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싱크탱크로 기술 혁신에 대해 주로 연구하는 ITIF는 2016년 2월 24일 발표한 보고서(Groundbreaking ITIF Study Reveals Demographic Traits of U.S. Innovators) 에서 미국의 주요 혁신가들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연구진들은 미국의 주요 혁신가를 세 가지 기준으로 추려낸 뒤 이들 중 900여 명에 대한 서베이 조사를 통해 혁신가들의 배경과 특징을 정리해서 발표했습니다.
ITIF 연구의 주요 결과는 아래 인포그래픽에서 정리되어 있습니다.
* 미국 혁신가들의 인포그래픽: 성별 비중, 외국계 비중, 주요 외국 출생지 분포, 미국 태생 마이너리티 비중, 학위 분포
낮은 여성 비율
우선 미국 혁신가 그룹의 성별 특징을 보면 여성 비율이 12%(정확히는 서베이에 응한 사람들 중에서)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혁신이 활발한 분야는 STEM이라고 통칭되는 수리과학/엔지니어링 분야로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진출이 낮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주요 테크 기업의 남녀 비율을 보면 여성 비중은 30% 남짓에 그치고 있습니다.
* 미국 테크 기업들의 남녀 성비
솔직히 혁신 분야의 여성 진출이 낮은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개선될 것 같습니다.
미국은 전 인종에 걸쳐서 여자의 대학 진학률이 남자를 추월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부 전공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의 고학력화는 학부보다 대학원에서 더 두드러지는 점도 있기에 앞으로 여성의 혁신 분야 진출은 크게 증가할 듯합니다.
* 성별에 따른 대학 진학률의 변화(1994년과 2012년 비교)
다만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지만 여성들이 일의 집중도와 노동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테크 기업(스타트업 포함)에서 일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출산과 육아의 부담은 미국이 연방법으로 출산 휴가를 도입하지 않는 전 세계에서 매우 드문 국가 중 하나(또 다른 국가로는 파푸아뉴기니가 있음)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참 생산성이 높아지는 20대나 30대 초에 출산과 육아로 공백을 가지는 것은 테크 기업들도 부담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애플이나 페이스북에서는 2015년부터 자사 여직원들에게 본인들이 원하는 경우 2만 달러나 소요되는 냉동 난자 서비스를 회사에서 제공하겠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즉, 젊은 시절의 건강한 난자를 냉동 보관해 놓고 일에 몰두하다가 어느 정도 업무 성과를 낸 이후(40대?) 출산을 하라는 이야기인데 2만 달러라는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겠다는 관대한 혜택(perk)으로 볼 수도 있지만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인종별 특징: 아시아계에 대한 의문과 이슈
인종별로 혁신가들을 구분해 보면 미국 태생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등 소수 인종은 8% 정도라고 합니다. 이들 마이너리티 그룹이 그래도 미국인 전체에서 32%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8%는 매우 적은 비중입니다.
특히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혁신가 중 미국 태생 아시아계 비중은 실제 인구 비중 1.8%와 거의 유사한 1.5%에 머물고 있습니다.(아래 표 참조)
일반적으로 아시아계가 테크 기업이나 STEM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인다고 하는 것이 편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미국 태생 혁신가와 미국 인종 분포 비교
그런데 아시아계에 대한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분석에 의하면 미국의 혁신을 주도하는 인물 중 적지 않은 비중이 외국에서 이주해온 외국인들입니다. ITIF 조사에서는 미국 혁신가의 무려 35.5%가 외국인들이며 부모가 외국인인 10%를 더하면 45.5%가 1세대 또는 1.5내지 2세대 이주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으로 몰려드는 스마트한 외국인들은 유럽인이 35.4%, 인도인이 21.5%, 중국인이 17.1% 등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태생만 비교하면 혁신가들의 인종 대표성은 실제 인구 구성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 태생 혁신가들과 미국 내 외국 태생 인종 분포를 보면 유럽계와 아시아계 혁신가 비중은 놀라울 정도로 높습니다. 똑똑한 유럽계 백인과 아시아계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태생 아시아계의 비중이 낮은 것은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아시아 국가에서 태어난 유능한 인재들의 유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 출신지별 외국 태생 혁신가와 미국 거주민의 분포
미국 혁신가들의 출생 국가별 분포를 보면 외국 중 인도, 중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대만 순입니다.
