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느날 착하고 귀여운 대학교 새내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술을 퍼먹으러 다녔죠.
새내기가 되었으니, 술을 먹는다.
어느모로 봐도 인과관계가 이미 완벽합니다.
아마 위기철 선생님도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싸대기를 탁 치실 겁니다.
새내기때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런 떡잎을 소주병의 푸른색으로 정화하면 혹시라도 푸른 떡잎이 될지도 모른다고요.
물론 졸업할 때까지 그딴 일은 없었습니다.
대신 새벽에 천국은 자주 갔어요. KB헤븐.
여러분이 진작 아름다운 우리 지구를 위해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학 새내기를 생활폐기물/산업폐기물/핵폐기물로 분리하여 배출했다면 지금의 폭염은 없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매일매일 술을 먹던 어느 늦은 밤이었습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비루한 몸뚱아리 넷은 뚝배기집 구석 좌식테이블에 찌그러져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입식에 앉으면 분명히 접지면적 확대 공사를 벌이는 놈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벼락맞을 놈이라 그랬을 겁니다.
탁자에 세운 희석 에탄올은 투명합니다.
그리고 투명하게 합니다.
대화하는 마음을 투명하게 하고, 사고 기능을 투명하게 하고, 위장 내부도 투명하게 합니다.
투명인간 4인조는 그때 뭔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그 앞에 둔 안주는 5천원짜리 뚝배기 두 그릇에 3천원어치 떡튀.
떡볶이의 진한 색소와 뚝배기 안의 시래기는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되어 피존 아침식사의 주성분이 되곤 했죠.
그걸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피존투를 두고 갔을 겁니다.
난 알아 지우야. 니 잘못이 아니야.
암흑물질 넷 중 하나였던 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목표는 전세계 범죄자의 90% 이상이 매일 마신다는 물질, 산화이수소. 거기에 손을 대고자 합니다.
물건의 안정적인 공급만 이루어진다면 뺑끼대마왕이 될 지언정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이 정수 약탈자는 미닫이문을 살짝 열고 독수리의 눈으로 냉장고를 주시합니다.
이미 심야에 가까운 시간, 냉장고 안에는 순도 높은 물건은 없고 순도 낮은 다른 병만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순도가 낮은 물건은 우리 방에도 많으니 필요없습니다.
정화장치는 던전 안쪽에 있습니다.
던전 내부는 금단의 구역, 일개 항구를 떠도는 철새에게는 버거운 곳이었죠.
결국 이 액화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던전 수호신께 말을 걸어야 했습니다.
흔히 이모님이나 사장님으로 통칭하여 소환하는 던전 수호신은 소환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쪽방에서 드라마를 보고 계셨죠.
그러나 금단의 초비료를 너무 많이 흡수한 떡잎은 도무지 이모님이나 사장님이라는 소환주문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뇌씩남에 점 하나 찍으면 뇌썩남.
나머지 세 찌끄레기들에게 묻긴 좀 그렇고,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뿐.
미닫이문을 활짝 열고 당시 나의 간지템 올빽포스를 신고 던전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그 단어는 내 안의 유교드래곤과 도킹하면서 결국 입 밖으로 배출됩니다.
"주인님~"
그 날 이후 졸업할 때까지 저의 별명은 노예였습니다.
끗.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