름을 바꿔가며 지금까지 살아남아 김대중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배출하는 개가를 올렸다는 겁니다. ( 결국 이 긴 글을 김대중 욕하려고 쓴거야? 라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건 지금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제 관심사는 저 한민당이라는 친일 세력의 역사, 그리고 그들을 살려준 당시 우리 국민들입니다. )

자.. 뭔가 생각할 수록 점점 더 아스트랄합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우리 국민은 주요한 역사적 시점에서 선택권이 주어질 때마다 친일 정당을 지지했습니다. ( 선택의 여지가 그들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지만요. ) 유일한 예외가 노무현 정권 정도 되겠습니다. 뭐 이쪽도 알고보면 완벽하진 않지만요.

자유당은 독립운동가 + 친일파였고 한민당(현 민주당) 한테 패배했습니다.
구 한민,  현 민주당은 친일파 + 독립운동가의 조합이었고, 4.19 이후 정권을 잡는데 성공하지만 박정희한테 패배했습니다.
박정희의 공화당은 비교적 신진세력이었기에 친일의 색채는 적었지만 무자비한 독재 세력이었습니다. ( 물론 민주당과 열우당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수많은 친일 비화를 생산하고 있지만, 아.. 열우당은 그렇다쳐도 민주당이 그러는건 솔직히 누워서 침뱉기입니다. )
친일의 본좌인 민주당은 세련된 민주주의 색채로 탈바꿈하면서 1980년의 그날까지 살아남아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응답하며 제1야당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낳은 시대의 히어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 역시 아버지 대로 올라가보면 '당연히' 친일파들입니다.
(추가 : 김대중이 친일파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친일파라는 것이 너무나 방대하여, 박통의 공화당/전통의 민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

4. 마치며.

원래의 글은 훨씬 더 길었었는데, 너무 난잡해보여서 2/3 정도를 빼버렸습니다. 만약 리플을 통한 호응이 좋다면 아마도 빠진 내용들의 대부분이 다시 나올 듯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단순하게 보고 싶어하고, 따라서

독재 세력 = 친일 수구파 = 개 잡넘

의 등식이 성립하기를 내심 바랍니다. 근데 이건 사실 수십년 전에

데모하는 놈들 = 빨갱이 = 이적세력

의 공식을 적용하려던 그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떤 에피소드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에피소드에서 다시 좋은 사람으로 등장한다는 법칙 따위는 없나봅니다.
* 퍼플레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7-30 04:32)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Withinae
07/07/29 13:21
수정 아이콘
친일세력이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경우는 없죠. 다들 새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과연 국민들이 그 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투표하여
친일세력들이 국민의 대표로 뽑혔을까요? 친일파인줄 알고 뽑았을까요? 그러면 여기서 이들을 감시하고 국민에게 제대로 알릴 언론의
역활이 중요해 지는데, 알다시피 대한민국 언론 1,2등이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죠.
오야붕
07/07/29 13:23
수정 아이콘
사학계에서는 크게 3부류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일제하 상황입니다. 광복후에는 이보다 좀 복잡하지만요.

민족주의 우파 : 말씀하신 대로 서서히 친일화 되어갔던 집단. 이들의 선조로 친일친미개화파를 들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 좌파 : 한말 의병활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구 선생
사회주의 계열 : 박헌영 등 국내사회주의자들.. 일제하에서 엄청난 탄압을 받고도 재건, 또 재건.
07/07/29 13:24
수정 아이콘
하긴 조병옥씨도 불과 10년전만 해도 대표적 독립운동가 목록에 들어있었으니 말이죠. 참으로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Withinae
07/07/29 13:24
수정 아이콘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등은 친일의 정통파로 분류하고 박정희는 친일의 색채가 적었다는 결론이 적절하다고 보십니까?
07/07/29 13:26
수정 아이콘
Withinae 님//
다른 분들도 비슷한 시각을 보일지 모르니 미리 말씀드려두자면, 그 두 대통령을 상당히 좋아하고, 친일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결론도 아닌데 너무 발끈하시는군요. 제 요지는 친일파라는 실체가 상당히 난해하여 단순히 수구세력과 묶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본문에서도 말했지만, 제 관심사는 저 정당자체이지 이후 현대정치사에서 민주화 운동은 해야겠고 들어갈 정당은 민주당 밖에 없었던 개인들이 아닙니다.
비빔면
07/07/29 13:28
수정 아이콘
익히 알려진 사실들이죠. 물론 근현대사 등의 교과 과정에서는 저런 사실이 쪽-_-팔려서 어물쩍 서술하고 넘어가곤 있지만, 사실로는 이러한 친일, 친미파들이 참 많았죠.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서... 미국에게 대신 통치를 해달라고 부탁했던 사건이죠... 그것도 무려 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_- 결국 한국으로 다시 왔을때 공항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이승만의 멱살을 잡았던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비빔면
07/07/29 13:29
수정 아이콘
Withinae님// 너무 발끈하지 마세요. 이건 화낼 주제가 아닌데 말이죠...
건전하게 토의해 보자구요...
07/07/29 13:32
수정 아이콘
비빔면님//
본문을 일단 쓰면 삭제하지 않는 주의라 그냥 두겠습니다만, 박정희 얘기는 괜히 했나봅니다. 벌써 두분이나 그 부분을 지적하시는군요.

본문에서 박정희 얘기를 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박정희를 '친일 수구 세력' 의 총 본산으로 지적하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사실은 '친일 민주화 세력' 에 불과하다는 것. 딱 그것 뿐입니다.

밑에 박통 얘기가 2개나 있어서 그거랑 엮이나보군요. 저 밑의 글과는 별로 상관없는 글타래였으면 좋겠습니다.
Withinae
07/07/29 13:33
수정 아이콘
전 국민이 친일파를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기 보다는 본문에서 지적하신 대로 -----민중의 지지가 있지만 불법세력화 되어버린 토착
독립운동가 + 사회주의자’ vs ‘친일파 + 해외파(?) 민족주의자 + 기타 등등’ -----의 대결에서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친일파보다
소위 공산주의 퇴출을 원한 미국의 선택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입니다. 거기에 과거를 감춘 친일파와 언론이 적당한 무대를
만들어 주었지요.
비빔면
07/07/29 13:38
수정 아이콘
댓글 수정했습니다.
07/07/29 13:41
수정 아이콘
저기 그런데 애국가 작사자는 미상 아닌가요? 윤치호 선생이라는 '확정'은 아직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07/07/29 13:46
수정 아이콘
Withinae님//
분명히 반공 이데올로기가 당시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그래도 '반공 = 친일해도 돼' 라는 공식이 성공했던 이유가 뭘까.. 하는 질문은 남습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다 사회주의자들도 아니었고 반대도 성립을 안했거든요. 예를 들어서 박헌영씨같은 경우에는 쟁의는 많이 이끌었지만, 이사람은 계급투쟁에만 관심이 있었지 독립운동을 이끈 경력은 없었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이분도 일본 치하에서 분배는 잘 하자.. 식의 개념이었다고도 볼 수 있죠. 실제로 공산/사회주의 계열쪽 지식인 중에서 과격한 분들은 계급투쟁이 국가보다 우선하니까요. 반대로 김구 선생은 어마어마한 수준의 민족주의자지만, 이념적으로는 중도파였구요.

