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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4/14 23:09:40
Name 어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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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비전공자의 산림과학 도전기 (수정됨)




저는 재산세가 1만원 미만 부과되는 매우 저렴한 임야 한 필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나무심기에 대해 알아보다가 산림과학(임학)에 관심이 생겼고,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산림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과 출신(!!)이라 문외한 of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데 무슨 깡으로 이런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 아무튼 산림과학은 조림학, 산림경영학, 산림정책학, 임업경제학, 수목학, 수목생리학, 산림토양학, 산림측정학, 산림생태학 등의 세부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가 임학자나 산림청 공무원이 될 것도 아니고 조림학과 산림경영학만 공부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산림과학 전공자의 필독서라는 故 임경빈 박사의 [조림학본론]을 훑어보았는데, 한마디로 80년대 법학 전공서적(...)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친척 중에 80년대에 사법시험을 공부하셨던 분이 계신데, 그 분이 고시공부할 때 보던 책을 제 방에 보관했던 관계로 80년대 법학서적이 어쩧게 생겨먹은 물건인지 잘 알고 있죠. 이시윤 민사소송법 초판(!). 김형배 채권총론 초판(!), 허영 한국헌법론 초판(!) 등등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공부하던 시절의 레어템을 고딩 때까지 보유했었답니다.

위 사진은 중고서점에 올라와 있는 조림학본론 내용인데, 온통 한자로 도배되어 있어 한자에 약한 이과 출신 임학도들은 옥편이 필수품이라고 하네요. 한자 밑에 독음을 일일이 적어 놓은 것이 포인트.. 저는 나름 한자에 밝은 편이라 예컨대 '採種林'이란 단어를 보면 "아~ 종자를 채집하는 숲인가 보다"라고 짐작할 수 있었지만 가독성이 너무 떨어져 도저히 공부할 물건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이 책은 포기했습니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학생들조차도 옥편을 찾아봐야만 採種林을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니 전공자들의 고충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필독서이자 최근(이라고 하지만 무려 10여년 전)에 출간된 이돈구 전 산림청장의 [조림학]이란 책을 훑어보았는데, 산림과학개론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조림학을 중심으로 산림과학의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독성이 좋아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조림학의 모든 내용을 다룬 것은 아니라서 행시 및 공시 임업직 수험생들은 [조림학][조림학본론] 두 권 모두 공부해야 한다네요. 그런데 두 책의 내용이 충돌되는 경우가 많아서 알아서 취사선택해야 한다고;;

산림경영학 교재는 시중에 우종춘 등 11인이 쓴 [산림경영학] 한 권밖에 없어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칼라풀한 깔쌈한 표지를 보고 엄청난 기대를 했는데 읽어보니 총체적으로 부실한 책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짜깁기했는지 논리도 없고 문장도 이상하고 설명도 부실하고 심지어 본문 전개상 다음에 나와야 할 내용이 통째로 누락되는 등 강의안 수준에도 못미치는 물건이었죠. 예컨대 임분밀도(나무가 빽빽한 정도)를 구하는 공식 중에 다음과 같은 식이 있는데

CW=a+bd (CW: 수관폭, d: 흉고직경)

a와 b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범례에도 본문에도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는게 아닙니까! 제 땅 값어치 올리는데 1g도 도움이 안되는 내용이지만 너무나 궁금해서 구글에서 'crown width'라고 검색해서 찾아보니 a와 b는 parameter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즉, 상수 취급하는 변수란 이야기. 차라리 영어 원서로 읽는게 속 편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조림학본론]이 외관상 80년대 법서 같았다면 [산림경영학]은 내용상 80년대 법서 같은 것이 뭔 놈의 독일 학자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나오는지... 알아보니 산림과학 역시 법학처럼 독일→일본→한국 순서로 수입된 학문이라고 하네요. 임학자 중에 독일 유학파가 많다고... 대륙법, 아니 [대륙숲체계]인가.. 책에는 등장인물들의 프로필이 나와 있지 않지만 호기심에 검색해보니 상당수가 18~19세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사람들!

- 한스 카를 폰 카를로비츠 (Hans Karl von Carlowitz, 1645~1714): 작센 공국의 회계사
- 요한 프리드리히 유다이히 (Johann Friedrich Judeich, 1828~1894): 작센 왕국의 임업관리 --> 작센이 왕국으로 승격했네요 크크
- 요한 크리스티안 훈데스하겐 (Johann Christian Hundeshagen, 1783~1834): 헤센 대공국의 임업관리
등등..

