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메버릭>, 이 맛에 극장을 가지!
<탑건: 메버릭>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1986년작 <탑건>을 논해야 한다. <탑건>은 어떤 영화인가?
가이가 게이되는 영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대뜸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영화가 있을 수 있지?" 영화를 볼 때는 그럭저럭 지루하지 않게 봤지만, 정말 보고 나서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럼 <탑건: 메버릭>은 어떨까?
"재밌었어?"
"응. 재밌었어."
"그렇지. 재밌었어."
"그게 다야?"
"응... 그게 다네, 이 영화는."
그랬다. <탑건: 메버릭>은 <탑건>과 똑같은 맛이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한 덕에 전작보다 더 쫄깃하고, 더 세련되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이란 단지 영상 기술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연출, 대사, 다양성을 포용하는 철학, 연기까지 포함하고 있다) 특히,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제시하고, 이를 완수하기 위해 고민하는 전개는 그나마 2시간에 걸쳐서 뭔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해주었다. 이야기가 죄다 분절났던 <탑건>에 비하면 <탑건: 메버릭>의 시나리오는 분명 나아졌긴 하다.
하지만 남는 게 없는 영화라는 평가는 여전했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탑건: 메버릭>을 보러 갔다. 그것도 4DX로 비싸게 주고 봤다. 그리고 또 그래서 비싼 티켓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4DX 강추합니다) <탑건: 메버릭>은 블록버스터가 제공해야 할 쾌감을 정석적으로 제공하는 작품이었다. 짜릿하고 쫄깃한 작품이다. "이 맛에 극장을 가지!"
<범죄도시2>, 아는 맛이 좋더라
그래도 의문이 하나 남는다. 나름 영화가 취미고, 그래서 신선함을 극찬하고 진부함을 까기 바빴던 사람이... 어째서 뻔히 아는 맛에 돈을 쓰고,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걸까?
사실 이런 의문은 <범죄도시2>에서도 들었다. 까다롭게 따지고 들면 1편과 판박이인 자기복제 작품인데다, 1편에 있었던 날것의 매력까지 줄어든 상대적 졸작이 분명한데도, 나는 <범죄도시2>를 재밌게 봤다. 주먹으로 샷건 치는 소리가 넘나 좋더라.
왜 그랬을까? 코로나 때문에 너무 오래도록 극장을 찾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던 까닭일까? 그래서 그저 그런 진부한 작품마저도 즐겁게 느껴지는 걸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그냥 이제는 이런 게 나쁘지 않더라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아는 맛이 좋은 이유가 일종의 코로나 봉쇄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봤다. 영화 보다가 밥도 먹었고, 설거지도 하고, 그리고 또 이어서 봤다. 극장에서 보는 것처럼 몰입해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꽤 좋았다.
사실 따지고 들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그다지 좋은 작품이 아니다. 확실히 진부했다. <용의자 X>가 <여인의 향기>를 찍는 기분이었다. 대충 이야기 흐름이 예상되고, 다 보고 나니 "뭐 다 아는 맛이구만~"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보고 나서 엄지척 버튼을 기꺼이 눌렀다. 뻔히 아는 맛인데, 그냥 그래서 좋았다.
영화를 보는 진지함이 결여되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몰입하지 못하는 환경이라 아는 맛이 더 좋았던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은... 사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아무리 신의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는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사람의 숙명이니까. 문제는 이것 외에도 일정에 대한 스트레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등등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정신 없이 업무를 마치면 운동도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계발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진실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그러면 하루가 끝난다. 아직 애가 없는데도 이 모양인데, 애까지 생기면 얼마나 힘들지 가늠도 안 된다.
나는 아재고, 아재는 지쳤다. 그래서 뻔히 아는 맛이 좋아지는 것 같다. 조금 서글프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