그래서 결국 개인적으로 저 공식이 성공했던 것은 역시 국민의 '반 친일파 정서' 가 생각보다 약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거죠.
07/07/29 13:47
수정 아이콘
팬져님//
창피해서 인정을 안하는 것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틀릴 수도 있겠죠. 좀 더 상세한 리플이 올라온다면 본문을 수정하겠습니다.
Withinae
07/07/29 13:49
수정 아이콘
어느 언론에서나 친일파 청산만을 주제로 여론조사를 하면 압도적으로 청산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상황을
연계시키면 달라지지요. 대한민국의 선거 형태는 이성적이라기 보다 감성적입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국민이 친일파를 지지했다기
보다는 그보다 더 우위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친일파보다 공산주의자가 위험하고, 과거 청산보다 현재의 경제적 발전을
더 중요시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정치인들의 친일에 관해서는 의견이 많지요. 그래서 투표시 친일파인데도
뽑아주았다기 보다 친일파가 아니고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뽑은 게 아닐까 합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친일파라고 절대
생각지 않는거죠. 친일파라고 고백한 사람도 없고...
글이 이상하게 흐르지만 않은면 좋겠습니다. 와이프가 일요일날 컴맘 한다고 뭐라 해서 이만 가야겠습니다.
발업까먹은질
07/07/29 13:54
수정 아이콘
친일파라는게 세가지 아닌가요?
1. 할수없이 일본을 도와야했던 경우 (정말 할수없이, 생계를 위해서던가 하는 이유로)
2. 정말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은 경우
3. 친일행위가 오히려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경우 (보통 지식인들이 이러하지 않았나싶습니다만..)
2,3 번의 경우가 아니라면 손가락질 못할것 같은데...
양념반후라이
07/07/29 13:56
수정 아이콘
한민당이 민주당->국민회의 ->열린당&민주당 -> 앞으로 또 만들어질 어떤 정당의 후신이었다는건 처음 알게된 사실이네요.
짦은 지식으로 리플 달기가 좀 겁나는 주제군요 -_-. 해방이후의 혼란기에 정당들의 이합집산에서는 투철한 이념에 보다는
개인의 이해관계의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저리도 계보가 꼬이고 복잡해진 경우가 아닐까요.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변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니 말이죠.
호팔십이인철
07/07/29 14:02
수정 아이콘
역시 선거할때는 온리 무소속후보로 가는것이 정답이군아. 자세히 모르던 근현대사 덕분에 알수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뜬금없지만 제발 우리나라 언론도 개방이 되어서 한국판 타임지나 월스트리트저널을 아침 조간으로 받아 봤으면 합니다.
07/07/29 14:02
수정 아이콘
양념반후라이드반님//
엄밀히 말하면 신민당 이후에는 통민당과 평민당으로 갈라졌고 통민당은 민정당과 합했으니 지금의 민주당한테만 그 업보를 지라고 할 수도 없죠. 아아 너무 복잡해요.

발업까먹은질럿님//
그 1번은 봐주자.. 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그게 옳아서라기 보다는 국민의 99% 가 그 길을 택했기 때문에 누가 누굴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다같이 도둑질하고 나면 서로 용서해주는 것과 똑같달까..?? 2번은 이완용이나 일제하 지주들일테고, 3번이 윤치호 이광수 등이 해당될텐데, 3번이 과연 '악' 한 사람들인지, 2번이 어떻게 해서 해방후에 민중에게 심판을 받지 않았는지가 이 글의 질문이 되겠네요.
최종병기캐리
07/07/29 14:21
수정 아이콘
1. 친일 민주화세력은 긴 일제통치기간을 거치면서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2. 그당시에 선거는 지금보다도 더 더러운 선거전이었습니다. 돈봉투와 청산되지 못한 계급의식이 남아있었습니다.
3. 오랜시간 유지로 남아있던 친일민주화세력은 그럴싸하게 옷을 갈아입고는 - 친일세력에서 민주화세력으로 갈아입었지요 -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서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지역유지의 말을 거스르면 동네를 떠나야했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유지들은 대부분 친일 세력이었지요.
07/07/29 14:25
수정 아이콘
최종병기캐리어님//
그니까.. 현대그룹이 강성노조로 유명하지만, 정작 울산에서 선거하면 정씨 일가가 자동당선되는 그런 맥락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친일 청산은 다른데서 하면 좋겠고, 우리 동네는 우리동네 어르신이 의원 하셔야지.. 뭐 이런거..
스톰 샤~워
07/07/29 14:30
수정 아이콘
해방이후 한국 사회사를 조금만 보시면 알 수 있는 내용일텐데요...

해방이후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을 배제한 채 이루어진 분석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선거에서 나타난 것들이 다 민심이 아닙니다. 선거 자체가 거의 부정선거였으니까요.
지금은 잠시 피시를 켠거라 나중에 다시 글 남기겠습니다.
최종병기캐리
07/07/29 14:33
수정 아이콘
OrBef님// 친일 청산은 다른데서 하면 좋겠고, 우리 동네는 우리동네 어르신이 의원 하셔야지.. 뭐 이런거.. ...
이런것이 아니라,
우리 사장님이 의원안되면 회사에서 짤리고 딴동네로 떠나고 딴동네서 일자리를 구할수도 없고 당장 그지로 쫓겨나는 사태인것이지요.
그렇다고 쌓아논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당시의 우리나라 형편이 그랬다는 것이지요.
진리탐구자
07/07/29 14:35
수정 아이콘
뭐- 특별히 새로운 정보는 없네요. 90년대 말까지 한국의 여당과 야당은 성립 기원에서나 정치적 지향에서나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정당 이름과 타겟으로 잡은 지역 기반이 다를 뿐이죠. 오히려, 야당이 여당보다 더 수구적인 측면도 많습니다. 여당은 그래도 집권당이다보니 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포퓰리즘적인 성향을 조금이라도 띠기 마련이고, 때문에 현상적으로는 덜 수구적인 경우도 많이 보이는데, 야당은 그럴 필요가 별로 없거든요. 야당은 여당에 대해 안티 테제적 기능만 충실히 하면 지지율은 어느 정도 따라오니..
07/07/29 15:00
수정 아이콘
당시 민중은 (요즘 이런말은 약간 금기지만) 개념이 없었다 치고,

