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중순, 사무실에서 시간 때울 무언가가 필요했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클래시 오브 클랜을 시작해서 제법 열심히 했다. 일이 없는 날에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접속했을 정도였고, 덕분에 자연스레 큰 규모의 클랜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24시간 다양한 나이와 직종의 사람들로 그 클랜은 늘 북적였다. 채팅이 너무 활발해서 지금 저 사람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채팅창을 주욱 내려서 대화의 흐름을 파악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클랜 규칙상 가입 당시 나이와 직업, 사는 지역 등을 공개해야 했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클랜원들 모두 알고는 있었다. 나는 ‘아재’라는 걸. 물론 그걸 직접적으로 채팅창에 쓰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그 날’까지는.
그 클랜에는 소위 말하는 ‘공대 여신’처럼 젊은 여성 클랜원들도 몇몇 있었는데 그날 늦은 오후도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몇몇 여신님들과 클랜원들의 활발한 채팅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입한지 얼마 안 된 20대 초반의 여신님 중 하나가 난데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제랄드님은 직업이 어떻게 되세용?”
헛, 황공하게도 내게 말을 걸어주시다니, 즉각적인 답변이 필요했다.
“아, 네,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자영업이고요. 하하”
“우왕, 디자이너요? 멋지시네요~ (& 하트 뿅뿅 이모티콘)”
멋지긴 쥐뿔. 여튼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건넸으니 예의상이나마 뭔가 친한 척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여신님의 직업을 묻고 싶었다. 문득 얼마 전 여신님 가입 인사 때 여신님의 직업을 이미 들었다는 게 생각났다. 문제는 그 정확한 용어가 퍼득 떠오르지 않았다는 거. 그 뭐냐, 요즘 핫한 운동이고, 요가도 아닌, 에어로빅도 아닌 전신 근육 운동. 저 여신님도 그거 강사 하신다던데, 아, 뭐였더라?
돌이켜 보건데 그 시점에서 난 잽싸게 네이버를 검색하여 그 운동의 정확한 명칭을 알아냈어야 했다. 하지만 난 어처구니없게도 내 기억력을 믿었고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OO님은 테라피스 강사라고 하셨죠?”
“네?”
그 순간 약 2.2초간의 적막 후, 당시 접속해 있던 약 22명이 만들어낸 무수한 숫자의 키읔들로 채팅창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아뿔사, 뭔가 용어가 틀렸구나 싶었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제랄드님 키읔키읔키읔 아 진짜 키읔키읔키읔 아재요...”
“키읔키읔키읔 테라피스으으으~~~~ 키읔키읔키읔키읔키읔키읔”
“풉, 필라테스에요. 아 역시 아재셨어 키읔키읔키읔”
“자, 우리 이제 제랄드님을 위해 클랜 이름을 테라피스로 바꿉시다.”
사실 나는 나이에 비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최신 유행과 트랜드의 섭렵하고 있음은 물론, 특히나 P모 사이트에 LG마케팅팀이 만들어낸 이상한 포스터가 올라오면 디자이너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올드한, 트랜드도 모르고 만든 결과물을 비웃는데 동참하고 있으며, 각종 덕후 및 걸그룹 용어 역시 꿰고 있는데다가 최근 범람하고 있는 아재 개그류에 단 한 번도 웃은 적 없다는 등의 여러 핑계와 변명거리가 떠올랐지만, 그렇다, 앞서 말했듯 모든 것은 너무 늦어버렸다. 이런저런 비루한 변명 대신 채팅창에 땀을 몇 번 흘려주는 노련함으로 대처한 후 조용히 일어나 창 밖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했다. 나는 아재라는 걸. 아오, 제길.
