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이거 난감합니다.
평소 돈가스를 프라이팬에 구워먹었는데, 이번에는 막 티브이 홈쇼핑에서처럼 튀겨먹고 싶어지는 겁니다.
왠지 그편이 더 바삭바삭하고 더 잘 익을 것 같았어요. 네 정말 맛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계속 부었습니다. 프라이팬 옆면의 반 정도까지 차도록 말입니다.
평소에 돈가스를 구울 때도 계란후라이 해 먹을 정도만 식용유를 써온 저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치를 부린 것이지요.
식용유를 부으면서도 '이 정도면 식용유값으로만 돈 천 원은 되겠는걸'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제가 사온 돈가스는 집 앞 슈퍼 냉동코너에서 산 싸고 얇은 '고기맛' 나는 싸구려 돈가스였기에 튀김용 팬이 없더라도,
말하자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가득 채우는 것만으로도 홈쇼핑 장면처럼 돈가스를 튀겨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맛있었어요. 구워 먹는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맛이었지요.
구워먹다 보면 가장자리 부분만 시꺼멓게 타는 경우도 있고, 속이 잘 안 익는 때도 있었기에 맛이 형편이 없었지요.
하지만 이 튀긴 돈가스는 제가 평소에 먹던 돈가스와 다른 돈가스를 사온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식용유를 '뿌린 대로' 좋은 돈가스를 '거둔' 것이지요.
조금 전만 해도 부은 식용유 값에 대해 미련이 남았지만, 그 미련이 정말 눈 녹듯이 싹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부른 배를 주무르며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아, 이거 참 난감합니다.
프라이팬엔 빵가루가 둥둥 떠다니는 폐식용유가 덩그러이 남아있었는데,
이걸 그냥 하수구에 버리자니 환경오염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먼저 들었고,
또 이걸 다르게 처리하자니 머릿속이 텅 빈 거 마냥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겁니다.
평소에 돈가스를 구워 먹던 저는 그냥 키친타올 몇 장으로 쓱쓱 닦아내는 것만으로도 설거지할 준비가 되었지만,
이 프라이팬 가득 담긴 식용유는 도저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생각해보니 이런 폐식용유의 뒤처리를 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없는 기억을 기억해내려고 하다니!,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당연하죠.
그러더니 그 텅 빈 머릿속에 아까 그 생각이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지 멉니까?
아까 그 생각, 식용유값에 대한 생각 말입니다.
제가 정확히 '이 정도 양이면 식용유 값으로만 돈 천 원은 되겠는걸' 이라고 지껄인 바로 그 생각 말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 생각이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토씨 그대로 머릿속에 한 글자 한 글자 박혀서 새겨지는 것입니다.
정말로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생각해보십시오. 아주 캄캄한 어둠밖에 없던 제 머릿속에 '식' 자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이윽고 자기 자리를 찾은 양 어둠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는 듯이 박혀버리지 멉니까. 모르긴 몰라도 심한 움직임까지 났을 겁니다.
네! 무거운 물체를 땅바닥에 떨어트렸을 때처럼 글자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서 하나하나 박혔다 이 말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정말입니다. 저는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여하튼 그 글자들이 머릿속에 새겨지자마자 식용유를 버릴 생각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요.
특히 실수라는 일은 더 그래요. 한번은 되고, 두 번은 되지 않습니다. 용납되지 않는 거에요. 전 사치를 두 번이나 저지를 뻔했지 멉니까.
정말 큰일을 저지를 뻔 했어요. 하지만 눈치채셨다시피 전 조금 똑똑한 편입니다. 그래서 그 실수를 하기 전에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었지요. 전 결심했지요. 폐식용유를 버리지 않기로 말입니다.
네.
그것이 왜 돈가스를 하루 만에 다 먹었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네 맞아요.
그 많던 돈가스를 먹은 것은 바로 저란 말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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