본문에서는 생략했지만, 김구를 비롯한 상해 임정 요인들이 1930년에 창당한 한국독립당(한독당)의 예가 또 매우 괴이합니다. 한독당 역시 귀국후 한민당과의 합당을 추진했었거든요.. 결국 실패로 돌아가긴 하지만. 애초에 김구선생의 독립운동당과 친일정당이 합당을 하려했다는 이 사실 자체가 김영삼의 민자당 합당을 능가하는 이상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좀 더 거슬러가보면, 한민당의 3 거두라면 송진우, 장덕수, 조병옥 정도가 될 텐데, 송진우는 동아일보 일장기 말살사건을 계기로 사임한 사람이고, 장덕수는 그 자리를 냉큼 꿰 차고 이후 극렬 친일분자노릇을 한 사람이란 말이죠. 근데 해방 후에 같이 한민당을 창당했는데... 역시 친일분자와 독립운동가 간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생각의 한 근거가 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얘기하는, '이승만이 지지 기반이 취약해서 친일파를 데려다 쓴 것이 친일 청산 실패의 시작이야' 라는 명제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죠.
戰國時代
07/07/29 15:33
수정 아이콘
가슴아픈 얘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대의명분보다는 눈 앞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게 사실입니다. 한나라당이 뭔짓을 해도 영남은 한나라당을 찍고, 민주당이 뭔 짓을 해도 호남에서는 기세등등한 걸 그 외의 뭘로 해석해야 합니까? 대의명분, 정의가 중요하다면 최소한 민노당이라도 찍어줬겠죠.
진리탐구자
07/07/29 15:44
수정 아이콘
戰國時代님//대의명분보다 이익이 중요하다는 것은 한국인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몇몇 국지적이고 산발적인 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최대한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건 나쁜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아니 생물이라면 당연한 것이며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민주주의라는 제도 역시 이를 기본으로 합니다. 자신의 이익은 자신이 가장 잘 대변할 수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나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해서 최대한 많은 이의 이익이 극대화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지역별 선호 정당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이익과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영남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나라당이 가시적인 이익이 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호남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민주당도 마찬가지고요. 이건 이득의 문제라기보다는 지역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이준희
07/07/29 15:52
수정 아이콘
친일파중에서도 제가알기로는 독립군이었다가 회의감에 일본쪽으로 넘어가게된 사람들도있다더군요
戰國時代
07/07/29 15:54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 // 소위 영남 정부때 각종 회사 공장들이 영남 위주로 지어지고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게 김영삼 정부때 부산에 짓는 것을 전제로 사업허가를 내준 삼성자동차가 있죠. 반면, 김대중 정권때 역사상 처음으로 호남권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 집니다. 심지어 KTX조차 김영삼 정부때의 초안에는 서울-광주 선이 없었는데 김대중 정권 때 수정되어서 서울-호남 선이 생기고, 각종 국도 고속도로의 확장 작업도 이루어졌습니다. 언제나 혜택을 받고 사는 서울-경기 사람들은 관심이 없겠지만 지방에서는 선거 결과가 고장의 발전을 좌우해 온게 사실입니다.
큐리스
07/07/29 15:58
수정 아이콘
1948년 총선이라면...
투표가 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텐데요.
투표가 뭔지 알정도의 지식인이라면 친일 안 하고 버텼을 사람 몇 없었을 것 같구요.
따라서, 그 투표 결과가 당시 친일행위에 대한 인식을 말해준다고 보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4.19이후의 선거는 시대적으로 6.25 이후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또 다른 요소가 많이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난콩나물
07/07/29 16:04
수정 아이콘
상해임시정부를 적통로 한것은 친일세력이라보긴힘들지않나요 상해임시정부는 3정부 합의에의해 정통성을 부여받았다고 볼수도있습니다 대한국민의회와한성정부상해임시정부 3정부의 합의에따라 법은한성정부의것으로 기반은 상해에다 세우는걸로 합의봤던걸로기억합니다 물론건준이 민중의 지지기반의 적통성을 가지고있지만 상해또한 힘이빠져나가기전에 그정통성또한 무시하지못햇다고봅니다
또한 해방직전에는 대략 분열조짐이 보였습니다 후반기 상해임시정부를 거의 김구혼자 이끌다 시피하지않앗나요 많은 민족인사들이빠져나던걸로 기억합니다만은

정확하게 알지못해서 쓰기버튼을 누르기가 힘들었네요
07/07/29 16:10
수정 아이콘
난콩나물님//
아뇨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부분은 좀 더 알아봐야겠네요.

큐리스님//
투표가 뭔지 알 정도의 지식인이라면 친일 안하고 버텼을 사람 없었을 것이다.. 라면, 친일이 죄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버틸 수 없는 것에 못버텼다고 해서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친일 청산이라는 말도 의미가 없을 겁니다.

솔직히 저도 비슷한 입장이긴 합니다만, 또 그 입장에 서다 보면 뭔가 마음이 허전한 것도 사실이죠.
낭만토스
07/07/29 16:40
수정 아이콘
친일파에 대한 조사를 하고 싶을때 심도있게 생각해봐야 할 인물이 윤치호입니다. 조선의 개화 초기 때 부터 조선의 발전을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는것을, 그의 경력을 봐도, 윤치호일기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독립협회의 주요인물이었고, 독립신문의 2대 사장, 1900년대에는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과 대한자강회를 조직해서 회장자리를 맡기도 합니다. 또 후엔 근현대사시간에 많이 배웠던 '대성학교'의 교장으로도 있으면서 실제로 '의병계열' 은 아니지만 애국계몽운동의 노선으로 조선의 발전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신사유람단을 봐도 독립협회를 봐도 애초에 '친일'이라는 성향 있으리라는건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치호 일기를 보면 그의 고뇌가 잘 들어납니다. 윤치호는 일제강점기 말에 변절한 것으로 알려저 있는데요. 그때 윤치호는 국내, 국외에서 일어났던 의병활동이나 실력양성운동에 많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이대로는 민족의 발전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는 친일'(?)을 했다고 볼 수 있죠.

