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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4/26 05:05:15
Name OrBef
Subject [유머] 연재 - 중첩(2. 상담)
댓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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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비행기와 강철 비행기는 외견상으로 둘 다 하늘을 ‘난다’. 하지만 두 물체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은 전혀 다르다. 강철의 비행기가 유체의 관성과 에너지 보존을 이용하여 실제로 공기를 ‘딛고 서있는’데 반해, 종이 비행기는 전진 방향의 공기저항만을 극소화시킴으로써, 전진하는 방향으로만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하나는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늘을 날지만, 어린이의 눈으로는 둘의 차이를 알 수 없다.

Chapter 2. 상담

세상사람들의 90%가 찬성할만한 문장을 상진에게 다섯개 꼽아보라고 하면 그중 하나는 분명히

‘오후 3시는 일하기에 가장 졸립고 괴로운 순간이다’

일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늘어지게 만드는 시간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람을 덜 방어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위해서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정신과 의사 역시 늘어진다는 면에서는 다시 악영향이 있긴 하지만.

더구나,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지 않았던 상진에게 이런 시간은 종종 지옥같이 느껴지곤 했다. 애초에 색맹이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으니만큼 의대를 진학하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었고, 본인도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감히 천문학같은 귀족학문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괘씸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한양대에서는 색각이상자도 의대에 입학을 시켜줬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웃기게도, 차라리 애초에 입학을 안시켜줬으면 좋았을텐데, 열심히 공부해서 정작 본과까지 올라가고 나니 색각이상자는 정신과를 제외하고는 할 일이 없었다. 이건 일종의 사기야! 라고 울부짖어봐도 언제나 결론은 아쉬운 놈이 참아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나도 안다고. 그러니까 일 한다고. 하면 될거아냐. 라는 생각을 하며 상진은 다시 앞에 있는 환자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 지영씨 다시 정리를 해봅시다. 그러니까 나흘째 동일한 꿈을 꾸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꿈이 아니라 너무 생생하게 느껴지신다는 것이죠?’
‘네. 제가 꿈을 보통 굉장히 황당하달까.. 말이 안될달까.. 그런 식으로 꾸는데요. 이번엔 너무 리얼하더라구요’
‘평소에 꾸시는 꿈이 황당하다는 건 어떤 의미시죠?’
‘뭐.. 호호호. 아시잖아요.’
‘이런 꿈 관련 상담을 할 때에는 평소의 다른 꿈 이야기도 되도록 같이 다루는 것이 좋거든요. 환자분께서 서로 관련 없다고 생각하시던 내용 사이에 의외의 연관성이 있는 경우도 많구요’
‘네.. 알겠습니다. 근데 워낙에 평범한 개꿈 – 풋 죄송합니다 - .. 그러니까.. 로또에 당첨돼서 유람선를 사서 논다던지.. 뭐 그런 꿈들 있잖아요? 저도 그런걸 꾸거든요. 근데 이번건 좀 달랐어요’
‘그건 제 평생의 소원이네요 하하. 그럼 일단 이번 꿈 이야기부터 해보죠’
‘일단.. 이런 꿈은 처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제가 그 꿈속에서는 인간이 아니에요. 이런 적은 없었거든요.’
‘인간이 아니면 뭐죠?’
‘그걸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느껴져요.. 예를 들면, 제가 꿈속에서나마 뭐라고 생각을 할텐데, 생각을.. 뭐랄까..?? ‘언어’로 하고있질 않아요. 굉장히 여러가지 감정이 떠오르는데, 이를테면 꿈속에서 누가 총에 맞아요. 근데 그걸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굉장히 무서운데, ‘아 무섭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거죠.’