궁금한 내용이 있어 유튜브에 무료로 올라와 있는 모 강사의 강의를 들어보았는데, 가관이었습니다. 법정림(法正林; 이상적인 구조의 산림형태)을 '법에서 정한 숲'이라고 설명을 하지 않나;; 공무원 수험서는 어떤가 싶어서 1타 강사의 책을 훑어보니 각종 전공서적을 토씨 하나 안고치고 문장 그대로 짜깁기 한 표절 그 자체.. 짜깁기한 책들을 짜깁기하니 진짜 정신 없어 보였네요. 임업직 수험생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년 전에 출간된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의 저서가 현역으로 활동하고 최근에 출간된 책도 짜깁기에 불과하고 나름 이과 학문인데 너무 out-of-date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국의 임학 교수님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계시겠지만 좋은 책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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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노코시
21/04/14 23:14
수정 아이콘
환경이나 이러한 자연 관련 base의 공학이나 과학자들은 애시당초에 연구분야 대비 인력풀이 월등히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저서에 신경쓸 수 있는 여력조차 없고 보통은 원서를 그대로 읽는 식으로 전공지식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많죠.
그리고 현역으로 움직이시는 분들이 현재 체계 유지와 학문 성과에만 벅차하다보니 저런 번역서와 개론서 출판은 원로 교수님들이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일본에서 많이 있는 전공출신 번역가 가 있다면 현재 개론서들의 수준이 이정도는 아니었을 거예요.
어즈버
21/04/14 23:49
수정 아이콘
다시 생각해보니 비판이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드네요ㅜㅜ 책을 읽다가 너무 빡친 나머지 험담을 하게 되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수님들께 누를 끼친 것 같습니다.
타마노코시
21/04/14 23:55
수정 아이콘
이런 요청사항 있으면 대응해야할텐데 이게 어려운 점이 또 뭐냐하면 저렇게 집필을 학회차원이나 교수들끼리 모여서 집필을 해도 팔리지가 않습니다.
결국 전공자들에게 필독서나 교재로 해서 팔수야 있겠지만 얼마전에 문제됐던 것처럼 요즘 대학생들이 저런 국내 교수가 집필한 책을 필독서나 교재로 넣으면 클레임 걸거나 귀찮게 하는 경우도 많아서 섯불리 할수도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1쇄도 제대로 팔리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그 품을 팔아서 새로운 교재를 만드느니 그냥 개정판 내고 마는 수준이 되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21/04/15 00:04
수정 아이콘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장인어른께서 연세때문에 이제 농사는 힘들고 뒷산에 나무 심을까 하시던데.. 학문이 아닌 직업으로서의 임업은 볼만한 책이 있을까요?
어즈버
21/04/15 08:3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인터넷 서점에서 '임업'이라고 검색해보면 '게임업'(...)이 대거 등장하고 '나무심기'라고 검색하면 이를 일종의 비유법으로 써먹은 인문학 서적이 나오는 등 정말 찾기가 힘들더군요. 고등학교 임업 교과서는 어떨까 싶어요.
21/04/15 08:22
수정 아이콘
쩝... 여러모로 그냥 원서를 읽는 게 낫습니다. 어설프게 번역된 책으로는 키워드 따기 어려워서 구글링도 못 하더라고요.ㅠㅜ
어즈버
21/04/15 08:44
수정 아이콘
개벌일제림, 상방천연하종, 무육갱신 등 듣도보도못한, 일본의 향기가 느껴지는 괴상한 한자어가 범람하더군요. 원서를 읽어보고싶은 충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제가 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크크
아이고배야
21/04/15 11:13
수정 아이콘
난 왜 '비전' '공자' 라고 읽었단 말인가..
이즈리얼 그만해야..
어즈버
21/04/15 12:11
수정 아이콘
pgr21의 태생이 게임 커뮤니티니까 근본있는(?) 반응인 듯 :)
에이치블루
21/04/15 12:04
수정 아이콘
숲은 걷는 게 제 맛이죠! 서울 수목원(홍릉 연구소 본원 + 실제 조림된 숲)이 일하는 데 옆에 있어요. 휴일에는 민간 개방이니 한번 가보셔서 현황 파악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즈버
21/04/15 12:13
수정 아이콘
서울에 안살아서 담에 기회가 있으면 가봐야겠네요. 홍릉수목원은 대학생때 친구들과 놀러가서 치킨이랑 김밥 먹다가 쫓겨난 기억이 나네요 크크.. 근데 남은 음식 싸가지고 경희대 본관 앞 잔디에서 먹다가 또 쫓겨남;;
21/04/15 12:30
수정 아이콘
전공 서적은 영어면 원서를 읽는게 나은데 일본어나 한문이면 노답 ㅠ
어즈버
21/04/15 14:27
수정 아이콘
독일어가 아닌게 어딥니까 :) der den dem 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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