관심있는 분들은 '윤치호 일기' 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본문의 직접적 내용인 친일파와 수구세력간의 관계는... 잘 몰라서 쓰질 못하겠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덧붙여 토론게시판으로 옮겨서 계속 정보를 교환하는건 어떨까요?
07/07/29 16:42
수정 아이콘
임 모교수의 논리와 비슷한 듯...
07/07/29 16:43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이 글은 토론 게시판에 더 어울리겠군요. 토게를 이용해본지 너무 오래돼서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운영자께서 보시면 옮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07/07/29 16:43
수정 아이콘
L.Bloom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옹호로 유명한 분이라면 이영훈 교수님인데 임모교수님은 제가 잘 모르겠네요.
07/07/29 16:46
수정 아이콘
낭만토스님//
중일전쟁 당시에 일본이 10년뒤 패망할 것을 예언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 입니다. 고로 전 중일전쟁 이후에 변절한 사람들은 사실 친일파로 구별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독립될 리가 없다면 이등국민이라도 하자..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때도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정말로 독립이 될거라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합니다.
pandahouse
07/07/29 17:05
수정 아이콘
미국군인들이 많이죽고 결국 미군이 일본에 폭탄떨구고 전쟁끝난거거든요.
미국이 소련때문에 날로먹진 못했지만, 그 입김과 배후조종은 많이 했습니다.
국내세력들끼리 이리저리해서 이루어진 결과는 아닙니다.
pandahouse
07/07/29 17:08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친일이라고 해도 정도차는 당연히 있는데, 악질 친일파를 숙청못한것은
이승만 잘못이 제일 크다고 많이들 생각하고 그 다음이 박정희인데...
나머지 야당지식인들(친일파와 좀 관련)보다 여당이 덜하다는 결론은 좀 심한것 같습니다.
07/07/29 17:56
수정 아이콘
OrBef님// 일제강점기의 옹호의 논리와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체제하에서 대중들의 체제의 반응정도로 정권을 정당화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논리와 비슷해 보여서요(임지현교수). 나찌 치하의 독일국민들의 자발적인 지지 등 대중독재론과 맥락이 비슷해 보여서요.

저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모순은 친일청산하지 못함에 있다고, 심지어 친일청산하지 못하는 것을 단일모순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서, 그런데 그런 사람중 DJ를 지지하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은 지라 임지현 교수의 논리가 저한테 많이 와닿았습니다. 하지만 근현대사 인식은 정치적 선호나 세계관과 밀접히 연관을 갖는다고 보는데, 대중이 지지한다면 독재적 정부라고 해도 정당하다는 논리로 흐를 수 있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중입니다. 대중 혹은 민중을 큰 변수로 두는 이론인지라 매력도 있어서요. (외부적 변수에 의해 친일청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 변수에 의해 친일청산을 안 한 것이 아닌가 -- 혹은 미군정이나 국내기반이 취약한 이승만의 친일관료세력을 유지시킬 필요 보다 35년의 식민지배가 민중들에게 피청산친일 인사에 대한 처벌의지의 부족이 더 큰게 아닌지 -- 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임모 교수라고 한건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댓글 단 겁니다;;
앞으로 계속 글을 추록하신다니 몇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한겨레21에서 친일청산에 대한 특집기사에서 인도-프랑스-한국을 비교해 적국에 협력한 인사를 어떻게 청산했는지 비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35년의 일제지배가 민중들의 체제순응에 영향을 미친 정도와 지식인의 시대인식(댓글에서도 그런 것이 있는데) 그럼에도 일제청산의 역사적 정당성(정당성이 없을 순 없겠죠) 의 내용을 다루어 주시길 바랍니다(그쪽 전공자분 맞죠;;)
COurage0
07/07/29 19:19
수정 아이콘
저는 잘 이해가 어렵습니다만 글의 해외파 민족주의자의 성향에 대해 좀 고려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이승만 계통의 해외파 민족주의자는 미국의 힘에 의지해 나라의 독립을 이루려 했고 결국 그러한 형태의 독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즉 이러한 행태를 진정한 독립운동이라고 볼 수 있느냐 가 문제인데 독립후의 제가 알고 있는 이승만의 행태를 보면 그것은 조선 말기의 러시아나 중국 일본을 끌어들여 나라의 발전을 이루려하는 지식인의 모습에 불과하다고 보여집니다. 결국 타국의 힘에 의해 독립을 이룬 우리나라로서는 어느 독립 운동 세력도 국민들에게서 직접적으로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당시의 민중들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러했을 것으로 보여지고 일반적인 논리로 결국 해방을 시켜준 미국과의 타협에 의해 정국이 지도된 결과 이렇게 친일 청산이 어려워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써놓고 보니 전혀 논리의 흐름이 없는 말이 되버렸네요. 어쨌든 이승만 관련 세력을 진정한 자주 독립 세력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07/07/29 20:30
수정 아이콘
처음에는 극히 반일이었다가도 일제치하 기간이 길어지면서 반일을 포기하신분을이 꽤 많이 계시죠.
횡성신문에 '시일야 방성대곡'이라는 절절한 글을 쓰셨던 장지연도 결국 친일로 돌아선 것도 그렇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썼던 최남선도 결국 친일로 굽신대자 만해 한용운 선생이 모르는 사람 취급한 일화도 있고,
. 많은 사람이 그와 비슷했죠.
아마 그당시 분위기는 오랜 치하에서 어느정도의 친일행적은 크게 욕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친일파를 그렇게 단체로 따박따박 구분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님말대로 어느정도 친일은 용납되는 세상에서 친일, 반일을 단체로 구분하는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나요. 친일도 등급이 있는건데...
님이 반일로 든 이승만도 친일성향이 전혀 없다고 말 못하지 않습니까.
친일 반일은 개개인이 저지른 일들로 구분하는게 더 옳지않을까요?
친일파 숙청은 친일행각을 한사람 전체를 숙청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일본의 개노릇 하면서 국민들 살을 깎아 먹은 자식들을 말하는 거겠지요.
그리고, 그 단체로 싹쓸어 몰고 가시는것은 좋은데, 전혀 친일성향을 보이지 않고, 친일 행각을 보이지도 않은 김대중, 노무현도 민주당의 전신이 친일이 었다는 이유로 친일이 배출했다는 식의 뉘앙스는 비약이 심한거 아닌가요.
토스희망봉사
07/07/29 22:24
수정 아이콘
이런 이런 이승만은 진짜 막말로 편지쓰는것 말고는 한일이 없다는 평이 대부분인데
독립투사들이 만주 등지에서 힘든 전쟁을 해나가고 있는 동안 이승만은 미국에서 각종 파티등에 참석하고 미국 고위 관료들에게 열심히 편지를 썼습니다. 물런 그 독립을 위한 마음이야 비난 할 수 없지만 이후에 미국이 그런 국민들에 열화와 같은 지지를 업고 있는 독립투사들을 전부 배제 하고 이승만을 선택한 것은 지금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친미 정권을 세운것과 별다를바 없는 것이였지요

그리고 완전 친일이 생계나 이런 사람들과 비교가 될런지 제 머리가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완용이나 이런 사람들은 진짜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사람인데 꼭 선량한 피해자 등등을 걸고 넘어지면서 논점을 흐리거나 이야기를 강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요새 한국의 토론 문화에서 아주 좋지 못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솔직히 이런건 토론이라기 보다는 물타기에 가깝지 않나요?
펠릭스~
07/07/29 22:37
수정 아이콘
근대사인데 잘 모르는 사람이 많죠
조금더 삭제된 2/3가 궁금하지만 근대사는 함부로 말하기 힘들죠
저런 계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써
지금 작업한다는 친일파 인명록도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고려될꺼 같아서 씁쓸하더군요
07/07/29 22:42
수정 아이콘
사실, 6.25 이전에도 미국의 입김 때문에라도 '반공'이 '반친일'보다 더 무게가 실리던 시절은 아니었을까 싶네요.
어쩌면 지금까지도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구요,
특히나 6.25 이후부터는 친일/반일보다는 반공이 더 중요한 정치적 이슈였다고 봅니다.
게다가, 친일주의자들은 거의 전부 다 반공주의자였을테니까요.