* 혁신가들의 출신국별 분포
외국 태생 혁신가 중 유럽계 백인의 비중도 적지는 않지만 아시아계의 비중이 제일 높습니다. 또한 미국 주류 문화에 쉽게 융화가 되는 유럽계 백인들과 달리 외국에서 이주해 온 아시아계는 눈에 더 잘 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성 비중을 넘어서는 테크 기업의 아시아계 직원 비중(23~41%)과 흑인과 히스패닉 직원 비중이 6%와 7%인 애플을 제외하면 각각 1%와 3%에 불과한 흑인과 히스패닉 고용 비중은 분명 인구 대표성(12%와 17%)을 크게 벗어나고 있습니다.
* 주요 테크 기업 직원의 인종별 구성 비교
실제 미국 거주 아시아계의 학력 수준은 미국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있으며 혁신을 주도하는 STEM 분야 종사자의 비중은 미국 평균의 5배를 넘는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 출생국별 25세 이상 인구 중 대졸자 비중
인도계는 28%나 과학 및 공학 계통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전체 미국인의 5%만 이쪽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 아시아계의 과학 및 공학 산업 종사 비중
결국 이런 차이는 인도 태생 미국 거주 인도계 가구 연소득을 10만 달러 수준(2012년)으로 올려놓았습니다. 2010년 기준 미국 가구 평균 연소득이 49,800 달러인 반면 아시아계는 66,000 달러 그리고 인도계는 88,000 달러였습니다.
* 외국 출생 미국 거주 가구의 연소득과 대학원 졸 이상 비율
사실 인도계를 대표로 한 아시아계의 승승장구는 이들이 STEM 분야 고학력(미국으로 이주한 인도계의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 비중은 42%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음)으로 무장하여 미국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것에 따른 자연스러운(?)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나가는 아시아계에 대한 주변의 시각은 우호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미국의 주류 커뮤니티 보다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그리고 더 값싸고 능력 좋은 아시아계의 유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의 반발은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테크 기업들의 인종별 직원 비중 공개도 알고 보면 흑인 지도자인 잭슨 목사의 집요한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잭슨 목사는 인종별 비중을 보고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인구 대표성을 무시하고 있다며 강하게 항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아시아계의 성공이 높은 교육열과 STEM 분야의 선택에 있다지만 평균 소득의 차이는 물론 백만장자가 될 확률이 흑인과 히스패닉의 3배를 훨씬 넘어서고 백인마저 추월한 상황은 인구 대표성을 주장하는 여러 커뮤니티의 견제 수준을 높이게 될 것 같습니다.
* 인종별 백만장자 확률 비교
미국 대학의 경쟁력: 학부(?) 또는 대학원(!)
혁신가들이 졸업한 학부를 유형별로 보면 미국 공립대학(어바나 샴페인, UC 버클리 등)이 40%로 가장 많지만 외국 학부도 30%에 이르고 있습니다. 즉, 1/3에 가까운 혁신가들은 학부를 미국이 아닌 곳에서 마치고 미국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혁신가 비중 35.5%와 일맥 상통하는 수치입니다.
* 혁신가들의 출신 학부 분포
그런데 전문 학위를 포함한 석사 이상의 학위 분포를 보면 혁신가들은 과반이 넘게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저런 전문 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는 결코 일반적 사례가 아닙니다.
