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쭉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밖에 시간이 없어서 벼르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이 육이오~)
근데 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별거 아닌 이야기입니다.
서론은 요쯤에서 줄이고 바로 시작할게요~
1. 할아버지
6.25 당시 살던 곳이 용인이었습니다.
전쟁발발 3일만에 서울이 점령당했는데 용인이라고 무사할리 없죠~
서울에 살았어서 한강다리 건너서 피난가는 입장이었다면 덜덜덜 했겠지만
그렇진 않았고요... 그냥 고향에 있기로 결정합니다.
이유는 딴건 없고,,,
일단 자기 땅에서 농사짓는 농사꾼이셨고,,,
전쟁이 누가 이길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일단 자리 지키면서 주변 눈치 좀 살폈죠..
북한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오고,,
마을 사람들 모아다가 공산주의 사회의 우수성을 설파하면서
점점 주민들은 동화되어가던 즈음...
주민들 중에 무슨 반장, 어떤 반장 등등
사회주의 사회의 행정체계에 맞는 직함을 임명했었죠~
저희 할아버지는 그냥 공산주의에 동화되는 듯 안되는 듯
전략적으로 어영부영 하였고,,, 결국 그 무슨 장 자리는 안맡았습니다...
결국 그해 후반기 국군이 다시 수도를 회복했고,,
그 마을도 다시 들어와서 해방시켰고,,,
그 무슨 장자리 차지하던 사람들은.......(아마도 끔살...)
결국 할아버지의 선택 덕에 생명과 재산은 지킨 셈이죠...
할머니가 살아 생전 할아버지를 웬수처럼 여겼는데
이 시기 이 공로만큼은 인정하셨음....
2. 첫째 큰 아버지
그 당시 나이가 18세 정도 되었습니다.
전쟁 발발하자 곧 징집이 되셨는데
그게 바로 국민방위군!!!
이건 뭐 군복도 안주고 총도 안주고 훈련도 안시키고
가장 중요한 밥도 안주는데 군인이래...
근데 군인이니깐 명령을 받는데 오늘은 저기서 모이라고 명령떨어지고,
다음에는 저기소 모이라고 명령떨어지고...등등
그렇게 전국일주를 쫄쫄 굶어가며 하셨죠~
그 국민방위군 땜에 팀킬 당하신 분들도 많으신데
큰 아버지는 용케도 살아오셨습니다...
3. 둘째 큰 아버지
그 당시 나이가 10세 정도였습니다.
동네에 하나뿐인 라디오에서 북괴놈이 새벽에 기습공격해서 내려오고 있다고
보도가 되자마자 큰 아버지께서는 만세를 부르셨답니다..
학교 안가도 되고 숙제 안해도 된다고.....ㅡㅡ
그 지역에 주둔군이 많이 바뀐 편인데
북한군 주둔할 때도 거기 숙영지에서 놀고,
국군 주둔할 때도 거기 숙영지에서 놀고,,
다른 외국군 유엔군이든 중공군이든 주둔했을 때도
군부대 숙영지를 돌아다니며 노셨답니다...
뭐 애들 가지고 해코지하는 군은 없었던듯 합니다...
4. 아버지
전쟁나던해 11월에 태어나셨는데
하마터면 버려질 뻔도 하시고....ㅠㅠ
방공호로 피하는데 걸리적 거리셔서...
근데 마침 앞에 가던 신혼부부가 아기 버리고 먼저
달려나가다 폭격에 맞는걸 보시고는 할머니께서
저희 아버지를 더 챙기시게 되었죠...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중공군이 몰려올 때였죠..
그 마을도 점령당했고 중공군이 민가를 뒤졌었죠..
마침 중공군이 저희 친가를 털고(?) 있었고,,
저희 가족은 모두 허겁지겁 헛간으로 숨어들어갔었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다 통제가 되는 사람들인데
돌쟁이 우리 아버지는 그렇진 않았죠...
마침 그 돌쟁이가 깨어있었는데
다행히도.....
중공군이 나갈 때까지 조용히 가만있어주는 큰 활약을 하십니다 ㅡ.,ㅡb
나중에 집을 확인해보니 별거 없었고,,
부엌에 먹거리가 없어졌었다고....
이름 모를 중공군 누군가 원샷한 참기름병이 나뒹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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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보니 별거 없긴하네요...
그래도 별 피해없이 무사히 그 전쟁통을 보낸게 참 다행이구요..
그 덕에 제가 피쟐에 글을 쓰지 않겠습니까??크크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께 묵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