일부 학자들의 견혜로는, 일본이 항복을 한 것도 핵폭탄을 맞은 것 보다, 공산세력이 남하하는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일본의 우익 세력들의 입장에서는, 사회주의가 들어와서 자신들의 입지가 송두리째 뿌리뽑히는 것 보다는,
차라리 미국에 항복을 하는 쪽이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는 독립투사계열/친일계열 에 대한 고찰은 있는데, 우파/좌파에 대한 고찰은 좀 빈약한 듯 합니다.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해서 잘 분석하려면,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한 이슈가 될 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자유당때는... 정치깡패들이 빨갱이 때려잡는다고, 거의 공공연하게 폭력을 휘두르던 시대였단 말입니다 - -;;
스톰 샤~워
07/07/30 00:28
수정 아이콘
말씀하시는 의문사항들은 의문사항들이 아니라 OrBef 님께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않아서 생기는 혼란이라고 봅니다.

해방후의 남한 정국은 친일파 vs 민족주의자의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해방 직후에 친일파들이 은둔해서 자중하는 시기가 있긴 하지만 미군의 등장과 함께 친일파들은 다시 햇빛 아래로 나옵니다. 미군이 이땅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든 대립점은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 (실은 자본주의)의 구도로 그어져 버립니다. 당시 미국은 소련의 팽창에 지극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고 남한에 진출한 것도 모든 목표는 소련의 남진을 저지하는 것에 있었죠. 이런 미군은 극단적인 레드컴플렉스를 보이며 공산주의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탄압을 합니다. 그것이 한국상황에서는 비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일제하에서 친일을 하지 않고 버텼던 대부분의 인사들이 좌익 성향을 갖고 있었고, 친일을 하지 않은 우익성향의 민족주의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결국 공산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탄압은 반대급부로 친일파들이 다시 면죄부를 받고 반공의 투사로 등장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죠. 일제때 독립군들을 고문했던 노덕술이 해방후에 독립군 출신인 김원봉을 또다시 고문했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지만 서글픈 현실이죠.

해외파 민족주의자들이 친일파를 어떻게 보고 있었나? 그전에 해외파 민족주의자들이 과연 정치적 기반이 있는 사람들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승만은 껍데기만 요란했지 실제적인 정치 기반은 없는 정치꾼에 불과한 사람이었죠. 이런 이승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세력이든지 어느 누구 하나와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레드컴플렉스가 심했던 이승만이 좌익계열과 손을 잡을리는 만무하고 그러면 결국 우익 계열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우익이라고 하면 거의 실제적인 능력을 가진 세력은 친일세력이 주축이 된 한민당 밖에 없었죠.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한민당의 유혹을 정치꾼인 이승만이 뿌리칠리가 없는 것이죠.

김구의 한독당이 한민당과 연합하려 했던 이유는? 김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해방직후에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자존심 세우고 있다가 이승만에게 기회를 다 뺏겨 버리고 귀국해서 처음에는 거의 이승만 옆에서 오른 팔 역할을 합니다. 돈도 없고 세력도 없는 김구가 살 수 있는 길은 능수능란한 이승만 옆에 서는 길 밖에 없었죠. 그러다 이승만이 자신의 세력이 공고해지고 김구의 활용가치가 떨어져 가면서 점점 소원해질 무렵에서야 김구는 이승만에게서 독립하고 한독당을 만들죠. 그러나 당이라는 것이 깃발만 꽂는다고 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금이 있어야 운영이 되는데 물주들은 한민당에 다 모여 있고 국민들은 좌익쪽에 마음이 가 있어서 한독당은 지리멸렬을 면할 수 없었죠. 이런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민당과의 연합을 모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일단 해방이 되고 난 후 남한사회의 정치사는 누가 정권을 잡는가가 가장 중요한 정치게임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48년 5.10 총선에서 한민당이 29석을 얻은 것이 민중의 뜻이 아니냐? 단연코 아닙니다. 48년 선거가 시행될 때엔 미군정에 의한 공산세력 척결의지가 최고조로 올라 갈 즈음이며 이런 미군정이 알게 모르게 지원해 준 온갖 우익단체들에 의한 백색테러가 극에 달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서북청년단이라고 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출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김두한이도 이때 방방 날라다닐 때죠. 경찰과 군대들보다 더 무서웠던 것들이 이런 탈북자들이 주축이 된 우익단체들이었고 이런 단체들은 마을을 거의 장악하다시피하고 노골적으로 한민당을 찍기를 강요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그나마 무소속에다 표를 몰아주며 한민당을 안뽑기 위해 소리나지 않는 절규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민당의 29석은 생각보다 많은 숫자가 아니라 예상외로 적은 숫자입니다. 우익단체들의 폭력과 협박을 보면 싹쓸이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민심이 아니라 민중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하겠죠.

현 민주당은 친일파 정당의 후신인가? 이건 약간 국가보안법에 걸릴만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
해방이후 남한사회에서 극단적인 공산주의 척결은 6.25라는 내전을 거치는 동안 이성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가 버리고 결국 남한사회는 그 이전과 이후의 역사에서 좌익계열의 역사는 지워버리게 됩니다. 이는 단지 역사를 지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사, 그 역사를 살아왔던 사람들, 그 흐름들마저 지워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우익계열의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세력이 극소수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들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숫자보다 더 미미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미 이 때부터 친일이냐 독립운동가냐 하는 것들은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이죠. 즉 이 시기부터 친일하지 않은 정치가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한민당의 계열인 야당세력이 오히려 더 친일 쪽이 아니었나 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다지 타당하지 않은 지적 같습니다. 이미 친일 여부로는 서로 가르기가 어려운 둘을 놓고 누가 더 친일이냐 아니냐를 이야기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그런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지금의 야당들이 더욱 더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면 적절한 지적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낭만토스
07/07/30 00:37
수정 아이콘
스톰 샤~워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근대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됬네요. 감사합니다. 아직 공식적인 학교교육이외에는 제가 혼자서 알아본것 밖에 없는지라... 잘 읽었습니다. 항상 스톰샤워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07/07/30 00:48
수정 아이콘
스톰샤워님 리플 앞까지의 리플들 내용들을 참고해서 본문을 가능한 한 업데이트 했습니다.

