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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25 21:04:49
Name aura
Subject [일반] 여자화장실 탈출기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깊은 절망감에 허덕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과 발이 달달 떨렸고, 초조함에 잘근잘근 손톱을 깨물어 씹었다.


내 마음 속 깊은 심연에서부터 짙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 휴지! 휴지가 없다.
휴지가 없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그래. 휴지따위 없으면 사면 되겠지. 하지만, 문제는 여긴 화장실이다.
그것도 공원의 공중화장실이다.


주르륵.


목 뒷덜미를 타고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마치 벌레가 피부 위를 지나가는 것 같은
그 소름돋는 감촉에 내 이성이 완전히 돌아왔음을 느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두 번째다.


둘, 지금 내가 갖힌 화장실은 여자화장실이다.
그래, 눈치가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는 남자다. 남자라고!


상황을 요약하자면,
나는 지금 화장실에 갇혔다.
거사를 마치고, 휴지가 없는 상태로, 그것도 여자화장실에.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어보인다.


상황을 정리하니 더욱 깊은 절망감에 앞이 캄캄해졌다.
오 신이시여, 주여. 어찌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나이까.
어찌되었든 나는 오늘, 아니 지금!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좋아하던 여자애와 고대하던 데이트가 바로 오늘이니까.


후우. 침착하자. 나는 고3이다. 즉, 한국 사람들의 뇌가 가장 팔팔하고
그 기능이 정점을 찍었을 나이다. 머리를 굴려보자.
타개책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존재해야만 한다.


상황에 대한 타개책을 강구하기에 앞서 나는 충분한 변명을 하고 싶다.
내가 외딴 공원의 여자화장실을 쓰게 된 이유는 변태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아주 정상적이고 멀쩡한 한국의 청소년이다. 절대 오해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내가 여자화장실을 쓰게 된 까닭은 단지, 우주의 우연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 데이트로 인해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와 공원을 지날 무렵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것은 잠시도 참을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하고 오만한 정신력과 인내심으로는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강력한 변호를 하자면, 정말 단 3분도 견딜 수 없는 거대한 힘이었다.


둘, 최대 3분의 리미트 타임동안 갈 수 있었던 유일한 화장실인 이 곳의 남자화장실은 전체 공사중이었다.
그래,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부디 나를 변태로 여기지 말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물론 이 화장실에 들어올 여성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어쩌면 이것이 신이 나에게 내린 운명이자 시련인가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하필이면 이 중요한 날에 갑자기 거스를 수 없는 힘이 내 육체와 본능을 지배하고,
이성을 되찾아 줄 성지는 굳게 닫혀있었다. 이것이 하늘이 내린 시련이라면,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좌절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해야만 할 일이 있었으므로.


후우.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심호흡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차근차근 해결책을 찾아보자.


먼저 첫 번째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 휴지. 그래 나는 아직도 거사에 대한 뒷처리를 하지 않은 채
온 세상의 찝찝함을 다 갖은 채로 앉아있었다.
혹자는 양말을 통해 이 시련을 극복했노라 간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른 아주
치명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오늘은 무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린다는 대서날이다.
이 더운 날 양말에 운동화를 신을 용기가 없던 나는 그만, 맨발에 샌들이라는 인생 최악의 선택을 해버렸다.
내게 닥친 시련의 치밀함을 새삼 다시 깨닫자 몸서리가 쳐졌다. 마치 일부러 누군가가 나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치밀하고도 완벽한 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양말이 없다면, 그 대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아아. 대서. 한 여름날의 무더위여. 어찌하여 너는 나에게 최소한의 의복만을 갖추게 했는가.
지독한 좌절감이 들었다. 결국 최후의 보루는 팬티 한 장 뿐이었다.


이것으로 뒷처리를 하는 상상을 해봤다. 그 지독한 모멸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그녀를 만나러 가는 상상.
하지만 그녀에게 만큼은 떳떳하고 싶었다. 그 마지막 자존심이 최후의 보루를 사용할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 때 문득, 파란 쓰레기통,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그것에 내 시선이 쳐박혔다.


하하하.
이 것 빼곤 더 이상 방법이 없잖아.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어.
더럽지 않아. 그래 재활용! 재활용 하는 것 뿐이야...


지극한 자기합리화를 통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할 수 있다. 아이 캔 두잇.
덜덜 떨리는 손이 파란 쓰레기통에 다다랐을 무렵.


덜컥.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악에서 더 최악으로.


- 아 진짜 덥네. 날씨 미친 거 아니야?
- 그러게, 나 화장실 좀?