*
1997년은 내게 참으로 특별한 해였다. 간만 보다 포기하는 짝사랑 따위가 아닌 진짜로 연애를 시작했던 해였으니까. 유유상종이라고 절친들 대부분이 솔로였을 때 나는 술을 싫어하던 그녀를 위해 당.연.히. 그들과의 연락을 끊었고, 어쩌다 여친님의 재가를 얻어 모처럼 그 자리에 홀로 참석하는 날이면 처음에는 변절자를 질시하는 그들의 싸늘한 눈빛에 어색해하다가도 구라가 반쯤 섞인 내 화려한 연애담에 귀를 쫑긋하는 녀석들의 가련함을 비웃었다.
그녀는 여러모로 내게 과분했다. 일단 이뻤다. 심지어 착했고, 배려심이 깊었고, 집간 거리도 걸어서 5분이었으며, 스킨쉽도 다소, 어쩔 땐 매우 적극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의외로 흡연자였지만 그게 뭐가 중헌디. 장장 2,000일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싸우거나, 밀당을 하거나, 지금도 인터넷에서 자주 회자되는 남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여자들만의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나를 헷갈리게 한 적도 없었다. 내가 밤새 술을 마시든, 밤새 56K 모뎀으로 인터넷질을 하든, 졸업 후 잠시 백수생활을 할 때에도 내 게으름에 대해 일절 참견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 건강 걱정을 해 주는 그런 사람. 내 조잡한 필력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과 빚을 안겨준 사람.
연애 초창기 시절, 둘 다 학생이라 가난했다. 데이트 코스라고 해 봐야 동네 비디오방, KFC, 분식집, 커피숍, 어쩌다가 영화관 가는 게 전부였고, 데이트 후 항상 그녀의 집 앞 어슴푸레한 가로등 뒷편에서 가벼운 포옹, 혹은 키스 후 귀가하던 게 하루의 즐거움이었다.
참 순수했고, 참 아름다웠던 그 시절. Happy man, Enjoy Love, Beautifu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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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오랜 야근 후 간만에 일찍 퇴근해서 치맥에 프로야구를 보던 중이었다. 하필이면 김재환이 결정적인 홈런을 쳐서 저 녀석을 응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설거지 중이시던 와이프님께서 쓰레기 좀 버려달라고 하셨다. 하필 무더운 날이었던지라 츄리닝 반바지에 란닝구, 아니 런닝셔츠 차림이었다. 선택지는 2가지, 하나는 위에 뭐라도 하나 걸치고 나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미 맥주도 좀 마셨겠다 귀찮으니 그냥 이대로 나가서 버리고 오는 것이었다. 집이 2층이라 후다닥 다녀오면 1분 내로 해결 가능했기에 후자의 유혹이 강렬했다. 하지만 차마 그러기도 좀 애매한 게 돌이켜 보건데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런닝셔츠 바람으로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주변 이웃에 대한 배려 때문... 이라기 보단 런닝셔츠로 집 밖이라니! 그건 너무 아재스럽잖아! 그렇다. 내가 아재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였을 게다. 이렇게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잡생각은 계속 길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기왕 밖에 나간 김에 담배도 한 대 피고 오면 좋을 것 같은데 그냥 맘 편하게 위에 뭐라도 하나 입고 나갈까? 아니야, 귀찮은데 그냥 이대로 나가서 담배까지? 그러다가 누가 보면? 술 때문인가? 갑자기 왠 결정 장애? 이제 곧 와이프님께서 재촉하실 텐데, 어쩌지? 그래, 물어보자.’
내 런닝셔츠를 펄럭이며 와이프님에게 여쭈었다.
“나 이대로 나가서 쓰레기 버리고 오면 완전 아저씨 되는 거겠지?”
와이프님의 대답은 의외로 쿨했다.
“뭐 어때? 금방 갔다오면 되잖아.”
“그럴까?”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과거 테라피스 사건도 있었겠다, 그냥 인정할 건 인정하고 인생을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말자. 이미 모든 건 늦었다. 누가 좀 보면 어때?