스톰샤워님 댓글은 방금 봤는데, 일단 좀 자세히 생각해보고 리플을 다시 달던지 본문을 업데이트하던지 하겠습니다.
07/07/30 00:48
수정 아이콘
독립협회/독립신문에서 쓰인 "독립"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청나라의 속국 위치에 있던 조선을 청나라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시키자는거죠. 그 지렛대로 또다른 외세인 미국/일본/러시아 등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특히 일본은 자신의 힘으로 개화를 했고, 다른 서양의 외세로부터 자유로와 초기 개화파가 일본과 가까운 건 오히려 필연이었을겁니다. (물론 일본이 또다른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걸 몰랐겠지만요.) 근현대사를 현대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건 꽤나 까다롭습니다. 민족이라는 개념도, 계급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기니깐요.
07/07/30 00:52
수정 아이콘
토스희망봉사단님//
친일을 통해 돈벌어먹은 사람들과, 신념에 따라 친일한 사람들은 좀 다르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일제하에서 금광사업해서 잘먹고 잘살은 방씨 일가랑 이광수를 똑같이 '개넘들' 이라고 말하면, 이광수가 슬퍼할 듯 합니다. 적어도 '개넘들 A' 와 '개넘들 B' 정도는 구별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낭만토스
07/07/30 00:54
수정 아이콘
어서 토론게시판으로 옮겨졌으면 좋겠습니다.
07/07/30 00:57
수정 아이콘
스톰샤워님//
다른 부분은 대체로 동의합니다. 이따 업데이트 해보겠습니다.

다만 김구에 대한 설명은 조금 사실과 다른 듯 합니다. 김구가 해방후 바로 귀국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상해 임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귀국을 방해했기 때문이죠. 때문에 해방후 3개월 뒤에 '개인자격'으로 돌아왔었고, 한독당 역시 상해 임정에 1930년부터 있던 조직인데 그 역시 군정 치하에서 인정을 안해줘서 귀국 후 재창당해야 했던 것으로 압니다. 워낙에 거물이라 견제를 심하게 받았던 것이지, 그가 어깨에 힘주다가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스톰 샤~워
07/07/30 01:05
수정 아이콘
OrBef 님//
그게 어리석었다는 것이죠. 미국이 상해임정을 인정할 리가 없죠. 귀국을 방해한 것은 아닙니다. 개인자격으로는 못들어간다고 버티다가 결국 안되니까 개인자격으로 들어왔죠. 그러나 그 시기에 국제정세를 조금만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 격동하는 시기 한국땅에서의 하루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지를 제대로 인식했다면 그 황금같은 3개월을 허송세월하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3개월을 허비하는 사이에 남한 사회는 이미 정리가 끝나 버렸고 허망하게도 김구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없었던 거죠.
아, 위에서 한독당이 나중에야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쓴 것은 제가 잘못한 것 같네요. 아마 귀국하자마자 만들었거나 할 겁니다만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이승만과의 노선을 어느 정도 정리하면서 활동하려고 하지만 그 역시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는 얻지 못합니다. 사실 해방 이후 김구의 초반과 후반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닐까 할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이승만과 분명히 선을 긋고 행동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콩나물
07/07/30 01:26
수정 아이콘
스톰샤~워님//음 제가 연결고리를 못찾아 헤매던부분을 시원스레 해결해주셧네요 어쨋거나 상해임시정부가 개인자격이아닌 정부로써 들어오고 싶어했던이유는 목에 힘주기보다는 남북으로 갈라질것을 예상하고 적통정부를 들여오기위함이 아니었나싶습니다 남북이 갈라질조짐을 보이자 결국 상해임정을 포기하고 개인자격으로 남북통합정부수립을위해 들어오신거아닌가싶습니다 이승만옆에잇게된것도 이때문이아닐까싶습니다 통합정부수립을위해 말이죠 또한 한국당과 한민당이 갈라진계기는 역시 통합정부수립을 추진하던 김구를 이승만이 싫어했습니다 여기서 이승만과 김구가 갈라지계된 계기가 아닐까싶은데요 통합정부수립은 그의 초대대통령취임에 방해자였으니까요
07/07/30 07:11
수정 아이콘
상당히 흥미있는 글입니다.
정말 제가 몰라서 질문하는것입니다만, 그렇다면 현재 제1당이며 과거에 수없이[!] 정권을 잡아온 한나라당은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은 어째서 그 이전에 비해서 친일에서 자유로웠던가요? [..]

ps. 제 개인 블로그에 퍼가도 되겠습니까? ....
07/07/30 07:21
수정 아이콘
한민 - 민주/열우당으로 이어지는 그 집단의 역사는,

말하자면 똥물에 맑은 물이 계속 더해지는 역사라고 봅니다. 친일 세력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자유당 - 공화당 - 민정당으로 이어지는 독재 세력과의 대결에서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본의아니게' 대변하다보니, 지속적으로 민주화 세력이 수혈된 것이죠. 처세를 위해 착한 척 하다보니 어느덧 착한 놈들이 너무 주변에 많아졌달까..?? 그런 케이스 아닌가 싶습니다.

근데 사실 노무현 정권도 친일 청산을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열우당의 친일 계보가 생각보다 많이 드러나면서 많이 사그라든 면이 있긴 합니다.

ps. 물론 퍼가셔도 됩니다. 근데 글이 조잡합니다 쩝.
07/07/30 08:02
수정 아이콘
한나라당은 공화 - 민정 라인을 잇는 당이고, 사실 이 공화당은 어느정도 이단의 성격이 있는 당이죠. 제대로 된 당이라기 보다는 반란 세력이 그냥 당이라는 형태는 띄어야 선거를 하니까 만든.... 그런 느낌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보수세력을 흡수하면서 점차 우익 정당으로 자리잡았죠.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당보다는 10년 가까이 역사가 짧은 당인 셈입니다.
07/07/30 08:18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모두다 결국은 친일파로 수렴되는거라는건가요.
... 그럼, 진짜 친일파가 아닌 사람은 도데체 어디있는걸까요 라는 질문은 혼자서 해봐야겠군요...-_-;
스톰 샤~워
07/07/30 09:29
수정 아이콘
난콩나물 님//
김구의 귀국시기는 남북의 분단과는 시기적으로 그다지 연관관계가 없습니다. 해방직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북이 갈라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죠. 남북의 분단이 고착화될 조짐을 보인것은 적어도 46년 이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임정의 정통성을 미국이 인정해 준다면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겠지만 미군이 한국땅에 발을 디디면서 스스로 밝혔듯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 미군이 임정을 인정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죠. 그럼에도 김구 및 임정세력들은 그 귀중한 시간에 먼곳에서 3개월이나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귀국했을 때는 이미 잔치는 끝나고 난 뒤였죠.
김구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워낙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데 실제로 해방 이후의 한국사에서 김구의 위상이 드러나는 시기는 단독정부 수립으로 치닫는 시기 외에는 그다지 두드러지는 때가 없습니다. 실제로 노회한 이승만에 비해 단순했던 김구는 이승만의 시나리오에 조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죠.