순간 익숙한 목소리에 몸이 멈춰버렸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이 목소리는 분명 그녀와 항상 붙어다니던 단짝의 목소리였다.


맙소사.
혹여라도 내가 여기 있는 사실을 들킨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종말이다.
연애의 꿈은 고사하고, 학교도 얼굴들고 다니기 힘들어 질 것이다.
덤으로 내가 지나갈 때마다 여자애들이 수근대겠지.


머릿속으로 지옥도를 그리는 와중에 옆 칸으로 그녀의 단짝이 들어왔다.
쏴아아하고, 물 내리는 소리와 동시에 비둘기가 날개짓 하는 듯한 푸드덕 소리가 들렸다.


이 와중에 여자도 역시 사람이구나, 물이 아깝다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갑자기 뇌리에 한 가지 묘수가 스쳤다.
물론, 잘못했다간 최악의 수가 될지도 모르는 도박수였다.


위기(危機), 위험이 있지만 그 속에 기회도 있음을 뜻한다.
그녀의 단짝이 하필이면 이 곳에 나타나게 된 것은 큰 위험이지만,
어찌되었던 휴지를 구걸해볼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큰 기회였다.


휴지를 빌려서 깔끔한 뒷처리 후, 그녀들이 나가고 나면 나 역시 이 곳을 잽싸게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내려온 한 줄기 동아줄에 나의 뇌는 팽팽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육성으로 휴지를 빌려달라는 말은 안 될 일이었다. 내 목소리는 어줍짢게 여자 목소리를 흉내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였다.


그렇다면...
오직 남은 방법은 하나 뿐.


나는 내린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스마트폰을 꺼내어 들었다.
후. 이제 모아니면 도다. 최악은 여자화장실이나 쓰는, 그녀 뿐만 아니라 학교의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변태가 되는 것이고 최선은 나의 인간성과 자존심을 타락시키지 않고 이 곳을
무사탈출 한 후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메모장에 글을 쳤다.


- 죄송하지만 휴지가 없어서... 휴지 좀 빌려주세요.


똑똑 옆 칸을 두드리고 칸막이 밑으로 스마트폰을  넣는 와중에도 과연 이게 잘하고 있는 짓일까
수 백번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 대가없이 얻어낼 수만 있는 세상은 없다.


- 아.


그래, 너도 많이 당황스럽겠지. 세상에 이런 식으로 휴지를 빌리는 사람은 내가 처음일테니까.
나도 처음이야. 처음이자 마지막일거야.


잠시간의 침묵이 숨막혔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기도할 뿐.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만은 면하길.


- 여기요.


칸 막이 밑으로 넘어오는 하얀 휴지가 마치 광명처럼 보였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스스로 두 눈을 비벼봤다. 휘황찬란한 광명은 아닐지라도, 저것은 분명 휴지였다!
지금 이 순간 같은 무게의 금만큼이나 가치있는!


재빠르게 덥썩 휴지를 받고, 거사의 마무리를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과 개운함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변기물을 내렸다.


아차!
이런 바보 머저리 같은 놈!
물을 내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곧 나 나갈게요라는 신호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쏴아아.


나에 이어 그녀의 단짝도 큰 일을 마쳤는지 물을 내렸다.
곧 이어 주섬주섬 옷 입는 소리와 함께 옆 칸의 문이 열렸다.
물을 내려놓고 나가지 않는다면 분명 이상하겠지.
그러나 나는 절대 나갈 수 없다.


- 뭐였어?
- 응?


차라리 들리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두 눈을 꽉 감은 채여서 인지 그녀들이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마치 귀에 대고 얘기하는 것 처럼 크게 들렸다.


- 옆에서 똑똑거리지 않았어?
- 아, 그거? 휴지 좀 빌려달라던데?
- 아무 말도 못들었는데 난?
- 핸드폰으로 휴지 좀 빌려달라고 써서 밑으로 보여주더라고.


제발.


- 근데 이상하지않아?
- 뭐가?
- 굳이 그렇게 휴지를 빌려달라는 것도 그렇고, 물을 내렸는데 왜 안 나오지?
- 음...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그 얄팍하고 알량한 성취감에 휩싸여 물을 내렸던 나를 반성하고 싶다.


- 뭐 무슨 사정이라도 있나보지. 빨리 영화나 보러 가자.
- 그런가.


잔뜩 긴장한 것과는 달리 허무하리만치 그녀들이 빠져나갔다.
긴장감이 풀리자, 참았던 숨이 탁 트였다.


하하.
어쨌든 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여길 탈출하는 것 뿐이다.
그녀와의 약속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그대로 강행 돌파할 생각이다.
혹시 모르니 30초만 세고, 대충 얼굴만 가려서 그대로 돌진이다.


