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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03 14:54
조조가 안그래도 불안해서 이전을 딸려보냈는데 그 이전의 조언을 씹고 진격했다가 계책에 걸린거라서 아마 이불 뻥뻥 찼을겁니다.
17/02/03 15:03
애초에 하후돈은 승전 자체가 거의 없는지라......
오죽했으면 조조가 우금에다 이전까지 딸려보냈는데도 유비에게 패했으니 조조도 분통이 터졌을 겁니다 아마.
17/02/03 15:12
양측의 정확한 전력차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하후돈을 보낼 정도면 최소한 처발릴 걱정은 없을 정도로 우세한 상황이었을 것 같고 조조가 하후돈에게 '군공 한번 떠먹여줄' 생각이지 않았나 합니다.
어쩌면 가기 싫다고 칭얼대는 하후돈을 조조가 억지로 등 떠밀어서 우금 이전 붙여줄테니 군공 좀 쌓아보라고 보냈을지도 모르죠. 근데 지 혼자 신내다가 개털리고 돌아왔으니 조조는 뒷목 잡았을듯...착하기만 한 동네 바보동생 보는 느낌?
17/02/03 15:50
웬지 그림이 그려지네요.
========================================== 조조 : 돈아, 이번에 한번 좀 싸우고 와라. 하후돈 : 아, 형! 나 싸우는 체질 아닌거 알잖아! 조조 : 그래도 말이지... 연이(하후연)은 잘 하는데 넌 공적 없으면 남들이 나랑 친해서 고위직 있다고 씹는달 말이지. 너도 씹히긴 싫잖냐. 하후돈 : ......모르는건 아닌데, 자신은... 조조 : 그래, 잘 알지. 그래서 우금이랑 이전 붙여줄께. 게다가 병력도 넉넉하게 줄테니까. 하후돈 : 그러면야... ========================================== 이후 먼지나게 털렸답니다.(!?)
17/02/03 14:36
손권이 형주침공 안함 -> 관우 안죽음 -> 이릉대전 안일어남 -> 촉의 국력과 인재풀 보존 ->
제갈량 숨통트임 -> 제갈량 오래삼 -> 북벌이 수월해짐 결론은 손권을 까야 합니다.
17/02/03 14:56
이건 사실 전지적 촉빠시점이고 형주를 얻은 이후에도 동오가 합비로 가는 족족 탈탈 털리기만 했던거만 봐도 손제리로서 나쁜 선택은 아니었죠.
17/02/03 14:36
애초에 조조 상대로 저렇게 징하게 싸운것도 유비, 원소, 여포, 손권 정도로 끝이죠. 원소는 유비와 세력비교 자체가 안되었고 여포는 조조에게 패해서 목이 뎅강.. 손권은 합비땜시;
천하 대세 세력인 조조 상대로 줄곧 군사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저 전적이라는 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17/02/03 14:37
그런데 유비 vs 조조의 전적에 유비 vs 조조부하 전적도 포함되는거라면
유비부하 vs 조조도 포함시켜야 할거 같아요.. 그렇게 붙은적은없나?
17/02/03 14:38
유비 세력이 워낙 흙수저인지라 세력 차이가 많이 나긴 했죠. 유비와 조조가 그나마 전력상 별차이 없이 대등하게 1:1 수준으로 붙은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가 한중 공방전입니다.
17/02/03 15:06
유비부하 VS 조조는 아예 전적이 없고,
유비부하 VS 조조부하....를 따지자면 장비가 장합에게 승리한 것, 관우가 우금에게 승리한 것, 관우가 조인/서황에게 패한 것 정도가 있습니다. 위의 댓글대로 익주를 얻기 전까지는 유비에게 별도의 병력을 운용할 여유 자체가 없었지요.
17/02/03 15:06
이릉전투도 물론 실패한 전쟁이긴 하지만 그 전까지 유비의 능력들이 모두 부정당할 수준의 심각한 트롤링은 아니라고 봐야죠. 연의에서야 인구수 200 병력 모아서 그 인구수 200 병력 전투 한번으로 다 날려먹은것처럼 묘사되지만 그 전쟁은 처음부터 동오의 전력의 앞섰던 상황에서 부하장수의 복수라는 명분을 통한 내부 결속 목적과 융중대전략 실행에 있어서 형주땅은 필수라는 목적들이 결합되어 벌인 전쟁이었구요.