*
1997년에 연애를 시작했으니 아마 1998년 여름 즈음의 일이었을 것 같다. 그 날도 뻔한 데이트 후 늦은 밤 그녀의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가로등 뒤편 으슥한 곳에서 늘 그랬듯 서로 꼭 껴안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그런 과감한(?) 애정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해외에 계셨으며, 어머니도 부업 때문에 늦게 오시기 때문에 최소한 그녀의 부모님에게 발각될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웃도 있고 어쩌다 왕래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둘 다 눈에 뵈는 게 없던 시절이라 그냥 가능했다.
얼마나 껴안고 있었을까, 뒤통수로 인기척이 느껴지기에 그녀를 안은 채로 고개만 돌려 뒤쪽을 확인했더니 어떤 ‘아재’께서 츄리닝 반바지에 런닝셔츠 차림으로 담배를 입에 무신 채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고 계셨다.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그녀에게 열중하고 있는데 당최 그 아재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 보고 계신 것일 테지. 혹은 어린 것들이 골목길에서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보다.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혹시 이웃인가 싶어서 그녀를 안은 자세 그대로 그녀의 등을 쿡쿡 찔렀고 그녀에 귀에 소곤소곤 말했다.
“혹시 아는 사람?”
그녀는 까치발로 내 뒤 편의 아재를 봤고 이렇게 말했, 아니 외쳤다.
“어머! 아빠!”
... 어?
*
내 부모님은 동네 시장 한 자리에서 근 30년 넘게 장사를 하셨다. 이사 오기 전 동네까지 포함한다면 40년을 훌쩍 넘는 동안 같은 장사를 하셨다. 같은 장사란 ‘속옷 장사’였다. 초장기에는 동대문,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받아 동네에서 파는 일로 시작하셨지만 내가 태어나고 얼마 후, B로 시작하는 유명 메이커 전문 대리점이 되셨다.
초등, 아니 국민학교 때 반에서 부모님 인적사항을 적을 일이 있었는데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할 지 난감했던 때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왠지 사실대로 ‘속옷가게’라고 쓰면 애들이 놀릴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걸 애들이 볼 일 없을 거라는 사실 따위는 망각한 채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한참을 고민하던 차에 어디선가 들었던,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나이에 떠오른 것치고는 굉장히 그럴싸한 용어가 생각났다. ‘의류업’ 그래, 이거야.
그 날 저녁 아버지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더 좋은 용어를 말씀해 주셨다. ‘란제리 판매업’ 오오, 란제리, 오오. 그래, 란제리라고 하면 애들도 뭔지 모를 거고, 영어인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용어가 고급스러워. 역시 아빠는 다르군.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대로 가게 유리문에 광고지를 붙이신 걸 보게 되었다. 광고지란 요즘도 들어있는 런닝셔츠 포장 안쪽 두꺼운 종이에 매직으로 직접 글을 쓰신 거였는데, 내용은 이랬다.
‘란닝구 50% 세일’
당시 런닝은 알아도 란닝구가 뭔지는 몰랐지만 뭔가 고급진 용어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렴. 란제리라는 용어도 아시는 우리 아버지인데. 런닝과는 다르다, 런닝과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런닝셔츠의, 왠지 일본풍의 야매스런 변형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훨씬 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인 얼마 전 런닝셔츠와 란닝구가 젊은 세대와 아재를 구분하는 주요 용어라는 글을 인터넷 어디에선가 확인하고 절대로 란닝구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쓰는 순간 아재다. 조심하자. 유사 예는 팬티를 일컫는 빤스. 역시 밑줄 쫙. 별 것도 아닌 거에 너무 민감한 거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
그녀 집 앞에서의 애정행각을 그녀 아버님에게 들켰을 때, 내가 응당 했어야 할 모범적인 행동은 대략 이랬을 것이다. 먼저 포옹을 풀고 넉살 좋게 꾸벅 인사를 드린 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OO이와 사귀고 있는 OOO입니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대충 이렇게 말씀 드리고 그 이후는 이어질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뭐 그런 거. 하지만 이걸 직접 당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정식 용어로 ‘인실...’ 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니, 너희 아버지 외국에 계시다면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라고 묻는다든지 뭔가 다른 대처를 생각할 겨를 따위는 0.22초도 없었다. 그 순간 내가 실제로 한 행동은 그녀를 거칠게 확 밀친 채 어디론가 도망치는 것이었다. 도주 방향도 우리집 방향이 아닌 완전 엉뚱한 방향이었다는 사소한 사실 따위는 당시 내게 닥친 헥토파스칼급 포퐁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한참을 길거리에서 방황을 하다가 피시방, 아니 집에 돌아왔고 난 궁상맞게도 방의 불은 다 꺼버린 채 머리를 움켜쥐며 쭈그려있었다. 그녀와 헤어질 거라는 당연한 예상 때문이었다.
