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는데 여자 친구 임신시키고 결국 소년원 갔서 망한 인생인 줄 알았더니.
다녀와서 결혼하고 건실한 꽃집 청년이 되어서 열심히 잘살고 있는 거 보면 내가 틀렸다.
사실 남 가출하고 소년원 가는 것이 나랑 무슨 관계기에 남 인생을 망하느니 마느니 이야기하는 거냐 말할 수도 있지만. 난 또 우리 아버지 회사가 부도난 마당에 어떻게든 한 달 용돈 좀 벌었어야 했고, 동네 지나다니다가 인사 잘한다고 과외 시켜주신 석원이 할머니의 얼굴을 봐서 그 자식을 몇 분이라도 책상에 붙어있게 하는 것이 내 의무 중 하나였다.
망하다. 개인, 가정, 단체 따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 (네이버 국어사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맨날 왜 아직도 그 서류 안되었냐고 까이고, 이것밖에 못하냐고 까이고, 10년째 여자 친구 하나 없고. 심지어 어제 잠깐 하던 오버워치에서도 메르시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까였다. 아직 끝장은 안 났지만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건 오히려 나 아닌가? 난 이렇게 될지 그때 내가 보면 알았을까?
아니. 가끔 보면 알 때가 있지. 오늘 저녁에 했던 소개팅처럼.
‘망했다.’
[오늘 회사가 늦게 끝나서 10분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그리고 또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내 인생, 틀림없이 이렇게 변변치 않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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