정당들이 어떤 연유로 어떻게 변했는지는 아래 글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http://blog.naver.com/jhj7725?Redirect=Log&logNo=140040177407
戰國時代
07/07/30 09:56
수정 아이콘
스톰 샤~워 // 김구가 3개월 빨리 귀국했다고 한들 뭐가 달라졌겠습니까. 친미정권이 굳건한 현재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보세요. 객관적으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소위 독립주의자들이 아무리 애를 쓰고 영향력을 키운들, 친미정권을 배제하고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결국 미국 치하에서 친미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는 건 운명인 겁니다. 그렇게 보면 해방후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은 어느 정도 숙명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침략한 국가들은 항상 동일한 흐름을 통해서 친미국가가 되어 가는 겁니다.
스톰 샤~워
07/07/30 10:10
수정 아이콘
戰國時代님//
미군정이 실시된다고 해서 반드시 친미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것은 민족독립세력과 미군정과의 역학 관계에서 규정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단, 해방후 한국 사회는 그 힘의 균형이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는 측면에서 戰國時代님의 지적은 일면 동의합니다. 결국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게임은 이승만이 승리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렇지만 역사의 결정과는 달리 해당 시기의 어떤 선택이 올바랐느냐를 판단해 볼 때 김구의 귀국이 늦어진 것은 김구 개인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봅니다.
새벽바람
07/07/30 12:16
수정 아이콘
스톰 샤~워님글 잘 읽었습니다. 뭔가 말하고 싶었던게 얄팍한 지식과 정리안된 혼란함으로 머리속에서 맴돌고만 있었는데 좀 시원하게 정리가 되는 기분이네요.
07/07/30 14:45
수정 아이콘
대부분 스톰샤워님 댓글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군요.

사실 제 느낌은 조금 다릅니다. 제가 이 분야에 대해 지식이 짧아 반박을 못하긴 합니다만, 사실 저 답변은 제가 대학교 1학년을 시작한 이래 언제나 대학가에서 모범 답안으로 통용되던 것이었습니다. 민중은 잘못되지 않았고 민중의 역량은 충분했는데 모든 것은 미국 때문, 모든 것은 이승만 때문, 모든 것은 박정희 때문.

근데.. 과연 그것이 진실이었을 까요? 사실 제 의문은 스톰 샤워님이 댓글에 달아주신 그 '주류성 비주류' 의 시각에 대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과연 민중은 친일파를 청산하고 싶었을지, 과연 민중은 민주주의를 원했을지(루즈벨트의 신탁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그냥 트루만 정부가 신탁안을 철회했을 뿐, 대한민국의 반탁운동이 성공해서 자유선거가 치뤄진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승만이 민주주의자도 아니구요 ), 과연 좌익은 정의로웠을지, 과연 조만식은 민족주의자인지, 그런 의문들이죠. 정답은 압니다. 근데 그 정답이 아무래도 답이 아닌거 같다는거죠.
스톰 샤~워
07/07/30 15:38
수정 아이콘
OrBef님//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알듯도 하고 모를듯도 하네요.
물론 모든 것이 충분했는데 미국 때문에, 이승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할 순 없겠죠. 하지만 미국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역사에서 가정이 의미없다는 것은 압니다만 해방 이후의 정국에 미국이나 소련의 개입이 전혀 없었다라고 가정한다면 친일파들이 지금처럼 정권에 끼어들 수 있었을까요? 미국의 비호가 없이도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 폭력과 공포 속에서도 그에 저항했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의문점을 좀 더 분명하게 제시하시면 좀 더 나은 토론이 될 것 같습니다. 딱 꼬집어 어떤 점이 의문스러운지를 제가 파악하기 좀 힘드네요.
07/07/30 15:56
수정 아이콘
스톰 샤~워님//
firefox 를 쓰면 'c' 버튼이 먹히질 않네요. 뭐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의문의 핵심은 결국 이겁니다. 본문 수정판에 언급했듯이 친일파의 청산은 비단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불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나마 북한에서의 친일파 청산은 사실은 토지개혁을 위해 행한 것이지 정의 구현과는 거리가 있었죠. ( 물론 남한도 그렇습니다만 ) 즉, 더러운 우익의 계략에 의해 친일파가 살아남았다기 보다는, 친일파 청산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그다지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는 것이 제 첫번째 의문입니다. 합방 후 35년입니다. 합방 전후에 낳은 자식이 낳은 손주가 20살 가까이 될 기간이죠. 과연 일제 말기의 조선인들에게 '일제에 반항하여 독립을 쟁취해야지!' 라는 개념이 1그람이라도 있었을까요...?? 어차피 친일하지 않고는 살아남을수 없었던 시절을 겪은 민중들이, 해방하고 나니 갑자기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거고, 너는 죽음으로 속죄해야지' 라는 입장을 취할 수 없지는 않았을까요? 물론 생계형 친일과 공명을 노린 친일은 죄질이 다릅니다만, 생계형 친일이라도 행한 사람은 그 죄를 묻기 힘든 것이 세상 이치이기도 하죠.

이승만이나 미 군정에 대한 저항세력.. 이라면 남로당, 한독당, 여운형 정도 될텐데, 일단 남로당은 사실은 '애국자' 라기 보다는 '계급투쟁'의 성격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뭐 그나마 김일성이 귀국하자마자 노동당을 둘로 쪼개는 결단(?)을 내리면서 남로당은 오리알이 됐지만요.

결국 남는 것은 김구와 여운형인데.. 이 두분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눈물 좀 닦고 해야할 듯 합니다 ㅠ.ㅠ
07/07/30 16:36
수정 아이콘
OrBef님//
그럼 생계형, 혹은 눈에 띄게 나쁜일 하지 않은 친일은 용서하고,
일본의 개가 되어서 한국 사람 피빨아먹은 악덕스런 친일은 청산하자. 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십니까?

이걸 묻는 이유는 님이 이글을 쓰시는 이유가, 많은이가 친일이니 친일 욕할거 없다는 뉘앙스 같아서 입니다.
맞습니까?
친일은 죽지못해 친일 했더라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 할아버지가 친일이었다면은 저는 부끄러워서 다른이에가 말도 못할 것입니다.
부끄러워 할필요 없는 겁니까? 많은 사람이 그랬으니?
스톰 샤~워
07/07/30 16:45
수정 아이콘
OrBef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만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합방후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나 조선이 일본과 완전히 융합된 것도 아니고 조선인은 모든 부분에서 차별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독립되길 바라는 마음을 안갖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일제치하에서도 별다른 차별없이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겠죠. 지배자들의 착취와 일제의 착취라는 이중의 착취에 시달리는 민중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독립을 간절히 원했을 겁니다. 실제로 초기엔 독립군에 양반의 자제들이 많이 참여하지만 뒤로 갈 수록 기층민중들의 참여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뺏긴지도 어언 6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독립은 생각지도 않고 이스라엘에 빌붙어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까요?