이런 이런.. 이라는 생각이 상진의 머리속을 퍼져나갔다. 상진에게 있어서 이런 종류의 환자 – 아무 일도 없는데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심기증 환자 – 를 상대하는 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다. 사실 진짜 우울증이라도 있는 사람은 분명히 치료도 가능하고, 청구서를 보낼 때에도 당당하지만, 이런 경우에 정신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솔직히 ‘전문용어로 도배한 사기’ 이상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네, 그런 경우도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일단 그럼 꿈의 줄거리부터 편안하게 말씀해주실까요?'
‘네. 일단.. 시작은 제가 어떤 우리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시작해요. 근데 동물원 같은 곳은 아니에요. 그냥 평범해보이는 집인데.. 느낌은 아주 편안해요. 그 우리는 집에서 어떤 방에 들어있구요, 저는 뭔진 모르지만 굉장히 작은 동물이에요. 아마 사람의 절반정도 되려나..?? 거실에서는 두사람 – 아마 남자인거 같아요 – 이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대화는 우리말은 아니에요. 아마 영어인 것 같은데, 잘 들리지는 않아요. 그러다가 갑자기 ‘피윳’ 하는 소리가 들려요.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가 이어서 들리고, 둘 다 넘어지진 않았는지 누군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려요. 사실 제가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요. 전 계속 방에 있으니까요. 으음.. 그 다음에는 그냥 느낌이긴 하지만, 쓰러진 사람을 질질 끌고다니는 듯해요. ’

상진은 이내 ‘전문용어로 도배한 사기’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피학 욕구 같은 것을 적당히 설명해주고, 연애 경험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정도를 물어보다가, 자신이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보내면 되겠네. 그럼 청구서는 얼마를… 가만있자 영어?

‘인간이 아닌것으로 느끼신다고 하셨는데, 영어인줄은 어떻게 아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알아듣는 느낌은 아니에요. 꿈속에서는 못알아듣는데, 깨고나서 그 소리를 잘 더듬어보면, 알아듣는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면?’
‘Yeah라던가 really? 이런 것들이요. 아 그리고 영어가 아닌거 같긴 한데.. beeseeai 라는 단어는 굉장히 여러번 들었어요. 뜻은 모르지만요.’

굳이 더 이야기 해보고 싶다는 지영의 생각을 말릴 이유는 절대 없었기 때문에, 상진은 다음주 월요일에 지영과의 추가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매우 약한 과대망상증 내지 심기증은 굉장히 흔한 것이어서, 그날 저녁 지영의 전화가 올 때즈음 상진은 이미 그녀에 대해 거의 잊고 있었다.

‘선생님. 예정보다 일찍 상담 좀 하러 갈 수 있을까요?’
‘아.. 죄송하지만, 이번주 금요일까지 상담 약속은 완전히 꽉 찼는데요, 예정대로 다음주 월요일이 어떠십니까?’
‘5분이면 돼요. 정말로 중요한 일이에요’

환자들에게 상진이 ‘무슨 추가 사항이 있으면 전화주세요’라는 의례적인 말을 하며 자신의 셀폰 번호를 알려주는 것은, 정말로 의례적인 것이었다. 상진은, 이런 일은 당연히 간호원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평을 꾹 참고 말했다.

‘전화로는 말씀하시기 곤란하신가요?’
‘제가 꿈에서 본 일이 실제로 벌어졌어요’

지영은, 분명 쓸데없는 심기증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상당한 수준의 배려심과 지성은 그것만으로도 상진에게 흥미를 유발할만 했다. 약간 키가 작긴 했지만, 저런 타입의 성격은 오히려 모델같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평소 상진의 여성관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상진은 지금까지 지영보다 훨씬 매력적인 고객을 여러번 봐왔었고, 당연히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퇴근 이후 자유시간을 그녀에게 빼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여자니까' 이루어진 것이었다.

