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Cynthia Barnett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Rain: A Natural and Cultural History]라는 책인데 제목 그대로 비에 관한 여러 가지 자연과학적이고 역사 문화적인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제가 요 며칠 PGR에 올린 글들은 다 이 책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들인데 읽다보니 뜻밖에 반가운 분이 나오시네요.
바로 세종대왕님!...
강수량의 과학적인 측정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 아래와 같은 구절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The cylinders that catch rain in modern backyards emerged in Korea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Great, who ruled from 1418 to 1450. A Korean cultural hero to this day, Sejong put a premium on science – especially agricultural technologies to help coax more food from the drought-prone land. Sejong wanted every village in the country to report rainfall back to the crown, a chore that involved inspecting roots and soils for moisture after a storm. His son, the crown prince, is said to have come up with the tubular gauge. King Sejong sent one to every village. Korean historians have a running disagreement about whether Sejong actually used the data, or collected it as a shrewd political move to show he cared about the problems of agriculture.
오늘날 뒷마당에서 비를 받는 원통 형태의 장비는 1418년부터 1450년까지 한국(조선)을 통치했던 세종대왕의 재위 기간에 등장했다. 세종은 한국에서 오늘날까지 문화를 부흥시킨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데 과학을 중히 여겼으며 특히 가뭄이 자주 드는 지역에서도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영농 기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세종은 나라에 있는 모든 마을에서 강수량을 측정해서 왕에게 보고하기를 원했는데 이러한 작업은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나무의 뿌리나 토양을 살펴보고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 그의 아들인 세자(문종)는 강수량을 측정할 수 있는 관 형태의 기구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세종은 이것을 각 마을로 보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세종이 실제로 이렇게 측정된 자료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단지 자신이 농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기민한 정치적인 움직임이었는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의견이 분분하다.]
저는 잡다한 주제의 원서들을 자주 보는 편인데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동안에는 한국이나 한국 인물이 언급되는 경우를 거의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종대왕에 대한 구절이 나온 것을 보니 괜히 반가운 느낌이 드네요. 그리고 저 부분 다음에 유럽에서 강수량을 원통 형태의 장비로 처음 측정하기 시작한 얘기가 이어지는데 그 연도가 1703년이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한국이 적어도 260년 이상 앞섰다는 얘기네요. 결국 이렇게 원통형으로 생긴 강수량 측정 장비를 가지고 강수량을 측정한 것은 우리나라가 최초라는 얘기인 것 같은데 (비록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처럼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것 아니지만) 금속활자의 발명도 세계 최초이고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에 대한 전통이 만만치 않은 국가였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음...다시 옛 영광을 회복중이라고 해야겠죠?...--;;;
그런데 이런 것에 흥분하는 걸 보니 저 역시 “두 유 노우 강남스타일?”의 마인드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국정교과서의 폐해?...--;;;)
그건 그렇고 저 문단 말미에 제기된 문제의 정답은 무엇일까요? 정말로 세종대왕은 그렇게 측정된 자료들을 실제 농업기술개발에 활용을 했을까요? 아니면 진짜 정치적인 몸짓에 불과했던 것이었을까요? 만약 후자라면 세종대왕은 진짜 정치 9단이라고 봐야겠네요.