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제주도다.
그 덕분에 남들이 연휴에 평생 몇 번 가기 어려운 곳으로 여행갈 때 나는 고향집에 가서 쉬다가 육지에 온다.
2017년 12월 하순의 연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공항에 가니 평소보다 커플이 눈에 많이 띄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티켓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공항에 커플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날은 바로 12월 24일이자 크리스마스의 전날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비행기를 조망하니 남녀가 짝을 지어 캐리어를 선반에 싣는 모습들이 보였다.
반면에 나는 “크리스마스에 혼자예요? 어떡해.”라는 여자 지인의 말에 “저는 크리스마스에 애인 필요 없어요. 고향이나 한 바퀴 둘러보면 돼요.”라고 둘러댄 채 집에 가는 길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신의 탄생을 기리는 날에 왜 커플들이 저렇게 난리인지, 그 날을 혼자 보내는 솔로는 왜 안쓰러움의 대상이 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서양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연애와 연관되어 있다.
이는 크리스마스의 연애질이 메인 주제인 명작 로맨틱 코미디인 러브 액츄얼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결말에서 동료애든, 돌싱이든, 동성애든, 불륜이든 다들 서로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단, 서양의 크리스마스는 솔로가 커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풍습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영국의 상징이 되어버린 문학작품 해리포터에는 크리스마스에 솔로부대 탈영의 멍석을 제공하는 서양의 풍습이 나온다.
해리의 첫 키스 장면을 떠올려보자.
초 챙은 “겨우살이의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키스해도 된대.”라면서 키스를 유도한다.
다른 장면에서는 해리가 겨우살이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여학생들이 해리에게 들이댈 기회를 노린다는 묘사가 나온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풍습인 크리스마스 겨우살이 키스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의 같은 연애 명절에도 서양처럼 솔로가 커플이 될만한 멍석을 깔아주는 문화가 없다.
아니지, 원래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는 고백하는 날이었는데 어느샌가 고백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2년된 남친에게 맛있는 초콜렛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크리스마스에 이 호텔 괜찮나요?'라는 질문만 넘쳐나고 있다.
구글 검색만 해봐도 나온다. ‘발렌타인데이 고백’으로 검색하니 첫번째 페이지든 두번째 페이지든 가장 최근의 글이 2014년이다.
이에 따라 과자회사들도 ‘저희 회사의 과자로 고백하세요’ 보다는 기존의 커플들에게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
아, 모 편의점업체에서 “커플들이 먹어 해치우기 전에 빼빼로를 드세요.”라고 했던 적은 있다. 제길.
우리조상들은 21세기의 우리와 달리 명절에 연애의 멍석을 깔아주는 문화를 즐기셨다.
석가탄신일에는 탑의 주위를 도는 행사인 탑돌이가 열린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불교를 공격했던 이유 중 하나가 탑돌이를 하던 남녀끼리 연애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일 정도였다.
이와 관련된 연애담이 삼국유사에 실려있다.
통일신라시대, 탑돌이를 하던 김현이라는 청년과 어떤 처자가 눈이 맞아 원나잇을 했다.
김현이 처자를 따라 처자의 집에 들어가니, 김현이 호랑이들에게 둘러쌓았다.
알고 보니 처자는 호랑이가 사람으로 둔갑한 것이었고 김현을 둘러싼 호랑이는 처자의 오빠였다.
그런데 하늘에서 처자의 오빠들에게 “너희는 사람을 너무 잡아먹었으니 벌을 주겠다.”라고 했다.
처자는 오빠대신 죽기로 하고 호랑이로 돌아와서 마을의 사람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나서 김현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김현에게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알려주고 김현의 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김현은 호랑이를 잡은 공적으로 벼슬길에 올랐고, 호랑이 처자를 기리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다시 해리포터로 돌아가서 트리위저드 무도회 장면을 떠올려보자.
트리위저드 대회를 기념하는 무도회 장면은 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이 때, 트리위저드 대표선수뿐만 아니라 전교생에게 무도회에 참석할 권한이 주어졌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성에게 “나랑 무도회에 같이 갈래?”라는 말을 한다.
만남은 무도회에서 그치지 않고 어스름한 곳에서의 밀회로 이어진다.
이런 장면은 서양의 하이틴 무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졸업식 무도회에 누굴 데리고 가느냐, 데리고 갈 방법은 무엇인가가 하이틴 영화의 클리셰일 정도니까.
즉, 서양에서는 학교가 학생의 연애 경험치와 연애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반대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는 ‘연애한다는 소문만 나도 최대 정학’이라는 교칙이 있었다.
실제로 안산의 모 학교에서는 남녀학생이 같이 택시를 탔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학교가 연애를 막지만 않아도 다행인 판이니 이성의 만남을 주선하는 학교가 있을 리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소개팅, 미팅이라는 자체적인 연애 멍석 문화를 마련했지만
소개팅, 미팅은 인맥에 따라 기회가 좌우되고 비용을 자체적으로 지불해야 하며 자연스러운 매력 발산이 매우 어렵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한국과 서양 사이에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서양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도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는 풍토가 있었다.
신분을 막론하고 무도회에서 짝을 만날 수 있었으며(물론 신분에 따라 무도회의 장소가 달라진다)
기사가 귀부인이나 귀공녀와 플라토닉 러브를 하는 것은 장려되었다.
중세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면 마상창시합에 나가는 기사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여인이 답례로 창에 손수건을 걸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즉, 옛날 옛적부터 공공연하게 남녀가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있었고, 서로의 애정을 과시할 수 있는 풍습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자리가 전혀 없었다!
내 고향은 제주도다.
즉, 연휴에 제주도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2018년의 설 연휴는 2월 15일에 시작됐다. 바로 발렌타인 데이의 다음날이다.
나는 집에 혼자 가서 “오늘도 혼자왔냐? 참한 아가씨는 언제 데려올 거냐”라는 타박을 들었다.
반면에 일부 커플, 부부들은 집에 가지 않고 제주도의 풍경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만약 이 시대의 이 땅에도 연애 명절에 멍석을 깔아주는 문화가 있다면 이런 양극화가 조금이나마 완화됐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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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댄스는 서양의 좋은 문화죠.
우리나라도 무도회 같은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사교댄스 배우면 몸이 건강해집니다. 그리고 본인의 몸으로 이성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어요. 지저분 하지 않고 깔끔하게요.
춤은 인간 활동의 궁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김태희가 비랑 결혼한 이유가 춤 때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