* 석사 이상의 학위 분포(중복 포함)
석사 이상의 학위를 받은 대학들을 보면 학부와는 달리 미국 대학이 거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외국 대학 비중은 10%p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즉, 대학을 외국에서 졸업한 인재들이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다고 보입니다.
어쩌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미국 대학 등록금의 일부는 미식축구 코치 스카우트와 함께 이런 외국인 인재의 유치에 쓰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 석사 이상 학위 대학 분포
* 미국 대학의 등록금 증가와 소비자물가지수 추이
미국의 고학력 전문직 선호는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점점 벌어져가는 학력별 임금 격차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오직 의사/변호사/MBA 그리고 박사직군의 실질 소득만 상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직군이 차지하는 고용 규모는 각각 1.5%에 불과해 매우 작으며 그마저도 외국에서 몰려든 인재들의 몫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 학력별 미국 임금 상승률 추이
* 2000년과 2010년의 소득 변화와 직군 비중
* 미국에서 고용된 STEM 박사들의 인종별 분포(백인 다음으로 아시아계의 비중이 높습니다.)
지역 이슈: 대기업과 협업 그리고 클러스터의 중요성
혁신가들이 어디에 근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57%는 500 명 이상의 기업에 다니고 있으며 25명 미만 그룹도 16%에 이릅니다. 미국의 혁신가들은 R&D 투자가 가능하고 신사업을 펼칠 수 있는 자본여력이 있는 대기업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규모 스타트업 기업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혁신가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 혁신가들의 소속 회사 규모 분포와 25인 미만 회사의 정부 지원 비중
또한 혁신가들은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과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과 협업의 중요성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는 지역은 주로 실리콘밸리와 뉴욕/보스턴이 있는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이 많습니다.
사실 이런 대규모 테크 기업들 단지와 스타트업들이 한 곳에 모여서 의사소통을 하고 투자가들을 접하고 신규 비즈니스를 수월하게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은 정부가 원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 각국들이 R&D 투자에 목을 매며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깎아주고 창업 인큐베이터를 조성하고 있지만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다른 클러스터에 준하는 경쟁력을 갖추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덩이가 더 커지듯이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해서 능력 있는 인재들의 미국 쏠림은 더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능력만 있다면 순식간에 미국 1% 부자가 될 수 있는 마력을 쉽게 거절하고 다른 유럽으로 발길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 혁신가들의 지역적 분포
문제는 혁신을 주도하는 테크 기업들은 큰 투자금을 얻거나 수익을 실현함으로써 부를 긁어모으게 되고 자연히 그 종사자들의 임금을 크게 올려주면서 그렇지 않은 직종의 사람들과 임금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점입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실리콘밸리와 미국의 중위수 가구 소득은 거의 2배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물론 살인적인 부동산 비용을 제하고 남은 가처분 소득은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부동산 비용도 결국은 고소득에 따른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 실리콘밸리, 캘리포니아, 미국의 중위수 가구소득 추이
소득의 차이가 커지는 것은 단지 부자 아시아인(특히 인도인과 중국인)이 이웃에 늘어 나고 있다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14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구글 통근 버스의 운행을 막아선 시위대들은 잘 나가는 테크 기업 덕분에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기존 주민이 쫓겨나가게 되자 그 분노를 구글 버스에 쏟아부은 것이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연봉 10만 달러 이상을 받는 테크 기업 직원들에 밀려나면서 이제 샌프란시스코 시내에는 샌프란시스코 경찰 대부분이 살지 못하게 되었으며 식당 종업원들 등 저임금 노동자들은 값싼 주거지를 찾느라 생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라고 항의 했습니다.
* 샌프란시스코 구글 버스 항의 시위 모습
어쩌면 혁신이 활발한 태평양과 대서양 연안 잘 나가는 지역에서는 소득의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며 경제적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중부 내륙이나 남부처럼 혁신과 거리가 먼 지역은 아예 산업이 공동화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 짤려서 결론은 이어지는 글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