마음 속으로 30초를 세고,
슬쩍 화장실 문을 열어 빼꼼히 밖을 살폈다.
화장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절호의 기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친 듯이 밖을 향해 내달렸다.


행여나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두 손으로 대충 얼굴을 가리고 최대한 화장실과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곧 이어 느껴지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해방감!
프리즌 브레이크의 스코필드가 탈출한 성공한 후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러했을까.
그대로 나는 나의 인간성과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그녀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탈출한 공원의 여자화장실에, 그 문에는 짧은 글귀만이 남아있었다.


- 이번 주말까지 남자화장실이 공사인 관계로 여자화장실을 남녀 공용화장실로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끝.





-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더위 조심하시고, 남녀화장실 잘 구별해서 들어갑시다. 물론 본 글은 100%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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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빛
16/08/25 21:06
수정 아이콘
마지막에 반전이!!
16/08/25 21:09
수정 아이콘
반전이....!!
Around30
16/08/25 21:17
수정 아이콘
혹시 고등학생 이신가요? 그렇다면 더 놀랄것 같네요. 필력이 굉장하십니다. 읽는 제가 조마조마해 숨이 막힐 지경이네요.
16/08/25 21:19
수정 아이콘
고등학생은 아닙니다. 이제 아재가 되어가고 있는 20대 후반입니다.

픽션이기 때문에 고등학생일 뿐이죠 주인공이...
칭찬 감사합니다!
16/08/25 21:18
수정 아이콘
'아니 그런데...

스마트폰을 내민 손이 좀 여자손 치곤 큰것 같더라고 깜짝놀랬잖아'

라던지 하는게 있어야
16/08/25 21:21
수정 아이콘
위기를 좀 더 부각시키고 싶었지만 그럼 글을 나눠써야해서... 한 방에 쓰고싶었습니다. 크크.

좋은 의견 감사드리고 다른 글을 쓸 때 참조하고 더 생각해서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yangjyess
16/08/25 22:03
수정 아이콘
모든 소설은 자전적이며 모든 자서전은 소설적 허구라고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볼일을 본 이후 휴지를 찾는 시점이라면 긴장감이 좀 떨어지네요 크 배부른 관점 아닌가요? 여자화장실을 탈출해야 한다는 미션 클리어 과정과 이후 반전은 좋았습니다 킄
16/08/25 22:09
수정 아이콘
칭찬감사합니다. 모자른 부분은 계속 쓰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첫술부터 배부를순 없으니 계속 다양하게 써보며 노력해볼게요!
김첼시
16/08/25 22:05
수정 아이콘
기승전결 좋네요 순간 몰입해서 쭉 읽었습니다.
16/08/25 22:1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더 재밌는 글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6/08/25 22:05
수정 아이콘
고3에 데이트라니! 팩션 잘 읽었습니다?!
16/08/25 22:10
수정 아이콘
크크. 고3도 사람인데 데이트해야죠.
픽션입니다. 크크크.
타네시마 포푸라
16/08/25 22:12
수정 아이콘
고3이 데이트라니...신은..정의는.. 죽었어...
16/08/25 22:21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드려여 크크. 다음 단편 소재를 또 생각해봐야겠네요.

잘쓰는 사람은 별 것 아닌 소재로도 재밌고 긴장되고 몰입감있는 글을 쓰더라고여 부러워요
자취11년차
16/08/25 22:33
수정 아이콘
다시 글 쓰시나요? 아이디가 눈에 익어서..!! 잘읽었습니다 크크 완결 가능한 스토리로 제발..흑흑
16/08/25 22:41
수정 아이콘
취업준비하고 직장다니면서 짬내서 쓰고있어요. 감사합니다. 크크 전에 쓴글들 진짜 부끄럽습니다... 글 잘 쓰고 싶어요.

물론 완결 못낸 것들 완결 낼겁니다 크크.
자취11년차
16/08/25 22:49
수정 아이콘
으흐흐..취업수기나 그런글들도 잘 봤습니다 눈팅만 자주해서 안남기는 버릇때매 응원 마니 못했네요 크으 자주 자주 글 써주세요 미리 감사합니다? 크크
16/08/25 23:0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크크
사악군
16/08/25 22:43
수정 아이콘
폰이 들어올 때 꺅 변태몰카범이야! 라며 폰을 밟아 부시고 밖에서 문을 두들겨대는데..
16/08/25 23:01
수정 아이콘
크크 아쉽지만 아니었어요!
뽀로뽀로미
16/08/25 22:51
수정 아이콘
제 군대 후임이 경찰서 끌려간 사건과 비슷하네요.