‘제 대학교때 친구가 죽었어요.’
‘아.. 예 안됐네요.’
‘그냥 죽은게 아니고, 총에 맞았어요.’
‘네?’
‘총에 맞아 죽었다구요. 미국에 유학간 친군데, 강도한테 총에 맞아서 죽었대요.’
‘아.. 그럼 꿈에서 본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그 일인가요?’
‘네.’
‘으음… 특별히 그렇게 생각하실만한 근거가 있나요? 세상에 신기할 정도의 우연은 참 많습니다만’
‘그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영어를 쓰고, 총에 맞아 죽고,’

흥분한 환자는 다루기 힘든데.. 라고 생각하던 찰나, 마침 웨이터가 테이블 세팅을 하느라 상진에게 약간의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예를 들어서, 15년만에 야구장을 찾은 사람이 마침 1회 초구 홈런볼을 캐치했다고 치죠. 그분은 ‘아하 이건 야구를 자주 보라는 신의 계시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저같아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런건 우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영씨 친구분은 참 안돼셨지만, 이런 식의 집착은 좋지 않아요’
‘원숭이를 길러요.’
‘네?’
‘죽은 친구는 원숭이를 길렀다구요. 원숭이가 대충 70센티정도 돼지 않나요?’

.        .        .        .        .        

아무리 의사도 하나의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기분이 좋은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날밤은 상진에게 울적함이 예고된 밤인 셈이었다.

‘심기증 환자에게 가장 안좋은 것이 티비나 뉴스에서 자기 심기증에 부합하는 정보를 얻었을 때입니다. 폐암에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사람에게서 피가섞인 가래라도 한번 나오면 노이로제가 돼기 십상이고, 악마가 자기 주변을 돌아다닌다고 믿는 사람의 집이 갑자기 정전이라도 돼면 심장마비로 죽기도 합니다. 지영씨같은 성격의 소유자에게 꿈과 주변인의 사망이라는 우연의 일치는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니는 정신적 트로마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무턱대로 이게 무슨 영적 현상이라던가 초자연적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천천히 생각을 해봅시다. 일단은 월요일에 다시 뵙죠.‘

상진이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집에 돌아온 상진은 평소대로 컴퓨터를 켰고, 자신이 주로 가는 사이트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은 지영에 대한 생각이 그를 어느새 사망사고에 대한 뉴스를 읽게 만들었다.

http://www.humou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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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숭 신, 화공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던 학생은 오늘 아침 9시 자택에서 숨진채로 발견되었다. 상당수의 금품이 유실된 것으로 보아 경찰은 단순 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수사중이다. 그는 평소에도 밝은 성품의 소유자로, 주위 친구들로부터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의 친한 친구인 제레미 고든은 ‘우리 HCS 랩에서 그는 단연 리더였어요. BCI연구도 연구지만, 매주 금요일의 커피 타임을 생각해낸 것도 준숭이고…’

‘BCI…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단언데?’

상담때 지영이 했던 이야기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 순간, 알 수 없는 한기가 상진을 감쌌다.

‘영어가 아닌거 같긴 한데.. beeseeai 라는 단어는 굉장히 여러번 들었어요. 뜻은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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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푼
06/04/26 05:38
수정 아이콘
다음꺼 바로 올려주시면 안되나요ㅜㅜ 그리고 BCI가 뭐죠?;;
사상최악
06/04/26 06:28
수정 아이콘
'나른다'가 아니라 '난다'가 맞지않나요?
06/04/26 06:43
수정 아이콘
타이푼님/
올리려고 보니 새로 쓰고있는 부분과 맞지 않는 곳이 꽤 되더라구요. 그래서 수정을 하고 올리느라 늦어지네요. 그래도 매일 하나씩은 꼭 올리겠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시는듯해서 너무 감사하네요 ^^

사상최악님/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다른 오타도 지적해주시면 대환영입니다~
06/04/26 15:19
수정 아이콘
OrBef님께서 주로 서핑하는 사이트들을 알 것같네요.(응ㅡㅡ?) 앞으로 전문 용어들이 마구 나올 것같아 겁(?)이 나긴 하지만 어쨌든 건필 하시길.ㅡㅡ)/(댓글은 안달지만 열심히 읽는 독자들이 있다는걸 생각하자구요.ㅡㅡ/)
whoknows
06/04/27 05:13
수정 아이콘
아... 정말 재미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고 멋진 완결 부탁드립니다.^^
LED_nol_ra
06/04/27 16:07
수정 아이콘
갈수록 흥미 진진하네요...근데 준숭 신은 엑스트라였네요...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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