‘남자답지 못하게 도망이나 치다니! 게다가 도망칠 때 그녀를 정말 쎄게 밀었던 거 같은데 넘어지진 않았는지, 그걸 확인할 생각도 안한 채 마냥 도망칠 따름이었던 내 흉한 모습에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간 나누었던 은밀한 밀어들과 사랑이 속삭임 따위는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아갔겠지? 아, 난 쓰레기였어! 이 쓰레기! 비겁한 쓰레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그런 절망에 빠진 채 밤새 행여나 올 연락을 기다리며 삐삐만 쳐다보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놀랍고도 다행스럽게도 다음날 아침, 매일 나를 깨우기 위해 보내왔었던 그녀의 알람 삐삐는 그 날도 어김없이 왔고, 그날 저녁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동네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다시 문제의 집 근처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일정에 없던 휴가를 받아 갑자기 귀국했다는 설명과 함께 어제 많이 놀랐냐며 되려 내 걱정을 해 주는 모습에 다시 한 번 그녀의 바다 같은 이해심과 나 같은 쓰레기이자 비겁자를 용서해주는 마음씀씀이에 감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평생 그녀를 지켜주겠노라고.
얼마 후 그 날의 사건을 반성함과 동시에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겠노라는 나의 굳은 다짐을 담아 노래방에서 그 해에 발표된 최신곡 한 곡을 그녀에게 불러줬는데 1998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엄청나게 유명한 그 명곡의 제목은, 손이 오글거리는 관계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차마 무릎은 꿇지 않았던 거 같다. 아마도.
*
오랜 고민 끝에 드디어 쓰레기 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물론, 티셔츠 하나 걸치고 나왔다. 담배을 한 모금 마시자 문득 예전 그 사건이 생각난다. 그 때 그녀의 아버지는 우사인 볼트 따위는 귀싸대기를 갈길 정도의 속도로 도주하던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그리고 이어서, 이제 나도 그녀의 아버지처럼 런닝 바람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울지를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미친 놈처럼 배시시 헛웃음이 난다. 조금 더 지나면 나도 그분처럼 아무 스스럼없이 그런 차림으로 나와 담배를 물 수 있으려나?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아재가 되고 싶을리 없잖아. 안 돼. 그 날은 점점 다가오겠지만 나는 끝까지 거부하리!
*
요즘 무척 덥다. 누진제도 조금 개선되었다기에 사무실에서는 아침부터 업무시간 내내 에어컨을 돌리고 각자 선풍기까지 끼고 있는데도 뭔가 시원한 맛이 없다. 에어컨 설정 온도를 28도에서 25도 정도로 내려야 그나마 좀 살 것 같다. 마침 자주 들르는 P모 사이트 유머게시판에 올라온, 날씨가 너무 더워 태풍이 그리울 줄은 몰랐다는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있을 때, 옆 자리 동생 녀석이 갑자기 ‘형!’ 하고 호들갑스레 나를 부른다.
“왜?”
“아 놔, 형, 크크. 너무 프리한 거 아니에요?”
이제 보니 나 지금 사무실에서 란닝구 차림이다. 아무리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사무실이라지만 여기에서 이런 차림으로 있어 본 건 난생 처음이다. 문제는, 언제 웃옷을 벗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는 거. 아마 점심 먹고 와서 너무 더워서 그랬을 거라는 추측 뿐.
이런 제길,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