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PGR21의 김재규에 관련된 예기가 나오면 항상 의문점이 생깁니다.
경호실장따위가 어떻게 정권실세이자 정보기관의 수장인 중앙정보부장보다 권력이 큰지 말입니다.
항상 의문점으로 남아왔다가 오늘 김재규 관련글보고 한번 차지철에 대해 검색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차지철과 그 당시 경호실장의 위상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위해 오랜만에 글써봅니다.
육영수 영부인 저격사건
1974년 광복절행사에 북한 간첩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할려다가 옆에 있던 육영수부인이 총에맞고 쓰러집니다.
이 사건이후 박 대통령은 신변에 큰위협을 느꼈을겁니다. 또한 가면 갈수록 유신에대한 저항이 늘어나고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자신에 대한 경호가 한층 강화해야 할 필요성를 느꼈을겁니다. 그래서 청화대 경호실대한 위상을 강화 시켜줍니다.
이때 기존의 경호실장이 사건의 책임지고 물러나고 후임으로 들어온 경호실장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차지철입니다.
육사에 떨어진 차지철
경호실장이 어떻게 정권실세가 됬는지 알려면 우선 차지철에 대해 알아볼필요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난건 별로 알필요가 없고 1953년 고등학교 졸업후에 육군사관학교에 지원을 했으나 떨어집니다.
군인이 장래 꿈이 였는지 육군보병학교 갑종장교에 지원하고 거기에 들어 갑니다.
갑종장교는 오늘날 학군단 학사장교랑 비슷한것인데 당시에는 학사장교라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말단 장교나 부사관을 육군보병학교에서 뽑았고 갑종은 장교 을종을 부사관을 뽑았었습니다.
아무튼 차지철은 출세욕이 있었는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미국으로 유학을 갑니다. 그것도 두번이나 갔다옵니다.
두번이나 미국 군사학교를 수료한후에 차지철은 1961년 대위로 제1공수특전단 중대장이 됩니다.
그리고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고 박정희의 경호대 한사람 소령으로 진급 곧이어 경호차장까지 됩니다.
1963년 중령으로 예편하고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듭니다.
군권을 잡은 경호실장
다시 1974년 이야기로 돌아와서 박대통령은 기존의 경호 인력으로는 자신을 경호하기 힘들다고 생각 했나봅니다.
그래서 생각한게 군대로 하여금 자신을 경호하게 하였습니다. 친위대랑 비슷한 성격으로요
그리고 경호실장을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올리고 경호차장과 차장보를 현역장성으로 임명합니다.
또한 수도방위사령부도 경호실에서 지휘 할수 있게 합니다.
보병학교에 중령출신인 차지철이 차장에 중장을 차장보에 준장을 거느리고 수도방위사령부를 지휘하는 막강한 권력을 잡습니다.
이런 경호실을 거쳐간 장성들은 군대내에 실세 됩니다. 전두환, 노태우도 경호실을 거쳐서 군대내에서 실세가 된사람이고요
그는 육사에 대한 컴플렉스가 강했는지 육사출신들은 자기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자기가 가진 군권을 적극적으로 보여줄려고 했었습니다. 그 예를 몇가지 보자면
그는 새벽에 느닷없이 전차부대를 동원해 청와대 주위를 돌개 했으며 여기에 주변시민들이 불안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국군의 날 사열식을 본따 국기하강식이라고 해서 장관, 차관 등을 초청해 아주 삐까번쩍 무력시위행사 했다고 합니다..
이 행사가 매우 유명해져, 장관이든 4성장군이든 초청을 받고 오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 였고요
또한 당시 육사 출신이 별을 달면 작전차장보 전두환에게 인사를 왔는데 전두환은 꼭 이들을 차지철에게 데려가 인사를 시켰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차지철은 이를 매번 흡족히 여기며 자기 이름이 새겨진 지휘봉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중앙정보부와의 갈등
차지철은 군권행사에 만족을 못 느꼈는지 경호실내에 정보팀을 설치하여 운영도 했습니다.
경호실이 중정보다 청와대에 가깝기 때문에 항상 경호실이 먼저 중요 정보를 청와대에 보고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정과 갈등이 심해졌고 10.26의 발단이 시작 됩니다.
또한 차지철은 비서실 업무에도 간여하기도 합니다. 당시 비서실장이 김계원인데 육군대장에 중정부장까지 지낸사람인데
차지철은 항상 비서실장인 김계원을 깔보고 무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워낙 차지철 위세가 쌔서 꼼짝 못했다고 하네요
(얼마전까지 비서실장이 민정수석한테 꼼짝 못하는것보면 역사는 반복되네요
아버지는 그 위세가 쌘 경호실장 때문에 몰락하고 그 딸은 민정수석 때문에 몰락한것까지 같네요)
차지철의 유산
시간적 배경을 옮겨 1979년 10월 26일로 옮겨 봅시다.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거사를 마치고 김계원 비서실장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차에 태우고 나갑니다
남산에서 김재규는 자신의 본거지인 중정을 놔 두고 육본을 선택 합니다.
후대에 이 결정이 김재규의 실수고 이때 중정을 갔더라면 성공 할수도 있을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김재규는 육본으로 갈수 밖에 없었고 중정으로 갔어도 실패 했을 것입니다.
차지철의 이런 권력 남용은 경호실 권력만 키운것이 아닙니다. 경호실에 속한 현역 장성들도 경호실을 통해 중앙 정치에 개입할수 있었고
또 한 경호실 출신 장성들이 실세가 되어 군대 전체의 막강한 권력층으로 성장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두환도 그중 한명입니다.
즉 유신 말기에 가면 현역 군인들이 또 한번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그들을 신군부라고 부르기도 하죠
김재규는 거사를 했을때 군인들을 포섭, 제압하지 않으면 이번 거사가 성공하기 힘들거라 생각 했을 것입니다.
만약 육군 참모총장이 중정에서 회유 협박 당하여 계엄발표하고 정국을 자신이 잡는 단들
그 밑에 권력을 잡고있는 경호실 출신 군인들을 납득을 시킬수 있을까요?
육군참모총장이 힘을 최대한 발휘 할수있는 곳은 중정이 아니라 육본이겠죠
그런데 김재규는 차지철과 경호실 출신 장성에게 권력을 빼앗긴 육군참모총장이 자신의 편이 되어 줄줄 알았나봅니다.
결국 경호실 출신 군인들이 12월 12일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군사독재를 연장시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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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 어머니와 종교를 관련한 이야기를 하자면
차지철이 어머니 앞으로 재산을 많이 남겨놨는데요
차지철하고 그의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 목사가 그가 죽고나서
어머니가 목사에게 의지하였는데 그 목사는 어머니 재산을 다 빼돌렸고
차지철 어머니는 허름한 집에서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극빈층으로 살다가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