군대 후임이 대학교 1학년 때 겪은 일이라고 합니다.
이 놈이 학교샤워실에서 혼자 샤워를 하고 있었습니다. 샤워를 거의 마칠 무렵이었는데 입구쪽에서 여학생들 목소리가 조잘조잘 들리더랍니다.
'뭐야..?'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뿔사...여기 여자샤워실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 온몸이 감전된 듯한 충격과 함께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왼쪽은 남자샤워실이고 오른쪽은 여자사워실인데 자기가 오른쪽으로 들어왔던게 생각난 거지요.

너무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더랍니다. 어..어.... 그러는 사이에 여자들이 샤워실로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얘는 일단 구석에 숨었답니다. 샤워실 중간에 일자로 된 벽이 있어서 보이지 않게 숨을 수는 있었는데 너무 당황해서 몸이 덜덜 떨렸다고 합니다.
'아.... x됐다.... 어쩌지..어쩌지...'
이미 머릿속은 하얘졌고 심장은 쿵쾅거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대다가 스친 생각이,
'얼굴을 가리고 순식간에 샤워실을 뛰쳐나가서 밖에 벗어놓은 옷을 들고 왼쪽 남자샤워실로 피신하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부리나케 샤워실 문을 열고 뛰쳐나간 후에 옷가지 챙겨들고 후다닥 왼쪽 남자샤워실로 들어가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들리는 비명소리에 사색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인지 남자샤워실에도 여자들이 있더랍니다. 여자들보다 더 놀란 이 불쌍한 후임병은 알몸이라 밖으로 도망갈 수도 없고
어버버하다가 여학생들한테 둘러싸여서 이내 곧 경찰에게로 인계 되었습니다.

경찰이 와서 보더니 "안 그래도 요즘 학교샤워실 훔쳐보는 변태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었는데 너구만!" 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사실대로 다 얘기하고 어찌저찌해서 겨우 단순해프닝으로 풀려났습니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최근에 여자샤워실 창문틈으로 몰래 훔쳐보는 변태가 출몰해서 여학생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고, 학교관계자에게 여자샤워실 구조가 밖에서 훔쳐보기에 취약한 구조니까 남자샤워실과 바꿔달라는 건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오늘부터 샤워실을 바꾸기로 하고 샤워실 입구에 있는 남녀 푯말을 바꿔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후임병은 기존에 왼쪽이 남자, 오른쪽이 여자샤워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날 샤워실에 들어갈 때 새로 바꿔달아놓은 푯말을 보면서도 남녀샤워실이 서로 바뀌었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푯말이 시키는대로 정직하게 오른쪽 남자샤워실로 제대로 맞게 들어간 겁니다. 문제는 나중에 들어온 여학생들이 새로 바뀐 푯말을 못 보고 여전히 오른쪽이 여자샤워실이라 생각하고 잘못 들어온 거지요. 후임병은 여학생들이 들어오니까 당황한 나머지, 새로 바뀐 푯말에 맞게 제대로 들어왔다는 건 잊어버리고 기존에 알던대로 오른쪽으로 들어왔으니 도리어 자기가 여자샤워실로 잘못 들어왔다고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이후엔 정말로 왼쪽 여자샤워실로 피신했다가 붙잡히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과에 소문이 퍼져서 그런거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하고 다녔지만 왠지 모르게 여학생들은 변태를 보는 듯한 의심의 눈빛이었다고...
"제대하고 복학하면 이런 소문은 다 잊혀져 있겠지 말입니다?" 라고 묻는 후임병에
"글쎄.. 학과 레전설 얘기는 대대로 술안주감이라던데..."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크크크
16/08/25 23:02
수정 아이콘
크크 역시 현실은 소설보다 재밌네요. 크크크크크. 진짜 이런 소재좀 끌어모아서 소재단편집 내보고 싶네요 크크크크크. 알량한 제 경험가지고는 부족해서 많이 인터뷰하는 편인데도 항상 소재에 목마릅니다.

잘쓰시은 분들은 별 거 아닌 소재로도 재밌지만요...
16/08/26 00:30
수정 아이콘
아 마지막에 픽션이란 사실에 김이 좀 샙니다..ㅠ
16/08/26 07:15
수정 아이콘
기본적으로 인터뷰한 대상이 있으니 사실 50%만 픽션이하고 해야겠네요 크크.
cienbuss
16/08/26 01:31
수정 아이콘
자작은 추천! 이라고 외쳐보고 싶었는데 ㅠ
16/08/26 07:16
수정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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