다만 장비가 허무하게 죽어버리고 하필이면 재수없게도 그 타이밍에 법정, 황충 등 촉의 문무 핵심인물들이 다 죽어버리면서 촉군의 대도독이 풍습같은 자였던것만 봐도 촉군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수 있죠. 적벽대전이나 관도대전처럼 전력의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진 전투도 아니고 처음부터 열세 국면에 있던 상황에서 무리수를 둔건데 이걸로 대세를 판단하는 능력을 깎는다면 몰라도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 크게 훼손될만한 그런 전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대패한 전쟁이긴 했지만..
17/02/03 15:16
손권이 반역자 송환, 형주 반환 조건으로 화의 제의했을때 받아 들였으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긴 합니다.
북벌이 좀 더 흥미진진 했을텐데..
17/02/03 16:38
유대와 왕충을 격파하고는 그랬다죠. "야. 조조가 직접 오면 또 모르겠는데, 너희들 따위가 와서 날 이길 것 같냐?"
그럴 만도 합니다. 조인 말고는 조조의 부하장수 중 그에게 이겨본 이가 없으니...
17/02/03 15:55
어렸을때는 연의에 취해 촉빠였는데 지금은 흙수저에 감정이입해서 더 촉빠가 되버렸습니다. 흑흑 촉빠는 삼국지커뮤니티에서는 삼알못이라고 다까던데..
17/02/03 17:15
삼잘알은 제갈량 사후를 잘 꿰고 유명하지 않은(강유, 등애, 종회, 문앙, 육손, 육항 정도 빼고?) 누군가를 빨 수 있어야?...
17/02/03 18:46
비의 추천합니다.
제갈량이 장완+비의+동윤 데리고 이끌었던 국정을 홀로 이끌었으니... 강경파 강유를 달래며 북벌은 나중에 제갈 승상 같은 인물이 나타나면 하자고 했는데 정작 그 자신이 승상 같은 인물이었죠. 피살되지만 않았어도 북벌로 거하게 털어 먹는 건데.
17/02/03 16:11
삼국지를 읽으면서 사람마다 눈여겨 보는 인물이 다들 제각각이라고 하는데
저의경우는 서원직이 크게 보이더군요 제갈량 이전의 유비진영의 군사로서 크지않은 전투지만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고 알고 있고 무엇보다 와룡과봉추를 왜 취하지 않느냐고 유비에게 조언해서 제갈량과 방통을 군사로 영입하는등.. 자기보다 큰 사람을 앞세워줄줄 아는 그릇이라는게 요즘 우리 한국 정치를 보면 대통령병 걸려있는거 같아보이는 사람들이 수두룩~ 한것과 비교되어서... 여권에서 보면 이재오 같은 인물이 이런종류같아보이고 야권에서 우상호 정도?
17/02/03 16:34
서서가 참모(소위 말하는 '군사') 역할을 했다거나 전투에 개입한 기록은 아예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칼질을 하고 다녔던(...) 데다 위에서 우중랑장을 역임한 걸로 봐서는 오히려 무관에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제갈량을 추천한 것은 확실히 기록에 남아 있지요. 먼저 취업에 성공하다 보니 아직 백수로 남아 있는 친구가 신경쓰였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흐흐.
17/02/03 17:16
이릉이릉 얘기가 나와서 급 지식의 공백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릉대전 일으키러 촉이 남동진할 때 한중은 누가 마크하고 있었을까요...
17/02/03 17:30
위연이었을 걸로 봅니다. 219년에 독한중 진원장군이었고 221년경에 진북장군(=북쪽을 지키는 장군)이 되었으니 여전히 자리를 옮기지 않은 것으로 보이거든요. 아울러 위연이 이릉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까지 고려하면 거의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17/02/03 18:10
마초는 222년에 사망했는데 이릉전투 전후로 보입니다. 당시 47세였고 따로 유언을 남겼으니 아마 병사일 테지요. 이릉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릉전투에 참전했다가 상처를 입어서 사망했다..... 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디에도 그런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17/02/03 20:43
曺훈현 vs 서봉수와 비슷하죠. 금수저 vs 흙수저 싸움이라 출발선부터 다르고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데다가 실제로 결과도 언밸런스지만, 탑독이 밟아도 밟아도 쓰러지지 않고 끝끝내 발목 잡아채는 언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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