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세심한 성격도 아니고 주의력이 좋거나 상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따금 지하철 역사에서 차를 기다리거나, 지하철을 타서 주변을 둘러보다보면 뭔가 꼬집어 말하기 힘든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지옥철 탈 때야 그저 이리채이고 저리 채이기 바쁘지만 이따금 여유있게 주변을 살펴볼 수 있게 되면 더더욱 그런 묘함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미묘하게 많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정식광고란에 광고가 비어있을 때다. 어떨 때는 지하철 한칸이 거의다 비어있을 때도 보게 되는데 일단 여기서부터 '예전에도 이랬었나'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불과 몇년전까지는 뭐라도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아무 것도 걸려 있지 않은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 광고쟁이가 아니기 때문에 광고 노출도나 노출대비 효과 같은 세밀한 자료 같은 것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지하철. 그것도 서울의 지하철이라면 그래도 하루에 수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고노출 지대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필자가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1호선의 이용객 수는 말할 것도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광고가 들어오지 않는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광고만드는게 힘들고, 배치하는데 가격이 비싸서 그러려나- 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따금 보게 되는 얼척없는 광고들 때문에 그런 생각은 다소 접어두게 된다. 이를테면, '천지만물의 신비를 밝힌다'는 종교서적이라든지, 자가치료력을 높인다는 슈퍼미생물 광고 등등 도저히 '2015년 현대 서울지하철에서 볼 것같지 않은' 광고들을 접하다보면, 정말 이런 광고들까지 따와야할 정도로 광고영업이 안되는건가, 이런 광고들까지 가져오지 않으면 진짜 광고란이 텅텅 비는 모습을 볼 수도 있는건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정말 지하철, 그것도 서울시의 지하철이 이정도로까지 광고매체로서 매력이 떨어진건가 싶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광고를 하는 분야 개개별로 들어가자면, 우선 어플리케이션 광고가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게임 광고는 말할 것도 없고, X방 같은 방 어플리케이션 등등 둘러보다보면 광고가 있구나 싶은 곳에는 여지없이 어플관련 광고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들이 눈에 보인다는게 문제라는 건 당연히 아니고, 요즘 누가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는지, 어떤 분야가 대세인지를 짐작하는 지표 중에 하나가 광고라는 점에서, 어플리케이션 시장이 이정도로까지 컸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편으로 대학광고가 정말로 많이 줄었다. 이것은 거의 확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말 많이 사라진게 피부에 와닿는다. 한때 지하철 광고란 의 단골고객이었던 신구대학 같은 대학들도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다. 서울에 가깝다고, 교통이 편리하다고, 취업에 강하다며 우리대학 와달라고 광고하던 그들이 사라졌다. 전문대학교 광고가 아니라면 사이버대학교 광고라도 있었고, 대학원 광고라도 있었다.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여전히 집행 중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 시야 범위안에선 그들이 분명히 사라졌다. 물론 본격적인 원서접수철이 되면 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생각보다 시기 안타고 꾸준히 집행되었던걸로 기억되는 대학광고를 이젠 보기 힘들다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좀 상징적인 무언가가 되었다.
또, 필자가 20대 초반이었을 때는 쉬이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롯X캐피탈 같은 캐피탈 광고까지 보이는 것은 여러모로 내게 어색한 기운을 안겨다 주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이제 대부업관련한 광고에 대한 규제가 많이 풀어졌다고 해도 일상의 가까운 곳인 지하철 안까지 대부업광고가 들어오나- 싶은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 심지어 그들이 주는 메시지가 상당히 친절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더더욱 소름 아닌 소름이 돋는다. 제2. 제3금융권에 돈을 빌리고, 높은 이자로 갚아나가야 한다는게 저들이 주는 메시지처럼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닌데, 마치 광고 안에서는 살다보면 간편하게 이용할 수도 있는 것처럼 아주 산뜻하게 다가온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소위 '경알못'인 필자이기는 이 '위화감'의 정체는 아마도 '경제 주체들의 여력이 얼마나 많이 없어진걸까'하는 생각 때문인 것같다. 물론, 지하철이라는 매체 자체가 요즘에는 매력적인 수단이 아닐 수도 있고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더 좋은 광고수단이 생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오프라인 매체를 통한 광고 활동에 메리트를 느끼는 산업 주체들이 변했거나 줄어든 것일 수도 있고, 아마 이유야 여러가지겠지.
하지만 각 경제주체별로 여력이 조금이라도 더 있고, 그래서 자신을 어떤 수단으로라도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경영판단상 이득인 시대였다고 한다면 지금 이정도 수준일까? 라는 의문은 좀 벗어나기 힘든 것같다. 뉴스를 통해서 들려오는 거시적인 지표의 성장이나 회복세가 진짜 경제의 흐름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수준에서만 논하자면 움직이는 돈의 절대적인 흐름 자체가 줄어든거 아닐까 하는 느낌이랄까.
그게 아니고 단지 흐름자체가 변한 것이고 변한 현재의 영향이 지금 내가 느끼는 서울지하철의 광고 감상을 만든 것일 뿐이라고 해도 뭐 별로 할말은 없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다행인거겠지. 다만, 그것이 아니라 조금씩 무언가가 정말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하나씩 없어지고 변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뭐가 또 주변에서 사라지고 어떤게 달라질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든다.
하던 일이 있다보니 여러 사람들이 자기분야에서 소소하게 하던 일, 펼쳐놓았던 사업을 접고 다른 활로를 찾는 모습을 종종 보게된다.
그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지하철 안에서 똑같이 느꼈다고 하면 좀 비약이려나. 냉엄한 현실까진 잘 모르겠고, 그냥 이 모든게 쓸데없는 걱정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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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보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승객들은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광고판들은 하나 둘 비기 시작했는데 이미 3~4년 전부터 빈 광고판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어요.
예전엔 지하철공사의 적자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보전해 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아닌 것 같네요, 안타깝지만.
세금으로 들어가는 돈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