물론 '친일파들은 다 때려 죽여야 돼'라고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리고 식민지 민중으로서 어떤 식으로든 일제에게 협조할 수 밖에 없었던 것 때문에 조심스럽긴 했겠습니다만 친일파에 대해 '그럴수도 있지'의 감정은 절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급투쟁과 친일파 청산, 그리고 독립운동을 너무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인 것 같습니다. 독립운동의 한 방안으로 계급투쟁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고, 계몽운동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고, 무장투쟁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죠.
07/07/30 16:46
수정 아이콘
후아님//
일단 말씀하신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제 요지는 친일 욕할 거 없다.. 이게 아니라, 아마 해방 직후에는 옥석을 가리기 힘들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당시에는 친일 행위를 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에 가깝죠.

그리고 후아님 조부님께서 만주 독립군 정도가 아니셨다면 당연히 창씨개명도 하시고 산미증산운동에서 참여하시고 친일 하셨을 겁니다. 안그러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었단 말이죠. 물론 제 조부님도 하셨을 겁니다. 전 그게 부끄럽진 않습니다. 적어도 지주계급은 아니셨거든요.
07/07/30 16:51
수정 아이콘
스톰 샤~워님//
지나치게 혼자만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일입니다. 염두에 두겠습니다. ( 사실 투자받기위해 웃음을 짓고 있을 뿐, 마음으로부터 일본 좋아하는 아시아 국가는 없죠. 이것만 봐도 일제의 통치가 어땠는지는 짐작이 갑니다. )
맛있는빵
07/07/31 20:59
수정 아이콘
허허허...참....이거... 뭐 글쓴분에게 뭐라 한마디 하고 싶은데 뭐 발끈하지 말라 식으로 나올꺼 같아서.. 뭐 할말이 없군요.. 글쎄... 글 내용이 글쓴이분의 이해관계나 처지와 웬지 관련이 있는거 같은 느낌이 드네요?.. 뭐.. 카더라식으로 애매하게 말씀하시는거 같아서 저도 애매하게 쓰게 되는군요..허허
07/07/31 22:08
수정 아이콘
맛있는빵님//
특별히 친일파와 관계있거나 민주당을 싫어하는 집안은 아닙니다. 애초에 미국에 살기때문에 선거랑 별로 관계도 없구요.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위에 '발끈' 운운한 것은, Withinae님께서 정말로 화가 나신듯하여 말씀드린 것이고, 이후 얘기도 잘 되었습니다만..
진리탐구자
07/08/01 10:09
수정 아이콘
맛있는빵님 // OrBef님의 논지는 바로 위에 댓글에 잘 나와 있는 것 같군요. "친일 욕할 거 없다.. 이게 아니라, 아마 해방 직후에는 옥석을 가리기 힘들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당시에는 친일 행위를 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에 가깝죠."라고. 저 역시 저 글을 친일 옹호론으로 판단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 뭐 OrBef님의 내심이 어떨지야 모르겠습니다만, 글 자체로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라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건 곁다리인데, 임지현 교수가 <<우리 안의 파시즘>>의 공동 저자 아니였던가요? 이 분이 대중 독재론적 관점에서 친일을 옹호했는지 의문입니다. 굳이 긍정과 부정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임지현 교수는 대중 독재를 부정적으로 평가 - 사실의 차원에서 대중 독재성이 있건 없건, 평가에 있어서는 -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07/08/23 20:41
수정 아이콘
시간이 많이 지났군요. 개인적으로 제 증조부님/조부님은 만주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시고, 1907년 군대해산당시 간도로 떠나셨다가 해방 이후 비로소 국내에 들어오신 제 조부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당시 해외에서 활동하던 민족주의 우파세력은 국내에 들어와서 지지기반도 없고 남겨진 재산도 없는 상황에서 일단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고생하셨다더군요. 1960년에 한 일간지에서 제 조부님을 인터뷰 한 기사가 있는데 당시 너무도 가난한 상황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인쇄소에서부터 일을 하셨답니다. - 그 당시 이미 연세가 마흔이 넘으신 분이 말이죠. -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도 "정치"라는 것은 그래도 가진 자들의 잔치였고, 식민지기간동안 해외에서 투쟁하셨던 분들이 무슨 재산이 남아있겠습니까? 물론 이회영 6형제분같은 분들은 어디까지나 예외겠구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527 커뮤니티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요소들,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12] The xian7956 07/08/21 7956
1526 엄재경해설의 게임읽는능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25] 키라15103 07/08/19 15103
1525 남북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5] 보노보노8535 07/08/10 8535
1523 혈액형별 궁합 , 성격, 사람들의 태도관 [22] 돌격테란14087 07/08/07 14087
1522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관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72] OrBef14240 07/07/29 14240
1521 싸이월드에 이런게시물 어떻게 생각하세요? [36] 빙그레13853 07/07/06 13853
1520 댓글잠금 인터넷 후보자 지지/비판글 게제 금지 선거법 어떻게 보시나요? [40] higher templar8208 07/06/22 8208
1518 댓글잠금 가수가 왜 가창력이 있어야 하죠? [161] hwang1820210 07/05/24 20210
1515 여러분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어떤 사회인가요? [33] 환타스틱11098 07/05/17 11098
1514 임요환 선수를 전략가라고 부르는게 맞는 걸까? [59] perplex13443 07/05/15 13443
1506 김창희선수의 버그사용을 보면서.. [28] 이성주19004 07/04/07 19004
1505 PGR은 과연 개인의 것인가? [161] 바라기12315 07/03/31 12315
1504 글쓰기 제한조치에 대한 의견수렴 - 추가 [1132] homy43367 07/03/28 43367
1502 우리나라 사학의 문제점은? [4] 아유6646 07/03/10 6646
1501 중립. 그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1] 信主NISSI7761 07/03/07 7761
1500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CJ 엔투스 마재윤선수에 대해서 [13] ROKZeaLoT10879 07/03/05 10879
1498 대운하 건설 필요한 것일까? [95] 아유10449 07/03/01 10449
1495 옵저빙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14] NeVeRDiEDrOnE10690 07/02/18 10690
1494 부스걸과 프로게이머의 노출사진 [115] SilentHill25085 07/02/17 25085
1490 '부스걸'에서 게임판의 일면 읽기 [329] 세이시로19194 07/02/17 19194
1489 맵의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요소들 [4] hi6523 07/02/16 6523
1486 프로리그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27] 아유8971 07/02/05 8971
1485 슈퍼파이트 대회에 가장 적절한 해설진은 어떤 사람일까요? [40] 다크고스트11887 07/01/29 1188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